논산 벌 갈 볕

2011. 10. 17. 08:53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비 온 뒤끝이라선지 청명한 게 제대로 가을날씨 합디다.

올 여름에 비가 참 많이 왔는데, 가을 접어들면서 날일기를 잘해서 벼농사는 잘 됐다고 합니다.

요즘엔 또 간간히 비도 적당히 내려서 김장 걱정은 크게 안해도 되겠더군요.

모처럼 친구랑 낮에 잠시 바람 좀 쐴 겸해서 점심이나 먹고 들어왔습니다.

아, 점심은 연산순대 가서 순대국밥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점심 먹고나서 친구가 농사(?)짓는다는 친구네 옛집으로 갔습니다.

옛집이래야 살던 집은 칠 팔 년 전에 헐어 없애고, 짓던 논 밭은 벌써 그 이전에 다 팔았고,

그래서 지금은 텃밭 육칠 백 평만 남아있다더군요. 보이는 저 집은 창고입니다.

우물물은 먹진 못하지만 물이 차서 한여름에 일하고 나서 등목하기에 아주 좋답니다.

 

 

 

 

 

 

 

 

 

 

 

 

 

 

겉보기엔 스레트 지붕에다 허룸하게 보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원래는 기와를 올렸었답니다.

벽이고 천정이고 짚흙으로 발라서 보온 · 방한이 잘되게 생겼습니다.

보(保)나 기둥이나, 쓴 목재를 보니까 인근에서 아무렇게나 구할 수 있는 나무가 아니더군요.

150년 됐다는데도 흙벽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걸 보면,

창고용으로 지었다고 해도 제대로 지은 집입니다.

 

 

 

 

 

 

 

 

 

원래 집터는 이 자리였답니다.

비가 새고 해서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친구 아버지가 헐어버리셨다는군요.

아주 잘 지은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까와 죽겠대요.

창고 지은 걸 봐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저같았으면 말렸을텐데…,

당시에 친구가 지리산 자락에 관심이 있을 때라서,

또 이 집은 어차피 살 집도 아니고 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답니다.

친구 아버지 연세가 지금 팔 십이 넘으셨는데,

그런 걸 보면 나이 칠순이 넘어도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대청마루니 뭐니 그렇게 잘 지은 집이었다는데……

기왓장 주워놓은 걸 보니까 예사 기왓장이 아닙디다.

 

울 아버지도 그 맘때쯤에 가묘해 놓은 산에 있는 소나무를 다 베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었어요.

난데 없이 멀쩡한 소나무를 포크레인으로 밀어제끼는 걸 보곤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한테는 우리가 짐작 못할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줄 알았죠.

헐!  울 아버지도 똑같더군요.

우리 형제들 묻힐 자리 만들어줄라고 그랬다더군요.

환장하겠습디다. 뭔 자식놈들 묫자리까지 잡아주고 신경 씁니까?

아버지도 나중에야 괜한짓 했다고 머쓱해 하십디다.

기껏 없는 돈 들여가며 포크레인 사서, 하루종일 고생 존나게 하고는…,

비 오면 나무 벼낸 자리가 훔탱이져 쓸려내려갈까봐 개굴 개굴….

나 원, 그렇게나 멍청하실까?

제 아버진 그럴 분이 아니신데, 그때 뭐가 씌우셨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많은 것만으로는 경륜으로 안 쳐줍니다.

 

 

 

 

 

 

 

 

 

눈에 보이는 저 너른 들판이, 옛날 친구 할아버지 때는 전부 자기네 땅이었답니다.

인근의 모든 농토가 다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네 꺼였다는군요. 부자였지요.

그런데 그걸 아버지가 다 팔아잡수셨대요. 사업한다면서요.

친구 아버지가 장남이시거든요.

학교 선생님하시다가 관두고 사업을 한다면서 사고를 치기 시작해서 결국 다 말아먹은 거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쫒겨났대요.

동생들한테는 또 얼마나 원망을 들었겠습니까. (여동생만 있다든가?)

 

부자, 3대 못 내려간다는 말이, ... , 털어먹는 걸 보면 정형화 된 틀이 있더만요.

거의 모두가 장남이 털어먹습니다. 그것도 객지 나가서 공부 좀 하고 온 장남들이 그럽니다.

밖엣 바람 좀 쏘였다 이거죠. 농사 안 짓고 편히 돈 버는 사람들을 봤거든요.

십중팔구 그런 식으로 말아먹거나, 아니면 당대의 주인공이 노름으로 말아먹습디다.

 

“저거 전부다 우리 논이었어.”

“지금 누구네 논, 누구네 논, 다 우리 꺼였어.”

 

이런 얘기 참 많이 들어봤지요? 그런 얘기 들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장남이 털어먹건, 노름으로 말아먹건, 둘 다 속임수에 걸려든 건데,

재간 없더군요. 십 년 넘게 설계하는 꾼들도 있다니까요.

아무튼 친구 아버지는 그 약점 땜에 지금도 어머니한테 꼼짝 못하신다더군요.

 

 

 

 

 

 

 

 

 

 

 

작년에 이 고구마를 얻어먹어봤는데, 맛이 좋더군요.

밭에다 사스끼(철쭉) 분재를 많이 심어놨었는데, 지난 겨울에 다 얼어죽었답니다.

온실을 해야만 하는데, 관리하기가 마땅치 않고.... 그래서 엉거주춤한 모양입니다.

논산 벗어나서 부여 가는 길 옆, 논산 장례식장이 있는 곳입니다.

취미만 있으면 농사일도 재밌습니다.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하죠.

저는 우리 시골집도 동생이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억지로는 안되는 일이죠……...

 

참, 이 땅,

팔아서 부모님 용돈으로 쓰시라고 했는데도 안 파신다더군요.

눈치가 맏아들 장남 줄라고 그러는 것 같답니다.

맏이인 형은 서울 강남에 사는데, ‘하우스 푸어’, 그딴 거 아니고 재산이 꽤 됩니다.

지금도 벌이가 좋구요. 그런데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이라더군요.

집안에 손자라고는 친구 아들 밖에 없습니다. 큰 장손이지요.

지금 부모님이 딴 아파트에 살고 계시기야 하지만 친구가 모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런데도 장손은 신경도 안써주고,

영양가 없이 딸만 둘 둔 장남만을 위한다더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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