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3. 12:55ㆍ미술/ 러시아 회화 &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들과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등의 탁월한 작곡가를 배출한 문학과 예술의 나라이다. 그러나 러시아 화가와 그 작품에 대해서는 세계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러시아 회화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학과 음악에 비해 뒤늦게 개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타당한 대답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외국의 지배를 받거나 크게 침탈 당한 적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 내에 있는 예술작품이나 문화유산이 세계 곳곳으로 덜 퍼졌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레핀의 자화상>
19세기에 들어 러시아의 회화양식은 사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19세기 초반 키프렌스키와 트로피닌의 사실주의적인 초상화와 페도토프의 풍속화 등은 19세기 후반의 화가들이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기반을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들은 당시 사회 현실을 그대로 화폭에 담고자 했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농노제의 잔재와 함께 급속한 사회 변화를 맞아 혼돈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푸슈킨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등장, 드디어 현실 속 구어체를 사용한 문학을 시작,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리고 음악과 미술은 모두 문학의 발달을 시작으로 발맞추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황제가 지배하는 전제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민중에게 관심을 갖게 된 당시 지식인들은 이를 문학, 음악, 미술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혁의 시기에 등장한 거장이 바로 일리야 레핀이다. 레핀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와 극적인 구도를 사용,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세로프나 쿠스토디에프와 같은 후학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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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유형지에서 수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는 노부인의 당황스러움이 엉거주춤한 포즈를 통해 드러나고 가족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냉랭하면서 슬퍼 보인다. 남자의 자녀로 보이는 아이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은 차르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 혹독한 유형지에서의 유배생활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히 지식인 계층에게 많이 처해졌던 이 유배형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실제로 악령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는 10년이라는 유배 생활을 통해 신앙인으로 거듭났고 대작을 연달아 써내는 방대한 필력을 자랑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비참함 그 자체였고 사형보다 더한 힘겨운 형벌이었다. 이 그림에는 살아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돌아온 이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놀람, 당황함이 더 담겨 있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Gopak>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속춤인 고팍은 두박자의 흥겨운 민요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러시아 하면 생각나는 바로 그 춤이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들어올려 추는 이 춤은 사나이이의 기개를 보여주는 멋진 동작을 보여준다. 레핀은 역동적인 고팍의 동작과 화려한 의상을 통해 러시아 민족의 강인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왼쪽 상단에 날아오른 듯한 사나이와 오른쪽 중앙 부분에서 붉은 옷을 입고 강한 춤사위를 펼치는 남성의 표정이 이 그림의 역동성을 더 잘 드러내 준다
<너희들 중 하나는 나를 배신하리라>
레핀의 종교화.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13 제자 중 한 사람의 배신을 미리 예견한다. 실제로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으로 고난을 겪게 된다. 방을 밝히고 있는 촛불의 불빛이 신성하게 느껴지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듯 동작이 큰 제자들의 포즈와 차분하게 제자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님의 포즈가 대비를 이룬다.
<야이로의 딸의 부활>
<Get behind me Satan>
흰 옷을 입고 정결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예수와 검은 날개를 달고 흉측한 몰골을 한 악마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는 작품.
<수술실의 파블로프 박사>
러시아의 생리학자로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 실험인 파블로프의 개로도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의 수술실 광경을 그린 작품. 흰 옷을 입은 박사와 제자들이 환자를 수술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순백의 옷과 푸르스름한 빛을 띤 수술실의 광경이 눈을 사로잡고 화면 중앙의 환자의 다리와 망치를 든 파블로프 박사의 모습이 수술 당시의 상황을 직접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자백을 거부하는 사나이>
러시아정교의 십자가를 들고 병중에 있는 죄수를 찾은 사제. 죄수의 표정의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현재 고해성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어두운 분위기와 관객을 등진 사제의 검은 옷,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사나이의 표정에서 암울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1581년 11월 16일의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반뇌제는 제정 러시아의 폭군으로 유명한 황제이다. 그야말로 천둥번개처럼 무섭다는 의미로 우리 나라에서는 뇌제로, 서구에서는 Ivan, the terrible.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황제이다. 실제로는 이반 4세인 이반뇌제는 시베리아를 정복하고 영토확장을 거듭하는 등 러시아의 국력을 상승시키는데 기여한 능력있는 왕이었지만 신경질적이고 흉폭한 성격으로 며느리를 때려 유산시키는 등 행패를 일삼았다. 이에 항의하던 아들 바실리 황태자를 순간적인 화를 이기지 못해 부지깽이로 내리쳐 황태자는 3일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이반뇌제는 수도자가 되어 3년 후 숨을 거두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그림으로 남긴 레핀. 이 그림 속에서 이반 뇌제는 회한으로 가득찬 추악한 노인으로 표현되었고, 아직 젊은 그의 아들 바실리 황태자는 이미 세상의 것이 아닌 눈빛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호사스러운 궁전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사건은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화려한 카펫과 장식으로 가득한 궁전의 세밀한 묘사와 대비되어 그 비극성이 더욱 강조된다.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볼가강 연안에 상륙하려는 거대한 배를 끌고 가는 인부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연령대도 체구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지만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당시 격렬한 삶을 살아갔던 러시아의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레핀은 그들의 삶을 그저 동정받아야 할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민중의 생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실제로 레핀은 이 그림을 그리며 볼가강 유역의 인부들과 친분을 쌓았고 실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감화되어 진심을 다해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어부 소녀>
<유리 레핀의 초상>
레핀의 아들인 유리의 초상화다.
<나디아 레핀의 초상>
레핀의 어린 딸 나디아의 초상.
<Kuznetsova의 초상>
<니콜라이 2세의 초상>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간 황제는 가족들과 함께 총살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작품 속 젊고 패기 넘치는 모습의 황제는 호화로운 궁전 안에서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치 사진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을 통해 레핀의 세밀한 인물 묘사와 옷과 배경의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잡아낸 거장의 회화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가 루빈스타인의 초상>
러시아 출생의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루빈스타인은 리스트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았고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 차이코프스키라는 걸출한 거장을 배출하였다.
<첼리스트 alexander verzhbilovich>
폴란드 태생의 음악가인 아버지를 두었던 알렉산더 베르조빌로비치는 훗날 차이코프스키와 우정을 나누며 그가 협주곡을 작곡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하일 글린카의 초상>
러시아 연방의 애국가를 작곡하기도 한 글린카는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작곡, 러시아 최초로 인정받은 음악가였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초상>
레핀은 톨스토이의 다양한 초상화를 남겼는데 근엄한 모습이 담긴 것도 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가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걸작을 써낸 톨스토이는 당시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 문학의 거장이었다. 특히 진정한 농민의 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은 러시아 사실주의 예술의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핀의 그림 속 톨스토이는 긴 수염과 편안한 자세에서 푸근한 노작가의 인상을 심어주지만 눈빛만큼은 지성으로 번뜩인다. 대상의 내면까지 표현하는 훌륭한 초상화가였기에 레핀의 초상화는 많은 이들에게 실제 인물의 사진을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준다.
<외과의사 피로고프 박사의 초상>
인자하지만 고집스러워 보이는 표정의 피로고프 박사의 모습에서 등장 인물의 내면까지 그림에 담아내려 했던 레핀의 회화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가르신의 초상>
러시아의 문인인 가르신은 7세의 나이에 자신의 앞에서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증언을 해야만 했고 이후 평생을 정신병 증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했고 두꺼비와 장미꽃, 붉은 꽃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그의 마음 속 고통을 표출했다. 33세의 나이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르신의 초상에서 지적이고 순수한 눈빛의 젊은이로 그려진 가르신. 하지만 그의 눈은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가르신이 자살하기 몇 년 전에 그려진 이 작품 속에는 가르신 자신의 고뇌와 고통이 담겨 있는 듯하여 가슴아프게 한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초상>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 러시아인 최초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의 민속음악을 현대적으로 편곡하여 근대 러시아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소르그스키의 초상>
무소르그스키가 술을 마신 후 그려졌다는 이 작품 속의 음악가는 그래서인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7세 때 이미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정도로 신동이었던 무소르그스키는 친구였던 건축가의 전시회를 보고 난 후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피아노곡집을 작곡하였다.
<시험준비>
<벤치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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