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4. 17:01ㆍ미술/ 러시아 회화 &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1880-90) 캔버스에 유채 67x87cm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아 레핀》에 상세히 나옵니다.
검색을 하다보니까 마침 그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한 글이 있더군요.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더러 추가할 부분은 아래에 덧붙이겠습니다.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화풍의 화가 일리야 레핀이 1880-189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린 역작.
레핀이 1878년 모스크바 근교의 미술 애호가 집에서 친구들과 차를 마시는데,
손님들 중 한사람이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이 터키 술탄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1675년 터키의 술탄 무하메드 4세가 자포로쥐에 카자크(지금의 터키의 동북부 아르메니아지역)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술탄은 '해와 달의 형제, 신의 대리인, 모든 왕국의 주인, 왕중왕, 무적의 기사, 이슬람교도들의 희망, 기독교의 수호자'로
칭하면서 터키에 귀화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카자크들은 답장을 보내길___ ,,
'당신이 기독교의 자식들을 갖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땅과 바다를 동원해서 당신을 칠 것이다.
우리는 달력이 없으므로 날짜를 모른다. 몇 월인지는 위에 있고 몇 년인지는 아래에 있다.
몇 일인지는 당신이 아는 것과 똑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것이 있으니 당신은 썩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쳐부술 것이다.'
카자크들의 외교적 수사없이 거리낌 없고 확고하고 인상적인 유머는 레핀의 취향에 맞는 것이였다.
화가의 눈에는 이들의 모습이 삶에 대한 기쁨과 굴하지 않는 민중성으로 다가 왔다.
한때 자유로웠던 카자크들을 추앙하며 다혈질적인 주인공들의 생생한 형상을 캔버스에 포착하고픈 열망이 솟구쳤다.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의 레핀 나이는 36세. 인생의 최고 전성기를 누릴 때였다.
레핀은 이때부터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고 자료들을 모았으며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풍경화와 역사유적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모델들을 찾아 나섰고 두 캔버스를 준비하여 하나는 연습으로 하나는 진품으로 그려 나갔다.
진품의 그림도 끊임없는 수정과 수정을 통해 화가의 맘에 들 때가지 노력하고 인내해 나갔다.
레핀이 이 그림에 얼마나 공을 들였냐하면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한다.
레핀은 아들의 머리를 깍아 변발을 시키고 카자크들의 옷을 입어보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레핀의 사상적 멘토인 톨스토이에게도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자 그림을 보자!!
저 멀리 전투의 흔적이 보이고, 칼을 든 무리들이 훈련을 받고, 한 쪽에서는 밥을 짓느라 연기가 피워오르는,
야전의 병영 가운데에서 카자크인들이 서기를 중심으로 모여 누군가 조롱섞인 말을 내뱉자 미쳐죽겠다는 듯이 웃고 있다.
책에서는 이 장면을 '이들의 격정적인 호탕한 웃음 속에는 무한한 용기와 민중의 힘, 적에 대한 경멸이 명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라고 적혀 있다.
만약 내가 저 곳에 있었다면 어떤 웃음을 지고 있었을까? 상상만해도 즐겁다.
왜냐면 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웃음이기에 그렇다.
이 그림에는 애매모호함이 없다. 각자 웃음의 심리학이 관람객의 가슴에 명확히 심어지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술탄앞에 카자크인들은 저렇게 호탕할 수 있을까?
굴종과 노예의 삶대신 당당한 죽음과 자유인으로 살겠노라하는 결기가 느껴진다.
레핀도 당시 로마노프 왕조의 짜르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민중들의 삶에 지식인이 동정을 하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대외적으로는 민족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때 당시 러시아와 터키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1877-1878년 에 터키와의 전쟁이 있었던 것이지요.
러시아인은 터키에 대한 반감이 클수록 역사적으로 터키에 대해 저항했던 카자크인들에게 호감을 더욱 더 갖었던 거고요.
1978년에 카자크인들의 편지글을 읽었던 레핀도 같은 맘이였을 겁니다.
당시 레핀에게 있어 비겁하게 행동하고 주저하는 러시아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모범으로 카자크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구현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레핀은 예술을 예술로서 사랑한 자유주의자였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관심대상이였고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면 즉각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구 그리지는 않았고,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예술적 영혼이 살아 숨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뼈를 깍는 인내력을 발휘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고 하는군요...
그 분의 그림과 사상, 생애를 기록한 천개의 얼굴, 천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 생애와 겹쳐보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퍼온글 끝)
덧붙임.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을 그리면서 레핀은 주제에 대한 연구보다 스케치에 많은 시간을 할당했다.
수 백 개의 스케치, 밑그림, 습작, 그리고 대상을 연구하기 위한 여행에 이르기까지,
레핀은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모든 사실은 화가 레핀이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감정은 바로 사랑이다.
레핀이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사랑, 환희의 감정은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러시아인은 마음 속에 특별한 영웅심을 감추고 있다.
러시아인의 영혼에는 개인성을 망각할 때까지 인간을 괴롭히는 열정적이고 심오한 그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삶의 힘이다.
그것이 보로지노 전투를 이끌었다. 그것이 미닌의 뒤를 따르게 했다. 그것이 스몰렌스크와 모스크바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것이 고령의 쿠투조프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다시 레핀은 편집장 A.S.수보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지금 타임지 통신원 백만 명이 내 그림을 별 볼일 없다고 말할지라도, 나는 내 뜻대로 할 것입니다.
나는 내 그림에서 그 어떤 특징도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모든 수정작업을 거친뒤,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은 1891년 레핀의 창작 활동 20주년을 기념하여 예술 아카데미에서 열린 전시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신문은 높이 평가했다.
The Cossacks Write a Letter to the Sultan Preliminary sketch. Oil on canvas. 67 × 87 cm.
The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 회색 수염 대장 세르코, 카자크 골로타, 타라스 불바, 오스탑, 안드레이, 대장장이 바쿨라 -
대부분의 카자크 모델이 되어준 사람은 레핀의 친구와 지인들이었다.
서기는 역사학자 에바르니츠키, 타라스 불바는 페테르부르그 음악원 교수인 루베츠,
카자크의 일등 대위는 배우인 스트라빈스키가 모델이었다.
이마에 상처가 있는 카자크의 얼굴에서는 화가 쿠즈네조프를 볼 수 있고,
세르코의 모습에서는 드라고미로프 장군을 찾을 수 있다.
높다란 검은 모자를 쓴 카자크는 타르노프스키를 그린 것이고,
옆 사람의 등에 주먹을 대고 있는 카자크에서는 화가 치온글린스키가 나타난다.
심지어 통 위에 몸을 펴고 있는 카자크의 목덜미도 초상화가 되었다.
그렇지만 레핀이 취한 모델들이 그림 형상의 원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형상들과 일정 정도만 닮았을 뿐이다.
레핀은 결코 포즈를 취한 사람을 그대로 자신의 그림에 그리지 않앗다.
그는 항상 그 얼굴을 창작의 공통적 과제에 맞게 창조적으로 개작하였다.
- '천개의 얼굴, 천개의 영혼, 일리아 레핀' 190~204 쪽-
자포로지예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흐 자치지역 이름이자 이들 카자흐의 군사 정치 조직체를 이르는 말이다.
자포르지에라는 이름은 '급류 너머'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지방에서 보았을 때
그만큼 공략하기 까다로운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산적'으로 살아가던 이들에게 1675년 오스만 투르크의술탄 무하마드 4세가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인 항복과 모든 저항의 포기'를 요구하는 협박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이들 카자흐가 이 편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외려 그들은 '땅과 물, 어디에서든 맞서 싸울자'며 술탄을 조롱하는 편지를 써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
레핀의 그림은 술탄에게 편지를 쓰며 희희낙락하는 카자흐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려움 모르는 이들은 술탄의 위세와 막강한 무력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비웃고 조롱할수 있는 편지를 쓸까, 모여서 궁리하는 중이다.
*
한 사람 한 사람 제각각인 골상 하며, 인종 차이, 나이와 체질의 차이, 웃는 모습의 차이, 그리고
개개인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어쩌면 이렇게 다채로우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지닌 독특한 집단적 분위기와 세계관, 인생관도 손에 잡힐 듯 형상화되어 있다.
이런 안목과 묘사력이야말로 역사를 옛이야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우리 눈앞의 현실로 생생히 복원시키는 힘이 아닐 수 없다.
*
러시아 역사화 역시 다른 나라의 역사화처럼 영웅과 제후의 이야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기층민중을 역사적 시각에서 조망하는 작품 또한 적지 않다는 게 러시아 역사화의 매력이다.
특히 19세기 후반의 거장 수리코프의 작품에서 이런 특징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다가올 혁명의 기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 무렵의 러시아 역사화가 지닌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민족적 감정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이다.
민족과 민중의 만남이 역사의 시선 아래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된 것을 보노라면,
이야말로 오로지 이 시기의 러시아이기에 가능했던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 이주헌,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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