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0. 10:49ㆍ책 · 펌글 · 자료/종교
안다는 것 얕은 소견 이름만 높아가고
세상은 위태롭고 어지럽기만 하구나
모를 일이여 어느 곳에 가히 몸을 감출 것인가
어촌이나 술자리 그 어느 곳에 처소가 없을까마는
이름을 감출수록 이름이 더욱 새로워질까
다만 그를 두려워하노라
-自梵魚寺向海印寺道中-
경허는 숨으면 숨을수록 자신이 더욱 드러나고,
이름을 감추면 감출수록 이름이 더욱 새로워질 것임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허는 왜 승려로서의 생활을 버리고 경허라는 법명도 버리고,
화류의 거리와 어촌에서 몸과 이름을 숨기고 살아가리라 결심했던 것일까.
화광동진(和光同塵) - 빛은 먼지와 더불어 함께한다
부처가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세속을 좆아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경허는 문자 그대로 티끌과 어울리기 위해 과감히 승려의 길을 버리고 이름도 신분도 바꾸고
아무도 모르는 저 산수갑산의 북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몽 생활로 7년 동안이나 여생을 보내다가
시적(示寂)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도인으로서의 마지막 생애를 보면
일찍이 12세기 북송 시대에 곽암(廓庵)스님이 지은 십우도(尋牛歌)가 떠오른다.
경허는 이 모든 수행의 방법을 거치고 이룬 후 마침내 그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의 단계로
스스로 빠져들어간 것이었다.
1.자기의 본래 마음자리인 소를 찾아 나서는심우 (尋牛)
푸른 들판 끝이 없네
깊은 풀숲 헤쳐가며
소를 찾아 헤매는 길
이름 없는 강물 따라
머나먼 산길 따라
기진 맥진 하였건만
소는 감감 보이지 않고
땅거미 진 숲 속에
귀뚜라미만 홀로 우네
2.소는 아직 못 보았으나 소의 발자취만 발견하는 견적 (見跡)
문득 강가의 나무 밑에
소 발자취 보이네
아니 향기로운 물 밑에도
소 간 자국 뚜렷해
저 멀리 이어져 가네
이제야 나의 코 보듯
그 자취 분명하여라
3.소를 발견하는 견우 (見牛)
두견새 노래 들려오고
따스한 햇살 아래
바람도 잔잔한데
강 기슭 버드나무 마냥 푸르네
여기 어느 소(牛)인들
숨을 수 있을까
저 육중한 머리
저 장엄한 뿔
무슨 재주로 끌어내랴
4.본래 마음 자리를 비유한 소를 얻는 득우 (得牛)
그 싸움 어려웠어도
내 마침내 소를 잡네
그 억센 기질
구름 위로 솟을 듯하고
그 한량없는 힘
태산도 뚫으려는가
그러나 마침내 멈추었고나
오랜 방황을 멈추었고나
5.소를 길들이는 (牧牛)
채찍과 밧줄이 있어야겠네
고삐 꿰어 손에 잡고
회초리질 아니하면
그 소 멋대로 날뛰어
흙탕 수렁에 빠지겠구나
그러나 잘 길들인다면
본성이 어진 소라
고삐 없이도 나를 잘 따르리
6.소를 타고 본래 마음자리를 비유한 집으로돌아오다(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가 먼저 알고 찾아드네
소 등에 피리 소리
황혼을 노래하며
고운 가락 장단 맞추어
온 누리에 울려 퍼지니
마음 사람 모두 나와
회답하며 반기네
7.마침내 소를 얻었다는 생각 마저 없는 자리인 망우존인 (忘牛存人)
마침내 소 타고 집으로 왔네
내 마음 끝없이 편안하고
소 또한 쉬니
온 집에 서광이 가득하여라
초가삼간에 근심 걱정 없으니
내 마침내 채찍과 고삐를 내버리네
8.소를 얻은 사람조차 없으니 얻은 소도 없는 인우구망 (人牛具忘)
회초리도 밧줄도 소도
나 자신까지도
모두가 공하여 느낌이 없네
넓고 넓은 이 하늘
끝도 가도 없어서
티끌 하나도 머무를 곳이 없네
내 마음이 이와 같으니
무엇엔들 걸리리
9.소도 사람도 없으니 그대로 본래 그 자리인 반본환원 (返本還源)
이 뿌리에 돌아오기 까지
숱한 고개를 넘고 넘었네
이것이 참된 나의 거처
그 모양 허공과 같아서
막힘도 트임도 없으니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꽃들은 마냥 아름답고나
10.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니 다시 거리로 나서는 입전수수 (入廛垂手)
비록 누더기를 걸쳤어도
언제나 모자람이 없고나
길거리와 장터에서
뭇 사람과 섞인 채
그들의 고통은 절로 사라지니
이제 내 앞에서는
죽은 나무도 살아나는구나
깊은 골에 물줄기도 젖지 않는다 하리
경허가 <십우도>에 있어 '입전수수'에 대해서 직접 해설을 붙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木女의 꿈과 石人의 노래여.
이것은 한갓 육진(色.聲.香.味.觸.法.)의 그림자로구나.
상이 없는 부처도 용납할 수 없거늘
비로자나의 정수리가 무엇이 그리 귀하리오.
봄풀 언덕에 유희하고 갈대꽃 물가에 잠을 잠이로다.
바랑을 지고 저자에서 놀며 요령을 흔들고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실로 일 마친 사람의 경계여라.
전날에 풀 속을 헤치고 소를 찾던 시절과 같은가 다른가.
가죽 밑에 피가 있거든 눈을 번쩍 뜨고 보아야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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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가 해인사의 퇴설당을 떠나 스스로 행방을 감춰 '입전수수'하기 직전,
못내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동행하여 저잣거리로 함께 숨어버리자고 권유한 사람이 하나 있음이다.
그의 이름은 한암. 바로 경허가 말년에 가장 총애하였던 막내제자이다.
그러나 스승의 간곡한 권유에도 한암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경허는 길을 떠나기 직전 한암에게 다음과 같은 이별의 글을 써주어 정표로 남기고 있다.
나는 원래 천성이 화광동진(和光同塵)하기를 좋아하고 또한 꼬리를 진흙 속에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삽살개 뒤다리처럼 절뚝절뚝 절면서 44년의 세월을 보내던 중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자네 한암 중원을 만나고 보니 성품과 행실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학문 또한 고명하였다.
날은 이미 저물고 길 떠날 준비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이는 아침이요 저녁 노을일세.
멀고 가까운 산이며 바다도 만나고 헤어짐에 회포가 흔들리고 있거늘 하물며 부생(浮生)들이
늙음으로 헤어짐에 있어서랴. 아무리 덧없는 인생이라지만 다시 만나기가 어려운 것.
슬프고 섭섭한 마음과 다가오는 작별을 어이할 것인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자기의 마음자리를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 될 것인가' 하였다.
슬프다. 과연 한암 자네가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마음이 통하는 벗(知音)이 되었을 것인가.
여기 한 구절의 거친 이별의 글을 지어 훗날에도 서로 잊지 말자는 약속으로 삼으려 한다.
스승 경허로부터 권유를 받은 한암은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 후 다음과 같은 답시 한 수를 남긴다.
서리국화 눈 속의 매화는 겨우 지나갔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변치 안고 늘 비치는 마음 속의 달
쓸데없는 세상에서 훗날을 기약해 무엇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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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이 그의 스승 경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나이 24세 때인 1899년의 일이었다.
그때 한암은 경북 성주에 있는 청암사 수도암에 머무르고 있었고, 경허는 해인사에서 조실로 있었는데,
청암사 조실인 만우당(萬愚堂)이 경허에게 금강경을 강론해달라고 처청을 한다.
경전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금강경에 대한 경허의 강의는 정평이 나있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경허는 한암이 달여올린 차를 마시다가 문득 차 시중을 들고 있는 한암에게 묻는다.
“어떤 것이 진실로 구하고 진실로 깨닫는 소식인가.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밑도 끝도 없는 경허의 한마디에 묵묵히 시중을 들고 있던 한암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창문을 열고 앉았으니 와장(瓦墻)이 앞에 와 있습니다.”
이에 경허가 “한암의 공부가 개심(開心)을 초과하였다.”며
한암을 몰래 훔쳐가다시피 해서 해인사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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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은 최인호의 소설『길 없는 길』에서 발췌했는데,
소설이 아니라 선승의 행적을 정리해 놓은 책이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달마에서 경허까지』라는 책과 내용이 아주 똑같습니다.
네 권이다 보니까 경허스님에 대한 얘기가 더 있고 자세할 뿐입니다.
이런 글을 중앙일보에 3년씩이나 연재소설로 게재했다는 게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