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燒身) 공양

2010. 11. 7. 12:35책 · 펌글 · 자료/종교

 

 

 

 

1970년 3월 1일 밤에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으로 올라갔다.

그런 후 오른손을 붕대로 감고 기름을 적셨다.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자'고 맹세하며 붕대 감은 손에 불을 붙였다.

몸을 태워도 괴로움이 없는 소신(燒身) 삼매에 빠졌다.

손에 감은 붕대가 다 타고 나자 화기로 인해서 팔이 퉁퉁 부어오르더니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왔다.

연지(燃指)를 하다가 엄청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밤 한 시에 야경하는 스님을 피해 해인사를 떠났습니다.

가야까지 비포장 도로를 걷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참 이상한 인연이었습니다.

우리 스님(一陀)도 상원사에서 연지를 하고 나자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습니다.

마치 몸속의 천만 년 때가 벗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첫 버스를 타고 대구를 나왔습니다.

살이 타고 나니 엄지와 중지, 약지의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지 뭡니까?

뼈를 끊기 위해 아는 보살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살은 나를 보자마자 간밤의 꿈속에서 내가 연지한 것을 보았다며 곧 나를 동일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병원에서 드러난 뼈보다 조금 안쪽으로 자르고 상를 실로 꿰맸습니다.

병원 의사는 삼 사 개월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권유했으나 나는 그날 밤에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부산역으로 가서 우리 스님이 장좌불와 수행했다던 태백산 도솔암으로 갔습니다.

 

.......

 

사람이 그리워 하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없어진 손가락을 생각하면 억울했다.

사라진 손가락을 보면 본전 생각이 나 분심이 일어 울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암자에서 장좌불와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불에 탄 손가락' 덕이었다.

 

 

(정찬주 《선방 가는 길》에서 발췌. p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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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혜국스님 근황

 

 

50년째 수행 중인 큰스님의 손에는 여전히 죽비가 들려있다.

세 손가락을 불태우면서까지 정진한 스님.

스멀스멀 피어나는 번뇌망상을 내쫓고, 용암처럼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죽인 죽비다. 

당신 스스로를, 선방의 수좌들을 얼마나 경책했을까. 통대나무의 죽비 끝이 너덜너덜하다.

황벽 선사는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 어찌 코를 쏘는 매화향기를 얻을 것이냐’고 했다.

 

경향신문은 2010년 새해를 맞아 대표적 선지식으로 꼽히는 혜국 스님(62·전국선원수좌회 대표)을 만났다.

지난달 31일 금봉선원장으로 주석하고 있는 충주 석종사.

스님께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혜를 구했다.

 

 

 

 

 


+   깨어있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스님께서도 공부가 힘드십니까.

    소지공양하고, 장좌불와에 생식으로 수행하셨는데.

“당연히 어렵죠. 허허.

연비라도 해야 중노릇을 잘하지 싶고, 다른 길 가지 않을 것 같아 했죠. 자신이 없어 한 겁니다.

해인사에 살 때 제가 참선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성철 큰스님이 ‘참선 안 하는 놈이 인간이가,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니라 죽은 놈이다’하고 소리치셨죠.  

그러시면서 ‘니 하자는 대로 해줄 테니 물음에 답 해라’시며

이런 걸(옆에 있던 찻잔) 들고는 ‘보이나’했지.

‘네, 보입니다’

‘뭐로 보노’

‘눈으로 봅니다’.

스님은 불을 껐어.

‘내가 이걸 들었나 안 들었나’

‘모르겠습니다’

‘좀전에 본다던 그 눈은 어디갔노’

‘눈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보이노’

‘깜깜하니까요’.

노장 스님이 벼락 같은 소리를 치셨지.  

‘이 놈아, 고양이나 올빼미는 깜깜해도 잘도 보는데, 니 눈깔은 고양이 눈깔만도 못하나.

너는 눈으로 보고 살아왔다지만 니가 니 자신한테 속고 살아온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아니다’.

그러시더니 ‘악’하고 소리치고는 ‘몇 근이냐’고 묻는 거야.

답을 못했지.

 

8년 뒤에야 답을 했어.

스님이 ‘장경각에 가서 21일 동안 하루 5000배를 해라’하시는 거야.

속으론 시큰둥했지만 시작을 했지.

그런데 보름을 넘기니까 ‘내가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게 아니고,

내 안의 번뇌망상을 무릎 꿇게 만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스님께 ‘지금까지의 절은 거짓 절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새로 시작합니다’하고 말씀드렸지.

무척 좋아하셨어.

그리곤 10만배를 끝냈는데 ‘잘못 살아왔구나’하는 걸 느꼈지.

 

평생 참선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몸둥이를 공양올린 겁니다.

솜으로 묶은 손가락들이 25~30분 정도 탔나봐.  

견딜 만해.

꿇어앉아 다 탈 때까지 안 움직였거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란 게 그런 겁니다.”



+   동안거 중인 수좌들을 가르치느라 힘드시진 않습니까.

“성철 스님, 은사이신 일타 스님, 구산 스님 등 가르침을 주신 큰스님들만큼 역할을 해야 할 텐데….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머리로 이해되는 것만 하려 하고, 이해되지 않으면 하질 않아요.

 세상이 그런 것 같아. 아마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 이해된 것만이 지식이 되고,

그 얄팍한 지식으로 모든 걸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지요.

내가 직접 한 발짝씩 다가가야지, 머리로 알음알이해 이해하는 것은 한 발짝도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  요즘은 일반인들도 수행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언을 주십시오.

“석종사 일반선원에도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간화선(화두를 잡고 하는 수행법)을 한다고 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뭔가 이루려고 해선 안됩니다.  

수행이란 이루는 게 아닙니다.

(빈 찻잔을 보여주며)여기 담겼던 차를 다 비우면 찻잔에는 허공이 저절로 들어찹니다.

이 허공이란 놈은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것이지요.

간화선은 내 몸안의 번뇌망상, 내가 내 맘대로 안되는 그 마음을 비워버리는 겁니다.

 

비워내면, 찻잔에 허공이 절로 들어차듯 내 몸안에 부처가 들어앉는 겁니다.

그런데 차나 쓰레기는 눈에 보이기에 내버리면 되지만, 몸이라는 그릇 속의 번뇌망상은 모양이 없어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공부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비워내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걸 구하려다보니 오히려 욕망을 따라가는 꼴이 되어서입니다.”

-평생을 수행정진해오셨는데, 깨달음이란 게 뭡니까.

“허허허. 글쎄요.

나를 텅 비워 빈 그릇에 허공이 들어차면, 그 허공에 먹물을 끼얹어도, 똥물을 끼얹어도 묻지 않죠.

칼로 쳐도 상처를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 않을까요.

지금 거사님과 제가 앉아있는 이 방은 온도가 섭씨 16도, 옆의 법당은 섭씨 4도 정도일 겁니다.  

이 방들의 벽을 허물면 온도가 같아지고, 이 방이란 이름도 법당이란 이름도 없어져 그냥 한 허공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방도 없어지고, 법당도 없어졌다고 그러겠지요.

사실은 이 방의 허공, 법당의 허공은 허공으로 변함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없어졌다하고, 오히려 없는 것, 죽은 것은 있는 거라고들 하지요.

그걸 아는 게 깨달음의 맛이지요. 맞는 말인지 안 맞는 말인지, 허허허.”



-깨달음의 맛은 어떠하던가요.

“몰라. 맛없는 맛이지 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은 물맛인데. 물맛은 맛없는 맛이거든.

근본적인 맛이지.

맛은 흔히 오미가 들어간 것을 말하는데, 맛없는 맛이 진짜 맛이지.”


 


혜국 스님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불리는 혜국 스님(62)은 제주도 출신으로, 1961년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장경각에서 오른손 검지·중지·약지 세 손가락을 소지공양하고,

태백산 도솔암으로 들어가 2년7개월 동안 생식하며 장좌불와 정진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전국 선원에서 참선수행한 스님은 선원 중심의 남국선원(제주) · 홍제사(부산)·석종사를 창건했다.

전국의 선승들을 대변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이며, <인연법과 마음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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