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7. 10:40ㆍ책 · 펌글 · 자료/종교
언젠가 우리가 수경 스님의 흉을 보던 자리가 있었다.
“너무 목욕을 안 하셔”
“목욕만 안 하는 줄 아니? 양말도 안 빨아. 저번에는 한 번 스님과 같은 방에서 자는데
스님이 양말을 홱 벗어던지시는데 양말이 부츠처럼 턱 하고 서는 거야”
우리는 배를 잡고 웃는데 鄭 시인이 한술 더 떴다.
“그런데 회의 중에 항상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때를 밀잖아.
그리고 그걸 몰래 하는 게 아니라 꼭 때 민 것을 눈높이로 올려 그걸 확인하고
그걸 또 앞에 가지런히 모아요. 벌레들 준다고.”
도법스님(左)과 수경스님(右)
언젠가 해인사 극락전이 부서지고 거기서 스님의 발원으로 21일 참회단식이 끝나던 날
스님의 짐 속에 웬 노트가 보이기에 살짝 열어보았더니
노트 한 권 가득 맛집 기행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우리가 깔깔거리자 스님은 겸연쩍어하시며 얼른 노트를 빼앗아 들더니
“굶으면서 잡지를 보니까 웬 먹을 게 이렇게 많이 보이는지 말이야” 했다.
참회단식을 하면서 몰래 방에 들어와 가위로 정성스레 국숫집, 우동집, 냉면집의 기사를 오리는
그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어떻게나 나는지....
스님이 먹을 것에 초연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의 잠적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겨울옷…. 절뚝이며 그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공지영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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