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詩 모음

2010. 4. 27. 21:23詩.

 

 

 

 

욕정 / 오세영


갑작스런 화재로 온 집이 전소되었다.
화인은 난로의 과열,
아빠는 죽고 엄마는 화상을 입고
단란한 가정은 깨져버렸다.
물질도 때로는 욕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자 일순,
본능으로 전율하는 쇠붙이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건드리지 마라
오늘밤 나는 너와 더불어 온몸을
불사를 수도 있다.
전류電流,
밤마다 정사情事를 꿈꾸는
물질의 에로스

<문학사상> 2002. 3






門 / 이정록


밤꽃이 진 자리.
그곳이 밤송이의 배꼽이다.
그리고 그 배꼽이, 그 사거리가,
밤톨에겐 門이다.

세상 쪽 환한 가시를 등지고
어둔 內部의 방구들에 붙어 살던 밤톨이
쿵, 문밖으로 떨어진다.

녀석의 배꼽에 밤색 털이 솟아 있다.
그 터럭 속에서, 환하게
쥐밤나무의 문이 열린다.
내 詩는, 그 문을 들락거리는 性器다.
쥐좆이다.

발기의 끝자리에 밤꽃 향기 무성하리라.

<풋사과의 주름살>







노출 / 이수익


출처불명의
덤핑 브래지어들이
길바닥에 이리저리 무더기로 쌓여
널브러져 있다

<3개에 5천원!>

싸구려 여인들의 젖가슴처럼
볼 테면 보란 듯이
부끄러움이라곤 없이
아무렇게나 헐렁하게 풀어진 채.

이따금
구겨진 손들이 거칠게
그 젖가슴 사이를 뒤적인다.

<시작> 2004. 겨울







백담계곡을 내려오며 / 윤제림


1
꼬리를 치며 따라붙는 여자
너 잘 걸렸다, 불알 밑에 힘을 돋우며
손목도 잡아보고, 쓸어안아도
가만있는 여자.
입에는 새하얀 거품을 물고 쉴새없이 재깔이며
눈웃음도 치며
속치마도 잠깐 잠깐 내보이며
산길 이십 리를 같이 걸어내려온 여자.

2
인간의 여자라면 마을길 이십 리쯤 더 내려왔을 텐데요.
그 여자는 한 걸음도 더는 따라오지 않습니다요. 못된 년,
망할 년 욕이 다 나왔지만요, 내 탓이지요 뭐. 그녀의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말도 안 통하는 사내
따라 나설 계집이 어디 있겠어요. 말귀만 좀 통했으면
집에까지 데려올 수도 있었을 텐데요.

<시, 눈뜨다 - 예감>







방충망 / 김민정


고층 아파트 전망층
풀 한 포기 뿌리 내리지 못하는 허랑방천
하늘바람구름
나무산해달별
천둥번개까치
모기하루살이
눈송이먼지나방나비날개짓...같은 것들, 한 장
평면의 자잘한 모눈으로 구획정리하여 걸어둔
방충망
그걸 움켜잡고 한바탕
짝짓기 사랑놀이를 펼쳐놓는 암수
배넓은 사마귀 한 쌍

<시와 함께하는 오후>







어처구니 /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그 옆, 어떤 싹눈이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축제는 / 설태수


춤추는 여인들이나
화려한 쇼를 진행하는 여인들은
대부분 가슴을 드러낸다.
노출된 여인의 가슴을 보면
뽀얗게 흔들리는 젖가슴을 보면
견고한 의식은 어느새 무너져
내 눈빛은 흔들리고
마음은 일렁인다.
흐르는 강물과 출렁이는 물에 비치면
산이 흔들리고 바위가 출렁이듯
뭉클뭉클한 젖에 아기가 동요하듯
흔들리는 살에 혼도 흔들려
사람들은 유쾌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축제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꿈바이러스>







파리 / 이성복


초가을 한낮에 소파 위에서 파리 두 마리 교미한다 처음엔 쌕쌕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올라타서는 할딱거리며 몸 구르는 파리들의
대낮 정사, 이따금 하느작거리는 날개는 얕은 신음소리를 대신하고 털
보숭이 다리의 꼼지락거림은 쾌락의 가는 경련 같은 것일 테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표정 없는 정사, 언제라도 손뼉쳐 쫓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뿌리에서 좁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긴 생명의 운하 앞에
아득히 눈이 부시고 만다

<백년 후에 읽고 싶은 백편의 시>







K와 프라이다의 첫 번째 性

어느 낯선 세계, 공기조차도 고향의 공기의 어떤 요소도
갖지 않은, 낯설음으로 질식할 듯한 곳, 미친 유혹들
속에서, 그저 계속 갈 뿐, 그저 계속 방황할 뿐,
-- 프란츠 카프카, <城>

어떤 수컷은 일 끝나면 제 성기를 부러뜨려 코르크
마개처럼 입구를 막아버린다. 다른 수컷들과 교미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어떤 수컷은 국자처럼 생긴
그것으로, 다른 수컷들이 쏟아놓은 즙액을 퍼내고 제 볼일을
본다. 사람의 남성이 그렇게 생겼다는 설도 있다. 어떤
갈매기는 짝짓기 예물로 암컷에게 준 물고기를 일 끝내자마자
물고 달아나고, 어떤 반딧불이는 암컷의 신호를 보내
흥분해서 찾아오는 수컷들로 식사한다. 다들 미쳤느냐고?
다소 야비하지만, 철저히 제정신이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좆같은 세상 / 손세실리아


연변작가 초청 행사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간 남북횟집, 소설 쓰는
리선희 주석이 본국에서 가져온 술을 꺼내 따르더니 답례주라며
한 입에 탁 털어 넣으란다 혀끝에 닿기만 해도 홧홧한 65도의 술을
요령 부리지 않고 받아 마신 우리 측 작가 몇은 이차도 가기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투항했는데 환갑이 낼모레인 이 아무개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지 취기에 휘청이며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린다. "사는 게, 사는 게 말이지요. 참, 좆같습니다"
고단하다 팍팍하다도 아닌 좆이란다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
좆같단다 쓸쓸하기 그지없다

이튿날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밥때가 되어
꿩만두 요리로 소문난 문막식당에 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통유리 너머 마당에서 수놈 시추 한 마리가 발정난 거시기를 덜렁
거리며 암놈 시추 꽁무늬를 하냥 뒤쫓고 있다 간절하고 숨찬
열정이다 뒤집어 생각하니 좆이란 게 죽었나 싶으면 어느새 무쇠
가래나 성실한 보습으로 불쑥 되살아나 씨감자 파종하기 좋게 텃밭
일궈놓는 짱짱한 연장이지 않던가 세상살이가 좆같기만 하다면야
더 바랄 게 무에 있겠는가 그 존재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위안이며
희망이지 않은가

연인의 자궁 속을 힘껏 헤엄쳐 다니다 진이 빠져 땅바닥에 퍼져
버린 수놈의 축 늘어진 잔등을 암놈이 유순이 핥아주고 있다
하, 엄숙하고도 황홀한 광경이다

<200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Emmanuelle - Pierre Bache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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