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3. 08:41ㆍ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와인 잔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레드와인 잔은 볼(와인을 담는 부분)이 깊고 입구가 넓은 보르도 스타일과 볼 부분을 넓힌 부르고뉴 스타일로 나뉜다.
이 외에 보르도 스타일에서 크기만 줄인 모양의 화이트와인 잔과 주로 ‘샴페인 잔’으로 쓰이는 스파클링와인 잔이 있다.
부르고뉴 스타일은 향이 섬세하고 화려한 포도 품종인 ‘피노누아르’의 특성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와인이 공기와 닿는 면적을
넓힌 모양이다.
반면 화이트와인 잔은 술이 공기와 닿는 면적을 줄여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고 와인의 산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크기가 작고
잔의 입구도 좁다.
위스키 잔은 ‘스템’이라 불리는 다리 부분이 없고 바닥에 닿는 면적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위스키의 맛과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온도인 20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맥주는 거품의 양과 밀도, 향에 따라 적합한 잔이 다르다.
풍성한 거품이 일품인 ‘에일’이나 ‘프리미엄 라거’ 맥주는 잔에 따를 때 소용돌이가 생겨 촘촘하고 풍부한 거품이 나도록
잔의 입구보다 몸통이 넓은 ‘튤립’ 형태의 잔을 고르는 게 좋다.
술의 색이 맑고 탄산 함유량이 높은 편인 ‘필스너’나 ‘라거’ 맥주는 길고 가는 잔과 찰떡궁합이다.
눈으로 잔을 따라 오르는 기포 흐름을 좇는 즐거움도 크고 오랫동안 거품을 유지할 수 있다.
‘호프잔’으로 불리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큼직한 손잡이가 달린 술잔은 ‘다크라거’ 같은 맥주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마시기 적합한 술의 온도가 술잔 재질을 정할 때도 있다.
데워 마시는 사케는 온도 유지가 중요하므로 도자기나 주석 소재의 볼륨감 있는 잔이 좋다.
차갑게 마시는 사케는 큰 잔에 따라 홀짝홀짝 마시면 술의 온도가 변해 첫 모금에서 느낀 숙성감을 느낄 수 없으므로
작은 잔을 택한다.
전통주에서 반주로 마시는 약주는 흰 사기잔이나 유리잔이 술의 은은한 빛깔을 잘 드러내고 나물 안주 등과도 잘 어우러진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탁주는 폭이 넓은 잔에 담는 것이 시원한 목넘김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술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술잔 중에는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한 잔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플루트 글라스와 함께 결혼식이나 리셉션 등에서 샴페인을 따라 건배할 때 쓰이는
납작한 와인잔인 ‘쿠프 글라스’다.
납작한 사발을 연상시키는 모양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선 그리스 신화 속 미녀 헬레나의 가슴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 모양을 본떴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쿠프 글라스는 그 납작한 모양 때문에 샴페인의 기포를 감상하기에 적절치 않은 데다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결정적으로 잔에 따를 수 있는 와인 양이 너무 적어 와인의 맛과 향을
살리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샴페인의 원산지인 프랑스 샹파뉴 지방 사람들조차 쿠프 글라스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샹파뉴 사람들이 선호하는 와인잔은 작은 튤립 모양의 화이트와인잔이다.
술을 처음 빚은 장소가 잔의 모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벨기에 남부도시 디낭에 위치한 ‘레페 수도원’에서 순례자와 수도사를 위해 빚었던 것이 기원인
레페 맥주의 전용잔은 성배(가톨릭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 모양을 하고 있다.
애초 성배 모양의 전용잔은 봉헌의 의미와 신성함을 상징했었다.
이 잔은 입구가 넓은 특유의 모양 덕분에 맥주 향의 발산을 도와 미세한 향까지 깊이 들이마실 수
있어 오랜 시간 특유의 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의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은
술을 7분 이상 따르면 따르는 대로 모두 술잔 밑으로 흘러내려가 버린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과 과음을 경계하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 잔은 ‘술을 줄이게 만드는 잔’이라고 해서 ‘절주배(節酒杯)’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실학자 하백원 등이 이 잔을 만들었다고 하며
몇 년 전 국내 요업계에서도 계영배 재현에 성공했다.
절주의 미덕이 요구되는 애주가용 선물로 권할 만하다.
때로는 술잔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식기가 술잔으로 쓰이기도 한다.
경북 안동시에서는 종종 밥그룻 뚜껑이 안동소주잔으로 변신한다. 그 이유도 그럴싸하다.
소주, 특히 증류 방식으로 빚는 안동소주는 다른 술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데
자칫 차게 마셨다가는 독한 술기운에 탈이 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밥의 온기가 남아 있는 밥그릇 뚜껑에 소주를 따라 마시면 차가운 소주의 한기가 밥그릇
뚜껑 위에서 중화되는 이른바 ‘거냉(去冷)’ 효과를 볼 수 있다.
큰 술잔이나 별 안주 없이 큰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일을 뜻하는 ‘대포’라는 단어는
크게(大) 베풀다(布)는 의미다.
글=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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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llà, Fio Zanotti - Canto del sole inesauribile
Plácido Domingo tenor · Andrea Bocelli tenor
Nick Ingman cond. The London Symphony O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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