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1. 13:01ㆍ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제가 이 글을 가져온 이유는
1600년 이전에 앙코르와트에 일본인 마을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의 古代에 서남아시아와의 교류가 있었던가요?
모르지요? 저도 그런 기록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그럴리 없다고, 관심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가요?
중국은 당연히 교류가 많았습니다. 기록도 많구요
일본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려시대 중기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배우긴 했었죠.
그런데 그게 다예요. 조선시대부터는 뚝 끊어졌어요.
언제부터 왕래가 끊어졌는지, 거래하던 물품은 그 다음부터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학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후진국과의 교류에는 별 관심들이 없어보입니다. 민간교류에 대해서도 그렇구요.
이란, 이라크,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캄보디아, 버마, ... ,
저런 나라들에 기록이 남아있다해도, 마찬가지로 관심있게 연구하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럴만한 형편이 되는 나라들이 아니잖아요.
도대체 이런 연구는 누가 해야합니까? 할 필요성도 없는 건가요?
그러면 영원히 파묻혀 버리고 마는 거네요?
제가 밑에다『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와트』라는 책을 소개해놨습니다.
거기에도 보니까 크메르人이 아니고 프랑스 사람이 연구한 거더군요.
다시 말해서 그 땅의 주인이 알아본 게 아니고 이방인이 했더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나라는 제 나라 역사도 모르는 겁니다.
자, 거두절미하고 책 몇 권을 소개해보겠습니다.
1. 이지상,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
앙코르 와트
1) 12~13세기에 한창 번성했던 앙코르 문명은 15세기 중반 급격하게 쇠퇴했고, 한 때 영광스러웠던 수많은 사원은
그 후 정글로 뒤덮여갔다. 이 폐허의 앙코르 유적지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860년대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에 의해서였다.
2) 17세기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병졸로 참전했던 모리모토 기마유의 아들, 규슈 출신의 상인인우콘다유는
베트남의 호이안에 있는 일본인村을 방문했다가 또레삽 호수 근처에 거대한 사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호이안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해 똔레삽 호수를 가로질러 이곳에 당도했다. 와보니 똔레삽 호수 근처 빈야르란 곳에도
일본인 마을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부두가 내륙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사
람들이 불공을 드리는 등 그때까지도 종교의 기능을 하고 있던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며 이곳을 '룸비니'로 착각했
다. 감격에 겨웠던 그는 네 좌의 부처상을 이 사원에 기증한 후, 그의 노모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앙코르와트 벽
어딘가에 그의 글을 새겨놓았다는데 풍수선생은 그것을 찾고 싶다고 했다.
3) 본격적인 앙코르 왕국의 건설은 인드라바르만 1세(877~89)와 그의 후계자 야소바르만 1세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 시기에 많은 사원이 건설되었으며 그후 앙코르 왕국 사원의 보편적인 건축양식이 된다. 그후 몇몇 왕들이 각종
사원을 건설했고, 열렬한 힌두교도였던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는 그 유명한 힌두교 사원인 앙코르와트를
건설했으며 자신을 비슈누와 동일시했다.
4) 후일 앙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인 자야바르만 7세(1181~1219)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둘레 3km의
성벽 안에 만든 '앙코르 톰 (위대한 도성)'을 건설한 후,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는 대승불교에 심취했으며 그가
만든 유명한 바욘 사원의 수많은 사면 얼굴 조각은 관세음보살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부터 앙코르 왕국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종교도 대승불교에서 테라바다 불교(장로불교=소승
불교?)로 바뀌었다.
5) 앙코르 왕국은 13세기에 테국의 수코타이 왕조에게, 14세기엔 아유타야 왕조의 침략을 받아 1431년 프놈펜 인근
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왕국의 흔적은 정글로 뒤덮여갔다. 앙코르는 도시,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다. 동서로 1500미터
남북으로 1300미터의 거대한 사원이다.
쁘레아칸
서문을 통과해 눅눅한 나무 냄새를 맡으며 안으로 걸어들어가는데 먼 과거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쁘레아칸은 '신성한 칼'이란 뜻으로 바욘 사원을 건설한 자야바르만7세가 12세기 말에 자신의 아버지를위해
세운 불교 사원이다. 마치 해저의 거대한 문어가 먹이를 꽉 움켜쥔 것처럼 거대한 나무뿌리가 무너져가는 사원
의 담을 움켜쥐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의 나무들은 대체로 '화과 나무' '비단솜나무' '테트라멜레스 누디플로라'의 세 종류다. 비단솜나
무는 판야(panja)나무 혹은 케이폭 나무라고 부르는데, 열매가 대단히 가볍고 탄성이 있는 솜 같은 섬유가 들어
있다. 중남미 마야문명에서도 상직적인 나무였는데 다 자라면 높이가 60~70미터, 지름이 3미터 정도로 거대해
진다. 현지인들은 '스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2. 이케자와 나쓰키,『문명의 산책자』
(책내용이 좀 어설픕니다. 권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12세기경 앙코르와트의 인구는 40~50만, 코르도바와 콘스탄티노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앙코르와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총량은 1만2천명이 30년 동안 일해야 하는 분량이다. 그
배후에는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농민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앙코르 왕조의 통치 아래에 있던 사람
들의 숫자만 생각해도 이건 대문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 ...... )
크론산의 석재를 씨엠립강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육지로 들어 올린 다음 나무썰매에 올려놓고 코끼리가 끌게 한
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끌기도 한다. 이 석재를 쌓는 것 역시 단순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석재 위에 모래와
물을 뿌리고 그 위에 석재를 올리고 정교하게 움직여가면서 빈틈없이 쌓아올린다.」
3. 서규석, 『앙코르 와트』
책소개
1,000여 년 전, 캄보디아에 장엄한 문명이 있었다
지적 열망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먼길 마다않는 열정이 있어 우리는 세계사의 수많은 문명과 친숙해져 있다. 비록 서구 편향적이었고, 명소 나들이의 가벼움이었다 해도 한국의 지적 풍토는 세계의 문명에 열린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지적 호기심의 그물망 너머에서 교감을 기다리는 문명 또한 있기 마련이고 그 대표적 미지의 땅이 앙코르 문명이다. 더욱이 앙코르 문명은 킬링필드라는 현대사의 비극이 두룬 커튼과 사회주의 국가의 문명이라는 이념 장막에 가려 우리에게 한결 낯선 것이었다. 필자는 이 낯선, 그러나 주목받아 마땅한 앙코르 문명과 신선한 문명적 교감을 시도한다. 캄보디아의 옛 제국 캄푸자왕국이 이룩한 앙코르 문명. 한반도에 고려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던 무렵에 동남아시아에는 캄푸자왕국이 있었고, 그들은 웅장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장대한 도시국가를 밀림 속에 건설하며 독특한 민족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는 우리들의 세계문명 편력에서 정글 속에 작은 연못처럼 숨은 미지의 영토를 다룬 책이다. 우리들이 지닌 친숙한 문명의 도감에 낯선 앙코르 문명을 즐겨찾기에 추가한 작업이랄까? 이 책은 앙코르 문명의 기념비적 종교 건축물인 앙코르 와트 사원을 분석하며 앙코르 문명 전반에 대한 안내와 주요 상징들을 힌두신화의 세계관과 상상력에 기반하여 충실히 해독하고 있다.
앙코르 와트는 관광을 넘어 이해되어야 한다
앙코르 문명은 몇몇 사진첩과 여행 후기에 기대여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한 650여년에 걸쳐 이룩된 문명체계이다. 이 책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동남아시아를 호령하던 크메르인의 민족문화의 젖줄이었던 힌두사상과 힌두신화가 창조한 독특한 문화 양식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앙코르 왕도로 여행을 가기 전에 또는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의 대제국이었던 앙코르 왕조의 역사와 종교,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힌두사상과 그 상징체제, 건축양식을 체계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국내 최초의 앙코르 문명 종합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앙코르 사원들에 대한 잘 간추려진 여행 길잡이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짐짓 무거운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앙코르 문명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를 목적한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약간의 지루함이 동반하는 인문학의 즐거움과 뿌듯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앙코르 유적의 복원과 역사 해석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프랑스 학자들의 열정과 비교할 때, 그 전문성과 방대함에 압도당하는 수많은 영어판, 불어판의 앙코르 문명 관련서적과 비교할 때, 비록 늦은 감이 있고 내용상의 미흡함도 있지만 이제 우리도 제대로 된 앙코르 문명 역사문화 안내서 하나를 갖게 된 셈이다. 우리 독자들의 인문학적 몰입과 지적 열망이 프랑스인들의 그것과 비견하여 못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은 앙코르 문명에 대한 수많은 고고학자, 역사학자의 필생의 연구 업적과 특히 조르쥬 세데스, 폴 펠리오 등 프랑스 연구자들에게 크게 기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앙코르 문명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창의적 역사해석과 역사기술의 독특함보다는 우선적으로 풍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실정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앙코르 유적 발견 이래 100여 년에 걸쳐 축적된 앙코르 문명 연구서들을 천착하며, 그 성과들을 일관된 체계로 구성하여 소개하는 필자의 노력은 매우 값진 성취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문명과 비로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힌두신화를 알면 앙코르 문명이 보인다
- 크메르인들은 왜, 1,200개의 사원들을 그토록 거대한 규모로 열광적으로 지었는가?
- 왜, 사원 건축에 쓰인 돌이란 돌엔 남김없이 조각의 칼을 들이 댔는가?
- 무엇을 말하고 싶어 교교한 신들과 춤추는 무희들을 부조의 파노라마로 아로새겼는가?
- 불가사의한 종교건축의 기술과 미적 양식, 그 구조에 숨은 비밀은 또 무어란 말인가?
- 도대체, 낯설고 생소한 수많은 힌두 신들과 크메르인들의 미적 상상력은 어떤 관계인가?
앙코르 문명 유적을 마주하며 느끼는 우리들의 궁금증이 대개 이러하다면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필자는 웅장하고, 세세하며, 종교건축의 위대한 인류유산인 앙코르 사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신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앙코르 문명은 힌두사상의 동남아에서의 토착화 과정의 산물이며, 힌두신화의 지상에의 재현이며, 신의 코드에 따른 종교건축과 돌의 예술(Rock Art)의 극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의 신화 관련 서적의 붐과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좀더 솔직하고,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적?Α痔? 시원으로서의 신화의 세계가 후대의 문명 창조의 영역에서 어떻게 원용되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상상력의 세례를 주었고, 그것이 또 어떻게 구체적으로 양식화되었느냐에 관심을 두는 책이다. 특히 앙코르 시대의 사원건축이라는 국가적 과업 속에 신화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이었는가를 설명하는 신화와 문명의 긴밀한 관계를 밝힌 책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책의 제4부 '앙코르 와트 상징해독'에 서 시도하는 세밀한 상징 분석은 건축의 단위, 배치, 구성, 부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이해하는데 분명한 안목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종교건축, 미적 양식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신화의 매혹적인 숨결을 더해 문명 읽기의 새로운 체험을 선보여 주고 있다.
힌두 대서사시를 읽는 뿌듯한 재미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에는 책 속의 또 하나의 책으로 힌두신화의 영원한 두 고전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간추린 초록이 실려 있다. 힌두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힌두 서사문학의 영원한 고전인 이 두 편의 대서사시는 힌두문화의 전통을 가진 인도와 동남아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독해야 하는 텍스트이다. 그러나 인류 최장의 대서사시로 칭송되는 <마하바라타>의 경우, 이 서사시의 온전한 번역본은 무려 1,000여 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그리 녹녹한 텍스트는 아니다.
필자는 앙코르 문명의 온전한 이해와 앙코르 와트의 회랑에 부조된 작품들을 만끽하며 감상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북돋우기 위해 두 편의 서사시를 단편 소설처럼 읽을 수 있도록 잘 간추려 번역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노력으로 앙코르 문명의 문화적 원류인 힌두신화의 풍부한 맛과 독특한 스토리가 한결 손쉽게 다가오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지상에 1,200여개의 사원을 건축한 크메르인들의 역사의식과 미적 감수성의 원천이 되었던 이 두 편의 힌두 대서사시에 대한 일독은 서구 신화, 그것도 영웅담에 경도된 우리들의 신화열풍에 자못 진지한 자극을 던져 줄 것이다.
13세기 앙코르 견문록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책 속의 또 하나는 책, 그 두 번째 선물은 필자가 앙코르 지역을 탐사할 때 베트남에 10년째 거주하며 앙코르 유적 가이드로 일하고 있던 분이 꼭 읽어보고 싶어 했다던 책,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를 번역하여 제3부에 소개하고 있다.
<진랍풍토기>는 앙코르 문명의 유적지 복원과 역사 연대기의 재구성 과정에서 앙코르 유적지의 각종 비문과 함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원나라 사절단 주달관의 견문록으로 앙코르 문명 관련 최고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이 견문록은 그 분량에서나, 내용에서나 복잡한 사전지식을 요구하지 않아 시엠렙 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편안히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롭고 부담이 없다. 필자의 지극한 인문학적 탐구열로 전문 번역된 이 견문록은 동남아 역사연구의 자료적 가치 또한 매우 높아 학계 관련자들의 손길도 기대되는 문헌이다.
1296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진랍풍토기>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읽어도 매우 간결하고 정갈한 견문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진랍풍토기>를 통해 우리는 역사적 유산으로 만나는 과거 문명의 추체험을 넘어 당대의 현장 속으로 생동감 있는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목차
제1부 앙코르 문명
1장 왕도 앙코르
2장 종교건축으로 꽃핀 문명 앙코르
제2부 앙코르 왕조의 역사
1장 앙코르왕조 이전기의 크메르
2장 앙코르왕조의 시작과 롤루시대
3장 1차 앙코르 왕도시대(889~900년)
4장 앙코르 중기 시대(1000년 이후)
5장 자야바르만 7세의 등장과 후기 앙코르 시대
제3부 13세기 앙코르 시대로의 시간여행
1장 문명 복원의 거울, 진랍풍토기
2장 『진랍풍토기』전문
제4부 앙코르 와트의 상징해독
1장 신의 코드로 지은 사원
2장 신들이 춤추는 회랑과 부조
3장 신화를 재현한 건축과 조각
4장 데바타와 압사라, 그 관능의 미학
제5부 힌두문명의 보고,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1장 『라마야나』 초록
2장 『마하바라타』 초록
부록
1. 캄부자왕국의 연대기
2. 용어 해설
3. 참고 문헌
4. 앙코르 유적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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