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7. 13:09ㆍ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1
(1) '탈레반'이란 코란의 용어로서 '학생들'이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난민캠프에서 성장하면서 캠프 주변에 있는 이슬람 종교학교에 다니던 젊은 아프간인들은
부패한 무자헤딘 간의 내전에서 조국을 해방시키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운동단체가 바로 '탈레반'이었는데,
이들은 난민캠프에서 자라 이슬람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젊은이들과 그들의 선생(성직자)들로 결성되었다.
과거의 탈레반이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조직된 대소련 게릴라 전사들이었고
조국의 내전에 실망하여 투쟁을 계속한 '학생들'이었다면,
지금의 탈레반은 카불에서 축출된 과거의 '학생들'은 물론 이들과 종족적 지역적으로 연계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파슈툰족의 反카르자이, 반미 지하드 전사들인 것이다.
내가 몇 차례 중동을 방문하면서 또 일본의 이슬람교도들과 만나면서 감명을 받았던 것은
이슬람교도들이 지니고 있는 진지함과 깨끗한 정신을 동경하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게다가 이슬람 경전에는 핸정의 방식도 기술되어 있어서 이슬람교를 활용한 국가경영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정교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기독교나 불교와는 이 점이 다르다.)
(2)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의 정식 이름은 '오사마 빈 모하마드 빈 라덴'이다.
이는 '라덴의 아들 모하마드의 아들인 오사마'라는 뜻으로, 그래서 중동에서는 '오사마'라 부르고 있다.
중동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자원하여 가서 싸운 많은 젊은이들은 빈 라덴의 사상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나 요르단 등의 조국으로 귀국한 후에 자신들의 나라를 보다 좋은 이슬람 사회로 만들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모국은 깨끗한 이슬람 사회가 아니었으며,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방치한 채 독직과 부패에 물든 부자들만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국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수호를 위해 중동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구도도 보이기 시작했다.
빈라덴은 처음 아프가니스탄 의용군을 모집했을때부터 연면하게 내려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러 운동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에게는 빈 라덴이 이슬람교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7세기에 마호메트가 고향인 메카에서 포교를 시작했다가 지역 유력자들의 미움을 받아 추방되었으나
메디나의 유력자의 도움으로 훗날 메카를 함락하고 이슬람교를 세운 것처럼
지금 빈 라덴이 밟고 있는 길이 마호메트와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생겨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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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라이의 나라 아프가니스탄
'지하드(성전. 국민 총동원령)'는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하드 중에 전사하면 그 이전에 어떤 나쁜 짓을 많이 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남자들은 이 가르침을 신봉하면서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적어도 겉으로는)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장애자가 되는 것이었다.
성전의 병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프간인들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2) 금단의 음악
탈레반은 이슬람교에 반한다는 이유로 음악 듣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카세트를 몰수당할 뿐만 아니라 힐책을 받는다.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카스테오기계 자체는 차에 붙어있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음악은 아프가니스탄 공용어인 '다리어'와 '파슈투어'가 섞인 곡이었다.
전체적으로 남녀간의 사랑노래가 많았던 것 같다.
일찍이 유명햇던 가수들의 곡을 업자들이 불법으로 녹음하여 팔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모두 파키스탄이나 유럽으로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3) 간다라
전시품 가운데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에 세운 아람어 비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아람어라면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할때 사용했다는 그 언어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아람어는 동지중해로부터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알렉산더 정복지역과 아쇼카왕의 마우리아왕조가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곳이 탁실라였다.
파키스탄의 탁실라에서 페샤와르, 하이버패스를 넘어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와 카불에 이르는 지역이 간다라였다.
알렉산더 원정 이후 이 땅에 들어온 그리스게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불교를 믿기 시작했고,
불타의 상을 조각하여 그것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간다라에 온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도 인간과 세계의 성립에 대해 깊이 사고하던 철학적 전통을 갖고 있어서
인도철학의 성과, 즉 불교를 접하고는 경이감에 빠져 공부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같은 연유로 인도의 지식인들도 그리스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아닐까?
3
(1) 전략요충지로서의 아프가니스탄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유럽과 중근동 방면에서 연면히 이어지는 상업루트가 인도로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최초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또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지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역시
카불에서 북쪽 산맥을 넘어 간 지점에서 인도에서 오는 길과 만났다.
1차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지금의 이스라엘과 요르단)과 이라크 쿠웨이트 등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각각 식민지로 삼았다.
중동의 이슬람세계에는 오스만투르크 시대라는 과거의 영광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 문명의 아이덴티티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서구화 하는 것에 대해 커다란 저항감이 있었다.
1838년 영국은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침공해 들어갔다.
성직자들은 성전을 선포했고 전국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진 결과, 패주하던 영국군은 잘랄라바드에서 1만6천명이 전멸했다.
페샤와르까지 살아 돌아온 자는 군의관 한 명뿐이었는데, 이는 전멸의 증인으로서 생환을 허락했던 것이다.
(2) 아프간의 실체
아프가니스탄에서 2년 3년 장기 체류한 사람들은 탈레반과 아프간 사회의 이해가 깊어져
본래의 인권문제와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서구국가들을 오히려 비판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의 인권단체들은 부르카의 존재 자체가 '여성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카불의 여성들 입장에서는 이는 민족의상이 부인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어서
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인권침해라는 주장도 서구인의 입장에서 무리한 해석이나 문화적 오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1999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경제제재를 했고,
그 때문에 아프간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짭짤한 돈벌이인 용병이 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소련 침공 후 미 CIA와 파키스탄의 지아 울 하크 사이에 무자헤딘 게릴라 지원에 관한 교섭이 시작되었을때
하크는 두 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하나는 게릴라에 대한 지원은 미국이 직접 행할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을 경유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캐시미르를 둘러싼 인도와의 분쟁에서 파키스탄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 조건을 수용했고, 각종 무기와 막대한 군사지원금이 파키스탄의 정보기관 ISI에 의해서 각 파벌에게 배분되었다.
(3) 끝나지 않는 그레이트 게임
아프간 주변에서는 북방의 러시아도 미국과 대치하는 독자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손잡고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포함시킨 유라시아 대륙의 느슨한 집단안전
보장체제 '상하이협력기구'를 만들었는데, 이미 여기에는 이란과 파키스탄도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유라시아의 국제관계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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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사카이 著『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전략과 문화 2007.8) 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외에도 초라한 외관과 다른 내부의 쾌작한 주거환경 / 무자헤딘 7개 파벌 / 유달리 강한 존재감과 참을성 /
독특한 유머감각 / 활발한 운수업 / 등등, 단문으로 두루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소개한 책입니다.
곧 『그레이트 게임』을 보려고 하는데, 책이 많이 두껍네요. 다 보고나서 총평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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