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12. 17:38ㆍ발칸반도/북유럽 러시아
. HELSINKI (2)
"핀란드를 보면 거울속의 우리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씁쓸합디다."
.
.
헬싱키 대성당 (The Lutheran Cathedral)
헬싱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며, 핀란드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이다.
1830년에 착공해 1852년에 완공되었는데, 예전에는 성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 또는 단순히 '큰 교회'라고 불렸다.
카를 루빙 엥겔(Carl Ludvig Engel)이 설계한 신고전주의 왕궁 스타일의 이 건축물은 밝은 녹색 돔과 하얀 주랑이 조화를 이룬다.
중앙 돔은 네 측면 어디에서도 보이며, 아연으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는 예수의 12제자의 동상이 있다.
처음에는 중앙의 돔만 있었으나, 후에 네 귀퉁이의 돔이 보완되었는데, 이 건물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 한층 아름답다.
오늘날 핀란드 인구의 85%인 4백 40만 명이 루터파 교회의 신자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이곳에서는 각종 국가적인 종교행사가 거행되며
전시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등 대학과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펌)
언덕 위에 있어서 그렇지 그다지 큰 교회는 아니여.
내부도 아주 소박혀. 파이프오르간만 무지하게 크데.
백색, 산뜻하지?
교회는 나중에 러시아에 가보면 크고 근사한 게 많어.
젤 위엣 사진에 동상 있자니여?
그건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먹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의 동상이여.
당시에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고 있었단 얘긴데,
말하자면 이등박문 동상을 명동성당 앞에다 세운 셈이지.
원로원 광장이란 곳인데, 대성당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여.
저쪽에 내다보이는 건물이 원로원이겠지.
지금 노래하는 사람, 차림은 저래도 실력이 대단하데.
그리고 이쪽 반대편으론 헬싱키 대학이 있어. 어째 사진이 다 지워져버렸넹? 원로원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대학에 학생 숫자하고 교수 숫자가 비슷하다고.
우즈펜스키 교회
러시아 정교는 교회 안에 의자가 없어. 다들 서서 예배를 보는 거야.
물론 노약자를 위해서 뒤에다가 몇자리는 만들어 놨지.
저 앞에 보이는 초상화는 12사도리야. 천연 물감으로 그렸다는군.
날개 달린 사람은? .... 하늘나라로 가면 조류가 된다는.......
북유럽에서 젤 큰 교회라데.
러시아 사람 고르노스타예프가 설계했디야. 비잔틴-슬라브양식으로.
밖에 보면 빨간 벽돌이자니여? 그거 크림전쟁때 스웨덴 뭔 요새에서 뜯어왔다는구만.
그렇게 멀리서 운반해 오더라도 자기네가 만드는 것보다는 원가가 싸게 멕힌다는 말이겠지.
핀란드 정교회가 따로 또 있다데. 몇 명 안 되지만.
암석교회
템펠리아우키오(Temppeliaukion Kirkko) 교회. 1969년 티오모와 투오모 수오마라이넨 형제가 설계한, 바위산 위에 세워진 기존의 교회의 모습을 완전히 깨뜨린 최첨단의 교회로, 교회내부는 천연 암석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친 바위에 부드럽게 비쳐, 자연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자연의 음향효과를 충분히 고려해 디자인되어 음악회장으로도 자주 이용되고, 주말에는 결혼식이 자주 열립니다. (펌.http://blog.daum.net/choongbeom/8136989) |
주변에 보니까 맨 평지던데, 왜 굳이 바위를 뚫어서 지었을까?
여긴 의자가 다 놓여있는 거 보니까 러시아 정교가 아니고 그냥 기독교인게벼.
어쩐지 돈이 많은 눈치더라니.
저거 전부 신쭈 덩어리여. 탄피 천만개는 만들겠다.
그럼 그렇지, 중국놈들.... 정숙정도가 아니라 안정일세. ㅠㅠ
혹시?
.
.
이거/저거
아주 오래 전에 헬싱키 올림픽이 있었자니여.
지금도 그 경기장을 그대로 쓴디야.
파보 누르미.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이지?
아베베 다음이던가?
빤쓰 끈이 끊어져서 아예 벗고 뛴 적이 있었디야.
.
.
이름 : 얀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출생 : 1865년 12월 8일
사망 : 1957년 9월 20일
출신지 : 핀란드
직업 : 작곡가,대학교수
학력 : 헬싱키음악원
경력 : 1892년 1892년 헬싱키음악원 작곡과 교수
대표곡 : 핀란디아, 투오넬라의 백조, 칼레발라, 크레르보, 엔사가
Symphonic poem "Finlandia" Op.26/Jean Sibelius/1899
조국 핀란드에 대한 시벨리우스의 열렬한 찬가로서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
핀란드의 역사는 항상 스웨덴과 러시아의 공포에 노출되는 운명이 있었다.
이 곡이 쓰여진 당시에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압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수한 호수와 삼림이 엮어내는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을 찬양한 이 교향시는
곤경에 허덕이는 전국민의 애국심을 한껏 부추기는 애국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배려에서 걸핏하면 연주금지라는 사태까지 낳곤 했었다.
이 곡에도 시벨리우스 특유의 민요조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의 창작이며 기존의 민요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것들은 말하자면 핀란드人인 시벨리우스의 영혼의 노래인 것이다.
핀란드는 13세기경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의 지배아래 있던 대공국이었으나,
1809년 이후로는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영토화 되었던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스웨덴 시대로부터 이어왔던 대공국으로서의 대우를 유지했으나,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1세(재위 1825~55년)의 이후, 핀란드의 자치권이 침해당해 오다가,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핀란드의 자유는 박탈당하여,
러시아의 속령화 정책이 강제로 추진되었다.
그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애국 독립 운동이 격렬하게 고조되었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행사가 벌어졌는데,
그 중의 하나로는 문화적 행사를 가짐으로써 국민의 애국열을 높이고, 나아가 독립 운동의 자금을 모금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 한 가지로 민족적 역사극 '옛부터의 정경'이 상연되게 되었다. 1899년의 일이었다.
시벨리우스는 음악가로서의 이 연극의 상연에 참가했다.
이 희곡을 위하여 쓴 음악은 각 장면을 위한 전주곡과 대사의 배경 반주음악, 그리고 힘찬 피날레였다.
이 극음악에서 후에 '역사적 정경, 제 1'(직품 25)와 교향시 '핀란디아'가 만들어졌다.
이 작품 속에 담겨진 열렬한 애국심을 오늘 날에는 누구든지 금방 감지할 수가 있지만,
처음 발표 당시에는 청중도 비평가들도, 이 곡의 의미를 잘 몰랐었던 것 같다고,
시벨리우르 연구가 칼 에크만(Karl Ekman)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곧 청중은 이 작품 속의 뜨거운 애국심을 알아들었다.
이것을 눈치 챈 러시아 관헌은, 핀란드 국내에서 이 곡의 연주를 불온하다 하여 금지시키고 말았다.
이 교향시의 중간부의 선율에는 후에 베이코 코스켄니에미(Veikko Koskenniemi)가 시를 써넣어
'핀란디아 찬가'라는 합창곡으로 만들었다.
이곡은 오늘날 핀란드의 준 애국가처럼 애창되고 있다. (펌)
시벨리우스 공원.
저거는 파이프 오르간을 상징해서 세운 작품이여. 시벨리우스가 베토벤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사람도 있다대.
.
.
핀란드 전체 인구가 500만 좀 넘는디야. 헬싱키에 52만이 살고..... 북적대지도 않고.......
미국애들이 여기서 영화 많이 찍었디야.
헬싱키가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 비슷하게 생겼다는 거지.
그래서 러시아 애들이 핀란드보고 뭐라뭐라 그랬디야.
핀란드는 개(犬)천국이라데.
개 세금을 일년에 20만원씩 낸디야. 물론 주인이 내겠지.
그 돈으로... 개 사창가도 있디야.
.
.
이/제/갈/겨.
탈린크 선착장.
또 배 타고 가는겨. 이번엔 실자라인 보다는 작은 배여.
발틱해 건너서 <에스토니아>로 가는 겨.
.
.
.
보석같은 중세를 만나다
혹시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란 도시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탈린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도 중 하나다.
탈린같이 먼 데를 어떻게 가느냐고? 예상 외로 가깝다. 핀란드 헬싱키까지는 직항이 생겨 9시간 만에 갈 수 있고,
탈린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중세도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탈린 시청앞 광장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관광객.
시청 청사 두번째 기둥에 쇠고리가 걸려있는데 죄인들을 묶어놓고 토마토 세례를 주던 곳이라고 했다.
요즘은 관광지도 이야기를 곁들인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시대다. 그런데 탈린에는 이런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일단 탈린의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 전 도시의 성장배경을 먼저 훑어보자.
도시는 부유했지만 탈린은 주변 강대국에 쉴새 없이 시달려야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은 에스토니아는 구소련 붕괴 후 1991년에야 독립할 수 있었다.
탈린 항구에는 유럽 각국에서 수많은 크루즈선이 몰려온다.
가이드는 러시아 강점기 때의 이야기를 비꼬면서 말했다.
이를테면 1400년대에 세워진 니콜라스 교회는 2차대전 중인 1944년 점령군인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언덕배기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도 에스토니아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축물이라고 했다.
탈린은 완벽한 관광도시다. 곳곳에는 중세의 복장을 한 상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활쏘기 체험을 권유한다.
탈린은 북유럽의 보석이다.
▲길잡이
*핀란드에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헬싱키까지는 핀에어가 여름철에는 주 4편 들어간다.
*유럽연합에 가입돼 있지만 화폐는 크룬을 쓴다. 1유로는 15.6 크룬. 올드타운에서는 유로화도 받는다.
*탈린 올드타운은 걸어다닐 수밖에 없다.
*에스토니아는 IT선진국 중 하나다. 일부 호텔체인은 무료로 인터넷 전화를 쓰게 해준다.
<탈린 | 글·사진 최병준기자>
.
'발칸반도 > 북유럽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탈린 Ⅰ (0) | 2009.08.13 |
---|---|
{27} 탈린! 딸린! (0) | 2009.08.12 |
{25} 핀란드 헬싱키 (1) (0) | 2009.08.12 |
{24} 크루즈 (0) | 2009.08.11 |
{23} 바사 박물관 (0) | 2009.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