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5. 11:25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저녁밥을 먹고 난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말 한 마디.
내 글에 대해 늘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적인 그 남자의 말이 결국 나를 흔들고 말았다.
감정의 격랑을 견딜 수 없어 J양에게 문자를 보냈다.
넘치는 재능을 지닌 J양이 그런 걸 느낄 때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높은 이상으로 인해 깊은 좌절도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자신이 천재는 커녕 둔재라는 걸 느낄 때 있어요? 있다면 그럴 땐 뭘 하죠?”
곧 날아온 답문자.
“전 천씨라 천재라는 사실에 불신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만 진짜 둔재는 자신이 둔재라는 의문도 안 가질 듯.
쩝. 또 글이 잘 안 써지나 보네.”
잠시 후 걸려온 전화.
그녀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약이라도 올리듯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이거 너무 주기적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작년에도 꼭 이맘때였지? 그때도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이었고.”
“헉. 그게 이즈음이었나.”
“그렇다니까요. 아무래도 계절병 같은데...”
“그땐 등 떠밀어서 잘도 일본에 보내더니...”
“그러게. 올해는 돈이 없다고 하니 여행을 보낼 수도 없고... 왜 그러는데요?”
“피아노의 숲을 봤어요.”
“아하, 거기서 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비애를 읽으셨구만.”
그래, 시작은 그 남자의 한 마디.
결정타는 어제 밤을 새가며 읽은 만화 ‘피아노의 숲’.
“그래서 피아노라도 샀어요?”
“내가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쇼팽 음반 한 장으로 끝냈어요.”
“너무 양호한데... 난 사실 피아노의 숲 읽고 사고 크게 쳤는데...
우리집에 있는 전자 피아노, 그거 피아노의 숲 때문에 카드 긁은 거잖아요.”
이성적인 J양도 그런 사고를 치기도 하는군.
하긴 이 여자가 수박 한 통이나 콘 프레이크 한 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밀어 넣는 걸 보면
이성이라고는 개에게나 줘 버린 지 오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어쨌든 ‘노다메 칸타빌레’를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을 말하자면...
남들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그 만화를 다 읽고 난 내 느낌은 ‘슬픔’ 그 자체였다.
한 며칠 심각하게 우울증을 앓았을 정도로.
그들의 재능이나 열정보다 더 부러웠던 건 젊음이었다.
젊기 때문에 몇 번의 실패와 좌절도 다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 모든 상처의 유일한 치유수단인 시간이 그들 앞에는 지겨우리만치 늘어져 있다는 것,
그걸 참기가 어려웠다.
올해 내 나이 마흔.
한 번 넘어질 때마다 ‘괜찮아. 넌 아직 젊으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실수와 실패를 계속하는 인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피아노의 숲’을 읽고 나니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회한 못지 않게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르의 질투와 비애까지 겹으로 다가왔다.
J양의 위로가 충분치 못한 나는 다시 전화를 H양에게 돌린다.
음악을 하는 그녀는 살리에르의 비애를 더 절박하게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을까,
타인의 불행에서 위로를 구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떨어져 내리며.
내 얘기를 듣고 난 그녀의 반응.
“살리에르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야? 그 당시에 살리에르는 나름대로 굉장히 성공한 궁정 음악가였다구.”
“그럼, 뭐해? 지금 살리에르는 잊혀졌고, 모차르트는 추앙받는 걸.”
“자신이 살아있는 시기에 사랑받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그것조차 이루지 못하는 음악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문제는 내가 살리에르인데 모차르트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거지. 적어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는 알 수 있으니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있는데 내 글은 가짜인 것만 같으니까.”
“언니는 그런 말을 할 시기를 지났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는 거야. 언니는 그냥 계속 쓰는 것만 하면 되는 거야.
그 남자의 말 따위는 그냥 무시해.”
“언니는 그 남자한테 인정받는 글을 쓰게 되는 날, 대부분의 독자를 잃게 될 지도 몰라.”
과연 그럴까.
단 한 명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아니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된 게 아닐까.
한 명의 독자와 만 명의 독자가 다른 걸까.
여전히 모차르트가 되지 못하는,
아니 살리에르조차 닮지 못한 나는 무기력한 우울함 속에 빠져있다.
이사와 여행과 결정을 기다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앞에 둔 채.
2009년 1월 27일 서울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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