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3. 21:09ㆍ책 · 펌글 · 자료/역사
1.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를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이들 두 작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서로를 아주 친밀하게 느꼈다.
너무 가깝게 느낀 지브란은 '보이지 않는 끈'이 그의 생각과 메이의 생각을 연결해주며,
그의 영혼과 그녀의 영혼을 묶어준다고 생각했고,그가 '하늘의 영기'라고 명명한 그 무엇 덕분에,
메이의 정신이 가는 곳마다 따라온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지브란은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하나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메이에게 보내는 몇몇 편지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p167)
1921년 6월에 메이는 그에게 자신의 사진을 한 장 보냈고,
지브란은 그 사진을 보고 목탄으로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통통하고 동그스름한 얼굴, 한쪽으로 가리마를 탄 짧게 자른 갈색 머리, 짙은 눈썹 아래 아몬드 모양의 눈,
도톰한 관능적 입술을 한 여인.
( ...... )
편지를 주고받는 순수한 관계에서 발전한 이 숭고한 사랑에 얼굴을 보태준 이 사진 앞에서 그는 몽상에 잠긴다.
지브란은 이 여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 ......)
그렇다면? 다리를 끊지도 말고, 건너지도 말 것. 이런 정신적이고 지적인 사랑이 지브란에게는 적합하다.
그러나 메이는? 지브란은 자신의 미사여구가 상대 여인의 마음에 불러일으킬 헛된 희망을 생각이나 해본 걸까?
( ...... )
1923년 10월, 지브란은 자신에게 사랑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격식없이 선언하는 형식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낸다.
"네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네 안에 있으면, 너도 그것을 알고 나도 그것을 안다."
<알렉상드르 나자르 / 칼릴 지브란 / 작가정신 2007>
※ 칼릴 지브란이 겪은 여러 애정행로 중에 한 대목인데,
위에 소개한 시와 연관이 다소 있을 듯하여 소개해 본 것이다.
이 양반 역시도 말만 그리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아닌 모양이다.
2.
그는 세 작품을 보냈는데, 보자르 국립협회 배심원이 그 중 한 작품만을 선택한다.
그것은 <가을>로, 반나의 로지나가 오른손으로 금발머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중심 인물과 색채와 배경을 통해서, 여름의 즐거움과 겨울의 슬픔의 중간에 놓인 멜랑코리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지브란은 설명한다.
불행히도 작품이 걸리는 날 <가을.은 본 전시실에 걸리지도 못하고 그냥 팔레의 좁은 복도에 전시된다.
지브란은 격분한다.
로뎅, 그 위대한 로댕이 전시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그림이 한쪽 구석에 놓여있으니 로댕이 그림을 알아보고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유세프는 친구를 위해 관리인을 매수하여 <가을>을 본 전시실로 옮겨놓았다.
( ...... )
용기를 내어 로댕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건넨다.
지브란의 고백에 따르면, 자신의 그림을 로댕에게 소개하고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댕은 바빴다.
그는 이 젊은이의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춰서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나쳐버린다.
※ 이때가 지브란이 23살 때다.
부처님도 그 나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3.
고통을 잠재울 수 없는 지브란은 술로 도피한다.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브란은 아락을 엄청나게 마셔댔고,
심지어는 자기 누이동생을 시켜서 친지인 아사프 조지에게 보스톤에 있는 차이나 타운의 밀주공장에서
술을 사다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나의 술에 대한 갈증은 노에, 아부 누와스, 드뷔시, 그리고 말로의 그것을 능가한다."라고 지브란은 말한다.
친구 앨버트 라이더와 아버지도 술을 너무 마셔서 죽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떠랴! 술에 대한 취미는 아무도 못 말린다.
네 잔을 비워라, 그것이 비록 너의 피와 눈물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인생에 감사하라.
왜냐하면 술이 없다면,
너의 가슴은 밀물 썰물도 없고 파도 소리도 없는 삭막한 바닷가와 다름없을 테니까.
혼자서 그것도 열심히 술을 마셔라.
너의 잔을 높이, 머리 위로 쳐들고 찌꺼기까지 깨끗이 마셔라.
혼자 술 마시는 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
Silhouettes, Chris Glass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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