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십자군전쟁

2008. 11. 22. 16:03책 · 펌글 · 자료/역사

 

 

 

5천여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 시대를 통째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갈래도 너무 많다. 요령 있게 요약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요약은 압축을 필요로 하는데 압축은 추상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된 역사에서는 정보를 얻기도, 재미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시내를 건너기는 해야겠는데 발을 적시기는 싫다. 그러자면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런 징검다리의 좋은 예가 전쟁이다.

 

 

 

 

 

 

 

 

십자군의 무질서와 자유분방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13세기의 4차 십자군이다.

1차 십자군 이후 원정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자 초조해진 서유럽의 군주들은 잉글랜드 왕 리처드의 주장에 따라

해로를 이용해 이집트를 먼저 정복하기로 결정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대를 수송할 선박들이 필요한다.

그 정도의 많은 배를 보유한 곳은 서유럽에서 베네치아 공화국밖에 없다.

당시 베네치아는 제노바, 피사 등과 더불어 동지중해 무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아무도 예기치 못한 드라마가 벌어지는 것은 이때부터다.

 

1201년 나이가 이미 아흔넷이었던 베네치아의 맹인 도제 엔리코 단돌로는 병력 수송비로 8만 4천 마르크의 돈을 받기로

하고 서유럽 군주들의 제의를 수락한다.

아울러 그는 원정이 성공할 경우 정복지의 절반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50척의 무장 갤리선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말하자면 베네치아는 십자군과 병력 수송 계약을 맺는 동시에 직접투자를 한 것이다.

 

문제는 1년이 지나 1202년 6월 24일 출발 날짜가 되었을 때다.

3만명 이상이 모일 것이라는 서유럽 군주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베네치아에 모여든 병력은 1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십자군 측은 처음에 약정한 금액을 베네치아 측에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분노한 도제는 십자군을 부두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식량 공급마저 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서슬에 놀란 십자군 지휘관과 병사들이 현장에서 부랴부랴 사재를 털어 모금했으나 겨우 5만 마르크 정도를 만들었을

뿐이다.

남은 돈을 받아내기가 어려워지자 노회한 단돌로는 십자군에게 묘한 제안을 한다.

연전에 헝가리에게 함락된 베네치아의 도시 차라를 수복해달라는 것이다.

빚쟁이 십자군은 졸지에 베네치아의 용병이자 해결사가 되어버린다.

약속대로 차라를 점령해 베네치아에 넘겨주자 이번에는 교황이 분노한다.

이교도와 싸워 성지를 탈환하기는커녕 원정을 시작하지도 않고 같은 그리스도교권을 침략했기 때문이다.

화가 치민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십자군 전체를 파문해버린다.

 

그러나 4차 십자군의 해프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용병으로 전업한 그들에게 다시 '의뢰'가 온다.

아직 받을 돈이 남아 있는 단돌로는 아예 십자군의 '매니저'로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이 단돌로에게 십자군의 경비를 대납하겠다면서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해달라고

주문한다. 단돌로는 대환영이다.

묵은 빚도 받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제국을 손에 넣으면 지중해 무역의 경쟁자인 제노바와 피사를 멀리 따돌릴 수 있다.

 

1203년 십자군을 태운 베네치아 함대는 이집트도, 팔레스타인도 아닌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입항했다.

제국은 거세게 저항했으나 쇠락기에 접어든 국력으로 강성한 서유럽 연합군을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십자군은 교전 끝에 이듬해 도시를 점령했다. 이교도를 징벌하러 모인 군대가 그리스도교 제국을 정복한 것이다.

그 결과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라틴 제국이라는 기묘한 십자군 왕조가 수립되었다.  

 

 

 

                                                                                                                 -『 남경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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