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5. 13:22ㆍ詩.
심우도(尋牛圖)읽기
- 조광명 -
방우(放牛)
소를 처마에 비끌어매고
나는 고삐만 들고 산에 오르네
고삐여 산에 자유로워라
고삐여 산에 마음껏 뛰놀아라
고삐를 산에 비끌어매고
나는 빈 몸으로 산을 내리네
처마는 없네
소는 없네
심우(尋牛)
왜 자꾸 허깨비가 눈앞에 어른거리는가
소꼬리같은 허깨비는 물러가라
소등짝같은 허깨비는 물러가라
소는 어디로 갔는가
본심(本心)은 어디에 있는가
소는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가
본심은 꼭 소를 찾아야만 하는가
안개의 길
안개의 길
눈을 비벼 허깨비를 쫓아
음메음메 소처럼 영각질 해본다.
소뿔에 부딪쳤다가 되돌아 오는
내 영각소리
소는 나를 부르고 있는가
견적(見跡)
내 자욱은 없고
소발자욱만 멀리
산꼭대기로 뻗어있네
소여, 길을 아는가...
소가 갈 길은 뻔한 것
그런데 길은 왜 이리 험하디야
그런데 길에는 소 대신 왜 이리 많은 야수들인가
가시덤불은왜 이리 많고
골짜기는 왜 이리 깊은가
끊겨졌다 다시 이어지는
소발자욱
소는 어디로 갔는가
소는 이미 어디까지 가 닿았는가
소의 숨결소리는 아직도 들리지 않고...
소여, 가시덤불에 긁힌
내 피의 냄새를
맡고 계시는가...
견우(見牛)
발심(發心)에 물어
소를 왜 찾아가는가
소를 찾아서는 어찌할 건가
소는 제 갈 데 간 게 아닌가
육근(六根)에
뱀이랑 호랑이랑 곰이랑 승냥이랑
다 무섭소
그들은 잡아먹고 먹히우며
약육강식으로 번생하고.
다 이기고
피를 흘리며
기어코 톺는 벼랑위에
득도(得道)의 기발인양 나붓는
소의 꼬리.
소는 거기 간 게 아니요
소는 원래 거기 있었소.
득우(得牛)
꽃향기보다도 더 기막힌 풀들의 향기
소여 피 묻은 꼬리 휘휘 저으며
풀밭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계셨네
슴벅이는 두 눈에 담긴 삼매(三昧)
윤회(輪回)속에 환생(還生)한 내 모습인가
하긴 이곳이 좀 눈에 익군
육계육천(六界六天)이 아닌
미륵(彌勒)의 땅인가
내 여윈 배여
풀을 배불리 먹고
소 옆에 함께 엎드리세
꿈속에 푸른 별이 온통 돋아
지나온 삼욕(三欲)의 세계
도솔천 그 어디인가에 걸려있는
내 바리를 비추세
소 찾아 온 모든 길들이
진(眞)과 망(忘)의 그물같이
색공(色空)으로 뻗어있는 게 보여
나는 먹은 풀 다시 토해
소처럼 새김질
푸른 하늘을 다시 쳐다볼 수밖에 없네.
목우(牧牛)
이제 고삐는 다시 내 손안에 들어왔네
소야 아직도 고삐를 간직하고 있었네.
순하디 순한 성품으로 다시 돌아와
소야 산에 너를 비끌어 맬 말뚝은 더는 없네.
배불리 먹어야지 먹어야 사는 섭리
풀은 누굴 위해 향기롭고
소는 누굴 위해 살찌고
나는 누굴 위해 소를 지키는가
이제 배부른 소여
영각소리 한 번 기운차게 뽑고
우리 산아래로 내려가야지
너나 나나 어차피 속가(俗家)의 몸인 걸.
기우귀가(騎牛歸家)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답네
천년세월 만년세월 단 오늘 하루일세
소를 찾아 오르던 길에 내 흘린 핏자국에
어느새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가
피가 꽃이라면 피가 꽃이라면
내 속에도 만개해 있을 꽃들
그러나 내 몸속엔 아직
천진불(天眞佛)도 들어있지 못함이어.
천년바람 불어오는 곳에
소여 너와 서로 기대어
월야 쪽잠에 득몽(得夢)하여
각(覺)에나 이르를까...
망상망상(妄想妄想), 본성(本性)도 공(空)일세.
망우존인(忘牛存人)
새로운 아침은 언제 시작되는가
눈썹에 묻은 이슬 털어 목을 축이고
내가 네발로 일어서네.
인우구망(人牛俱忘)
나를 잃은 소는 내 옆에 없네
나를 잃은 소는 내 안에 없네
소를 찾은 나는 소 옆에 없네
소를 찾은 나는 소 안에 없네
나를 잃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찾아 나는 어디에 헤매이는가
소도 없고 나도 없는 곳에
소와 함께 걷는 건 누구인가
나와 함께 걷는 건 누구인가
반본환원(返本還元)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고삐 그대로 집 처마에 매어져 있고
그렇다면 내 손에 고삐는 무엇인가
소여, 갈 길을 가게
늠름하게 뿔 떠이고
나를 보며 웃고 섰는 소여
내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나는 보고 있네, 소 안에서
소를 찾아 산을 헤매고 있는 나를
나는 보고 있네.
내 욕망이 숲이었네
욕망을 벗어 내치니
숲도 없네.
나는 내 목에서 고삐를 풀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술잔 들어 소에게 한 잔 권하노니
소여 고개 들어 한 잔 쭉 굽내고
취한 걸음 휘청대며 어디로 걸어들어 가시는가
술 한 잔 맛깔스레 마신 소는 뉘시오?
빈 술병 들고 키들키들 웃는 나는 뉘시오?
불문(佛問)
불문(佛門)
불문(不聞)
불문(不門)
무아(无我)
무우(无牛)
무불(无佛)
무색(无色)
......
2007년 7월 5일 문우재(問牛齋)서
*일찍부터 선가(禪家)에서는 마음 닦는 일을 소 찾는 일(尋牛)로 비유해 왔다.
소의 상징은 참생명, 아트만(眞我) 그 자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소를 찾는 과정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열 단계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 십우도(十牛圖)로 선사찰 법당의 외벽에 벽화로 많이 그려져 있다.
이 한 묶음의 시는 십우도의 열 개 제목 그대로에 방우(放牛) 그림을 머릿속에 하나 더 그려서
필자 나름대로의 시선(詩禪)행위를 십일우도(十一牛圖)로 풀이해본 것이다.
역대 선사들의 십우도를 미천한 시객으로 감히 십일우도로 장난쳐 본 망동에 혼자 낄낄 웃으며...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도망칠 소도, 찾아야 할 소도 없으니까...
.
선가의 그림 '십우도' (十牛圖) | |
불가(佛家)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를 진리의 상징으로 보고 심법전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절마다 ‘소를 찾는 그림(尋牛圖)’을 벽에 둘러가며 그려 붙인 것이 그것이다. 최초로 심우도를 그렸던 송나라때의 곽암선사는 화엄경이 말하는 미륵불(彌勒佛)의 출세를 상징화하여 그렸다. 그러나 심법(心法)을 닦는 것이 본 업이 되다보니 현재 불교의 심우(尋牛)는 미래불(未來佛-미륵불)과 관계없는 심우(心牛)가 되고 말았다. | |
심우(尋牛) | |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 버린 것이다. | |
견적(見跡) | |
그리고 있다. 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 |
견우(見牛) | |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 |
득우(得牛) | |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 |
목우(牧牛) | |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 |
기우귀가(騎牛歸家) | |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 |
망우재인(忘牛在人) | |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 |
인우구망(人牛俱忘) | |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 |
반본환원(返本還源) | |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 |
입전수수(入廛垂手) | |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의 포대화상이 누구인가? 십우도를 그린 곽암선사에 의하면 바로 이 포대를 짊어진 화상이 미륵부처님이다 결국 십우도는 저자거리로 나서는 미륵부처를 찾아야 산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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