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선경
1960년 경남 창녕 출생.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바둑론' 당선. 시집 <널 뛰는 직녀에게> <서른 살의 박봉 씨>(문학과경계사)
성선경-흔들리는 하현달 성선경-처서 성선경-도깨비바늘풀 성선경-장진주사 성선경-벌목 성선경-석류 성선경-찬밥 성선경-삶 구두 한 컬레 성선경-달팽이의 집 성선경-매운 아구 성선경-노란색과 싸우다 성선경-폭설 성선경-생각하는 사람 성선경-고래에 대하여 성선경-십장생 거북이 성선경-서학사 가는 길 성선경-쑥국 성선경-제미 성선경-바둑론 성선경-4학년 2학기 성선경-경상도 사투리 성선경-니가 흥부고 내가 놀부라도 그렇제
낯익은 세계의 새로운 느낌 - 성선경 서른 살의 박봉씨 - 서재원
흔들리는 하현달
까치밥으로 하나 남겨둔 홍시마저 떨어진 뒤 다만 혼자 저 가지 끝을 붙들고 있는 감꼭지 가늘게 찡그린 외눈박이 눈
참 많이도 울었겠구나.
흑백영화 자막 속으로 흘러내리는 별똥별처럼 점 점 점 자주 글썽이는 외눈박이 눈 한번 해처럼 밝게 빛나보겠다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바람 빠진 작은 공 저 턱도 없는 꿈 참 많이도 울었겠구나.
누가 내다버린 연탄재같이 아무나 툭하고 차고 싶어서 이젠 빈 맥주 캔처럼 찌그러진 나이. 참 많이도 울었겠구나.
처서(處署)
나도 이제 한참 때는 지났나 봅니다. 내 영혼 어디선가 설렁설렁 바람이 불고 내 무릎 아래에서 알기는 칠월의 귀뚜라미라고 말끝마다 사랑 사랑 합니다.
나는 이제 막 고개 위를 올라섰는데 속으로는 굽어져 이제 찬바람이 이네요.
누구 이런 변화를 알고 이름 지었을까요. 불혹(不惑), 나는 그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요.
도깨비바늘풀
이제 내 이름을 서러워하지 않겠다. 조금의 그리움으로도 목이 매여 옷섶이나 바짓가랭이 혹은, 삽살이의 그림자에도 맺혀서 잔잔히 묻어나는 나의 사랑 이제는 용서하겠다. 풀꽃답게 피었다 시드는 꽃을 맺어도 나의 감성이 예쁜 덧니로 돋아나도 세상은 때때로 물뱀보다 독사같아서 이 징글시런 놈 혹은, 이 낮도깨비같은 놈 하고 욕을 퍼부어도 나의 근끈한 사랑 변명하지 않겠다. 풀꽃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화초이기를 이름 중에서도 더 빛나는 명사이기를 꿈꾸지 않겠다. 그냥, 낮도깨비같은 도깨비바늘풀.
장진주사(將進酒辭)
살구꽃 피면 한 잔 하고 복숭아꽃 피면 한 잔 하고 애잔하기가 첫사랑 옷자락 같은 진달래 피면 한 잔 하고 명자꽃 피면 이사 간 앞집 명자 생각난다고 한 잔 하고 세모시 적삼에 연적 같은 저 젖봐라 목련이 핀다고 한 잔 하고 진다고 하고 삼백예순날의 기다림 끝에 영랑의 모란이 진다고 한 잔 하고 남도의 뱃사공 입맛에 도다리 맛 들면 한 잔 하고 봄 다 갔다고 한 잔 하고 여름 온다 한 잔 하고 초복 다름 한다고 한 잔 하고 삼복 지난다고 한 잔 하고 국화꽃 피면 한 잔 하고 기울고 스러짐이 제 마음 같다고 한가위 달 보고 한 잔 하고 단풍 보러 간다고 한 잔 하고 개천은 개벽이라 하늘 열린다고 한 잔 하고 입동 소설에 첫눈 온다고 한 잔 하고 아직도 나는 젊다고 한 잔 하고 아랫목에 뒹굴다 옛시를 읽으며 한 잔 하고 신명 대접한다고 한 잔 하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한 잔 하고 또 한 잔 하고 그런데 그런데 우리 이렇게 상갓집에서나 만나야 쓰겠냐고 선배님께 꾸중 들으며 한 잔 하고 아직도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니 웃음 난다고 반 너머 기울어진 절름발이 하현달.
벌목(伐木)
우리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으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고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잘 자란 푸른 수목을 향하여 톱날을 세우고 시퍼런 도끼날을 겨누었다 우리도 늙어지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 촘촘히 나이테를 키우다 어느 날 문득 시퍼런 도끼날이 가슴에 와 닿을까 김씨 손씨도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스스로 쑥스러워하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참때가 이슥하도록 꽝꽝 서로의 예감만 찍었다 그래, 그만하면 자랄 만큼 자랐지 그쯤 했으면 세상도 볼 만큼 보았겟지 때때로 문득문득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우리들이 지나온 발자국 같은 그루터기만 남겨 놓으며 꽝꽝 침엽수(針葉樹)의 단단한 근육질을 향해 도끼만 휘둘렀다 자랄 만큼 자라면 이젠 자라지도 않을 거야 품도 웬만하면 더 이상 늘지 않는 법이거든 이제는 새로운 묘목에서 자리를 내어 줄 때도 되었지 가끔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아무런 생각 없는 듯 무심한 얼굴로 꽝꽝 잘 자란 수목(樹木)들을 향하여 도끼날만 휘둘렀다.
청학재(淸鶴齋)시편 ― 석류
대나무 그늘이 짙은 외갓집 뒤란에서 한 평생을 늙어 아직도 하지 못한 말들이 보석처럼 박혔을 큰외숙모 나는 태어나 백일 전후 그 큰외숙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내 위로 외사촌 형이 한 분 아래로 나와의 한 살 터울 외사촌 여동생이 하나 그 사이에서 내 살겠다고 연꽃 같았을 외숙모의 젖을 악착같이 빨았을 나는 참 미운 덩굴이었을 텐데 이제 팔십이 내일 모레 한 노인이 되었어도 아들같이 나를 기다려 동동주를 담는다. 나는 모른 척 동동주 몇 잔에 술이 올라 불쑥 젖값이라 봉투 하나 내밀고 돌아오는데 언제 따셨는지 뒤란의 석류 하나 손 쥐어주며 길 가며 먹어라 속 파인 석류 같은 웃음 하 웃으신다.
참 보석은 늘 감추어진 곳에 있다 숨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그 곳에 있다가 어느 날 눈물같이 확 쏟아진다 내 또 다른 어머니.
찬밥
아이를 가지고 입맛이 없다는 아내를 위하여 찬밥 한 그릇을 말아 멸치 몇 마리와 함께 들여온 나는 온갖 너스레를 다 떤다 내 유년의 고향 얘기며 풋고추며 양파며 된장이며 이 여름 쉬 말은 찬밥 한 덩이가 얼마나 맛나는 별미인지를
그러나 아내여 눈웃음치며 게 눈 감추듯 찬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며 생각해 보면 찬밥이 어찌 밥이 차다는 뜻뿐이랴 내가 세상에 나와 오로지 굽실거리며 아양 떨며 내 받아온 눈치며 수모 그 모두 찬밥인 것을
아내는 아직도 입맛을 다시며 재미있다고 깔깔거리고 박수를 치고 제가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 그 낭만적인 김소운과 <가난한 날의 행복> 한 귀절을 떠올리며 정말, 우리는 늙어서 할 얘기가 많겠다고 스스로 결론까지 짓는 아내 앞에서 더욱 너스레를 떨며 아양을 떠는 나는 누구냐.
가랑비 촉촉히 속으로 젖어드는 찬밥 한 그릇.
서른 살의 박봉 씨
- 삶 구두 한 컬레
내 육신은 무슨 쇠로 만들었기에 밟히고 닳음이 이다지도 대단하냐 오뉴월 하루, 땀에 젖은 일과를 벗고 아직도 더운 석양 무렵의 땅바닥에 몸을 누이면 아아 어디쯤에서 우리가 닿아야 할 빛나는 마을의 어귀가 보일까 또 아침이 밝으면 어제의 편지를 털고 깨끗이 빛나는 얼굴로 광택도 내어보지만 율도국으로 떠난 길동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크고 작은 돌멩이들은 이 산 저 들에서 여전히 길을 막고 신기료를 찾아서 낡은 뒷굽을 갈아도 보지만 위 덩더듕셩 태평성대 다같이 평등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 산에 철쭉이 피어도 때맞춰 구절초가 져도 날이 새면 내가 가야할 길은 끝없는 구절 양장
달팽이의 집
이사철이 되어서 나는 이 언덕배기 저 달동네 쫓아다니고 아내는 전봇대와 전봇대 그 사이 벽보들을 읽고 다닌다
------------------- 방 1칸 부엌 1칸 전세 500 달세 4만 -------------------
나의 마땅한 거처는 없었다 저 달팽이같이 무겁게 짊어지고 가야 할 없어서 더욱 무거운 나의 집.
매운 아구
입 벌려봐, 아구 그래, 입 벌려봐 탐욕스런 이빨들아 세상이란 모조리 뒤섞키고 엉켜서 때로는 콩나물, 때로는 미더덕 서로를 붙잡고 땀 흘리는 것 몰랐지, 아구 아구찜 찜찜한 얼굴 하지마 내가 네게로 가고, 네가 내게로 오는 것 그래, 저 탐욕의 혓바닥들아 맵지 봐 맵지, 매워! 그래, 상처란 늘 서로에게 아프게 돋아나는 혓바늘같이 오늘은 콩나물, 또 때로는 미더덕 내 쓰린 속만큼의 쓰린 맛을 보여주는 것 때때로 내 살점과 뼈골까지 휘감아 오는 저 갈분의 엉김같이 저렇게 엉켜서 속쓰리게 서로에게 눈물나게 하는 것 몰랐지, 아구 입 벌려봐 그래, 아구같이 입 벌려봐.
노란색과 싸우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노란 꽃과 노란색을 싫어하는 노란 꽃 사이에 노란색을 좋아하는 노랑나비와 노란색을 싫어하는 노랑나비가 노란색에서 좀체로 떠날 생각을 못하고 아주 멀리 떠날 듯 날아갔다가는 다시 노란색으로 되돌아와 아주 떠날 수는 없다고 다시 되돌아와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노란색을 두드리고
어정칠월 건들팔월 나는 아직도 방학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문을 열지 않고 내 늑골 사이의 빈 공간을 바람으로 채웁니다 탕- 하고 어느 날 구멍을 내버릴 총소릴 듣고 있는지 모릅니다.
폭설
첫사랑이었고 살풋 치맛단을 걷어올리고 싶었고 나는 어지러웠고 간혹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했을 때
-나는 꽃이 아니야
입술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내 눈은 네 눈과 만나서 하지 못한 말들이 폭설이 되어 내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들은 이미 끊어져 나는 다시 혼자서 눈사람 싸늘히 어네
내 앞에 산같이 있었던 확신도 막막히 눈 속에 갇혀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침묵이 세상을 만들고 나는 얼어서 고드름이네 거꾸로 서는 마음 하늘로 날아오르는 길만 보이네.
생각하는 사람
늘 하나의 바위였습니다 비바람 맞으며 검버섯을 피워내는 그냥 하나의 바위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석공의 눈에 턱을 괴고 앉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위 속에서 오랫동안 고뇌하며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날이었습니다 검버섯을 걷어내고 검버섯처럼 덮고 있는 허물을 걷어내고 오랫동안 고뇌하며 생각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보게 한 날이었습니다 바위 속으로 들어가 한 천년 생각만 하던 사람이 우리 곁에 와 가만히 자기를 보여주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늘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내 한 번의 눈맞춤이 너에게로 가 천년의 한을 만들었다고 이제 네 눈물과 한들을 모아 불국사 앞뜰에다 연화지 푸른 연못을 하나 파주마고 그리고 나는 석가탑 속으로 들어가 너를 볼테니 너는 저 다보탑 속으로 들어가 또 나를 보라고 연화지 푸른 물빛에 비친 네 얼굴을 내가 보고 내 얼굴은 네가 보라고 한 천년 못다한 얘기나 좀 해보자고 다시 조용히 바위 속으로 들어간 날이었습니다.
흔적없던 바람이 갈잎을 흔들어 조용히 그 자취를 생각하게 한 날이었습니다.
고래에 대하여
나는 생각한다 담배를 피워물며 담배연기와 담배에 대하여
나는 생각한다 가끔 숨을 쉬는 허파에 대하여 자주 말많은 대화에 대하여 고래에 대하여
분수처럼 물을 뿜어올리 듯 가끔은 혼자서 이런 말들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왜 아직도 생각을 하는가 저 물 밑에서 물을 느끼지 않는 물 속의 삶에 대하여 참 지겨운 인내에 대하여 나는 왜 아직도 허파로만 숨을 쉬는가
본 적이 없는 물고기들과 대화를 나눌 때처럼 다만 혼자서 어헝 어헝 고개를 끄덕끄덕 오분마다 물 위에서 숨을 쉬는 허파에 대하여, 저 고래에 대하여 담배에 대하여
그러나 다만 나는 생각한다.
십장생 거북이
험난 물결이 나를 험하게 하네 험난한 날들이 너무 길어 흠이네 그러나
그러나 어쩌겠나 그리하여 그리하여서 한참 동안을 그리하여서 칼로 마음을 새기듯 마디마디 그리하여서 더 오래 인내(忍耐)하여서
온 몸에 문신을 그리듯 수놓는 등껍질 조개질 듯 온몸으로 견디는 균열(龜裂)
서학사(捿鶴寺) 가는 길
원래 없는 것들도 없어 서운한 것은 손 닿는 것만이 아니다 라고
한 고비 마음을 따라 오르는 산길 저기 옹이가 많은 남기 마음에 걸리고 자주 발을 거는 돌멩이에 마음이 쓰이고 산은 저긴데 생각은 허공 길은 가는데 마음은 따라주지 않아 괴롭다고 생각이 없는 마음을 풀어 놓으면
문득 하늘을 채웠다가 비워내는 구름과 달 산을 채웠다 비워내는 풀과 꽃
원래 없었던 것들도 돌아와 빈자리를 채우고 원래 채워진 것들도 비워져 빈자리를 만드는 없던 마음과 비워진 생각들이 잊고 지내온 서운한 것들을 만나러 가는 길
서학사(捿鶴寺)에는 학이 살지 않는데 학(鶴)이 운다.
청학재 시편
-쑥국
쑥쑥쑥 봄날이 왔다고 차오르는 쑥쑥쑥 어머니 한 바구니 캐오셔서 쑥쑥쑥 한 솥 가득 국 끓이시니 쑥쑥쑥 할머니도 드시고 나도 먹고 쑥쑥쑥 입춘 같은 입춘서 같은 쑥쑥쑥 국량이 커야 큰 일 한다고 쑥쑥쑥 어머니 한 그릇 더 퍼주시는 쑥쑥쑥 전혀 배고프지 않은 춘궁 같은 쑥쑥쑥 쑥국.
청학재 시편 -제미祭米
참 우리 동네는 재미나는 도깨비만큼이나 참 많은 신들도 함께 살아서 사람 반 신명 반 어울려 살았는데요 그래서 늘 밥 한 술만 떠도 고씨례 고씨례 하고 신명 대접을 했는데요 무슨 무슨 날이다 하면 한 상 잘 차려서 터주대감 조왕신 정랑신까지 골고루 찾곤했는데요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날이 제미를 하던 말이었는데요 쌀신명 대접한다고 흰 쌀밥에 칼치국에 나물 한 대접을 놓고 먼저 절을 두 번하고 손을 싹싹 빌면서 할머니께서 무어라 무어라 주문을 외면 나는 아무런 의미도 모르면서 분수처럼 마구 흥이 솟지 않았겠어요 제사가 끝나면 쌀밥에 칼치국을 아주 소원처럼 먹을 욕심으로 나도 할머니 따라 싹싹 빌곤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마음이나 속이 허한 나이면 봄도 여름도 없이 할매 우리 또 언제 제미하노 묻곤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그래 그래 좀 있다가 그러면 금방 참 시원한 칼치국물이 목을 타고 시원히 내려가곤 하지 않았겠어요 참 쌀밥 한 그릇에도 천지신명을 다 담았던 키가 작아 더 커 보였던 할머니.
바둑론
우리가 스스럼없이 우리라고 부를 때 바둑을 두자, 아우여 돌싸움을 하자 생나무 자라는 소리 쩡쩡한 남녘의 아랫도리 그 어디쯤에서 청동빛 말씀이 내리던 백두의 천지 그곳까지 날줄과 씨줄의 모눈을 메우며 우리들의 날들이 오로지 나아가야 할 길닦음을 해보자 때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과 산수문제처럼 부대껴야 할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면서 내가 온 봄날의 잡꽃을 피우며 단발령, 추자령, 숨가쁘게 치올라갈 때 너는 또 대둔산, 멸악을 넘어 잘 익은 가을의 단풍잎 물들이기로 그렇게 내려오라 큰 강물이 양수리에서 만나듯 내려와 서로 만나서 휘휘 휘둘러 강강수월래 같은 돌싸움을 붙여보자. 고싸움을 해보자. 세상의 비워 있는 자리를 서로 메우며 한 상 가득 고봉밥을 마주할 수 있다면 꼬이고 꼬여서 만두속 같은 세상도 또 한판 훌륭한 그림그리기 아니냐 흑이다 백이다 온 들에 모눈을 메우며 삼천리 화려강산 모자이크를 그려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취 같은 것 시원히 아침의 해장을 하지 않으면 언제 저 넉넉한 태평양 대서양 우리의 집 한번 만들어 보겠느냐. 우리가 우리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때 스스로 셈하여 볼 내일도 있는 것 큰 강물이 양수리에서 만나듯 휘휘 휘둘러 강강수월래 같은 돌싸움을 붙여보자, 고싸움을 해보자.
학년 2학기
가을은 졸업보다 먼저 밥벌이에 대한 명징한 물음이 되어 달려왔다. 신년의 엽서처럼 편편이 흩어지는 낙엽을 주워모으며 젊은 교수는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을 잔디밭에 앉히고 한 시간의 진도를 위하여 두 옥타브의 목청을 높였다. 몇 명은 기침으로 콜록거리고 또 몇 명은 가을 햇살에 마지막 꿈을 풀어 구인란의 적당한 직종을 찾다 문득문득 몰래 잊고 온 사금파리에 발이 찔리고 오늘 우리에게 확실한 허기는 무어냐 자주자주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몇몇씩 미끄럼의 가을로 내려앉아 저마다의 구두코를 앞으로 모으면 반듯이 깔고 앉은 신문들의 큼직한 활자들은 더 자주 음흉한 곁눈을 힐끔거리고 �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은 유달리 바람에 민감했다. 취직을 걱정하며 쿡쿡 옆자리의 급우를 찌르기도 하고 소란을 떨다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 기쁜 젊은 날, 졸업을 앞두고 한 시간의 진도를 위하여 책을 펼치면 우리 모두 조용히 은행잎이 되어갔다. 취직을 걱정하며 야외수업을 마치며.
경상도 사투리
그래 우리 기쁘게 만날라치면 아이구 문둥이다 툭사발이 마마 곰보자국의 보리방구다 노름 숭년의 장리쌀 야반도주도 삼사 년 기별없다 돌아온 딸년도 취바리 곰배팔이 얼싸안으며 이 망할 것아 한 마디 툭 던지면 소나기 한마당 시원하게 약 되듯이 찬밥에 땀 흘리는 풋고추도 오뉴월 막장에 배부른 악담도 아이구 문둥아 문둥아 문둥아 달려오면은 보라 비 갠 두 척의 청정한 솔이파리 하나 맺힌 방울들을 썩 걷어치우는 것을 보라 우리가 저 산 같이 성큼 다가서 서로 문드러지도록 맞비빌 수 있다면 청보리면 어떠랴 문둥이면 어떠랴 해방둥이 김서방이 짐서방이 되어도 동란둥이 최서방이 치서방이 되어도 취바리 언청이 문둥이라도 좋을 우리말이여, 경상도 사투리여 그래 우리 기쁘게 만날라치면 아이구 문둥이다, 툭사발이 마마 곰보자국의 보리방구다.
■경상도 사투리/권애숙/안녕하십니꺼. 날씨가 억수로 좋네예. 방송국에 올끼라꼬 아침부터 서둘다가 보이 햇살이 너무 좋아가 고마 눈물이 다 날라카데예. 맨날 보고 싶다꼬 말만 해쌓던 칭구들 우째 사능가 오늘은 전화라도 함 해봐야 겠어예. '아이고, 문디 가시나 우째 사노? 오데 바다라도 가가 갯내에 함 적시보자' 함시로 호들갑을 떨어쌀랑가도 모르겠네예. 하하하 어떻습니까? 제가 요래 경상도 사투리로 시작을 해도 우리 청취자들께서는 이미 다 알아 들으셨겠지예? 성선경 시인은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둑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집으로 <널 뛰는 직녀에게> <옛 사랑을 읽다> <서른 살의 박봉씨>를 냈습니다. 현재 <文靑>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마산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질박하다.' '생활의 미세한 결에 대한 재현과 그것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성찰하는 남다른 벽癖이 담겨있다.'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경상도처럼 '문둥이'란 말이 자연스럽고 정겹게 들리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도 '문둥아', 이쁜 짓을 하는 아이를 보고도 '문둥아', 나 사랑해? 사랑해? 하고 다그치는 연인에게조차 '문둥아' 하면서 눈을 흘기지요. 이럴 때 쓰는 문둥이란 말속에는 적대감이나 거리감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상대에게 쓰는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선경 시인의 세 번 째 시집인 <서른 살의 박봉씨>에 실려 있는 시 '경상도 사투리'를 들여다보면 '문둥이, 툭사발이, 보리방구, 숭년, 짐서방, 치서방...' 같은 투박하지만 정겹기 그지없는 사투리들로 가득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기쁘게 만난 사람한테 문둥이다, 보리방구다, 하고 소리치는가 하면 노름 빚으로 흉년에 장리쌀까지 팔아 야반도주했던 사람이나 삼사 년 기별 없다 돌아온 딸년에게조차도 '이 망할 것아', 한 마디 툭 던지는 걸로 끝이 납니다. 산 같이 성큼 다가가 서로 문드러지도록 비비대며 던지는 이런 사투리는 오뉴월 소나기 한마당처럼 시원한 약이 됩니다. 이럴 때 김서방이 짐서방이 되어도 좋고 최서방이 치서방이 되어도 좋고 취바리, 곰배팔이, 언청이, 보리문둥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이거나 예의를 차려야할 만남에서는 주로 매끄럽고 단정한 표준어를 쓰다가도 정겨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개 허물없이 사투리를 쓰게 됩니다. 사투리 속에는 말로 나타내지 않은 부분의 정서까지 다 포함되어 있지요. 그래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이미 말속에 내포된 뜻을 다 알고 있기에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서로 깊은 오해로 갈등하던 사이라도 '문둥아', 한 마디 툭, 던지며 손을 잡는 걸로 서먹했던 감정은 사라지게 되고 더 두터운 관계를 확인하게 되지요. 이 시를 듣고 오늘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전화 한 번 넣어보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십중팔구 '아이고, 이 문둥아' 하는 것으로 그간의 공백이 사라지게 될 것 같은데요. 사투리를 언어학적 용어로는 '방언'이라고 하는데 방언이 생기는 까닭은 우선 지역적으로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지역의 차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문화적인 면도 고려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으로 된 문학은 민족의식에 뿌리를 내려 사실주의 문예사조를 타고 19세기 중엽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단테의 <신곡(神曲)>이나 프랑스 11세기의 서정시도 방언문학의 하나로서, 방언을 민족적 문화재로 생각하여 소멸되거나 망각되기 전에 문학에 담아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또는 민족의식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졌다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문학작품 속에 각 지역의 방언을 살려 놓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다양한 매체로 하여 지역 간의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거리가 많이 좁혀져 고유한 사투리 벽도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럴 때 시인의 사투리로 쓴 시는 뜻 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3. 5. 13. 화. cbs라디오 '시를 배달합니다'방송)
니가 흥부고 내가 놀부라도 그렇제
허참 나는 경상도 보리문딩인디 어느날 문득 원고청탁서를 받고 갑작스레 전라도를 노래하라 한께로 글쎄 뭐당가 떠오르는게 있어야제 가보지도 못하고 그립기만한 저 북한맨키로 아득한 것이 참말 내사 숭시러바서 씨불씨불 내욕 내가 함씨롱 곰곰히 담배 한 대 물고 생각해본께 정말 이래도 될 껜가 내가 놀부고 니가 흥부이거나 니가 놀부고 내가 흥부라도 그렇제 저 웃녘에서 볼라치면 다 남도 아랫것들 한 형젠대 이러쿠롬 무심하게 산대서야 어디 사람소리 듣고 살것나 허참.
-=-=-
낯익은 세계의 새로운 느낌
우리시의 현장_2005년 2월
신춘의 계절이다. 각 일간지마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발표하고 새로이 탄생한 시인들의 기쁜 당선 일성들이 지면마다 봄기운처럼 당차다. 이런 신춘의 계절에 읽는 시는 알지 못하는 어떤 기운을 받아 더 신선하게 읽히고 낯익은 풍경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시란 본래 새로운 깨달음이나 새로운 느낌의 표출이겠지만 특히 신춘의 시는 그 새로움이 봄기운처럼 날카롭다. 새봄 새 기운으로 우리 시단이 더욱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얘야 올해는 가뭄 때문에 포도넝쿨이 엉망이구나 아버지 팔뚝 위의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자아, 받아라 어서 이 불멸의 포도넝쿨을 이제 너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아버지 핏줄 한 가닥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굵은 당신의 팔뚝에서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한사코 내밀고 계신다 아버지의 핏줄을 받는다 나는 포도넝쿨처럼 지문이 얽키고 설킨 두 손바닥을 내밀어 아버지의 포도나무 묘목을 받는다 깊이, 구덩이를 파고 아버지의 핏줄을 포도밭에 옮겨 심는다 넝쿨마다 아버지의 심장이 주렁주렁 달리는 포도나무 가지마다 넓적한 아버지의 손바닥 이파리가 돋아나는 포도나무를 옮겨 심는다 아버지의 포도를 딴다 나는 상자마다 크고 검붉은 아버지의 포도를 따서 담는다 상자마다 가득가득 아버지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담아 트럭에 싣고 시장에 내다 판다 얘야 내 포도를 네가 먹으니 즐겁구나 내 포도를 팔아 새 옷을 사 입으니 보기 좋구나 아버지 껍질눈이 나를 바라보며 웃으신다 알맹이 발라먹고 뱉은, 아버지 껍질눈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신다 생전의 할아버지 깊디깊은 눈 속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어린 것들이 달라붙어 포도를 먹는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할아버지 포도를 먹어치운다 알맹이만 발라먹고 뱉어버린 아버지 껍질눈이 여전히 웃고 계신다. ― 유홍준, <포도나무 아버지>([시로 여는 세상], 2004년 겨울호)
시적화자는 지금 나와 나의 이야기를 토로하고 있다. 포도나무 묘목을 받는 것이 핏줄을 받는 것이며 핏줄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는 것임을 새롭게 깨닫는다. 포도나무의 묘목을 받는 것의 연상 작용으로 우리들의 핏줄이, 업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연상하게 한다.
포도나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낯익은 사물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잇는 통로로 인식되면서 이것은 아주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된다. 포도나무의 넝쿨은 아버지의 핏줄이며, 포도나무 잎은 아버지의 넓은 손바닥이며, 포도송이는 아버지의 심장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묘목을 받아 옮겨 심듯이 핏줄을 이어왔으며, 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벌렁거리는 심장을 파먹고 살아왔으며, 심장을 내어준 아버지는 껍질눈으로 웃으며 기뻐하신다.
우리 모두는 넓은 잎을 피우고 넝쿨을 키우는 것이 검붉은 심장이 열리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이 심장을 자식들에게 내주기 위해서 키운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껍질눈으로 웃으며 내주기 위해서 키운 것이다. 이 불멸의 포도넝쿨은 얼마나 위대하냐. 너와 나의 저 팔뚝에서 팔뚝으로 노동과 노역의 역사로 굵어진 포도넝쿨들.
살갗 밑으로 푸른 뿌리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팔뚝에서 손등으로, 목에서 이마로 가지 치며 뻗어가고 있습니다. 거죽 밖으로 나오려는 굵은 뿌리를 살가죽이 간신히 누르며 덮은 곳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눈알도 붉은 잔뿌리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살도 오래된 땅이라는 듯 비바람에 패이고 그 주름고랑으로 땀 흘러내리고 그 위로 들풀 같은 털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물컹물컹한 살은 안에 감추고 거죽은 황야처럼 한껏 질겨지고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았다가 밀어내는 흙길처럼 손바닥 닿은 자리에 두툼한 주름살이 만져집니다. 쭈글쭈글하다는 건 살가죽과 속살 사이에 팽팽하던 공기가 빠지고 그 자리에 허공이 가득 들었다는 것이겠지요.
― 김기택. <오래된 땅>([현대문학], 2005년 1월호)
관찰과 사색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한다. 늘 대하는 우리의 살갗과 핏줄과 털에서 저 거칠어진 황야의 기억까지 재생해내고 있다. 우리의 거칠어진 살가죽에서 팍팍한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푸른 뿌리들을 아우르고 다독거리는 살은 오래된 땅이란다. 땅도 아주 오래된 땅이란다. 오래된 땅은 오랜 시간을 지내오며 많은 기억과 지혜들로 현명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거저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가려는 뿌리들을 다독거리며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물컹물컹한 것들을 안으로 보듬어 감추고 자신은 황야처럼 거칠어지며.
땅과 살, 뿌리와 핏줄이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연상 작용에 의해 오래된 땅과 오래된 육체, 늙은 땅과 늙은 육체의 대비로 치환되어 마치 지구라는 땅이 살아 숨쉬는 존재로서 생각하고 연민하는 중년의 한 사내를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는 살가죽과 속살 사이의 팽팽하던 공기가 빠지고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았다가 부드럽게 밀어낼 줄 아는 저 무심의 흙처럼 지혜로워진 사람. 땅.
마을 골목에 채소 트럭이 들어왔다 청도산 김장 무우에 물씬한 청도산 사투리
청무우에 흙이 묻어 있고 수염뿌리 몇이 끊어져 나갔다 무우가 뽑힐 때 땅이 저항한 흔적이다
품고 있던 무우를 순순히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어느 순간 땅은 무우를 속시원하게 내주었을 것이다
옛다, 이만 하면 됐다 무우를 품은 마음을 한사코 무우를 뽑으려 드는 마음에게로 건네주었을 것이다
해종일 맨발로 밭을 일구다 온 아낙 흙 묻은 무우 통통한 다리를 씻는다
― 손택수, <청도산 무우>([작가], 2004년 겨울호)
왜 <청도산 무>가 아니고 <청도산 무우>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무우와 무. 한 음절로 표현했을 때와 두 음절로 표현했을 때의 그 느낌이 엄청 다르다. 그래서 나는 무를 길러낸 땅이 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했던 흔적이 무우다 라고 생각했다. 무를 품은 마음이 그를 품은 마음이 저항한 흔적이 무우라야 끈끈이 묻어나리라 생각했다. 청무우에 묻어 있는 흙처럼 무우라야 건네주기 어려운 마음을 건네준 마음자락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청도산 사투리를 품은 청도산 무우라서 더욱 그랬다.
이런 깊은 사색과 관찰이라야 수염뿌리 몇이 끊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무우를 품었던 땅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한 흔적임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죽기 살기로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옛다, 이만하면 됐다”라고 물러설 수 있는 흙의 마음에서 아쉬움과 여유를 읽어내는 품이 그렇다.
해종일 맨발로 밭을 일구다 온 아낙과 무우는 다함께 청도산 사투리와 청도산 정서가 버물어진 고향 흙의 정서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왔다. 흙이 나를 키웠고 흙이 무우를 키웠다. 그래서 시골 아낙의 흙 묻은 다리에서 사람도 흙에서 왔음을 읽어낸다. 무우와 다리, 싱싱한 무 다리. 그 싱싱한 흙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1. 마징가Z
기운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이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현대시], 2005년 1월호 부분)
권혁웅이 보여주는 세계는 다분히 통속적이다. 힘만 센 무식한 남성의 폭력과 이로 인한 가정파괴는 새로운 것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통속적으로 반복되어 이 사회의 어디선가 반복 재생산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보여주는 시적화자의 관점과 진술은 다분히 새롭다.
계란과 계란으로 이어지는“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그가 옆집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이 틀림이 없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라는 서사적 진술뿐만 아니라 폭력적 남성의 몰락을 유년시절에 보았을 만화영화 주인공 로봇으로 치환하여 희화화하는 능청스러움에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사건을 지난 시절의 다큐멘터리처럼 “그래, 그랬지” 하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술 마시고 때리는 남자와 계란으로 멍을 지우는 여자, 반복과 습관, 가학성과 피학성 대립 상존하는 이것이 만화를 통한 사회적 상상력이든 사회적 사실의 만화적 희화화든 우리에게 통속적 세계를 비통속적 세계로 인도하며 답답한 현실을 느슨하게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시각이다. 그리고 부분 부분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풀어 넣어 패러디한 품새가 즐겁다. 낯익은 세계도 새롭게 느껴지는 신춘. 새로운 시를 읽는 일이 즐겁다.
* 서른 살의 박봉씨 - 시인 박봉 씨의 여행길
1. 보리 한 톨 바둑판을 메워 가는 흰 돌과 검은 돌의 비유를 통해 통일에 관한 염원을 노래한 <바둑론>(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으로 등단한 성선경이, [널뛰는 직녀에게]와 [옛사랑을 읽다]에 이어 [서른 살의 박봉 씨]를 내놓았다. 이번 시집에서는 박봉 씨의 생애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치하고 있다. 시집은 5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농촌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이, 2부와 3부는 도시에서의 삶의 모습이, 4부와 5부에서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희망이 드러나 있다.
박봉 씨가 유년을 보낸 농촌에는 오래된 흑백사진 같은 풍경들과 하회탈 같은 표정의 농투성이들이 있다. 그 곳에는 “푸른 나라 푸른 들의 마을 어귀 새마을회관/흑백 테레비 앞으로”(<새마을 회관의 흑백 테레비>) 모여들곤 하는 여름밤 풍경과 “열렬히 박수나 쳐주다 푸른 새마을 녹색모자를/힘껏 움켜쥐고 하루가 다 저물도록 공을 차는”(<새농민 체육대회>)체육대회 풍경과 “대처로 떠났던 그리운 이웃들이/머쓱머쓱한 얼굴로 돌아들 오는”(<歲暮>) 세모의 풍경들이 자리한다. 또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육남매 맏이가 되어/씨래기 된장국으로 땀흘리다 이제는/훌쩍 자라 열일곱 시범농고 장학생”(<시범 농고생 조카>)이 된 고등학생과 “십이월을 며칠 남겨두고 화장끼 짙은 부츠를 신고 돌아”오는 처녀들과 “싸전을 지나 변두리 다방의 레지를 찾는” 청년들과 “잔기침과 깍두기 몇 낱으로 모이는”(<새마을의 크리스마스>) 노인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성선경이 보여주는 농촌의 풍경은 “투박이 맹문이 지지리도 못한 놈끼리/얼굴을 맞대고 모여서 한 세상”(<공화국 만세>)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성선경이 그려내는 농촌의 모습은 신경림의 [농무]에 등장하는 농촌의 모습과 겹치게 된다. 농촌의 모습을 그려낸 대부분의 시가 신경림의 영향을 받은 데 비해, 자신의 체험을 작품화한 <보리개떡을 먹으며>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라타너스의 마른 버짐을 보며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선생님은 분식을 해야 한다고 흑판을 탕탕 치시며 강조하셨지만 운동장 저쪽의 미루나무 잎사귀들은 넋을 놓고 졸고 있었다 4교시를 마치면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반 동무들은 도시락을 풀고 제각기의 젓가락 소리를 내며 자주 밥알들을 튕겨내지만 풀기 없는 나는 언제나 보리개떡이었다
― <보리개떡을 먹으며> 부분
화자는 배고팠던 유년의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리개떡’은 쌀이 귀한 시절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이다. 화자는 어린 시절 반 동무들이 도시락을 먹을 때 보리개떡으로 연명하던 그 아픈 기억을 “갈 곳 없는 점심시간이 너무 길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유년의 기억은 흔히 음식과 관련되는데, <수박을 먹으며>, <배추쌈>, <비빔밥을 먹으며>와 같이 성선경의 시에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성선경의 시에서 음식은 단순히 유년의 가난을 환기하는 대상을 넘어 화자의 근원을 탐색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 경상도 토박이다가 깊이깊이 뿌리내려서 누대에 걸친 가난이다가 보리꽃 피는 왕산들에서는 고봉밥 한 그릇 다 비우고 질경이 명아주 강아지풀 해거름 밟아오는 보리방구이다가 세에노야 세에노야 행랑채 머슴방에선 장기판의 졸이다가 팔쭉이다가, 낮게낮게 흘러서 또 어디로 떠날 봇물이다가 이 땅의 척박한 어디에선가 살아 썩어져 이 한 몸 썩어져 시퍼렇게 눈을 뜰 보리 한 톨.
― <보리 한 톨> 전문
“경상도 토박이”, “질경이”, “명아주”, “강아지풀”, “보리방구”, “행랑채 머슴방”, “장기판의 졸” 등의 단어는 농촌의 풍경들과 연결된다. 그런데 그 농촌의 모습은 활기차고 풍족한 모습이 아니라 “누대에 걸친 가난”으로 인해 퇴락하고 궁핍한 모습을 띤다. 그러기에 화자는 고향에 뿌리박지 못하고 “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보리개떡을 먹고 자란 화자가 자신을 “보리 한 톨”에 비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제 고향 땅에 뿌리박지 못한 ‘보리 한 톨’은 척박한 다른 땅으로 흘러가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2. 지상의 방 한 칸 보리개떡으로 허기를 채우던 경상도 토박이는 이제 농촌을 떠나 봇물처럼 흘러 도시에 이른다. 농촌을 떠나 도시에 이른 그가 이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도시에서의 삶이다. 그의 이름이 ‘박봉’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이제 월급쟁이가 되어 도시 변두리에서 살아간다. 그는 봉급날이 가까이 올 즈음 빈 지갑 때문에 누구를 만나는 것조차 괴롭고, 정작 월급날에는 “한 푼도 어김없이/봉투를 내밀고 저녁을 먹고/나는 슬프다”며 허망해 한다. 그래서 때로는 막걸리를 마시며 “희망가나 부르며 눈물겨워”(<서른 살의 박봉 씨-요즈음, 막걸리를 마시면>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히는 것은 척박한 도시에서 뿌리내리는 것이 녹녹치 않다는 사실이다. <서른 살의 박봉 씨> 연작은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나의 마땅한 거처는 없었다. 저 달팽이같이 무겁게 짊어지고 가야 할 없어서 더욱 무거운 나의 집
― <달팽이의 집> 부분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집 한 칸 없이 달팽이같이 떠돌아다니며 돈 안 되는 시 나부랭이나 끄적거리는 나에게 아내는 늘 적자투성이인 낡은 가계부를 코밑에다 들이밀고
― <虛生> 부분
앞의 시는 이사철을 맞아 집을 찾아 떠도는 도시 변두리 삶의 비애를, 뒤의 시는 [허생전』의 許生과 자신을 겹쳐가면서 가난한 시인의 비애를 드러내고 있다. 두 시는 모두 ‘달팽이’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는 지상의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고통받는 가장의 무게와 정착하지 못하는 서글픔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우리 모두 도시에서 방이 없는 사람이 겪는 내몰림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때로 박봉 씨는 “길 없는 우리네 청춘도 바겐세일/앞 없는 우리네 내일도 할인 판매”(<싸구려를 위하여>)라며 한탄의 어조로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3. 절망과 탈속 사이에서 도시의 길 위에서 박봉 씨는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하여” 고단한 삶을 견뎌왔다. 그러나 농촌에서 도시로 떠난 여행길이 고단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 시인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빈집처럼 천천히 무너지는데/해 져도 달뜨지 않는 그믐처럼 점점이 어두워지는데”(<늘 기다리는 향교 고갯길>), “정말 아득하구나 내 사랑/내 길이여”(손바닥에 쓴 시)라며 암울한 목소리를 낸다.
내 육신은 무슨 쇠로 만들었기에 밟히고 닳음이 이다지도 대단하냐 오뉴월 하루, 땀에 젖은 일과를 벗고 아직도 더운 석양 무렵의 땅바닥에 몸을 누이면 아아 어디쯤에서 우리가 닿아야 할 빛나는 마을의 어귀가 보일까 또 아침이 밝으면 어제의 편지를 털고 깨끗이 빛나는 얼굴로 광택도 내어보지만 율도국으로 떠난 길동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크고 작은 돌멩이들은 이 산 저 들에서 여전히 길을 막고 신기료를 찾아서 낡은 뒷굽을 갈아도 보지만 위 덩더듕셩 태평성대 다같이 평등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 산에 철쭉이 피어도 때맞춰 구절초가 져도 날이 새면 내가 가야할 길은 끝없는 구절 양장
― <서른 살의 박봉 씨―삶 구두 한 켤레> 전문
닿아야 할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길만 펼쳐져 있을 때, 길 떠난 사람은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박봉 씨의 절망은 단지 고단한 도시에서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고단한 일상의 삶과 함께 박봉 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빛나는” 희망을 잃어버린 사실이다. “율도국으로 떠난 길동이는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길을 막는” 돌멩이들은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더 이상 지탱시켜주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다 같이 평등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라는 절망적인 선언을 하게 된다. 다같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소망의 좌절 때문에 더욱더 절망하게 된다. 이렇듯 여행자가 도시에서의 탐색에 절망하게 될 때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피폐한 도시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여행을 포기할 때 시인은 탈속의 공간으로 투항한다. <別曲靑山> 연작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시로 보인다. 돌, 산, 새, 밤, 술, 사슴 등을 화두로 삼아 자신을 고통으로 밀어 넣었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바위 속으로 들어가 한 천 년/생각만 하는”(생각하는 사람) 달관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꽃이 나비인 줄만 알았었는데 꽃도 새가 되는 일이 있을 줄이야 날개를 접고 볏을 세운 극락조 새도 극락에 닿으면 꽃이 된다는 걸까 꽃이 극락에 닿으면 새가 된다는 걸까 깨달은 자들은 영영 말문을 열지 않는다는데 나는 어디서 이런 理法을 구해야 하나 담뱃불로 연비하던 시절처럼 깜깜한 내 이마를 쪼으는 날카로운 부리여 새가 꽃이 되듯이 나도 언제 울음을 멈추고 꽃이 될 수 없을까 나도 언제쯤 극락에 닿아 날개를 접고 꽃이 될 수 없을까
― <극락조에 관하여> 전문
극락은 곳곳에 연꽃이 피어있고 극락조가 노래하며 모든 번뇌와 고통이 없는 불교의 이상향을 말한다. 꽃이 새가 되고 새가 꽃이 되는 그곳은 이미 인간의 번뇌를 벗어난 장소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울음을 멈추고/나도 언제쯤 극락에 닿아/날개를 접고 꽃이 될 수 없을까”라고 말한다. 이 시에 이르면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전전하던 화자는 “무심하게/더 무심하게”(<들개를 키우다>) 마음을 비우는 탈속의 경지에 이르기를 희구한다.
성선경은 이렇듯 절망과 탈속 사이에 서 있는 듯하다. 그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나갈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가 “울음을 멈추고 날개를 접고 꽃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道人의 길’이지 ‘詩人의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비록 아득한 절망의 “구절양장”일지라도, 세속의 길 위에서 쉼 없이 걸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눈길과 발길 닿은 모습들에 대해 우리에게 들려주길 바란다.
(서재원) 월간 현대시 2003년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