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외 / 박경리

2008. 8. 6. 23:39詩.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환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옛날의 그 집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문필가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 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바다 울음


바다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어떤 사람은
울음이 아니요
샛바람 소리라 했지만
나는 지금도 바다울음으로 기억한다

수평선에 해 떨어지고
으실으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물을 치고
울부짖었다

 

 

 

 

 

 

 

 

새벽
 
 
커튼 걷고 밖을 내다본다.
하늘아래 아파트가 하얗게 떠 있고
조박지 같은 공간의 나무들
밤비에 젖는다.

새벽 4시 반
산책하는 사람들 아직은 없다.
우주에서 돌고 있는 지구
自轉의 소리만 들려오는 것 같다.
하얀 아파트
그것들이 안개꽃이면 좋겠다.

 

  

土地

 

 

어떤 사람이

<토지>를

초라하다 했다

 

맞는 말씀이다

 

<토지>는

매우 화려하지만

작가가 초라했다

 

삼지사방

휴매니즘이란 것을

구걸해 보았으나

참으로 귀한 것이어서

좀체 얻을 수 없었다

 

역시 <토지>는 초라했다

 

 

 

 

 

 

 

 

 

 

국토개발

 

 

황하를 다스리는 사람이

천자가 되었던 요순시대

 

지금은 국토개발

그린벨트 해제가

선거공약이 되는 시대

 

산은 허물어지고

강은 썩어가고

땅은 메말라 죽어가는데

사람들 마음은 무쇠가 되어

개발 유치를 외치고 있다

 

 

 

 

 

 

 

 

 

 

풍경 2

 

 

하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조각보 같은 푸른 하늘

은빛 비행기

소리 없이 지나가네

 

하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조각보 같은 구름

먼 훗날같이 떠 있네

 

물기 잃은 잔디밭

마로니에는 조금 흔들리고

빨간 옷 입은 아이

뒷짐지고 서 있네

 

아파트의 숲

자꾸자꾸 고개를 젖혀야

보이는 꼭대기

창구마다 고달픈 인생 걸려 있네

 

 

 

 

 

 

 

 

 

신산에 젖은 너이들 자유

 

 

내 집 뜰은

언제나 풍성하다

나무열매

풀들의 씨앗

온갖 벌레

지렁이는 지천으로 있다

 

새야

한철이나마

배부르게 먹고

겁 없이 놀다 가려무나

농약 없이 가꾼 땅

너이들 위해

얼마나 다행이냐

 

내 친구 과객들아

신산에 젖은 너이들 자유

나의 자유도 혈흔의 자국

뼈저리는 외로움이었다

허나 끝내 버리지 않으리라

구만리장천

날으는 너이들처럼

 

 

 

 

 

 

 

 

 

 

낙원을 꿈꾸며

 

 

전기세 수돗세 전화세

무슨 무슨 세금 쪽지

우편함에서 꺼낼 때마다

겁난다

독촉장은

더욱 가슴 내려 앉게 한다

 

땅문서 집문서 계약서

싫다

호적등본 주민등록증

열쇠꾸러미

아아 싫다 싫어

 

기억하라! 잊지 말라! 챙겨라!

의식을 죄는 그런 것들

자신을 경멸하는 것 변명하는 것

남을 의심하는 것 소외되는 것

만발하는 서류

피가 통하지 않는 것

언제인가는

서류에 지구가 묻혀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다

 

출입금지 구역

관공서 큰 건물

지나칠 때마다

겁난다

총대 들고 지키는 것 보면

더욱 겁난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경계의 팻말

삼팔선 국경 세계지도

구획되고 표시된 것

보면 섬�하다

 

갈 수 없는 곳

금지된 구역

텃세 부리는 곳

자기들만 꽁꽁 뭉치는 곳

이단에 이민족

쌈질하고

뺏고 빼앗기고

 

상전도 하인도 되기 싫은데

남 업신여기고 빌붙는 것도 싫은데

결국

외로움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선 한치의 땅

 

 

 

 

 

 

 

 

 

 

기다림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으게 하고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Old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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