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향로

2008. 10. 8. 10:20책 · 펌글 · 자료/ 인물

 

 

▲청동박산향로

 

 

백제금동대향로 - 박산향로(博山香爐)란 ?
中전국시대 말 첫 등장…뚜껑에 신선의 산 새겨

 

 

향로(香爐)란 말 그대로 향을 피우는 그릇(도구)이다.

고대에 이란이나 인도, 중국 등지에서 널리 사용된 향로는 보통 신이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혹은 냄새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중국에서는 훈로(薰爐) 또는 유로(鍮爐)라고도 부른다.

향로는 중국 전국시대 말에서 한나라 초인 기원전 3세기 때부터 만들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박산향로로 부르게 된 것은 남북조 시대인 6세기쯤부터이다.

중국 전한 무제 때부터 왕족의 무덤 중심으로 출토된 박산향로는 중국에서 한나라와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박산(博山)은 중국 동쪽에 불로장생의 신선과 상서로운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의 이상향으로,

박산향로는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향로를 말한다.

박산향로는 뚜껑에 산악도가 새겨져 있거나 뚜껑 자체가 산악형태를 이룬다.

여기에 하나의 버팀대 위에 층층이 산을 쌓아 올리고 봉우리에 전설 속의 동물과 신선 등이 표현되며

봉우리 사이에는 향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뚤려져 있는 형태의 특징을 갖는다.

중국의 박산향로 중 한나라 때 만들어진 향로에는 산악도가 그려져 있다.

중첩된 산들과 그 곳에서 뛰노는 동물들과 인간들을 비롯 향로 본체가 꽃봉오리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산악도 위에 신조(神鳥)가 장식된 것에 이르기까지 박산향로의 이러한 특징은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향로가 처음 출토됐을 때 많은 학자들이 향로가 중국의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전체 높이 62.5㎝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향로가 발견된 예는 없었다.

여기에 5악사와 기러기 등 중국의 박산향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식이 도입됐으며,

조형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세부 표현에 생동감이 넘친다.

고려시대에도 박산향로를 찾아볼 수 있다.

개성 부근의 고려 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백자향로는 12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자향로의 형태는 중국 한나라 때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속의 산인 박산을 형상화 한 박산향로를 단순화·양식화시킨 것.

백자향로와 같이 둥근 형태을 이룬 몸체에 뚜껑의 윗면에 구멍을 내는 양식은, 송나라 때 백자 향로 중에 더러 보이고 있다.
<김효숙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백제금동대향로 - (5) 향로속 담긴 ‘숫자 5’

백제 행정기구 5부(部)5방(方)…평등하고 글로벌한 세계 표현

 

 

▲<향로뚜껑 펼쳐진 모습>

①-⑤:5명의 선인으로 구성된 주악상은 거문고, 배소, 적류, 완함, 북으로 이루 어져 있다.

/ ⑥-⑩:봉황 바로 아래에 5마리의 기러기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산봉우리에 앉아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5명의 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5개의 봉우리 등으로 구성됨으로써

백제 고유의 5부 체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향이 피워오르는 구멍이 앞·뒤로 각각 5개씩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고,

5개의 음(音)을 안다는 봉황에 이르기까지

향로 속 주요 조형물들은 숫자 ‘5’와 많은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5부 체제는 백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세계관이었다.



▲백제의 5부 체제

고대국가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성수체계를 갖고 있어 각종 상징물의 조형원리 등으로 삼았다.

백제의 경우 행정기구였던 5부(部)와 5방(方), 대표하는 조형물인 정림사지 5층석탑 등으로 볼 때 성수 ‘5’의 체계에 든다.

5부 체제는 5부족의 초기형태라고 볼 수 있다.

5부족은 부족들의 대표가 모여 국사를 결정하는 회의제 성격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제가회의, 신라의 화백회의이다.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 왕을 중심으로 행정기구의 성격이 강화된 남당제도(南堂制度)가 실시됐다.

이는 각 부족의 대표들이 모여 대소사를 논의하던 전통이 기반이 돼 발전된 것.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중심으로 한 5부체체의 상징물들은 고대 정치의 이상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백성을 상징하는 기러기

‘9월에 기러기 100여마리가 날아들었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기러기는 백성의 상징이니 장차 먼 곳의 백성이 귀의해 올 것입니다.”고 하였다.

과연 10월에 남옥저의 구안해 등 20여 가문이 부양에 이르러 귀의하니, 왕이 이를 받아들여 한산 서쪽에 거주하게 하였다.’

‘백제본기’의 온조왕 43년조에는 백성의 상징이 기러기임을 실제로 말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남하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의 삶에 덧대여 말한 것.

백제금동대향로 속에는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핀 모습, 날개를 완전히 접은 모습, 등

모두 다른 자세로 조형돼 있는 기러기는 5악사의 연주에 맞춰 춤이라도 추듯 가무상으로 그려진다.

백제금동대향로 속의 5마리의 기러기들도 백제인, 즉 백성을 나타내고 있다.



▲백제 귀족을 상징하는 5악사

왕을 상징하는 봉황 그리고 백성을 상장하는 기러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5악사 모두 5부체체를 표방하는

하나의 상징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외형상 악기 연주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5부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5부 귀족 또는 5부족을 상징할 가능성이 큰 것.

5악사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내려뜨리는 독특한 머리장식, 산악도 속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옷을 갖춰입고 있는 모습 등은

이들이 귀족임을 대변해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등의 상징체계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음악과 정치의 상관관계이다.

고대에는 제천의식이나 왕의 행차에는 물론 전쟁이나 수렵활동을 할 때에도 음악을 연주했다.

이는 ‘소리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고대 정치의 이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가 5부체제를 봉황과 5악사, 기러기의 가무형태로 표현한 것은

백제인들의 정치적인 이상이 하늘의 질서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신을 맞아 함께 제례를 지내며 가무를 하는 동안 왕과 신 그리고 귀족과 백성들 모두 하나가 된다.

즉 백제금동대향로는 하늘을 향해 피우는 향훈(香薰)속에서 신과 인간, 왕과 백성, 귀족과 평민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1400년전 백제시대는 국제성과 평등성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세계였다.
<김효숙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백제금동대향로 - 5악사 서역 악기 의미

대백제가 동북아 교류문화 중심 증거

 

 

백제금동대향로의 5악사는 대향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5악사와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백제가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서서 교류문화를 이끌어 나갔다는 증거가 되며,

우리 고대 음악 연구에 커다란 줄기가 되기도 한다.

5악사가 들고 있는 악기의 명칭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향로 왼쪽에서 부터 소(배소), 피리(퉁소), 완함(비파), 북, 현금(거문고) 순으로 이어진다.

다섯 가지 악기 중 거문고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는 외국에서 전해진 악기로 불린다.

대향로의 5악사는 감미로운 표정을 지은 채 현악기와 타악기 등 조화롭게 꾸며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대향로 뚜껑에 장식된 5악사에 관해서는 백제의 5부체제를 상징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며

악기는 백제의 문화수용적인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소(배소)=대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묶은 배소(排簫)는 북방유목민들의 관악기로,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난다.

배소는 중국 춘추시대의 시경(時經)에 ‘소관’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악기는 북방민족이 주로 활동하던 한대와 남북조 시대에 널리 사용됐다가 그들의 퇴조와 함께 쓰임새가 급격히 줄어

이는 사실상 북방민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고유악기였음을 말해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배소는 사다리꼴로 대략 10관에 길이는 1척(尺)정도로 보고 있다.

▲피리(적류)=피리는 서역의 구자(현 쿠차)에서 기원한 관악기이며, 가는 대나무로 엮어 만들었다.

서양의 팬프루트와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대향로 속 악사는 피리보다 관이 길고 겹 리드의 흔적이 없는 적류(笛類)의 악기를 불고 있다.

적류는 흔히 옆으로 부는 횡적(흔히 대금 또는 젓대)과 앞으로 부는 종적으로 나뉘는데 백제금동대향로의 악기는 종적에 해당된다.

▲완함(阮咸)=백제금동대향로의 정수인 봉황. 그 바로 아래에는 악사가 감미로운 표정으로 완함을 연주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완함이 5악기의 중심악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비파 계열의 현악기인 완함은 원래 말 위에서 다루는 서역악기.

중국 한대까지는 비파로 불리다가 진(晉)나라 때 완함이란 사람이 잘 연주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완함은 보통 4현을 갖고 있는데 백제금동대향로의 것은 3현만 표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완함의 오른쪽에 있는 북은 항아리 모양의 토기에 가죽을 씌웠다.

악사는 무릎에 북을 올려놓고 왼손으로 고정시킨 뒤 오른손으로 북채를 쥐고 내려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북은 중국이나 고구려 유물에서는 아직 발견된 예가 없어 주목을 끄는데,

그 원형을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의 보르보두르 대탑)에서 찾아 볼 수 있어 거기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동남아와 여러 가지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것은 십분 가능하다.

▲현금=거문고라고도 불리는 현금은 중국 진(晉)나라 사람이 고구려에 보낸온 7현금을 왕산악이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악기이다.

대향로 속 악사는 왼손을 3현으로 표현된 거문고 줄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당시 거문고의 잔해가 발견, 이미 무령왕 때에 백제인들이 고구려의 거문고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제시되기도 했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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