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벚꽃

2008. 4. 17. 12:32산행기 & 국내여행

 
 

 

 어제 잠깐,
 후다닥 마이산 댕겨왔당~^^
 
 
 
  
 
 멀쩡히 좋던 날씨가 갑자기 왜 이런다냐?
 
"눈이올라나 / 비가 올라나 /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 해당화는 왜 피며 /
모춘 삼월이 아니라며는 / 두견새는 왜 우나"

 
 
 
  
 
  
흐메~ 눈 날린다 눈 날려~..
 
 
 
 
  
 
 
 
   쪽갈비보다는 좀 큰데 맛은 그게 그거더군.
별루란 얘기지 머.  어쨌든 요기는 해결했으니...
 
 
 
 
   
 
 
 
내가 여길 와 본게...그러니까... 10년? 15년?
그땐 주차장이 바로 여기였어.
당연히 입장료 같은 것도 없었지.
 
 
 
 
 
 
 
 
 시간이 좀 있었으면 암마이봉 정도는 올라갔다 오는 건데..
   
 
 
 
  
능소화가 뭐시여? 덩굴로 타고 올라가는 겨?
그럼 나팔꽃 같은 겨?

 

 

 

 
 
 
 마이산이 '馬耳山'이여?
'my 산' 아녔어?
 
 
 
 
  
 아니 저런 돌덩인 어떤 놈이 갖다논 겨?  
밑에서 바라보면  산 봉우리와 절과 탑과의 어울림이 참으로 절묘한데,
그러기에 이갑룡 처사가 보통분이 아니로구나, 하는 건데, 
 어이구-, 무식한 놈 하나가- 이렇게 -,,!!! 
 
 
 
 
  
 
에이~ 통과! 통과! 여기 분위기가 원래 이려.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
.

높이 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

접착제를 쓴것도 아니고,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년의 풍상속에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덕 없이 견고하게버티고 서있는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보기드문 불가사의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신비로운 얘기는 1백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 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

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한 탑이다.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석탑들이 1백여년의 풍상을 하나같이 지켜오고 있는것은

정녕 부처님만이  아실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이 불가사의에 더하여 마이산탑사에는 또하나의 신비가 있다. 바로 역고드름이다.

 겨울에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에서 고드름이 뻗쳐 오른다.

 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릇속에는 이처사가 쓴 신서가 박힌다.

이 신서는 이처사가 신의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형태도 있으며 30여권의 책에 전해 내려온다.

 사적비에는 언젠가 이 글을 해독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없다.  


마이산 탑사아래로 500m 지점에 위치한 관광지가 있으니 이것이   탑영제 벗꽃길이다.

이곳엔 봄마다 저수지를 따라 벗꽃길이 펼쳐지는데, 본래 관광풍치 조성을 위해 축조 되었다.

이곳에도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태조가 백일기도를 드린 후 영험을 받았다고 한다.   
탑영제에서 탑사를 올려다보면 산에 가리워져 탑은 보이지 않지만 암마이봉과

나도산 봉두굴이 유연한 자태로 탑영제 수면을 비추고 있다.

이곳은 큰 가뭄이 들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방생의 최적지로 꼽힌다.  


현재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명스님은 바로 이갑룡 처사님의 3대손이다.

혜명스님위로 2대손인 도생 처사님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지금은 혜명스님과 4대손인 진성스님이 함께 마이산 탑사를 지키고 있다. 

 

 


 

 
 
 참말로 희한혀~... 그쟈?
저걸 어티게 혼자 쌓느냔말여~...
 
 
 
  
 
 
 
 
 아무리 무감각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오면  靈氣(영기)라고나 할까?
뭔가 신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단 걸 느낄 수 있는데,  바꿔 말하면 "기도빨이 팍팍 받는 곳이겠구나!"
 
그런데 어째  절이 꾀죄죄한 게 부티가 안 나냔 말이다?
 
 
 
 
 
 
 얼핏 보니 여기가 조계종으로 돼있던데
동학이나 증산교 계통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가난한 이유라면  그런 걸거야.
 
 
 
 
 
 
 
아휴, 이런 조잡함이라니-.
 
중국엘 가면 저 포대화상 조각상이 많다.
특히 옥 광산이 있는 지역에 가면 옥으로 깎아 만든......
先天5千年이 석가모니의 시대였다면 , 後天5千年은 이 포대화상의 시대라고 하는데,
소위 증산교에서 얘기하는 그 "후천개벽",
 

 

 

一鉢千家飯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  고고히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라

問路白雲頭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과碍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편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기와의 금색은 당연히 진짜 금박이 아니지. 
저건 중국 무술영화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지은 절 가터.
 
 
 
 
 
 
 
 
 덕유산 자락이 해발이 높다.
그래서 이 곳 진안의 벚꽃 개화시기도 늦다.
어쩌면 남한에서 가장 늦게 피는 곳이 아닐런지.
  
 
  
 
 통과.
 
   
 
  
 
  
 
 
   
 금년엔 어떻게 어영부영하다보니 벚꽃 구경 한번 못하고 말았는데, 어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곳을 내게 뵈줄려고 만개할 때를 여태 벨렀었단다.
 
"친구야 고맙데이~~~~!!!!"
 
 
 
 
 
      
     
    마이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은 분은

    아래 블로그로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충실하게 잘 썼습니다. 

    [출처] ◇ 진안 마이산 금당사 ◇|작성자 덕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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