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14. 20:58ㆍ산행기 & 국내여행
대나무골 테마공원
나는 이런 곳이 있는줄은 몰랐구먼.
두 해 전인가 세 해 전인가 친구와 담양 갔을때 죽녹원을 들렸다잖았수.
그 때 죽녹원도 괜찮았는데, 이번에 여기 테마공원을 보니 그 보다 훨 났습디다.
혹 갈 기회가 닿거든 죽녹원 가지 말고 여기로 가시구랴.
제1, 제2, 하면서 대나무 숲이 조성돼 있는데,
난 시간이 없어서 큰 길만 따라서 한바퀴 돌구 말았수. 그래도 30분 걸립디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얘기하면서, 먹으면서, 마시면서, 찍으면서 걸으면, 한나절 꺼리 잘 되겠습디다.
대나무는 저렇게 빽빽하게 심어도 잘 크네벼. 솎아내질 않더라구. 음지 식물이라서 그런가?
이 날 오전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웬걸 날씨 엄청 좋더만.
난 여행福은 타고 난 사람이여.
위로 올라가면 소나무 숲이 있습디다.
바닥이 황토라나? 맨발로 걸으면 좋대나 어쨌대나.
나무가 크진 않지만 그냥 그런대로 걸을만 합디다.
눈 맞는 대밭에서
-황지우
단식 7일째
도량 뒤편 눈 맞는 대밭에
어이없이 한동안 서 있다
창자 같은 갱도를 뚫고
난 지금 박장을 막 관통한 것이다
눈 맞는 대밭은 딴 세상이 이 세상 같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댓가지 우에
다시 눈이 사각사각 쌓이고 있다
여기가 이 세상의 끝일까
몸을 느끼지 못하겠다
내 죽음에 아무런 판돈을 걸어놓지 않은 이런 순간에
어서 그것이 왔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후련한 죽음이
'전설의 고향' 촬영했던 집이리야.
아담하고 좋기만 하던데, 귀신 나오겐 안 생겼던데?
저건 그냥 공원 앞에 있는 민가인게벼. 아니 다방인가?
집, 저렇게 질라면 돈 꽤 들어야겠지?
근데 난 저런 집에선 살고싶진 않더라.
소쇄원
소쇄원은 우리 배울 때 국사책은 물론이고 국어책에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냥 정자 두 개 있는 건데,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리게 지었다, 뭐 그런거지.
앞에가 광풍각, 뒤에가 제월당인데 이름이 멋지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示二子家誡)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경구가 된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은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아 털끝 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나온다'는 것이 편지 내용이다. '광풍제월'은 맑게 갠 하늘에 거침없는 바람, 구름 한 점 없는 밤 하늘의 밝은 달을 뜻하는 선비의 도리다.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제월당을 비롯해 제주 오현단 경내의 광풍대 등, 정원의 정자 이름, 柱聯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골 소재다. 北宋 시인 黃庭堅이 주돈이의 고결하고 맑은 인품을 표현한 말에서 유래됐다. (부산일보)
참조하시구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 별서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 있다. 전원은 대봉대와 상하지,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은 오곡문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에는 석가산이 있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과 오곡문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 옆의 오암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 광풍각 , 애양단, 대봉대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제월당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광풍각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 도오, 대봉대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1548)가 있으며, 1755년(영조 31) 목판에 새긴「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하서 김인후 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의 『소쇄원제초정』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가 경영하던 평천장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이 쓴 『유서석록』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출처] 서석지, 소쇄원 관련자료 ([예표건0801]Story of 1team)
야두 이러구 찍네? 유행인가? 클났네. 난 허리도 안 좋은데...
저게 뭔 꽃이지? 목련 종륜가?
메타 세콰이어 가로수 길
세콰이어와 메타세콰이어가 다른 종류 나무리야.
미국에 있는 그 무지막지하게 큰 나무가 세콰이어고, 담양에 있는 저거는 중국이 원산지라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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