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21. 19:25ㆍ산행기 & 국내여행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제껏 여행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지난 봄에 모처럼 한번, 큰 맘 먹고 찾아간 곳이 담양이었답니다.
하루에 다 둘러보기에는 빠듯하더군요.
처음 다녀온 지역이라 남다른 소회가 많았습니다만
오늘은 정자에 대한 느낌만 얘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고등학교때 동해안으로 수학여행 가서 보아왔던 정자들에 비해
남도의 정자들은 모양새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강원도나 경상도의 정자들은 사방으로 훤히 뚫려있어서 맞바람이 시원하게 들이치고
크기도 두어칸 이상으로 여기보다 훨씬 컷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들러본 소쇄원, 명옥헌, 송강정, 면앙정,
각기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고, 전망이나 운치가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더군요. 정자 한가운데에 방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그래서 정자의 구조와 주변의 어울림새를 자세히 관찰해 봤습니다.
그리고나서 내린 결론이, 아하 여기의 정자들은 딩가댕가 노는 장소가 아니라
공부를 한다거나 지역의 선후학들이 모여서 학문이나 시정에 대해서 좌담을 하던 장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비들의 사랑방 역할을 겸하던 곳이란 얘기지요.
그런데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그 방이라고 꾸민 공간의 출입구와 창문의 방향이었습니다.
당연히 전망 좋은 쪽을 택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외져보이는 옆구리 방향으로 틀어져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어디가 정자의 정면인지조차 헷깔려서 현판 걸린 자리를 몇 바퀴씩 돌아보기도 하고
마룻바닥을 손 뼘으로 재보기까지 하였답니다.
그러한 궁리 끝에 다시 내린 결론이, '먼 데 쳐다보며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였지요.
가보시거든 제 얘기가 맞나 안 맞나 확인들 해보시기 바랍니다.
송강정 면앙정에서 내려다보면 앞은 물론 좌우까지도 시야가 확 틔어있어서
멀리서 누가 말이라도 타고오면 금방 알아보겠더군요.
벼슬 한 자리 내렸다는 한양의 좋은 소식도 저 길로 왔을테고,
사약을 받쳐든 금부도사도 저 길로 왔을테지요.
아무튼 그 모두가 명당터를 골라서 지었을텐데,
제게는 정자와 연못과 배롱나무와의 어울림이 절묘했던 명옥헌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은 입구에 슬라브 구조의 주택이 한 채 들어서서 경관을 아주 버려놓았습니다만
옛날엔 소나무 숲으로 폭 둘러싸여서 마치 무릉도원 같았을 겁니다.
명옥헌 주인이 자랑 깨나 하고 다녔게 생겼습니다.
광풍각과 제월당이 있는 소쇄원도 명불허전입니다. 기가막힌 곳에다 자리를 잡았더군요.
송강정과 면앙정은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는데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으면 온통 사방천지가 말 그대로 황금들판 아니겠습니까?
물론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다 장관이지요. 겨울에 눈 덮인 들판이라고해서 멋이 덜하겠습니까?
과연 들 자랑하는 남도의 정자다웠습니다.
멀리 무등산 뒷편이 보이는 것이, 저 너머가 광주로구나 하니까 또 느낌이 다르더군요.
한마디만 덧붙이고 끝내겠습니다.
면앙정 앞에는 '중수기적비(重修記績碑)'라는 커다란 비석이 있더군요.
맨질맨질한 것이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위치도 어중뜰뿐더러 비문에 새긴 글씨가 엉망이었습니다.
글씨가 컷다 작았다, 마치 붓글씨 연습하는 사람의 솜씨같더라구요.
그래도 명색이 면앙정 아닙니까?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세워야겠더군요.
죽록원이라는 대나무 숲과 관방제림이라는 곳도 둘러봤는데, 좋습디다.
함박눈 내리는 겨울도 좋겠고, 비내리는 여름날에도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좋겠더군요.
제가 이 날 카메라를 가져가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에 있는 사진들은 여기 저기서 빌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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