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6. 18:21ㆍ詩.
결혼에 관한 시 모음
차례
콩꺼풀 / 유안진
결혼이란 / 안도현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지금 이 땅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 안도현
외할아버지의 결혼 조건 / 하병연
결혼 안한 여자 / 문정희
결혼까지 생각했어(노래) / 후ㅣ성
콩꺼풀
/ 유안진
식순이 다 끝났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
색맹(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
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대
불광(不狂)이면(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
잘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못 보며
서로에게 미쳐서[狂]
행복에도 미칠[及] 수 있기를
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기분 좋은 이 기쁜 날.
-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
결혼이란 / 안도현
-남진우, 신경숙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하며
결혼이란 그렇지요,
쌀씻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같이 듣는 거지요
밥 익는 냄새, 생선 굽는 냄새 같이 맡는 거지요
똑같은 숟가락과 똑같은 젓가락을
밥상 위에 마주 노는 거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한솥밥 먹는 거지요
더러는 국물이 싱겁고 더러는 김치가 맵고
더러는 시금치무침이 짜기도 할 테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틀린 입맛을 서로 맞춘다는 뜻이지요
(서로 입을 맞추는 게 결혼이니까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혼자 밥 먹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같이 밥 먹을 날들을 맞아들이는 거지요
(그렇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무얼 할까요?)
혼자 잠들던 날들을 떠나보내는 거지요
같이 잠드는 날들을 맞아들이는 거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둘이서 하나가 되는 일이지요
그리하여 하나가 셋을 만들고 넷을 만들고 다섯을 만드는 거지요
그 날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외딴방'에서 혹은,
'숲으로 된 성벽'에서 말이지요,
밥도 먹고 떡도 먹고 술도 먹는 일이지요
-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2010)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 정호승,『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1998)
지금 이 땅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 안도현
지금 이 땅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지아비가 되고
한 사람의 지어미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노예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땅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두 가슴에 불을 붙이는 일입니다
키 큰 저 신랑의 숨결이 자꾸 거칠어지고
이쁜 저 신부의 얼굴이 홍옥처럼 붉어지는 것은
서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쓸쓸하던 분단의 날들을 깨부수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선언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기어코 결혼이라는 것은
해방이라는 이름의 기관차를 함께 타는 일입니다
신랑이여 신부여
이제 그대들이 맨 처음으로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첫 아기의 눈부신 울음소리를
이 세상에 들려주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통일의 전사로
그 사랑스런 아기를 키우는 일입니다
신랑이여 신부여
그대들은 오늘부터 비로소
조국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2010)
외할아버지의 결혼 조건
/ 하병연
농사일을 모르던 외할아버지의 결혼 조건은
- 큰 집 장손이어야 하고
- 장손 중에서도 장남이어야 하고
- 성씨 중에서도 양반 성이어야 했다
국민학교 선생 중매도 마다하고
고르고 고르다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
어머니는 사는 게 힘들 때면
외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너거들은 편한 것만 좋아하나"에
돌팔매질을 해댔다
- 하병연,『길 위의 핏줄들』(도서출판 애지, 2020)
결혼 안한 여자
/ 문정희
아침 일찍 항구를 떠나
크레타로 가는 뱃전에서 그 여자를 만났다
얼굴이 희지도 검지도 않는 그 여자는
한 아이는 팔에 안고
또 한 아이는 곁에 세우고
멀어지는 항구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물살이 심하게 일었지만
승선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배는 만원이었다
그녀 곁 저만치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저이가 남편인가요?”
“나는 아직 결혼 안했어요”
“그럼 저 남자는?”
“아이들의 아빠”
“그럼 식만 안 올린 거로군요”
“아니, 나는 아직 결혼 안했어요.
어쩌다 살았고 아이도 생겼지만 언제든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하고 할 거예요“
물결 사나운 바다 위에
그녀의 입술이 석류꽃처럼 피어났다
새로운 섬 하나가 검은 어깨를 들먹이며
우리 가까이 다가들고 있었다
- 문정희, 『나는 문이다』(민음사, 2016)
◇ 결혼까지 생각했어(2010)
작사/ 휘성, 작곡/ 김도훈, 노래/ 휘성
https://www.youtube.com/watch?v=BRcNqVpqtXw
걱정 말고 날 떠나가 Bye Bye
너 없다고 죽진 않아 Good bye
어서 좀 빨리 가
내가 달려가 널 가로막고 붙잡기 전에
우리 인연 여기까진 거야
분명 우린 운명 아닌 거야
어차피 우리 헤어질 테니
마지막 얘길 들어주겠니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깨며
실컷 사랑하려 했어
한 순간 물거품이 된 꿈 슬퍼서 Cry Cry Cry
울컥울컥 차오르는 기억
눈물 없인 잊지 못할 추억
잠도 못 자고 퀭 한 눈으로
많이 울 거야 그리울 거야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깨며
실컷 사랑하려 했어
한 순간 물거품이 된 꿈 슬퍼서 Cry Cry Cry
나는 날 잘 알아 아마 난 못 참아
널 다시 찾아갈 거야
그땐 날 만나주지마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깨며
실컷 사랑하려 했어
한 순간 물거품이 된 꿈 슬퍼서 Cry Cry Cry
이젠 정말 안녕
끝으로 꼭 듣고 싶던 사랑해
나 매일 듣던 말 못 듣고 Bye Bye Bye
[출처] 주제별 시 모음 528. 「결혼」|작성자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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