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6. 13:22ㆍ詩.
『입 속의 검은 잎』
아직도 우리는 불가해한 삶의 한복판에서 자주 길을 잃으며,
자잘하게 조각나 있는 부박한 삶의 체험을 손에 쥐고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떤 체험의 의미는 쉽게 읽히고 어떤 체험의 의미는 끝내 읽히지 않는다.
읽어낸 의미는 사유의 방향과 행동 양식의 좌표가 되어 우리 의지의 강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잘 아는 것 위에 우리의 삶을 건축하며,
그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직업을 갖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잘 아는 것은 친숙한 것이며, 흔히 일상과 관습이라는 외관을 하고 나타나며,
도덕 · 상식 · 전통 · 풍속 같은 삶의 규범과 체계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 예측 가능한 지평 위에서 우리의 욕망은 발화하고, 성취되며, 때로는 좌절을 겪는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끝내 읽히지 않는 의미,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세계다.
두꺼운 모호함으로 감싸여 있으면서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 체험은
합리적 이성의 빛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저 무의식의 신호를 머금고 있기 일쑤다.
모르는 것, 잘 알지 못하는 것, 낯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우리는 그 예측 불가능의 지평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언제나 통제가 가능한 것이 아니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저 미지의 어둠인 그 예측 불가능의 지평 위로 성큼 발을 들여놓게도 된다.
꿈 · 무의식 · 몽상의 세계는 저 예측 가능한 세계의 뿌리인 셈이다.
흔히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것, 이해한 것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을 날카롭게 꿰뚫고 지나가는 힘은 잘 알지 못하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 불가해한 어떤 것이다.
삶에 대한 얼마나 많은 물음이 영구 미제의 물음으로 남으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주 속의 미아가 된 듯한 막막함에 에워싸인 채
얼마나 자주 덧없이 미로 속을 헤매는가.
시적 이미지들은 바로 그 예측 불가능의 지평,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저 모호한 심연으로부터 나온다.
시적 이미지들이란 가시화된 몽상, 육체화된 하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몽상의 싹이 피어나 일궈낸 풍경 속에서는 삶의 직접성이 증발해버린다.
몽상 속에서 현실의 문제들은 완벽하게 중력을 잃어버리고
그 무게가 지워진 채 모호한 양상으로 부유한다.
왜냐하면 모든 몽상은 과거의 추억―기억을 질료로 하기 때문이다.
몽상을 낳는 원초적 감정은 실재에 대한 반향이 아니라
없는 것에 대한 혼의 반향을 보여준다.
실재는 혼을 억압하지만 없는 것은 혼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므로 이미 흘러가서 부재하는 추억―기억은 몽상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
추억―기억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지의 역동성에서 발현된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부재의 공간 속에서 자신을 홀연히 드러내 보이는 불꽃이다.
망각의 두터운 어둠은 그 불꽃을 동그랗게 감싸 안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두드려 깨우고,
새로운 이미지들을 낳아 세계의 현전을 개진해낸다.
시인들의 무의식과 몽상 위를 가로지르는 온갖 이미지, 기호는 바로 무거운 책장으로 덮여 있는,
열리기를 거부하는 세계라는 책을 펼쳐 읽게 해준다.
바로 이런 까닭에 모든 시적 이미지는 은폐되어 있는 세계의 현전의 개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형도(奇亨度, 1960~1989)는
“나의 영혼은 검은 / 페이지가 대부분이다”라고 노래한 시인이다.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들에 지나치게 탐닉한
그의 도저한 비관주의로 물든 영혼이 빚어낸 몽상의 세계 앞에서
아직도 우리는 그 끔찍함에 떨며 진저리를 친다.
그의 몽상이 일궈낸 풍경은
그 자신의 어두운 혼에 반향된 풍경이자 환멸의 시대의 삶의 징후들을 머금고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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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죽음에는 늘 비극의 냄새가 진동한다.
어찌 젊은 죽음만 비극이라고 하랴! 모든 죽음은 비극적이다.
죽음은 미래와 미래 속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삼켜버리고 무화시키는 블랙홀이며,
가치의 영도(零度)다.
그래서 젊은 재능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죽음은 끔찍스럽고 비열하다.
죽음이란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내 속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
죽기 전에 마음속에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던 젊은 시인은 말한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이마까지 흘러내린 곱슬머리 아래 눈썹이 유난히 짙은 한 젊은이.
햇살이 눈부신지 젊은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그의 뒤로는 무덤들이 늘어서 있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시인 기형도.
그는 1988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대구와 전주를 거쳐 광주에 들른다.
놋날처럼 사나운 햇살은 지상에 일직선으로 내리꽂히고,
벌겋게 달구어진 그의 얼굴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린다.
수십 개의 붉고 검고 흰 현수막과 무덤들이 늘어서 있는 망월동의 제3묘원.
젊은 시인은 무명 열사의 묘, 박관현의 묘, 또다른 여러 묘 사이를 빗돌에 새겨진 글들을 읽으며 거닌다.
문득, 아무 연고도 없지만
어느 무덤에 바칠 꽃 한 송이, 소주 한 병 없이 묘원에 올랐다는 사실에 짧은 후회가 스친다.
그는 빗돌 사이에 서서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러고 나서 마른 꽃다발, 햇볕에 달구어진 술병, 금이 간 성모상을 넘어 묘원의 화장실을 찾는다.
변기 속에는 죽은 구더기들이 허옇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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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1960년 음력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기우민의 3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다.
황해도에서 피난온 그의 아버지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당시에는 연평도의 유일한 행정 기구이던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서해안 간척 사업에 손을 댔다가 정부 보조금이 끊기고 행정 기관에서 압력이 들어와 실패한 뒤,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곳이 시흥이다.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한 뒤 그의 아버지는 착실하게 농사를 지어 웬만큼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가난은 기형도의 원체험이다.
그래서 그의 “추억은 황량”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1) .
걷기도 전에 노래를 배우고, 여섯 살 무렵에는 한자투성이인 신문을 읽어
동네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아이는 숙제를 하며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어느 날 아이는 패랭이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둑길에서
월말 고사 상장으로 종이배를 접어 물에 띄워 보낸 뒤 풀밭에서 낮잠을 잔다.
“선생님, 가정 방문은 오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낮에는 아픈 아버지 혼자밖에 안 계셔요.”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상장을 종이배로 띄워 보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손위 누이는 자전거도 타지 않고 신문을 1백 부씩 돌렸다.
아이는 신문을 돌리고 온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를 맡곤 한다.
뒷날 시인은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고 쓴다.
신림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잇달아 수석으로 졸업한 기형도는
1979년 연세대학교 법정 계열에 입학한다.
그는 이내 문학 동아리에 가입해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연세문학회에서 그는 성석제 · 조병준 · 이영준 · 원재길 등과 만난다.
그는 여전히 단정했고, 장학생이었으며, 시를 사랑하는 문학 청년이었다.
그는 은백양의 숲길을 걷거나 돌계단에 주저앉아 플라톤의 책을 읽는다.
“한번도 열려 본 적이 없는 도어의 손잡이 어디쯤에 붉게 녹슬어 가고 있는 볼트”처럼,
그는 힘겹게 대학 생활을 헤쳐나간다.
누가 그에게 성격 파탄자라고 말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어느 날 학교로 가던 지하철 속에서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뭇잎조차 무기로 쓰이던 그 시절,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대학 시절 시화전을 연 논지당 앞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국문과 교수이자 연세문학회 지도 교수로 있던 시인 정현종이며 세 번째가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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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혼돈의 와중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학부 생활의 마지막 의무로 ‘국제 정치’ · ‘한국 정치 사상’ · ‘문예 사조’ · ‘근대 철학’ 등 네 과목의 수강 신청을 하며,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젊음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고, 그는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자신의 삶 앞에 놓여 있는 불안과 위기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한 친구에게 “요즈음은 온통 불명확한 것 투성이다.
나의 생, 혹은 문학, 진로, 학업, 관계, 미래, 시간, 공간······.
모두가 알 수 없는 실체들로서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불명확한 것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어떠한 극복들을 내가 마주서야 할 때
나는 비틀거리는 층계 어디쯤에서 불현듯 위기감을 느낀다.”고 써보낸다.
1984년 10월 그는 『중앙일보』 수습 기자로 들어간다.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응모한 시 「안개」가 당선된 것은 두 달 남짓 뒤의 일이다.
1985년 2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그는 수습 기자 딱지를 떼고 정치부에 배속된다.
이어 그는 문화부 기자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한다.
이 무렵에 쓴 「오래된 서적(書籍)」에서 그는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라고 쓴다.
그러나 이 도저한 절망과 염세주의는 현실 생활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쾌활한 젊은이였고, 노래를 잘하는 기자였다.
떨리는 음색의 미성으로 재현되는 그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그에게 매혹되기 일쑤였다.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고 섬뜩하게 외치던 그의 황폐한 내면은
사람들 앞에서 “크고 넓은 이파리”들로 가려지곤 한다.
드문드문 좋은 시를 발표하던 그는 ‘시운동’ 동인들과 자주 어울린다.
그는 술자리에 끼여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술은 잘 못 마셨다.
어느 날 그는 김현의 월평 원고를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진다.
김현의 월평 원고는 다름아니라 문학 담당 기자인 자신의 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월평 원고를 신문에 내보내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풋내기 기자가 감히 대평론가에게 다시 원고를 써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는 혼자 속을 태운다.
그의 시는 월평에서 다루어지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고,
신인으로서 대평론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기형도의 결벽증은 그것을 끝내 용납하지 못한다.
그의 인간성을 엿보게 하는 일화다.
기형도의 시집은 그가 죽은 뒤에 나온다.
그는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꼼꼼하게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의 너무나 이른 죽음이 앞지르기를 해버린 것이다.
1989년 3월 7일 이른 3시 30분,
서울 종로3가 파고다극장의 한 좌석에서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인(死因) 뇌졸중.
아무도 그가 왜 혼자 국산 영화가 상영되던 그 심야 재개봉관에 갔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후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한 것이다.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절망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단번에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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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날 저녁 그는 신문사에서 나와 혼자 인사동에 들른다.
그의 가방 속에는 시작 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인도에서 온 여성 작가 K의 편지,
몇 권의 책,
소화제 같은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인사동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맥주를 좀 마신다.
가방에서 K의 편지를 꺼내 몇 번 되풀이해 읽는 그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바로 1년 전의 여행에서 그는 견훤이 창건했다는 전주 서고사에 머물고 있던 K를 찾아가 여러 얘기를 나눈다.
서고사에서 하룻밤 묵은 뒤 광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터미널까지 따라나온 K에게 그는
“내가 내 생에 얼마나 불성실했던가, 생을 방기했고, 그 방기를 즐겼던가를
서고사 일박을 통해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맥주 한 병을 비운 뒤 인사동 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간다.
그 뒤로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그는 제 몸 속으로 흘러들어온 길들을 이승의 몸과 함께 버린다.
이로써 그의 훌륭한 바리톤의 노래,
새로 씌어진 그의 시,
그의 도저한 염세주의,
그의 쾌활한 재담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형도의 시 세계는 바로 앞 세대에 의해 이미 그 완벽한 범죄성이 폭로되고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전망을 갖는 게 불가능하다고 선언되어버린 1980년대의 초토 위에서,
그 앞 세대 시인들이,
지금―여기가 아닌 어디로 가자며
“아픔이 없는 사랑의 나라”(이성복),
저 “율도국”으로(황지우) 떠나버린 뒤,
그 죽음의 현실―악몽의,
구체적 일상의 국면들을 끌어안으면서 비로소 열린 세계다.
그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아에게 포착된 구체적 일상의 국면들은
다시 말하면 인간의 유토피아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그것을 배반하는, 이미 참담하게 파탄나버린 악몽의 현실 사이에서 찢긴 자아의 세계다.
기형도의 찢긴 자아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러 평자가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비극적 세계 인식이다.
물론 비극적 세계 인식이 기형도만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의 중요한 시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미 구원의 불가능성이 증명된 현실을 떠나지 않고,
그 악몽의 현실을 살아내며,
그 살아냄의 의미를 끈질기게 형상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기형도의 비극적 세계 인식은
이성복 · 황지우 같은 1980년대 전반의 시인들의 그것과 의미론적으로 변별되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 살아냄은 바로 현실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부조리성과 무의미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싸움에 다름아니다.
기형도 또한 한국인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죄의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 1980년대 초의 역사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그것은 그의 비극적 세계 인식과 깊이 맞물려 있다.
그러나 기형도는 그 불행한 역사 경험에 단세포적 감정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 자기 만족에 빠져들곤 하던
경직된 지사풍의 민중 시인들과는 다르다.
1980년대에는 현상 자체에 대한 포괄적 성찰과 이해를 결여한 채
동어 반복의 단순 구호 속에 그 역사 경험을 함몰시킴으로써
그것을 너무 빠르게 화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혐의를 떨쳐내지 못한 시인도 적지 않게 나온다.
기형도의 뛰어난 점은, 아니 성실한 점은
오래 망설이며 회의하고, 그것을 내면화해,
마침내 인간 삶의 보편적 명제―실존의 부조리성과 무의미성―로 가라앉혀 펼쳐 보인 점에 있다.
기형도의 상상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길 없음’으로 표현된 비극적 세계 인식의 시적 지평을 탐색하기 전에
저 자기 고백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여행자」라는 시편을 읽어보자.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던진다 /
그의 마음 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 적도 없다 /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 한다 /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기형도, 「여행자」,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모르는 한 여행자의 탄식과 울부짖음은 다름아니라
찢긴 시적 자아의 내면의 균열들로부터 흘러나온다.
그 탄식은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던 욕망의 좌절과 결부되어 있고,
그 울부짖음은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는 구절에 드러나듯이
어떤 길도 더 선택할 수 없는 막막한 전망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기형도의 시가 전망 부재의 시는 아니다.
그의 시는 전망 자체를 부정하는 시다.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와 같은 시구는
시적 자아를 에워싸고 있는 소외의 상황을 보여준다.
소외는 이 뜻없는 세계 속에서의 삶의 환멸스러운 한 진상이다.
노파와 고양이는 그 자체로 이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부적 존재들이다.
생명의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해버린 채,
육신의 무기력과 비활동성, 의식의 퇴영성을 반영하는 노파가 있는 모퉁이,
나른한 고독과 공허, 추락한 존재, 비천한 이성의 상징인 고양이가 있는 술집은
시적 자아가 거쳐온 세계 공간들이다.
이런 곳은 영웅적인 자기 실현의 여로를 예비하는 희망 찬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패배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도피를 감싸는 장소이고, 그들이 값싼 위안을 받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조차 시적 자아는 소외를 경험한다.
유토피아적 전망 자체의 거부는, 그의 삶과 현실에 대한 부정이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시인은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하고 세계를 향해 묻는다.
그것은 타자들과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그 꿈은 한낱 백일몽이었음이 드러난다.
타자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삶의 양식에 대한 추구가 좌절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라는 구절,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 자신의 다리”라는 구절에 암시되어 있다.
육체의 불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육체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런 구절이,
시인 자신의 타고난 육체적 조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실 모든 인간의 육체는 불완전하다.
그것의 가장 큰 경험은 육체가 쇠락하고, 결국은 소멸한다는 사실에 있다.
타자들에게 들켜버리고 만 나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분명해진다.
그것은 신체 특정 부위의 불구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가 결국 소멸되고 만다는,
육체를 매개로 하는 인간 실존의 보편적 조건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머지않아 소멸되고 말 육체 속에 담긴 삶의 진절머리나는 부조리성 속에서 ‘나’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일종의 매개항이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라는 시구에서 중얼거림이란 뜻없는 행위다.
그것은 호랑이의 으르렁거림, 비둘기의 구구대기, 말의 힝힝거림, 돼지의 꿀꿀거림, 소의 음메 울음3) 과 같은 것이다.
중얼거림은 소외된 이의 넋에서 흘러나오는 자기 독백의 소리다.
그것은 정신의 이완, 얼빠짐, 나태, 몽상, 삶의 수동성과 관련된다.
이념과 명분과 논리를 담은 확신에 찬 말과 중얼거림은 다르다.
중얼거림은 “어떤 강력한 감정에 밀려 터져” 나오는 외침과도 크게 다르다.
언어 이전의 상태, 배아적(胚芽的) 언어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게 중얼거림이다.
그것은 의미가 완전히 탕진되어버린 세계에서 삶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선택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태에서의 궁색한 버팀, 뜻없는 반복, 어리석은 혼미의 중얼거림이다.
이런 중얼거림은 기형도 시 세계의 총체적 의미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행위다.
거두 절미하고, 기형도의 시는 바로 중얼거림의 시다.\
기형도의 시 세계에 대한 비평은 그가 갑작스럽게 죽은 뒤,
그리고 유고 시집 출간을 즈음해 단편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시 세계는 평자들에게 조금씩 다르게 읽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이해된다.
“세계의 비극적 구조를 하나의 냉엄한 풍경으로 포착”(김훈)한 것,
“의미와 목적이 없는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부조리시”(김준오),
“소외된 개별자, 썩어가는 육체, 전망 없는 미래, 헛것인 존재”를 통해
추악한 현실이 바로 시적인 것임을 보여준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김현) 등이 그것이다.
그의 좋은 시편들인 「어느 푸른 저녁」 · 「오후 4시의 희망」 · 「장미빛 인생」 ·
「죽은 구름」 · 「흔해 빠진 독서」 · 「추억에 대한 경멸」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 「질투는 나의 힘」 등에서
기형도가 한결같이 노래한 것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머금은 채 흉하게 일그러진 자아의 세계다.
그는 「물 속의 사막」에서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라고 노래한다.
헛것―삶 또는 삶―헛것의 체험과 인식에 깊이 침식된 이 젊은이의 시적 선택이
세계에 대한 비관주의적 인식의 심연 드러내기였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가수는 입을 다무네」)의 세계 속에서,
이 불행의 징후에 예민한 감각을 지닌 젊은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라고 절망해 울부짖거나,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오후 4시의 희망」)라고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토로하거나,
이도 아니면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미빛 인생」)고 과격하게,
뜻없음으로 가득 찬 이 부조리한 삶―현실에 대해 거부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길을 찾아 집 떠나온 넋에게 닥친,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이미 없다는 막다른 인식은,
그 넋의 목적 없음으로 반향된다.
어느 날 불의의 습격처럼,
갑자기 삶의 이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무(無) · 무의미 · 무목적성의 세례를 받은 넋은,
부조리의 넋이 된다.
그 넋은 익명성의 거리에 흘러 넘치는 죽음과,
목숨 붙어 있는 사람들의 공포에 집요하게 사로잡힌 넋이기도 하다(「입 속의 검은 잎」).
그 넋에 따르면 세계는 무목적이고, 무질서한 곳이며,
비현실적이고, 낯선 곳이며,
지리 멸렬하고, 부조리한 곳이다.
이에 따라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라는 시구가 생긴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어둡고 축축한 세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텅 빈 희망”(「오래된 서적」) 속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가오는 1990년대 시의 한 징후이자 예감이던 한 섬세한 자아는
이 세계의 부조리성과 뜻있음의 결핍에 대한 진지한 성찰 끝에,
그의 넋에 각인된 악몽의 현실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불안과 자학과 절망을 넘어, 삶의 한 원리를 제시한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 냈다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가득 피워낸 크고 넓은 이파리들에 의해 황폐한 내부는 숨겨진다.
숨겨진 황폐한 내부는 이미 황폐한 내부가 아니다.
나무는 그 자체로 풍성한 의미로 생성되면서, 동시에 그 내면 속에 있던 의미의 공동(空洞)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외관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본질의 변화를 이끈다!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피워내는 것,
이는 곧 보잘것없는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길어내는 실존의 행위다.
기형도는 너무 일찍 삶의 고갈을 봐버렸고,
자신의 삶을 죽음이라는 완벽한 고갈 속에 맡겨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시적 몽상을 통해 ‘세계의 세계’로 나아간다.
우리는 시적 몽상, 그 아름다운 세계로의 열림을 통해 현존의 영토를 기름지게 만들고,
신생의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는 기형도라는 도저한 검은 허무주의의 젊은 사제의 이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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