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6. 11:17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1
1880년 4월, ‘마리 베르나’라는 젊은 여인이 피렌체에 있는 아르놀트 뵈클린의 작업실을 찾아왔다.
이제 막 약혼한 그녀는 14년전 사망한 그녀의 첫 남편을 마지막으로 추모하고 싶다며
화가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마침 뵈를린은 한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어느 섬을 향해 가고 있는 우울한 그림을 그리던 참이었다.
젊은 여인의 다급한 주문에 맞춰서 그는 여기에 흰옷을 입은 유령 같은 인물과 관을 그려넣었다.
‘죽음의 섬’이라고 명명한 이 그림에서 남편의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여인을 묘사함으로써
젊은 과부가 재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전남편을 맘껏 추모할 수 있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880년 6월 29일 이 그림을 보내며 주문자에게 편지를 썼다.
“부인께서는 이 음침하고 어두운 세계에서 /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는 훈훈한 무역풍을 느끼실 때까지, /
한마디로 엄숙한 고요함이 깨질까봐 두려움을 느끼실 때까지 /
꿈에 젖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
2
‘죽음’이라는 문제에 매료되었던 뵈클린은 이 주제로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렸다.
실제로 죽음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열네 명의 자녀 중에서 여덟 명이 사산되었거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뵈클린의 예지력이 돋보이는 이 그림을 스트린드베리는 자신의 연극에 무대장식으로 사용했고,
라흐마니노프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헤르만 헤세는 여행할 때 이 그림의 복사본을 가지고 다녔다.
이 그림은 권력자들에게도 특별한 마력이 있는지,
뵈클린의 그림을 무척 선망했던 히틀러는 1936년 이 작품의 다섯번째 판본 중 하나를 사들였다.
클레망소는 집무실에, 레닌은 침실에 이 그림의 복사본을 걸어 두었다.
프로이트도 환자에게 선물로 받은 이 그림의 사본을 소장했다.
1897년 바젤, 함부르크, 베를린에서 전시회가 개최되어 대표적인 독일화가가 되었으며,
이 그림의 수많은 판본이 유럽 전역에 퍼졌고,
1890년부터는 대형 판화로 제작되었으며 여러 출판사가 앞다투어 그의 화집을 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병사들이 이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이용했다.
대중적인 '성화'가 된 이 그림은 독일의 수많은 가정의 벽에 걸렸다.
이 그림의 전문가인 한스 홀렌베그는 "한 번 보기만 해도 뵈클린을 떠올리게 하는 이 풍경화는
나치 독일이 성립하던 시대에 중산층의 상상과 향수를 충족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 그림에 담긴 감정의 울림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 에른스트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도 이 그림의 주제를 놓고 나름대로 설명을 했는데,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 작품에서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라틴 문화의 융화를 보았다'라고 썼다.
실제로 이 그림에는 북해의 음침한 우수, 이탈리아의 사이프러스, 혈거인의 무덤,
죽은 영혼들을 배에 태우고 스틱스 강을 건네주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 뱃사공 카론의 비유 등
다양한 문화적 소재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어떻게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꿈에서조차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자기 장례식에 참석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을 본다.
프로이드는 이제 곧 들어가야 할 동굴 앞에서 "난 네가 무섭지 않아" 라고 이야기 하는,
공포로 경직된 발기한 남근을 가진 자가 곧 감상자 자신과 화가라고 풀이했다.
그런 점에서 클레망소, 히틀러 혹은 레닌처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적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왜 이토록 이 그림에 열광했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명작스캔들Ⅱ》에서 발췌함.
2
3
4
5
'이런 저런 내 얘기들 > 내 얘기.. 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작품설명 (8) - 은행나무 外 (0) | 2019.06.07 |
---|---|
전시작품 설명 (7) - 명태 (0) | 2019.06.07 |
전시회작품설명 (5) - 日本 雪景 두 점 (0) | 2019.06.06 |
전시작품설명 (3) - 네팔 두 점 (0) | 2019.06.05 |
전시작품설명 (2) 러시아 풍속화 두 점 (0) | 201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