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바이스 - 2

2019. 2. 1. 20:29미술/일본화·중국화·기타





'寫意'는 중국회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술개념이다. 특히 明과 淸 두 시기에는 詩/書/畵/印의 내재적 통합이 水墨/寫意/花鳥畵의 높은 경지에 오르게 하였다. 치바이스 예술 성취의 최고봉에 있는 花鳥畵에서 그의 통달한 寫意정신이 구현되었다.


치바이스는 이런 시를 썼다. "서위, 주탑은 범인과 거리가 멀고, 오창석은 노년에 새로운 재능을 펼쳤다. 나는 구천에서 그들의 개가 되어 세분의 문하에서 수레바퀴를 돌리련다." 치바이스 작품 속에서도 이들의 그림을 임모(臨慕)하고 학습한 흔적이 역력하다.


 멸망한 明 황실의 후예로서 팔대산인(八大山人)은 자신의 심경이나 기분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표현했다. 물고기, 오리, 새 등의 눈을 위로 치켜뜨며 하늘을 흘겨보는 형상으로 자신의 완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筆墨의 특징은 자유뷴방함이다. 노련하고 모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고, 맑고 탈속한 재미가 넘친다. 작품 크기에 상관 없이 모두 진솔하고, 명랑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장법과 구도도 속되지 않고 미완성의 완성을 구가한다.


치바이스는 팔대산인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흠모한 치바이스는 50대에서 60대 전후에 팔대산인의 차갑고 초월한 듯한 냉일(冷逸)한 화풍과 단순함의 의취를 반복해서 학습했다.


 海波 회화의 대가인 오창석은 금석의 필획을 서화에 접목하여 당시의 새로운 취향과 융합하였다. 그는 곧 중국 사의 회화의 강건하고 웅혼한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 내었다. 치바이스는 "자신의 쇠년변법(衰年變法) 시기에 주로 오창석의 금석대사의(金石大寫意) 화풍을 흡수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세필 초충(草蟲)화법과 사생관찰, 향촌취미, 동심온정(童心溫情) 등의 개념과 결합하여 독특하고 창의적인 자신만의 특색을 형성했다.


팔대산인이서 오창석까지, 치바이스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성공적으로 민간화가에서 문인화가로 거듭나고, 그들과 가까이 갔다가 획기적인 변신을 이루어냈을뿐더러 옛법을 통달하여 마음의 법칙(內在心法)을 깨우쳤다. 창신의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후학들에게 실제로 배울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배우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나를 닮으려는 자는 죽을 것이다."이다. 내재적인 정신은 같은 흐름으로 함께하여야 비로소 효과적인 대화와 교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팔대산인 초상화인데, 실제로 저렇게 생겼었는지.....,

관람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 깜빵에 있는 이명박이를 닮았다고 합디다.^^

팔대산인 주탑은 명나라 황실 후손입니다. 대원군처럼 미친놈 행세를 하며 살다 갔다더군요.

화단에서의 위치가 우리나라 '정선' 쯤 된다고 할까?




 


 


 

 








 


내가 보기엔 별 것 아니구만은, 귀한 그림이랍디다.





 


팔대산인 싸인입니다.

위엣 글자를 잘 뜯어보면 八大山人이 합체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팔대산인 作




 치바이스 作




 


 



 

 




 




 




 


 

 








치바이스 作



 




 

 


 


요 몇 개의 작품 비교는

치바이스가 팔대산인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배웠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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