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7. 21:00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8. 5. 25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들에 담긴 고유한 역사와 그것이 품고 있는 의외의 이야기들을 발굴해내는 것을 목표,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조명 받지 못한 사물들의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물들의 미술사」 제1권 『액자』. 그림은 바뀌지 않지만 액자는 그림을 소장하는 자에 따라, 그림이 걸려 있는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이처럼 그림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와 다름없는 액자의 역사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액자, 그림보다 더 흥미진진한 그림 밖의 미술사.
액자는 주인공인 그림에 밀려 미술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사물이다. 액자와 관련된 연구 서적도 많지 않을뿐더러 인터넷으로 그림을 검색하면 액자를 잘라낸 그림들이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다. 당연히 미술사 책에도 원래의 액자를 끼운 채 등장하는 그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액자가 없는 박물관과 갤러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피티도 당당히 예술인 이 시대에 액자가 없다면 그 무엇으로 그림과 벽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액자에 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그림은 액자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화가의 아틀리에를 떠나 세상에 나온다. 이후 그림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러 소장자의 손을 거치며 궁전에 고이 모셔지는가 하면 전쟁을 겪기도 하고, 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하며, 천재지변을 만나기도 한다.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가장 먼저 바뀌는 사물이다. 그림은 바뀌지 않지만 액자는 그림을 소장하는 자에 따라, 그림이 걸려 있는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므로 액자는 그림 밖의 역사와 그림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말없는 증언자라 할 수 있다. 액자를 탐구하는 과정은 그림 밖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이자 사라진 역사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다.
저자는 이 퍼즐을 맞추기 위해 액자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자료들을 뒤적이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행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읽기에는 너무나 지루한 ‘타베르니에의 여행기’, 금전출납부나 다름없는 뒤러의 ‘네덜란드 여행기’, 20세기 초의 유명한 컬렉터 카몽도 가문의 보험 서류, 루이 14세 시기의 판화, 19세기 액자 제작업체의 영수증 등 저자가 참고한 자료들은 일반적인 미술사 책과는 결이 다르다.
고흐의 작품에 의문이 생기면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달려갔고, 자신의 액자를 직접 스케치한 드가의 노트를 열람하기 위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자기가 그린 그림에 걸맞은 액자를 일일이 기록해둔 고흐의 편지를 낱낱이 추적하며, 그가 만들었던 혹은 상상했던 액자를 가상으로 재현해내고 있는 장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저자가 들려주는 액자 이야기는 그림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말하는 액자의 역사는 그림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와 다름없다.
01. 빛과 영광의 뒤안길/ 신의 세계로 가는 길, 〈겐트 제단화〉
중세와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말과 글로 전해오는 신의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시각 연출자들이었다. 가장 교묘한 눈속임 기술을 가진 자가 가장 훌륭한 화가였던 시대에 액자는 관객을 그림 속의 세계로 안내하는 거대한 창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창문 같으면서도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신의 세계가 펼쳐지는 매우 특이한 액자를 개발했다. 성당의 제단화가 바로 그것! 이제는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 없는 신기루 같은 〈겐트 제단화〉의 굴곡진 역사를 통해 중세의 창이자 중세인들이 경배했던 신에게 다가가는 길을 알아본다.
0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액자/ 17세기식 드라마,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루벤스의 24점 연작,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한때 거짓으로 가득 찬 권력을 과시하는 광고판이었다. 마리 드 메디시스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당대에 가장 거대하고 웅대한 액자를 만들어 그림을 모셨다. 뤽상부르 궁전의 갤러리 전체를 액자로 만드는 세기의 프로젝트가 책 속에서 재현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날의 광휘를 잃고 구태의연한 역사화로 남은 그림이 아니라, 처음 연작이 만들어지던 17세기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시각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자.
03. 가장 작고 값비싼 액자/ 루이 14세의 두 얼굴, 브와트 아 포트레
세로 7.2센티미터, 가로 4.3센티미터,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태양왕의 초상화. 루이 14세가 오로지 측근들에게만 선물했던 이 초상화는 왕의 얼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액자를 달고 있다. 총 92개의 다이아몬드가 그 주인공. 액자에 촘촘히 박힌 다이아몬드 덕택에 도난과 약탈의 대상이 되었던 이 미니어처 초상화는 원래 3백여 개가 제작되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단 세 점만 전해 내려온다. 왕의 초상화를 위해 제작되었지만 너무나 화려해서 왕의 얼굴조차 가리는 아이러니한 액자, 이 쓸데없이 화려한 액자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04. 그 액자는 그림과 동시에 태어나지 않았다/박물관과 함께 탄생한 19세기 액자
책에서만 보던 고전 작품들을 유럽의 박물관에서 실제로 대면할 때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궁전식 갤러리와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고풍스러운 금박 액자다. 그래서인지 다들 이 액자들 역시 작품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일쑤다. 사실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의 액자 대부분은 근대의 박물관이 처음 태동했던 18세기 후반의 유산이다. 3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클래식으로 남은 박물관용 액자의 모델이 태어난 박물관의 초기 시절로 돌아가보자.
05. 반 고흐의 상상의 액자/ 고흐가 직접 만들고 색칠한 액자
인상파는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그림에 맞는 액자를 스스로 고안해 사용했던 화가들이다. 아카데미의 전통에 저항했던 그들은 액자에 ...대한 관념도 남달랐다. 〈인상파전〉에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인상파의 액자, 모네ㆍ피사로ㆍ고갱ㆍ고흐가 직접 그들의 그림에 맞춰 만든 액자들은 모두 역사의 틈바구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인상파들의 그림은 대부분 그들이 그토록 저항하고자 했던 19세기의 화려한 액자에 걸려 소개되고 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반 고흐의 오리지널 액자를 통해 사라진 인상파들의 액자를 상상해보자.
06. 모더니즘을 향한 한 걸음, 드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 카몽도
완벽주의자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드가는 액자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노트에 꼼꼼하게 스케치까지 하며 작품 하나하나마다 맞춤한 액자를 고안했던 그는 그림을 사는 컬렉터들에게도 자신이 창작한 액자를 강권했다. 드가가 입씨름 끝에 관철시킨 액자는 어떤 것일까? 그는 왜 기어이 그 액자를 고집했을까? 세기의 컬렉터인 이사크 카몽도가 소장했던 26점의 드가 그림은 왜 모두 같은 액자에 담겨 있을까? 이사크 카몽도와 드가의 팽팽한 신경전이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풍경과 교차되며 드라마틱한 역사가 펼쳐진다
이지은
1999년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 2002년 크리스티 프랑스에서 18세기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에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IESA에서 '미술시장-오브제 아트' 감정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 있다
머리말
01. 빛과 영광의 뒤안길 |신의 세계로 가는 길, 〈겐트 제단화〉
0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액자 |17세기식 드라마,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03. 가장 작고 값비싼 액자 |루이 14세의 두 얼굴, 브와트 아 포트레
04. 그 액자는 그림과 동시에 태어나지 않았다 |박물관과 함께 탄생한 19세기 액자
05. 반 고흐의 상상의 액자 |고흐가 직접 만들고 색칠한 액자
06. 모더니즘을 향한 한 걸음, 드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 카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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