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6. 19:52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8. 6. 15
고구려 벽화에서 백남준까지 이어지는 신명의 불꽃 한국인의 혼을 깨우고, 세계를 춤추게 하다.
미술로 조명하는 한국의 4대 미의식
그 첫 번째 이야기 “신명”
창조적인 문화와 행복을 위한 우리의 미의식
저자는 요즘처럼 문화가 중시되는 시대에 우리다운 문화를 창조적으로 꽃피우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4대 미의식인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의 정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명은 영혼을 깨우는 생명의 힘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흥겨운 정서이고, 해학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을 희롱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달관의 지혜다. 소박은 꾸밈없는 대교약졸의 자연미이고, 평온은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난 본성의 고요한 울림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근대화의 물결 속에 한국은 고유한 미의식을 잃어버려 알게 모르게 문화적 식민지를 초래했고, 행복을 잃었다. 이에 저자는 잃어버린 4대 미의식을 복원하여 진정한 ‘문화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계를 춤추게 할 한국인의 신명
이 책의 주제인 신명은 고대부터 이어진 한국인의 가장 뿌리 깊은 미의식이다. 한국인에게 무속신앙은 종교 이전에 천지인 사상에 입각한 삶의 문화였고, 노래와 춤이 수반되는 제천의식이나 굿은 삶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신명나는 삶을 위한 정치행위였다. 풍류를 좋아하고 흥이 많은 한국인들은 신명을 통해 하늘과 소통하고 현실의 역경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신명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는 위기에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수천 년간 수많은 외침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관광버스가 흔들릴 정도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방이 있는 나라, 신바람이 나면 월드컵 4강도 가능한 나라, 점잖은 외래 종교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신명의 종교로 탈바꿈된다.
오늘날 근본 없는 주입식 교육과 천민자본주의에 신명이 억눌려 있지만, 신명을 되살린다면 한국인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무서운 저력을 지닌 민족이다. 저자는 예술에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백남준과 K팝 열풍도 한국인의 신명이 국제적 문화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본다. 한국은 세계를 신명나게 할 문화적 사명을 지닌 민족이라는 것이다.
외국미술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미술의 미학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다
이 책은 저자의 『한국의 미학, 서양, 중국, 일본과의 다름을 논하다』(2015)에 이은 후속 연구로 한국인의 4대 미의식 중 하나인 ‘신명’이 어떻게 조형언어로 양식화되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미술에서 신명이 담긴 작품들을 동서고금의 작품들과 비교하며 미학적 관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미술의 미학적 가치를 새롭게 눈뜨게 하고, 외국인들이 한국미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1장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춤과 음악으로 풍류를 즐긴 한국 고대인들의 신명 문화가 회화적으로 표현된 사례들을 다루었고, 2장에서는 회화에서 율동적 선율로 표현된 신명의 정서가 문양으로 나타난 공예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3장은 자연을 직접 접하고 그 감각적 흥취를 표현한 진경산수화를 서양의 인상주의나 입체주의와 비교하여 그 현대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4장에서는 신명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꽃피운 현대작가들을 다루었다. 문인화 전통을 신명나는 붓질로 계승한 이응노, 무속신앙의 신명을 현대적 감각으로 조형화한 박생광, 소를 통해 한민족의 힘찬 기백과 신명을 표현한 이중섭, 자신의 고독과 한을 신명으로 승화시킨 천경자, 민중의 애환을 신명나는 춤으로 풀어낸 오윤, 굿의 원리로 비디오 아트를 창조한 백남준 등을 통해 자신의 역경을 신명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최광진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현대미술 비평에 있어서 자율성과 재현의 문제」로 1호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천경자 전》(1995), 《청전 이상범 전》(1997), 《소정 변관식 전》(1999) 등 한국 대가들의 전시회를 연이어 기획했다. 한때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을 지냈고, 2004년부터 理美知연구소를 통해 기호학, 포스트모더니즘, 동서비교미학, 한국미학, 창작론 등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시대정신과 예술의 길을 모색하는 강좌를 해오고 있다. 2015년에는 서울시 예술연구서적 발간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한국의 미학-서양, 중국, 일본과의 다름을 논하다』를 펴냈고, 그 밖의 저서로 『부드러운 욕망』, 『현대미술의 전략』 등이 있다.
책을 내며
서장: 신명이란 무엇인가
1.
한국인의 미의식은 "멋을 느끼고 창출할 수 있는 의식"으로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의 미의식으로 발현되어 왔다.
신명은 영혼을 깨우는 생명의 힘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흥겨운 정서다.
풍류를 좋아하고 흥이 많은 한국인들은 신명으로 하늘과 소통하고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했다.
해학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을 희롱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달관의 지혜다.
천진한 한국인들은 해학을 통해 모두가 존귀하고 평등한 세상을 동경했다.
소박은 꾸밈없는 대교약졸의 자연미다.
자연친화적인 한국인들은 인위적인 기교와 장식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슨응하며 살고자 했다.
평온은 세속적 유혹과 집착에서 벗어난 본성의 고요한 울림이다.
종교와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한국인들은 이러한 명상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예술의 이상으로 삼았다.
(..........)
이 시리즈는 이러한 4대 미의식이 미술에서 어떻게 양식화되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신명예술은 내적 감정을 분출시키는 표현주의와,
해학예술은 현실풍자적인 리얼리즘이나 이상적인 낭만주의와 통한다고 보았다.
또 소박예술은 자연주의와 연관이 있고, 평온예술은 고전주의와 상통하는 점에 주목하였다.
2.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天地人 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하늘의 정신성(영혼)과 땅의 물질성(육체)을 종합한 존재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정신성과 물질성의 접화된 상태이며, 죽음이란 접화가 풀어져 정신은 하늘로, 몸은 땅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
한국의 신명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표현주의 미학과도 상통한다. 외부 현실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려는 재현주의와 달리 표현주의는 인간 내면의 감정의 진실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독일에서 키르히너를 중심으로 활동한 '다리파'는 오직 눈의 망막에 의존해서 빛의 이미지를 그린 인상주으를 비판하고, 고흐와 뭉크를 게승하여 내적 충동이라 할 수 있는 정열과 불안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사물과 닮은 색채와 형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의 주관적인 충동을 거침없이 표현하게 되었다.
3.
서양의 표현주의나 한국의 신명예술은 모두 선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파장과 리듬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에 선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주의의 선이 인간의 억압된 감정을 충동적으로 분출하고자 한다면, 신명예술의 선은 자신의 감정을 '율려작용'에 조화시키려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신명예술에서의 선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리듬과 율동감이 있다.
4.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하면, '대륙국가 인 중국은 높은 산과 광활한 들판에 적응한 장엄한 형태미를 발전시켰다. 해양국가인 일본은 따뜻한 기후와 꽃이 많은 아기자기한 자연에서 생긴 여유로운 정취로 화려한 색채를 택했다. 이 두 나라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인 조선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침을 당했기 때문에 쓸쓸하고 고독한 비애의 정서가 생겨났고, 이것이 선으로 표현되었다'고 보았다. "이 민족만큼 곡선을 사랑한 민족이 없지 않은가
1장 고구려 벽화로 표현된 신명의 정서
사신도 - 유려하고 역동적인 선율로 창조한 신령한 동물
신선도 - 율동적인 선율로 하늘을 나는 천인들
풍속도 - 일상에서 생활화된 신명의 문화
2장 공예품에 새겨진 신명의 문양
금동장식 - 불꽃처럼 타오르는 신명의 문양
금동대향로 - 신선사상 구현된 접화군생의 이상세계
범종 - 마음을 울리는 신명의 파동
3장 진경산수화에 담긴 신명의 흥취
진경산수와 인상주의 -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 교류
진경산수와 입체주의 - 자유로운 시점의 유희
정선과 세잔 - 시각 너머의 구조적 본질을 탐하다
정선과 고갱 - 몸으로 체화된 자연의 심상 표현
정선과 고흐 - 선으로 표현된 역동적인 생명력
변관식 - 골산에서 찾은 한국산수의 전형
이상범 - 토산에서 찾은 한국산수의 전형
1.
진경(眞景)의 의미는 상상 속의 선경(仙景)이 아니라 실재하는 풍경을 대상으로 삼아 그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실경(實景)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실경이 실제 풍경과 사실적 닮음을 포착한 것이라면 진경은 장소가 지닌 본질적 속성을 포착한 것이다.
서양미술에서는 시각적 재현과 본질적 추상이 서로 주도권을 다투지만, 진경산수화에서는 시각적 재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추상의 공허함으로 빠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구상과 추상정신, 감각과 지성이 조합된다는 것이다.
2.
이응노의 작품은 폴록의 작품처럼 전면균질회화가 되지 않고 그림의 위 아래가 있다. 인간과 자연의 융화는 그의 변함없는 주제였다.
교도소에서 밥과 신문지로 반죽하여 만든 작품 <구성(밥풀조각)>은 식물의 이미지와 인간의 형상을 융합한 것으로 자연과 인간의 분화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표현했다. 여기에는 분단의 아픔과 혈육마져 갈라놓은 편협한 이에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이러한 잠재태의 형상이 이후 자연 쪽으로 기울면 문자추상이 되었다가 인간 쪽으로 기울면 군상이 되었다.
4장 신명을 불사른 현대작가들
이응노 - 원초적 자유를 갈망하는 신명의 붓질
박생광 - 무속신앙에서 찾은 신명의 불꽃
이중섭 - 소로 구현된 한민족의 기백과 신명
천경자 - 신명으로 승화된 여인의 한과 고독
오윤 - 민초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신명의 춤
백남준 - 비디오로 굿을 하는 국제적 전자 무당
맺음말: 신명나는 문화독립운동을 꿈꾸며
내가 美學연구의 중심을 美意識에 두려는 이유는 미의식이 관념적 미학과 실천적 예술 사이를 중재하고, 참된 휴머니즘의 길로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예술은 원래 인격 수양을 위한 수단이었다. 사군자를 치고 시를 읊는 것은 모두 지식인들의 교양이었다. 미술이 필요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미의식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미의식은 나의 본성을 찾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술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일이다. 독자층도 적고 도판 저작권 해결도 어려운 데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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