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처럼 떠나다』

2016. 5. 30. 14:10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청색시대를 찾아서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피카소의 흔적들을 따라 가며 행복을 찾는 여행 에세이다. 피카소가 가난하고 절망 속에 살던 시절, ‘청색시대’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스페인 북부의 항구, 까다께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까다께스에서 청색시대의 푸른색과 다른 새로운 푸른색을 발견했고, 바로셀로나의 빈민가에서 좌절과 고통을 극복했다. 이 책은 피카소의 여정을 따라 피카소가 친구 페르난데스와 함께 몇 달간 머물렀던 까다께스, 피카소의 제2의 고향 바르셀로나, 항구 도시 시쩨에 이르기까지 세 장으로 구성하여 사진과 함께 풀어냈다.

 

 

 

저자 박정욱  : 1961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1984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현대문학 석사학위, 1992년 프랑스 파리 소르본 4대학에서 미술사 DEA학위, 1996년 프랑스 파리 소르본 4대학에서 고고학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색시대를 찾아서) 피카소처럼 떠나다

 

 

박정욱 지음

출판사에르디아 | 2012.05.25  

 

 

 

 

〈Cadaques 까다께스〉

 

 

행복한 사람은 혼자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예술적 취향이 달랐던 달리와
예술적 동지가 되어
해변에서 나를 돌아본다
그림 속으로, 자연 속으로, 끝없는 입체 속으로
까다께스의 끝자락 아라넬라 해변
어둠을 어루만지는 문 앞에서
달리와 피카소, 운명 혹은 우연
달리의 그림보다 더 몽환적인 해변의 풍경
정원에서 피카소를 보다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묻고
여기는 내가 누구인지 묻고
피카소가 좋아했던 시인 보들레르
피카소가 거닐던 길목에서 산책하기
지중해의 화가 마티스
흰 벽의 순수함을 갈망하다
비로소 자신을 긍정하고 욕망을 그린다
피카소의 미학에는 고전이 있다
인생의 실체는 희망 속에 있다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바다는 빛이 있고 사나운 감성이 있다
천천히, 서서히 색에 빠져드는 순간
피카소의 세 명의 악사를 닮은 건물
피카소의 시골 풍경
고독 속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다
아름다운 순간의 흔적들
내게는 아직 젊음이 있다
사하라 사막의 차 한 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사랑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


 

 


〈Barcelona 바르셀로나>

 


피카소의 방, 불사르고 싶은 삶
인간은 모두 변신을 꿈꾼다
피카소의 길을 걷다
일곱 개의 문 레스토랑
나는 왜 피카소를 찾는가
피카소의 그림자 앞에 서다
나는 추상화의 모호함이 좋다

 

 



〈아비뇽의 처녀들〉무대 속으로

 


까레 델 피 광장의 오렌지 나무
예술가의 우정
네 마리 고양이 술집에서
까레 델 비스베 골목에서
피카소의 뿌리를 보다
인생은 예술처럼 흔적을 남기는 것
피카소 미술관 골목을 나오며
가난한 자들의 자리
피카소의 청색은 어둠이 아니다
동심의 세계가 유리 가게에 있다
글과 그림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온다면
피카소는 왜 여행을 떠났을까?
바르셀로나타 항구의 아침
꽃에는 꽃잎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셔텨를 누르다
예술로 승화된 고통의 깊이
나는 세상을 보고 있다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비참한가
두 여인의 뒷모습
피카소에게 자연은 바다다
가슴을 짓누르는 푸른 멍
투우, 그 시적인 광경
스페인의 파리, 바로셀로나 예찬
행복이 아름다운 것은
불행의 한 부분이기 때문
피카소의 가슴속에는 스페인이 있다

 

 


〈Cize 시쩨>

 


내 마음의 여정이 끝나는 곳, 시쩨
이제야 피카소를 알 것 같다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고 싶은 것들
인생은 축제다
행복하라, 피카소처럼

 

 

 

 

 

 

까다께스에 와서 햇살이 마을 적시는 그 풍경을 보지 않았다면 그 희망이란 추상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발을 간질이는 햇살, 골목길로 흐르는 햇살, 벽 위에 쉬고 있는 햇살, 그것은 희망이었다.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짓은 어쩌면 부족한 진실이다. 거짓을 벗어나려면 그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 사회적 성공도, 돈도 모두 공상과 무지가 빚어낸 가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내가 현재 느끼는 것만이 진실이었다.

까다께스의 평화로운 마을이 내게 가져오는 그 순간의느낌만이 진실이었다. 나는 비로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과연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피카소 역시 그런 이유로 까다께스에 오랫동안 머물렀을 것이다.

 

 

 

 

참으로 이상했다. 너무나 평범한 이 풍경이 왜 이렇게 낯설게 보이는 것일까.

모든 것이 감자기 명쾌하고 한없이 샨쾌하고 즐겁기만 했다.

벽을 더듬는 장난기 가득한 햇빛,

색이 바랜 지붕 타일들의 순한 곡선들,

삐뚜름히 뚫린 굴뚝의 구멍,

완만하게 내려가는 지붕선이 적당한 크기로 잘려 내려간 절제미,

베란다에 심어진 화초들 사이로 말라버린 종려 가지,

벽 사이로 걸쳐진 마치 스케치의 선과 같은 전선들,

말아 올려 둔 차양,

높이 솟은 양철 굴뚝,

말이 드릴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둔 골목 양쪽의 베란다들,

무엇보다도 흰색과 어울리는 연한 하늘빛,

거의 마음을 완전히 비운 평상심을 깨닫게 만드는 풍경에 가까웠다.

그냥 걷기만 해도 道에 이를 것 같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 신비,

그것이 입체파의 비밀이 아니었을까. 낯선 이 신비가.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시인 보들레르가 없었으면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보들레르의 시를 알게 해준 사람은 친구, 시인 막스 자콥이었다. 가난한 파리 시절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그를 통해 사귄 친구들은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도, 앙드레 브르통, 모딜리아니, 조르주 브라크 등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로 불리던 이 예술가, 작가 그룹의 정신적 바탕은 19세기 랭보, 베를렌느, 보들레르의 상징주의에 있었다. 상징주의는 철저히 현실을 부정하고 아편 등의 환각제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몽환적 세계에 집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