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화 만화 에세이 『빨간 자전거』

2016. 1. 16. 10:58책 · 펌글 · 자료/문학

 

 

 

 

빨간 자전거. 1

 

빨간 자전거. 2 

 

 

 

『빨간 자전거』는 행복한 사연을 실어 나르는 한 우편배달부의 따스한 시선을 통해 옛날이야기처럼 정겹고 포근한 우리 고향 풍경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작고 아담하지만 사람 사는 내음이 살아 있는 ‘임하면 야화리’… 그곳에 매일 행복을 배달하는 우편배달부가 우리 이웃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저자 김동화 화백은 순정만화를 비롯해 활극 등 다양한 장르의 인기작품을 꾸준히 창작하고 있는 중견작가 김동화는 1950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당시 대중적 인기작가였던 김기백 선생의 문하에서 만화를 시작하여, 이후 차성진의 문하를 거쳐 1975년 김정의라는 필명으로 「소년한국일보」 공모에 『나의 창공』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데뷔, 1977년 만화가 한승원과 결혼한 후 1979년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다섯권의 작품을 통해 순정만화작가 ‘김동화’로 새롭게 데뷔했다. 그후 1980년 여고시대에 연재한 『내 이름은 신디』에서 일본 복제판 소녀만화에 열광했던 80년대의 순정만화 세대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 1982년 『아카시아』『목마의 시』 등으로 인기를 이어가며 그의 부인이자 만화의 파트너인 한승원과의 조화를 통해 80년대에 크게 유행한 특유의 캐릭터는 물론 주인공의 세밀한 감정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삽입 칸이나 겹침 칸과 같은 독특한 칸 분할 형식을 완성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순정만화의 초기 양식을 정착시켰다.1984년 「보물섬」에 연재한 『요정핑크』에서부터 김동화는 자신이 정착시킨 순정만화의 컨벤션을 거부하고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섬세한 화풍을 소년만화에 도입시키기도 했으며, 조선 풍속화의 전통적인 선을 복원하기도 하였다. 『황토빛 이야기』나 『황진이』 같은 작품들은 성인만화잡지에 연재되었지만,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보다는 미세하게 칸을 타고 흐르는 관능에 집중하고 있어 ‘한국 성인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 미국도서관협회 ‘청소년을 위한 만화 10선’에 선정되었으며, 《빨간 자전거》는 2005년 프랑스 비평대상의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대중적 인기를 버리고 장르적 실험에 들어가고, 다른 작가들이 펜을 놓을 때에도 계속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김동화의 작가정신은 대중들에게 커다란 매력으로 꾸준히 작용할 것이다.

 

 

 

 

 1

 

 

작가가 배달하는 첫 번째 이야기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우체국이 있습니다.

빨간 벽돌에 초록 담쟁이를 두른 조그만 우체국.

 

우체국 앞을 지날 땐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우체국 앞을 지날 땐 어느 가수의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체국 앞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하얀 종이에 파란 만년필 글씨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이로부터 편지를 받고 싶은 날은

내가 먼저 편지를 씁니다.

 

큰 내용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안부 편지에 시 한 편 더

써 넣은 편지를 들고 우체국으로 갈 때 내 마음은

어린 시절 용돈 모아 은행에 가는 것처럼 큰 부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김 동

 

 

 

 

 

 

x

 

 

 

 

 

 

언젠가부터 텅 빈 우체통

빈 우체통을 열 때마다

우편배달부의 가슴 속엔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어린 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엄마가 없는 텅 빈 집을 보는 것처럼

쓸쓸해집니다.

 

 

 

 

 

 

 

같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면서

옛동 사람들은 제값 받고 팔 품종을 생각하고

새동 사람들은 자라는 걸 보며 즐길 수 있는 예쁜 품종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쭉 사셨어요?"

-  "벌써 7대째요."

 

"그러시다면 어릴 때 꿈은 뭐였어요? 어른이 되면 이루고 싶었던 거."

-  "하나 있었구먼. 저 아래 개울가에 세 마지기짜리 밭이 하나 있었는데,

뒤에는 밤나무 숲에다 앞엔 개울이 있어  일하다 밤 따 먹고 손도 씻을 수 있어  너무 좋았지.

그래서 어른이 되면 그 밭을 꼭 살 거라고 생각했었수."

 

"사셨어요?"

-  "결혼 해 둘째 애 낳던 해 사고 말았쥬."

 

"그쪽은 꿈이 뭐였수?"

-  "아주 아주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거였죠.

큰 차를 타고 다니며 큰 집에 살며, 매일 밤 돈을 세며 밤을 새우겠다는 게 제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은 꿈을 이룬 거요?"

-  "아닌게 아니라 많이 벌었지요.

근데 가지면 가질수록 허기를 느끼니, 못 이룬 것 같기도 하고.... 이룬 것 같기도 하고....."

 

"그쪽에 비하면 나는 꿈을 두 배로 이룬 거라....

사실은 밤나무 밭 옆에 있는 밭까지 사고 말았거든. ㅋㅋㅋㅋ"

 

"그러고 나니까 더 큰 밭을 사고 싶지 않으세요?"

-  "내 나이가 몇인데? 더 많은 땅을 탐하다가는 이렇게 앉아 노을 보는 시간도 빼앗겨 버릴걸."

 

 

 

 

 

 

 

 

 

 

이런 그림은 작가가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구도일 겁니다. 

수채화로 제대로 그린다면 아주 예쁘게 나올 것 같아요.

만화책 한 장(두 페이지)에 대충 7컷의 그림이 들어가더군요.

이 만화책 『빨간 자전거』는 두꺼워서 350페이지쯤 됩니다.

그러면 한 페이지에 3컷의 그림만 잡아도 350 x 3 =  자그마치 1,000개의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예요.

그것도 스토리에 맞게. 얼굴 표정도, 집도, 경치도......

화가 될 생각, 아무래도 포기해얄까봐요.

 

 

 

 

 

x

 

 

 

 

 

 

"그건 그렇고..... 니네 결혼하면 사진틀은 어디에 걸까나?"

-  "안 걸으셔도 돼요."

"제가 예쁘게 앨범에 넣어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앨범 몇 개 더 사다 드릴테니 저 사진들 빼서 앨범에 넣어 주세요."

 

"왜?"

-  "촌스럽잖아요."

 

"그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자식들 잘 키웠다고 보란듯이 걸어 놓은 훈장 같은 겨.

드나들 때마다 사진 속의 자식들이 한눈에 쫙 들어오고, 얼매나 든든하냐?

왜 자식들을 책 속에 꽁꽁 숨겨놓고 본대니?"

 

 

 

 

 

"밥그릇이 짝째기면 어때서?  이 집에 시집 와 사기그릇 두 개 장만하고,

큰아이 낳고서 놋그릇 사고,

둘째 땐 양은그릇 사고,

막내딸 보고 스텐그릇 사고...... 식구 하나 늘 때마다 하나씩 산 그릇이니

모양도 틀리고 색깔도 틀리겠지.

그래도 난 이 그릇들을 볼 때마다 애들 보는 것 같아 좋기만 한데

짝이 안 맞아서 버리겠다고?

공책에 또박또박 써야 일기니?

이 짝째기 그릇들이 내 살아온 일기여, 이 망할 것아!"

 

 

 

 

 

 

 

 

 

 

 

 

"어쩌면 잘된 거지......

암, 잘됐구말구.

세상 팔도강산 지멋대로 돌아다닐 땐 어디 있는 줄을 아나,

보고 싶으니 볼 수가 있나,

목소리 듣고 싶으니 들을 수가 있나.

그런데 이젠 언제라도 보고 싶으면 면회 가서 볼 수 있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거기다 편지도 할 수 있잖아."

 

 

 

 

 

자식들 낳아선 잘 못먹여 미안하고,

자식들 다 키워놓고선 용돈 받는 게 미안하고.....

 

 

 

 

 

 

 

 

 

 

"농사꾼 생활은 먹지 대고 베낀 것처럼 해마다 똑같애."

 

 

 

 

 

봄은 한 가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봄을 맞는 모습은 천 가지 만 가지입니다.

 

 

 

 

 

"바람도 추웠나 보지. 얼마나 추웠으면 자네 품에 파고 들겠나?"

 

"3월이잖아. 바람도 사람도 숫자 앞엔 못 당하거든."

 

 

 

 

 

 

"자네 눈엔 이게 밭으로 보이는가?

이거 요술단지여.  이 안엔 없는 게 없단 말이지.

우리 아이들 등록금도 이 안에서 나왔지, 우리 할먼 환갑잔치 떡이며 고기며 술값까지 이 안에서 나왔지,

내 필요한 모든 게 이 안에서 나온단 말이여.

올해는 비행기하고 코끼리가 나올 거구먼. 태국인지 어딘지......"

 

 

 

 

 

 

 

 

 

 

 

 

 

 

2

 

빨간 자전거의 무대가 된 임화리는 지도에 없는 마을입니다.

풀 냄새 나는 사람들, 밭두렁보다 깊은 주름에 들꽃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들,

아궁이 앞에 앉아 밤새 군불을 때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

이렇게 그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보 처럼

한 땀 한 땀 이어 그린 도화지 속의 마음.

그 마을엔 아직도 빨간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의 휘파람 소리가 있습니다.

 

 

 

 

 

 

 

 

"마당 가득 신발을 봐.
우리들이 새끼친 게 이만큼이니
얼마나 대견해."
 
- 내 아버지 어머니도 이랬을라나? 나도 그럴까?
이런 생각은 통 못해봤구만.

 

 

 

 

 

 

 

 

"다른 집 자식들은 봄꽃이것지.

넌 바람, 비 지난 뒤에 피어나는 가을꽃이고......

아직은 너의 계절이 아닌데 마음만 급했구나.

어깨 펴 인마!  허허허!

살아 있으니까 흔들리는 거여.

살아 있는 나무라야 부러지지 않고 흔들리는 게야.

이 세상에 꽃이 피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겄어."

 

 

 

 

 

 

 

 

 

 

 

 

"하룻저녁 테레비 안 나오는 게 이렇게 갑갑하고 허전한데

그 옛날  전기도 없고 테레비도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나 몰러."

 

-  "그러니께 애를 일곱이나 낳았쥬."

 

 

 

 

 

 

 

바람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요.

부는데 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

햇살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따뜻한데 손을 대면 잡히지 읺는 ─

 

그냥 시냇물처럼 흘러가서 좋은 이야기.

언제라도 쉽게 책을 덮을 수 있고

언제라도 쉽게 꺼내 읽을 수 있는 편안한 만화.

 

그런 글능 쓰고, 그런 그림을 그리며 그런 내용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과 늦은 밤 전화통화처럼

작은 소리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김동화

 

 

 

 

 

 

 

 

 

 

 Beautiful Days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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