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5. 18:24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저는 이어령 이 양반, 말이 많고 경망되이 보이게 말을 빨리해서 별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데,
그러나 이 양반이 글을 쓴 걸 보면 다방면으로 박식할 뿐 아니라 그 풀어내는 재능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천재예요.
이 책에 실은 글은 20년쯤 전에 某신문에 기고했던 것이라는데, ‘어처구니 없이 지각’ 출판하게 된 책이랍니다.
맨 앞에 나오는「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시 해설만 우선 읽어봤는데도 “악!”소리가 절로 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단한 분석력, 시론입니다.
2015.09.10
책을 펴내며 *6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시의 숨은 공간 찾기*12
1부
진달래꽃-김소월, ‘사랑’은 언제나 ‘지금’*32
춘설(春雪)-정지용, 봄의 詩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42
광야-이육사, 천지의 여백으로 남아 있는 ‘비결정적’ 공간*50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것을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인데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그 말을 듣자 공자가 말했다. "형나라라는 말을 빼는 것이 좋다." 그 말을 듣자 노자가 말했다. "사람이라는 말을 빼는 것이 좋다." (어디에 있든 천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여씨춘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 '나라', '인간', '우주'의 네 가지 단계로 펼쳐지는 의식의 차원을 읽을 수 있다.시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데 있어서도 그 고사는 유효한 모델이 될 수가 있다. 이육사의 「광야」를 읽을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육사는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항일투사로서도 이름이 높은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사의 시라고 하면 으례 '일제에 대한 저항시'로 읽는 경우가 많다. 인수분해 공식처럼 '일제 저항'이라는 고정 틀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풀기도 한다.
자세히 읽을 필요도 없이 '눈 내리는 광야'는 식민지의 얼어붙은 한국 땅을, 그리고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은 이 땅의 해방과 독립을 가져오는 메시아이다. 그러나 이 시를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그 같은 해석이 얼마나 육사의 웅장한 스케일과 다양한 시의 세계를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불행한 일제 식민지 역사 때문에 시를 시로서 읽는 자유마져도 빼앗겨버린 데 대해 분통이 터지게 될 것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의 언어들은 '개인'과 '국가' 그리고 '인간'의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천지보다 깊고 보다 넓은 '코스몰러지'이다. (이어령)
또 다른 해석
1. 들어가는 말
"광야"는 일제 말기의 항일 시인인 이육사의 대표작이다.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분분한 실정이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인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의 경우에도 밝은 세계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김종길, 문덕수, 김흥규)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김용직, 오세영, 이승훈)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가난한 노래의 씨"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시, 내면적으로는 꽃씨, 눈이 덮인 땅이 언젠가는 꽃동산이 되리라는 신념"(김인환), "민족 해방의 날의 상징"(김용직), "삶을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근원적, 초월적 가능성"(문덕수) 등으로 의견이 대립되어 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의 제목이자 핵심인 "광야"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의 평자들이 별 이견 없이 "식민지 조선"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광야"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의 분분함도 "광야"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고도 "광야"에 대한 바른 해석의 시도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2. "광야"는 어디인가
김용직은 눈이 내리는 광야를 식민지 체제의 각박한 상황으로, 따라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민족 해방의 날로 설명하고 있고, 문덕수도 광야에 내리는 눈을 어두운 현실로 읽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평자가 "광야"의 시적 의미에 대해서는 별 이견 없이 식민지 조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이와 같은 해석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비유의 적절성 문제.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고 일컬어 왔듯이 우리 나라는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지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지형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어디를 가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평야는 드물다. 겨우 만경 평야 정도가 있을까, 하물며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고 한 광야는 우리 나라에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우리 나라를 비유하기 위해서 육사가 "광야"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억지스럽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광야는 어디인가? 필자는 그곳이 만주 벌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산맥들이 차마 범하지 못한 곳,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마침내 강물이 길을 열었다."라는 표현은 만주 벌판에서나 가능한 묘사이겠기 때문이다. 그처럼 광막한 만주 벌판이라면 가도 가도 인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그 넓은 곳에서 그야말로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그 만주 벌판을 독립 운동하느라 육사는 숱하게 다니면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역사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1)
그런데 광야가 과연 만주 벌판이라면 육사가 그곳에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야 할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만주 벌판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만주 벌판은 잃어버린 옛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 잃어버린 우리 역사의 터전이다. 우리는 일제에 의해 한반도를 잃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전 중국에 의해 만주 땅을 빼앗겼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소위 胡馬 朔風에 長嘶하는 나라, 무용의 땅이요, 영웅의 터전"(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인 만주를 잃은 후 우리 민족은 대륙을 호령하던 기상과 힘을 잃어버리고 우리 역사는 문약에 빠지고 말았으니, 조선이 맥없이 국권을 상실하고 만 것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만주의 상실과 어찌 무관하다 할 수 있으랴.
그렇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한반도에 국한된 식민지 조선만이 아니었다. 진정한 역사의 회복은 식민지 조선의 회복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만주 땅과 고구려 역사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나라를 잃고 먼 이국 땅을 헤매던 육사는 만주 벌판에 서서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넘어서서 고구려의 역사 회복까지도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 올랐을 것이다. "광야"는 그와 같은 벅찬 감격에서 우러나온 시가 아니었을까?
3. 왜 "가난한 노래"인가
물론, 일제 하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국권의 회복일 터, 아직 국권도 회복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주 땅의 회복이니 고구려 역사의 계승이니 하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허황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도 힘겨운 상황에 만주 땅의 회복은 실현될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더러 자칫 중국과의 관계까지도 악화시킬 수 있는 국제적 문제이겠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제 하에서 누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나 하겠으며, 꺼낸다 한들 그에 동조하고 고구려 회복 운동에 나설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모두가 다 잊어버리고 말면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는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될 터이니, 비록 당장의 실현 가능성은 적다고는 하더라도 누군가는 꾸준히 일깨워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만주를 말하고 고구려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난한 노래의 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돌보지 않지만 혼자서라도 지켜가야 할 작은 불씨 같은 것일 터이다.
시인으로서 그토록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육사의 심정은 또한 얼마나 외롭고도 비장했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아무도 동조해 주지 않아도, 심지어 국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허황된 이야기라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혼자서라도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육사에게는 그러나 신념이 있었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이 광야에서 자신이 뿌린 "가난한 노래"를 그는 "목놓아" 부르게 될 것이라는 신념. 이 얼마나 비장하고 숭고하며 위대한 신념인가?
아마 육사는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과연 만주 땅의 회복, 고구려 역사의 계승은 가능하긴 한 것인가? 묻고 또 물어서 그는 짧은 시간 안에는 불가능할지라도 언젠가는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인이 오는 시간을 육사는 "천고의 뒤"라고 했을 것이다.2)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가능할지 그것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중국 역사를 통해 나타난 수 없는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민족들의 이합집산을 생각해 볼 때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다가올 국운 회복의 기운, 그것을 육사는 시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옛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 벌판에 서서 육사는 초인이 오는 그 날까지 만주를 노래하고 고구려를 전하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사명이라고 가슴 벅차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4. 맺는 말
육사의 시 "광야"는 잃어버린 고구려 땅인 만주 벌판의 회복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풀린다. 적어도 육사가 노래한 것은 한반도에 국한된 식민지 조선의 회복만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도 다시 두 쪽이 날 수밖에 없었던 현대사를 돌아보면, 우리 역사의 근본적 회복은 만주와 고구려를 떼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음이 스스로 증명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고구려 땅을 되찾자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잊지는 않고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른바 동북 공정이라고 해서 만주 벌판에 산재한 고구려의 유적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인위적인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이다. 동북 공정이 중국의 의도대로 진행되면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만주 땅은 이제 세계사에서 중국의 역사로 완전히 "등기 이전"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잃어버린 옛 고구려의 땅과 역사를 되찾을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의 동북 공정에 대해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문학, 사회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대비하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회복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사의 "광야"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육사는 해방을 일년 여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가 생전에 못다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마저 뿌리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맡겨졌다. 지금도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이제 우리가 광야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언젠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나타나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는 그 날까지 가난한 노래의 불씨는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며 특히 문학이 감당하여야 할 십자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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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육사는 22세때인 1925년 독립 운동 집단인 정의부, 군정서,의열단에 입단하였으며 그 후 수차례 만주와 북경을 드나들었다.
주2) 만약 "광야"가 식민지 조선을 의미한다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찾아올 시간이 하필 "천고의 뒤"로 제시될 까닭이 없다. 실제로 육사는 의열단 단원이었고 북경의 조선 군관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17회나 투옥, 고문을 당했던 실천적인 독립 운동가였었는데, 그런 점에서 적어도 조국 광복의 시기에 대해서는 육사는 초월적 시간인 "천고의 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2004. 6. 28 行雲)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오직 침묵으로 웃음으로*58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봄과 여름 사이에서 피어나는 경계의 꽃*65
깃발-유치환, 더 높은 곳을 향한 안타까운 몽상*72
2부
나그네-박목월, 시가 왜 음악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80
향수(鄕愁)-정지용, 다채로운 두운과 모운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상자-*87
사슴-노천명,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알몸뚱이*96
저녁에-김광섭,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102
청포도-이육사, 하늘의 공간과 전설의 시간을 먹다*109
군말-한용운, 미로는 시를 요구하고 시는 또한 미로를 필요로 한다*116
3부
화사(花蛇)-서정주, 욕망의 착종과 모순의 뜨거운 피로부터*124
해-박두진, 해의 조련사*132
오감도 詩 제1호-이상, 느낌의 방식에서 인식의 방식으로*140
그 날이 오면-심훈, 한의 종소리와 신바람의 북소리*148
외인촌-김광균,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숨어 있는 시적 공간*156
승무(僧舞)-조지훈, 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일*164
4부
가을의 기도-김현승,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사계절*174
추일서정-김광균, 일상적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언어*182
서시-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189
자화상-윤동주, 상징계와 현실계의 나와의 조우*196
국화 옆에서-서정주, 만물이 교감하고 조응하는 그 한순간*204
바다와 나비-김기림, 시적 상상력으로 채집한 언어의 표본실*212
5부
The Last Train-오장환, 막차를 보낸 식민지의 시인*222
파초-김동명, ‘너 속의 나’, ‘나 속의 너’를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230
나의 침실로-이상화, 부름으로서의 시*238
웃은 죄-김동환, 사랑의 밀어 없는 사랑의 서사시*248
귀고(歸故)-유치환, 출생의 모태를 향해서 끝없이 역류하는 시간*255
풀-김수영, 무한한 변화가 잠재된 초원의 시학*262
새-박남수, 시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271
덧붙이기
시에 대하여*280
집이라 할 때 떠오르는 것은 모두가 그 외관을 뜻하는 건축 양식일 겁니다. 어떤 집이든 외양이 아니라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어진 것인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내부 공간이 집의 주된 공간인데도 집은 항상 조형된 외부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유명 건물들이 그렇고 우리가 다녔던 학교라는 집도 교문과 바깥 건물 모양으로 남아 있지, 내가 앉아 있던 책상이나 천장과 기둥 같은 것이 아니지요. 자기 집이라고 하면 내부 공간을 생각하십니까, 바깥 건축 모양을 생각하게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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