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호 -『객주』(劇畵)

2015. 11. 10. 09:24책 · 펌글 · 자료/문학

 

 

 

 

이두호의 작품은 현대인의 생활보다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민초들의 삶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500년의 조선왕조가 기울어져 가는 조산 말 탐관오리들이 폭정을 휘두르던 때,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전국을 떠도는 백성들의 恨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몰락한 양반의 여식으로 기생이 된 아녀자, 노비, 백정, 들병이, 각설이.., 그리고 마름에게 아들 딸도 빼앗기고 쓰러져가는 초가삼간도 빼앗겨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은 온갖 천덕꾸러기들이 중심인물이다.

작가는 왜 이들에게 눈을 돌렸을까?

 

재물과 권력을 갖기 위해 자아를 상실하고 온갖 비열한 짓을 일삼는 인간의 욕심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힘겨워하면서도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양심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는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공히 화두가 되는 이 줄다리기를 만화가 이두호는 20세기와 21세기를 상아왔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두호의 작품 속에는 지금 현 사회와 똑같은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이 그대로 살아 있다.

 

역사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한다. 하찮은 신분의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팢아가며 가족을 지키고 인간의 도리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었음을 주장한다. 이렇듯 <객주>에는 현대인의 힘겨움을 위로하고, 불의를 폭로하면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유추하게 하는 메타포가 숨어 있다.

 

 

- 백정숙(만화평론가)

 

 

 

 

 

 

 

 

 

 

 

 

 

 

요즘에야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으니까 그럴 일이 없겠지만

10년 전만해도 만화라면 한두 단계 아래로 낮춰보는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는 예전부터도 만화를 문학과 미술 중간 장르, 이중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어요.

지금은 만화 제작과정이 분업화 돼 있다더군요. 그렇더라도 마찬가지죠.

각설하고,, 제가 이두호 만화를 꽤 많이 본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더군요. 

『머털도사』는 TV만화로 봤고, 객주 꺽정 장독대는 본 기억이 있고,

바람소리 열두 대문 덩더꿍은 가물가물한데,

암튼 이두호 ‘극화(劇畵)’『객주』는 원작인 김주영의 ‘소설(小說)’『객주』못지 않습니다.

요즘 TV드라마에서 장사의 신’『客主』를 합디다만 전혀 비교대상이 안됩니다.

원작으로서의 가치를 제외하고! 재미와 감동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저는,

소설『객주』, 만화『객주』, 드라마『객주』를 10 : 11 : 3 정도로 봅니다.

(代父Ⅰ과 代父Ⅱ의 관계라고나 할까?)

암튼, 만화 객주도 소설처럼 10권인데, 만화책이라고 해서 절대로 설렁설렁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서 빌려보려니까 연이어 본다는 것이 쉽지가 않군요. ㅋㅎ

 

 

 

 

 

 

 

객주 세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기념비적인 작품 『객주』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세트』 전10권.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한 획을 그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후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 개정판은 서울신문과 교보문고에서 연재되는 마지막 10권과 함께 순차적으로 출간되어 연재 종료와 동시에 총 10권으로 완간되었다.
이 소설은 1878년부터 1885년까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담아냈다. 정의감과 의협심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삼아 보부상들의 유랑을 따라간다. 경상도 일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피지배자인 백성의 시선으로 근대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객주’는 금융업, 유통업, 창고보관업 및 물류업을 하던 장소이자 그런 행위를 하는 상인을 말한다.

 

 

저자 김주영

저서(총 31권)

김주영 

 

20대부터 30대까지 16년 동안 엽연초 조합의 4급 주사 경리 직원으로 이름없이 살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얼마 뒤 그는 소설가로 제 이름을 알리는데, 그가 바로 김주영이다.『객주』를 통해 ‘길 위의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활빈도』『화척』 등의 대하소설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우리 시대의 거장 김주영.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탁월하게 재현해내는 작가이다."봉봇방 구석"으로 밀려난 민중 생활의 세부를 풍부한 토속어 문체로 되살려 낸 『객주』는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량이 유감없이 빌휘된 김주영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우리 소설상의 큰 성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화석으로 굳어가는 조선 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발굴하고, 당대의 풍속사를 유장한 서사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평론가 황종연은 『객주』를 두고 "신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상인들의 모험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코드, 숱하게 많은 모략과 술수의 이야기들은 의협 로맨스의 코드, 저잣거리를 비롯한 사회적 장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풍속 소설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객주』는 조선 말기의 특정 집단을 내세워 당대 풍속사를 꼼꼼하게 그려낸 작품일 뿐더러, 더 나아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루어진 봉권 권력 집단의 와해와 사회 질서의 재편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한 작품이다. 『객주』에의 곳곳에는 당대 상업의 현황, 다시 말하면 특권 상업 체제인 시전, 그것과 대립하는 사상 도가와 난전, 전국 각처의 외장, 객주와 여각, 금난전권, 매점 매석, 밀무역, 개항 이후 왜상의 진출 상황 등 조선 말기의 물화의 생산과 유통의 양상이 사실적이며 박물적으로 그려진다. 김주영은 절륜의 술실력으로 유명하다.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또한 김주영은 여행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소설에서 번 돈을 모두 여행에 쏟아부었다고 틀린말이 아니다.

 

 

 

 

객주 세트(전10권) 

한국 역사만화의 대표작 13년 만에 전격 재출간!

김주영의 동명소설 《객주》를 한국 만화의 대가 이두호가 새롭게 구성하고 그려낸 역사만화『객주』세트. 원작소설의 묘미와 만화의 장점을 훌륭하게 살린 작품으로 한국 역사만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혀왔다. ‘작가들의 우리말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순 우리말, 은어, 사투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 책은 오늘날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데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으나 특별히 이번 개정판 전집에는 ‘객주 우리말 사전’이 수록되어 있어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 이두호

저서(총 61권)
 
이두호

 

장독대 성공기: 이두호 만화사

김낙호(만화연구가)

이두호의 만화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바지저고리’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의 만화를 많이 본 경우든 한 두 개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경우든, 한국의 혼을 담는다든지 하는 여러 찬사들을 이어간다. 그런데 약간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의 진정 흥미로운 지점은, 그런 식으로 어떤 공통된 이미지가 쉽게 떠오른다는 것이고 또한 떠오른 이미지가 정말로 이두호 만화의 대체적인 특성을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사실 자체다. 다른 인지도 높은 대가급 만화가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든지 허영만의 ‘타짜’라든지 어떤 인상적인 작품 타이틀을 쉽게 떠올리기는 하지만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는 잡아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만큼 수 십년간 독특한 인지도와 차별화되는 색을 유지해온 것이 바로 이두호의 작품세계이며, 단순하게 바지저고리 만화라는 흔한 수식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성공과정이다. 이번 기회에 간단하게나마 그 흐름을 살펴보고,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만능만화가로 시작한 70년대

 

이두호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개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만능만화가로 활약한 70년대,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 확고해진 80년대 이후가 그것이다. 현재 이두호의 이미지로 굳어진 우직한 한 우물 파기와는 달리, 69년 데뷔 후 70년대를 관통하는 그는 실로 만능만화가라는 호칭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한 방향의 작품들을 시도했다. 화가의 꿈을 접고 미대를 휴학한 후 68년부터 박기정의 문하생으로 만화의 기본을 다진 그는, 69년 ‘소년중앙’의 창간과 함께 데뷔를 했다. 소년중앙은 ‘새소년’이 개척한 소년소녀 교양잡지(를 표방한 사실상의 만화잡지)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던 상황인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탄탄한 기본기로 가장 유행하는 장르들을 다방면으로 소화해낼 신진 작가군에 대한 수요가 생긴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이두호는 ‘투명인간’이라는 SF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만화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 다양한 인기 장르를 자유롭게 거쳤다. ‘폭풍의 그라운드’, ‘유령타자’ 등 인기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스포츠물은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뛰어라 까목이’, ‘무지개 행진곡’ 등 생활 드라마도 당대 인기장르로서 같이 작업했다. 나아가 ‘이층집 소녀’, ‘언니야’ 같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순정만화의 취향에 더 가까울 작품들도 만들어냈으며, 인기 있는 영화 혹은 드라마를 원작으로 만화로 각색한 작품들인 ‘6백만불의 사나이’, ‘벤허’, ‘쿵푸’, ‘뿌리’ 등도 탄생시켰다.

이 시기 이두호 만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실력을 키워나갔다. 하나는 당시 상당수 인기 장르 극화들이 그랬듯 일본작가 치바 데츠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간략하고 둥그런 그림체의 표현과 드라마틱한 내용 전개다. 일례로 당시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무지개 행진곡’은 당시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치바 데츠야의 ‘1,2,3과 4,5,로쿠’라는 작품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놓여있다. 다만 사실상 그 작품을 그대로 표절한 것에 가까웠던 이원복의 ‘오똑이 행진곡’과 달리, 그림체 및 캐릭터 설정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뿐 내용은 독자적으로 전개한 식이다. 해외 유명 작품에서 설정과 캐릭터를 가져와서 독자적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덕분에 일본의 프로레슬링 만화 ‘타이거마스크’의 주인공은 한국 버전에서는 무려 군대에 입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체는 특별한 개성보다는 당대 가장 인기 있었고 또한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따라하고 있던 치바데츠야식 화풍에 가까웠고, 덕분에 당시 널리 퍼져있던 관행 가운데 하나였던 동료 작가 작품 도와주기 방식을 유용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일례로, 중앙일보 김필규 기자의 인터뷰 후일담에 따르면 70년대 말에 2년여동안 전국 그림기행을 다니는 동안 그의 연재물은 한희작 작가가 대신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두호는 한 쪽 방향만을 파고들지 않았다. 좀 더 거칠고 덜 카툰화된 선을 구사하는 작품들이 그의 다른 시도로, 영화와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극화가 그것이다. 이 장르는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로 된 작품을 어린 독자층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화로 표현하는 식인데, 원작이 실사인 만큼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도 원작의 얼굴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화풍이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개조인간 스티브 오스틴, 서양에서 온 무술 승려 케인, 노예 쿤타 킨테까지 모두 강한 카툰화법으로 희화화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운 주인공들이었다. 다만 캐릭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끌고 갈 경우 등장하는 새 캐릭터는 마음껏 편하게 그리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6백만불의 사나이’의 경우처럼 거친 극화풍의 오스틴 대령이 강하게 카툰화된 꼬마 여자애를 안고 가는 장면도 쉽게 등장하곤 했다. 두 가지 방식의 작업 속에서, 그의 그림체는 점차 전반적으로 거친 선을 구사하는 극화풍으로 발전해가면서도 동시에 간략한 선화의 부드러운 느낌을 잃지 않는 쪽으로 수렴되어 갔다.

지속적인 인기 속에 작품을 연재하던 이 시기에 도식화된 다작을 통해서 재능을 쉽게 소진시키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지속적으로 다방면에서 실험한 것은 작가의 이후 작품 활동에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익힌 연재 감각과 폭넓은 화풍, 원작의 독자적 각색을 통해서 얻은 이야기 솜씨, 그리고 여기에 애초에 서양화 화가를 지망했던 강한 동기부여는 그로 하여금 70년대 말에 심경을 정리하게 했다. 그리고 2년여의 전국기행 후 만화가로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자신만의 개성, 뚜렷한 화풍과 전문장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사극에 몰입하다

 

80년의 ‘암행어사 허풍대’는 새로운 이두호를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필두로 그는 다시 만능만화가의 역할을 바라는 편집자들의 바람을 거절하고, 조선조 사극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집중하기를 고집했다. 다행히도 사극이라는 틀은 시대적 소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자면 모험극화부터 학습성 명랑만화까지 충분히 여러 가지 요소로 표현될 수 있는 폭넓은 장르였고 이두호라는 작가의 작품 품질은 이미 검증되어 있기에, 편집자들은 그의 이런 선택을 결국 받아들였다. 이두호는 70년대의 만화 활동에서 확보한 입지를 단순히 인기 유지를 위해 소진한 것이 아니라, 편집자들에게 자신의 전문분야를 실험할 수 있도록 용인 받는 도구로 사용한 셈이다. 그 후 그는 일본의 시대극 전문 만화가 시라토 산페이의 거친 선과 꽉찬 구도로 이루어진 화풍을 본격적으로 습득하기 시작했고, 모방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던 초기의 학습 시기를 지나 점차 자신의 화풍으로 정리해내게 되었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완성된 이두호식 화풍은 비유하자면 짚신을 닮았다. 선 굵고 살짝 둥글게 덩어리진 윤곽의 형상, 그것의 세부를 이루는 거친 잔선, 칸 속에 존재감을 가득 채우는 캐릭터 구도, 그 자체만으로는 수수해보이지만 간혹 전체 배경으로 시선을 옮기면 최대한 세밀한 디테일을 꽉찬 구도로 보여주는 구축샷 등은 마치 초가집에 갖 꼬아서 걸어놓은 짚신을 연상시킨다. 거친 선을 통해서 오히려 칼의 날카로움을 돋보이게 했던 시라토 산페이의 영향력은 더 이상 연결 짓기 힘들고, 캐릭터의 얼굴들 역시 매끄러운 둥근 선이 아닌 거친 잔선으로 강인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흔히 그의 그림에 대해서 한국적 감성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유려하고 고운 선의 정서 혹은 현란한 구도의 민화 형상이라기보다 거칠고 우직한 짚신의 정서다. 이것은 많은 연습량을 필요로 하고 특정 장르와 감수성에 최적화된 필체이기 때문에, 폭넓게 보급되기 보다는 한 작가만의 개성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조선사극에 대한 작가의 몰입 선언은 81년 주간중앙에 연재를 시작한 ‘바람소리’를 통해서 더욱 확고해졌다. 80년대의 유명작가들은 자신의 대표 캐릭터를 만들어내서 여러 장르의 작품에 중복 출연시켰는데, 이현세의 “설까치” 오혜성, 허영만의 이강토, 강철수의 발바리, 고행석의 구영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마치 한 명의 인기배우가 여러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스타성을 활용하듯 브랜드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이두호는 장독대라는 조선조 사극 캐릭터를 자신의 대표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이강토는 근현대사의 격동을 살 수도 있고, 기업총수가 될 수도 있고, 락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독대는 성격도 스타일도, 어떻게 해도 조선사극이라는 장르를 벗어나기 않는 캐릭터다. 결국 대표 캐릭터를 통해서도 이두호 만화는 조선사극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하게 되었다.

물론 사극 분야 안에서는 나름의 다양성을 추구하여, 연재 지면의 속성에 따라서 다시금 아동/청소년 대상 모험활극과 성인용 극화로 작품 성향이 분화되었다. 나아가 명작만화류 역시 작업한 경력을 살려서, 학습지 등에 교양만화 스타일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아동모험물의 가장 대표적인 – 즉 작품성향의 특징들을 가장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은 85년작 ‘머털도사님’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선 무엇보다 놀랍도록 완성도가 높은 오락물인데, 수련과정을 통한 성장물의 코드, 매력적인 라이벌 구도, 도술 승부, 약간의 로맨스 등의 필수요소들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속에 작가 특유의 개성으로 인간사에 대한 낙천성, 수난을 겪지만 여전히 약간 헐렁한 성격의 투박한 주인공, 민담을 연상시키는 해학을 구사한다. 그림체 역시 거친 표정보다 아직 둥근 선이 남아있는 얼굴을 구사하여 캐릭터성을 극대화하는 등, 히트작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충족시킨다. 덕분에 실제로 큰 히트를 쳐서 이후 ‘머털도사와 또매형’ 등 별도의 후속편도 탄생시켰고, 나아가 TV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편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분류의 작품들은 모험물이나 교훈적 드라마 위에 사극의 배경을 씌우던 기존의 주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두호만의 독보적인 경지에는 도달했다고 보기 힘들다.

이에 비해 성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 만화지 혹은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는 작품의 경우, 한층 본격적인 개성으로 사극 탐구에 들어갔다. ‘머털도사님’과 동시에 작업했던 85년의 스포츠조선 연재작 ‘째마리’에서 그는 고증이라는 영역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옛 사람들의 고어를 재현하여 독자들의 이해와 괴리되지 않기 위해 각주를 달아야 했으며, 당대의 생활풍습을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성인층 대상의 사극에서 이두호는 캐릭터들에게 거친 잔선을 바탕으로 한 굳은 표정을 부여했고, 기구한 인생역정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두호의 성인 극화 사극은 88년 주간지에서 연재를 시작한 객주, 91년에 스포츠조선에서 시작한 임꺽정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서 정점을 이루었다. 두 작품 모두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 원작들보다 한층 전체 사건의 드라마틱한 흐름보다 개별 캐릭터들의 인간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이두호식 사극에서 다루는 것은 궁중 권력 암투도 민중들의 혁명도 아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무대로 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인간사에 집중한다. 이것은 완연하게 궁중드라마 위주였던 90년대 초반까지의 TV 사극 드라마들과 큰 차별점이었으며, 80년대 민중주의적 시각을 한껏 흡수하여 민중혁명을 중시하는 시각의 사극을 그린 백성민 등과도 차별화된다. 혹은 마찬가지로 사극을 통해서 인간사를 이야기하지만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초월자적인 관점에서 훈수 두기를 즐기는 고우영과도 달랐다. 나아가 초월적인 영웅의 측면마저 이두호의 손길에서는 약해졌는데, 이런 점들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임꺽정’이다. 이두호가 그려내는 임꺽정은 민중적 영웅의 상징이 아니라 강하기는 하지만 그저 약점 많은, 또 다른 한 명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일 뿐이다. 강력한 도적 영웅으로 묘사되곤 했던 여타 임꺽정 작품들과 달리, 이두호의 만화에서는 두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약간은 천박하고 인간적이며 은근히 소년같은 치기가 있는 인간 임꺽정이 끝까지 펼쳐진다.

이두호의 성인 사극은 이렇듯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사극 전문 작가로서의 이두호 이전에 이두호식 사극이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성인 사극에서 다진 고증이나 연출의 일부는 아동 사극에 다시 반영되기도 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의 청소년 만화 지면 자체가 특정 취향에 과도하게 몰입했기에 이두호식 청소년 사극 모험물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상 뜸해졌다.

 

전문성의 의미와 힘

 

결국 80년대와 함께 시작한 사극 몰입은 성공적이었고, 90년대에 ‘임꺽정’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의 전문성이 하나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구축할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몰입은 어떤 면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한 선택이었다. 당시 유명 작가들은 잡지연재와 함께 급격하게 성장한 대본소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면서 작업량을 늘이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 결과 다양한 유행 장르를 동시 진행함은 물론 화실을 확장하여 거의 공장제에 가까운 작업방식을 구사하곤 했다. 작가가 작품의 창작자라기보다는 분업에 의하여 공산품에 가깝게 생산된 것에 부여하는 브랜드 상표 같은 경지에 도달하기 쉬웠다. 이런 방식은 물론 장르 오락물의 관점에서 효율적인 작품이 양산되기는 했지만, 품질 측면에서 큰 약점을 드러내기도 해서 결국 90년대 초반의 새로운 잡지 및 단행본 시장의 대두와 함께 급격하게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두호의 경우는 애초부터 그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부침의 과정에 사실상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극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몰입과 그림 자체에 대한 집착은 분업화된 팀보다 개인 작가 중심의 작업을 선호하도록 만들었고, 인기를 구가하며 늘어난 작업량 속에서도 그 방향을 끝까지 고수했다.

스스로를 기업화하지 않은 행보는 다시금 사업적 성공보다 자신의 전문 장르를 깊게 파고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사극을 고수했기에 이두호는 기업극화와 스포츠물, 조폭물 등으로 지속적으로 부침을 겪고 방향을 선회한 장르 유행에 올라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사극이라는 분야 안에서도 환타지 고대사나 무협의 맥락으로 가지치기하지 않고 조선시대 인간사라는 영역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덕분에 다른 많은 작가들이 그저 “재미있는 만화”로서 모호하게 포지셔닝을 하는 동안, 이두호 만화는 특정 장르 및 내용 성향과 연관된 뚜렷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유행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되 항상 보편적인 수요가 있는 인간사 사극에 꾸준하게 매달린 결과, 80년대 성인만화계의 부침도 90년대의 급격한 세대 및 장르 교체의 물결도 그를 비켜 갔다. 작가 또한 단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더욱 깊게 파고들어서 고증을 더하고, 세계를 구축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세련화했다. 특유의 다부진 몸매를 지닌 5등신 캐릭터들의 표정과 몸짓은 더욱 풍부해져서,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후발주자도 따라잡기 힘들 리드를 다졌다.

이렇듯 이두호는 그저 단순히 조선사극 하나만 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분야로 개척했다. 특히 그 분야 내에서 자기 특유의 색을 가지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는 것에 관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이런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95년 ‘우리교육’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봉준만 그리려고 해도 왜놈이 등장해 계급장도 그려야 하는데 그 작업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고, 내 선(線)이 거기에 적당치 않다. 고구려나 신라는 자료가 너무 없어 그리기 힘들고, 내 폭이 좁아서 그렇다. 그러나 동학은 거기에 관심 많은 백성민이 그리면 되고, 개화기오세영이 그리면 되지 않느냐. 하나 하나 자기에게 적합한 점 하나만 찍으면 되지, 지 혼자 역사의 선을 다 그을 수는 없는 거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에 최대한 집중한다고 해서 작품 활동의 과정에 기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임꺽정’의 후속편에 가깝게 기획되었던 야심작 ‘파행’의 애매한 전개와 조기 종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2000년대 들어서 뚜렷한 인상을 남긴 장편이 아직 없다. 1인 작업의 작업량 한계, 한국 만화계의 중견으로서 학교 현장의 후학 교육이나 단체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창작의 흐름이 중단된 것 등의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수의 80년대 인기 작가들이 불행히도 겪은, 90년대 이후 만화 장르의 시대적 호흡에 적응을 실패하고 완전히 뒤처지게 된 모습은 없다. 여전히 이두호 = 조선사극, 조선사극 = 이두호라는 등식이 일관되게 건재한 것은, 그만큼 확고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깊이로 다져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성을 장착하는 만큼, 나머지 부분에서 여유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장르에 갈팡질팡할 것 없이 그 분야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더욱 파고들다 보면 비단 조선극화라는 장르틀이 아니라 만화 일반으로서 더욱 강력한 표현력이 다듬어진다. 큰 구도와 여백을 잃지 않으면서 점차 존재감이 강력해지는 그림, 인간 본성에 대한 해학적 여유가 가득한 2007년작 ‘가라사대’를 보면 이런 점이 명확해진다. 탄탄한 그림과 느슨한 여유가 있는 연출 감각 등은, 같은 잡지에 연재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여러 시도를 가볍게 압도하곤 했다. 덕분에 에피소드 방식의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가장 우직한, 성공의 한 가지 방식

 

요약해자면, 이두호 만화의 성공과정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직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많은 장르를 섭렵하며 실력과 기본적인 명성을 다진 후,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나의 전문분야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분야 안에서 최대한 장인적 완성도를 추구하고, 시대적 부침에 휘둘린 여타 작가들과 차별화된 확고한 포지셔닝에 성공한다.

물론, 이런 것은 분명히 특정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모든 이들이 어떤 장르에서라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분명히 장르나 작가의 개성에 따라서는 시사적인 감각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고, 끊임 없이 전위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원고 제작 페이스가 빨라야 해서 협업이 필수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우직하고 기본적인 성공모델을 한번쯤 참조할 필요가 있다면, 이두호 만화의 흐름은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는 중요한 모델로서 후배 작가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조선을 그린 이두호
김기홍 외 지음/씨엔씨레볼루션

Copyleft 2010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출처 bagdard님의 블로그 | bagdard
원문 http://blog.naver.com/bagdard/140001927162

 

제목 : 흐르는 물처럼 시대에 스며든다
부제 : <객주> <임꺽정>으로 만나는 이두호의 만화 세계


<객주> 전10권 | 바다그림판
<임꺽정> 전32권 | 자음과 모음

임꺽정의 나이 열여섯. 어딘가 조금 모자란 형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양반집 도령들의 놀림을 당하자 꺽정이 나선다. “나를 사람 잡는 백정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이리 오셔서 걷어찬 다래끼에 물고기를 다 주워 담으시오!” 이때의 꺽정은 아직 가는 곳마다 천민을 옥죄는 세상살이에 익숙지 않던 나이. 황해도 구월산에서 관군에게 패해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것도 먼 훗날 이야기다. 어떻게 그런 과정을 겪는지 궁금하다고? 글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짚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메주 뜨는 냄새 같기도 한 우리네 옛 삶의 내음이 살아 있는 이두호의 만화와 맞닥뜨리면 중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피할 방법이라면 만화 <임꺽정>의 서문에 쓰인 박재동 화백의 추천사처럼 오직 “그놈의 책장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원작의 뼈대에 숨결을 불어넣은 만화


한국 역사만화계의 대부 이두호의 역사만화 <임꺽정>과 <객주>가 최근 비슷한 시기에 재출간됐다. 10년 만에 출판사 바다그림판에 의해 양장본으로 부활한 <객주>는 전10권으로 맺음하며 <임꺽정>은 21권이 나오고 절판됐던 종래의 버전을 출판사 자음과 모음에서 전32권으로 완결할 예정이다. <임꺽정>과 <객주> 모두 명확한 고증과 사관이 돋보이는 원작을 만화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두호는 자기만의 만화적 방식으로 시대 풍자의 칼날을 드높인다. 원작에 담겨 있는 작가의 혼을 해치지 않으면서 만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저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간 <매주만화>에 연재됐던 만화 <객주>는 원작자 김주영이 동명소설에서 “살고 싶은 만큼이나 죽고 싶은 애옥살이”라고 표현했던 말 그대로 안동과 경주, 하동, 전주, 강경을 돌고 도는 보부상 천봉삼의 여정 속에 배신과 음모, 질긴 인연과 애뜻한 정, 교묘한 반전을 엮어놓는다. 원작소설의 사실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아무래도 만화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만화가 됐지만 그의 만화 세계에서 그것은 결코 한계 상황이 아니다. 소설가 김주영이 5년 넘게 장터를 유랑하며 모아놓은 조선 말기 보부상들의 입내가 이두호가 입힌 그림과 첨가한 글들로 온기를 얻었다. 그게 다 자나깨나 두터운 국어사전을 외우다시피 해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메모해놓은 공책만 수십 권에 달했을 정도로 고증에 매달린 작가 이두호의 노력의 결과다. 어떤 이들은 이두호의 만화를 대충 그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의식주에 얼마나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만석꾼의 곳간부터 백정이 사는 초라한 초가집, 보부상들이 머무는 한갓진 주막까지 기와 한 장, 문살 하나하나에 정성을 새겨넣는다. 여인의 버선이나 머리 장식, 걸인들의 때에 찌든 옷가지까지, 어떤 때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가 그 인물들을 자신의 아비이자 자식이요, 누이이자 아내로 여길 만큼의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TV와 소설, 만화,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다루어진 임꺽정의 경우도 그렇다. 소설 <임꺽정>을 각색해 '스포츠조선'에 연재했던 고우영의 <임꺽정>은 속담과 농담을 빌은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졌고, 방학기의 <임꺽정>은 한 시대를 문화와 풍속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에 비해 이두호의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의 원작에 충실해 무지렁이 백성들과 관군의 대립을 비롯, 신분간의 갈등을 보다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임꺽정이라는 인물이 내포하고 있는 반영웅적 이미지를 활극의 요소까지 삽입해 더욱 강하게 살려낸다. 소백정의 아들 임꺽정은 당연히 소를 잡는 쇠칼을 배워야 했지만 그는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제민도’를 손에 쥔다. 그의 존재는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밟히고 차이면서도 묵묵히 살아온 우리의 뿌리를 돌아보게 한다. 의적일 수도 있고, 화적일 수도 있으며, 영웅일 수도 있는 임꺽정. 작가의 상상 속에서 무엇이든 다 될 수 있었던 그는 부패한 사회에서 신분상승을 노리다 실패한 백정의 아들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작가 이두호의 손에서 그는 억울함에 분노하고 굴욕에 저항한 영웅으로 살아난다. 

능란한 연출로 민심을 토닥이는 만화


조선시대 선과 악의 대립구조는 바로 권력과 재력의 유무,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끓어오르는 한을 주체할 수 없어 칼부림과 약탈이 횡행하던 시대를 묘사하면서 작가는 주인공 천봉삼과 임꺽정을 통해 오직 한 가지, 인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물인 천봉삼이나 재물에 눈이 어둡고 언제든 빠져나갈 궁리를 모색하는 약아빠진 길소개는 모두 우리의 숨겨진 모습이기도 하다. <임꺽정>과 <객주>를 관통하며 그의 다른 작품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은 민초들의 그토록 원했던 ‘평등함’이다. 그 갈망은 페이지마다 꿈틀거리며 보는 이의 눈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두호의 만화 세계에서 보다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은 민심이 흉흉한 시기에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전국을 부초처럼 떠돌며 살았던 당시 백성들의 모습 그 자체다. 몰락한 양반의 자식으로 기생이 된 여자, 국밥집에서 술을 따르며 손님이 돈 없이 내빼지나 않을까 눈치를 살피는 주모, 무거운 방물고리를 등에 지고 나루터와 장터를 오가는 많은 도부꾼들, 그들의 쌈짓돈을 노리는 한 많은 화적떼들, 종년의 신세를 면하고 싶어 나이 많은 상인에게 몸을 맡기는 여인네... 책을 펼치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의 사연이 가슴으로 흘러들어온다.
독자가 그들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두호의 탁월한 연출력이다.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호흡을 가지고 전개되는 <객주>와 <임꺽정>은 방대한 등장인물들을 순식간에 칸 속으로 불러낸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반전은 몇십 부작 대하드라마보다 오히려 그 속도가 빠르며 장면 전환과 연결도 명쾌하다. 주인공 천봉삼이 평생의 인연인 여인 ‘조소사’를 만나 정분을 나누는 동안 젓갈장수로 분한 길소개가 그의 누나 천소례와 맞닥뜨리는 장면은 교묘한 복선이 되어 훗날의 위기를 암시한다. 밑바닥 인생들의 설움 대신 한 거상의 일대기에만 초점을 맞췄던 <상도>나 온갖 인물들이 한 얘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끌던 <왕건>은 이두호 만화의 연출에게 배울 점이 많다. 종종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컬러로 멋지게 채색된 유럽 만화들의 ‘아트발’에 현혹되어 무채색의 한국만화를 무시하곤 한다. 칸과 여백의 구성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이두호의 만화에 비하면 유럽 만화와 ‘그래픽 노블’은 왠지 색소에 물든 불량식품 같다. 

 계승자가 필요한 만화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이두호 만화의 복간에 출판사가 ‘만화의 고급화’ ‘소장가치가 있는 만화’라는 슬로건을 부르짖으며 내놓은 하드 커버에 좀 딴지를 걸고 싶다. 양장본 <객주>는 잠재 독자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절판됐던 작품들을 정성스레 포장해 재발간한다는 의미는 크지만 쉽게 접근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책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장욕을 고취시키기보다 많이 찍어내 접할 기회를 확장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못내 아쉬운 점이 하나 더 있다. 이 '바지 저고리' 시대 만화를 이어줄 젊은 만화가 세대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그의 노하우를 물려받아 때묻고 살 냄새 나는 바지 저고리를 그려줄 신세대 작가들이 이 복간된 책을 보며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엉뚱한 것일까? 홍대 서양화과 입학 후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학교를 중퇴했고, 80년대부터 끊임없이 역사만화만을 고집해온 이두호에게도 이제 대를 이어줄 적자가 필요하다.
과거는 때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를 뒤돌아보는 이두호의 만화는 다르다. <임꺽정>과 <객주>는 단순히 만화로 보는 역사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 이두호가 그의 숨결을 불어넣은 캐릭터들의 피와 땀, 뭉클한 한을 꽁꽁 뭉쳐놓은 열정과 고통의 산물이다. 그의 만화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오만하지 말고, 편견에 길들여지지 말 것이며, 매사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다짐과 만나게 된다. 가슴 뭉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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