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 소머리국밥 / 곰탕

2015. 4. 13. 18:16책 · 펌글 · 자료/생활·환경·음식

 

 

 

 

                         아직도 예전 시골 장터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의성읍 도동리 전통시장 내 남선옥 전경.


◆ 돼지국밥

 


쇠고기국은 왠지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게 더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돼지국밥은 국과 밥이 함께 있어야 뭔가 안정감이 있다. 국과 밥을 따로 컨트롤하면 그만큼 일이 번거롭다. 국에 밥을 만 국밥은 식당주가 설거지하기도 좋다. 겨울철 장터 같은 데선 쇠고기국도 돼지국밥버전으로 차려진다. 국에 밥을 말면 더 잘 넘어간다. 그래서 예전 주막이나 장터에선 국밥이 대세일 수밖에. 국밥을 예전 사람들은 ‘탕반’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탕반의 출발은 단연 돼지국밥이다. 현재 가장 인프라가 잘 깔려 있는 돼지국밥 도시는 부산이다.

부산 돼지국밥에는 눈물이 스며있다. 6·25전쟁 때 피란민 사이에서 태어난 탓이다. 이때 등장한 게 자갈치시장 ‘국말이’이다. 배추 시래기를 삶고, 돼지기름이나 쇠기름을 넣어 된장국을 끓인 다음 뚝배기에 찬밥을 토렴한다. 광복 후 쓰레기 같았던 시래기 국말이는 돼지국밥으로 진화하고 그 중심지도 자갈치시장을 떠나 조선방직 앞으로 옮겨진다. 당연히 돼지국밥은 조선방직이 없어지기까지 방직공의 알찬 한 끼 식사였다. 그래서 범일동 ‘조방’ 앞이 돼지국밥촌 1번지가 된 것이다. 

 

부산역앞, 국제시장 옆 부전시장, 조방(조선방직), 부산 서면시장, 사상터미널 앞, 평화시장 등에 모두 돼지국밥촌이 형성돼 있다. 이 가운데 부산시가 지정한 대표 돼지국밥집은 신창국밥, 덕천고가, 경주박가국밥 세 곳. 이밖에 65년 역사의 서면 송정돼지국밥을 비롯해 남구 대연동의 쌍둥이돼지국밥, 범일동의 마산식당 등은 ‘식객’에 나오며 유명세를 탔다.

 

부산 돼지국밥은 간을 해서 나오지 않는다. 부추무침과 새우젓으로 간을 해야 한다.

밀양시 무안면도 역사는 부산 못지 않은 돼지국밥의 고장이다. ‘밀양 돼지국밥’은 일본 강점기 고(故) 최성달씨가 밀양 무안면 시장터에서 꾸려간 ‘양산식당’에서 유래한다. 여긴 다른 집과는 달리 돼지뼈와 쇠뼈(우골)를 섞어서 육수를 만들기 때문에 국물이 매우 맑다. 그후 며느리인 김우금 할머니가 현재의 무안 식육식당에서 밀양 돼지국밥 브랜드를 형성한다. 현재 김씨의 아들 3명이 근처 거리에서 각각 무안 식육식당(첫째 아들), 제일 식육식당(둘째 아들), 동부 식육식당(셋째 아들)을 운영한다.

 


 

                                           돼지국밥에 잔치국수를 합쳐놓은 것 같은 제주의 명물 고기국수.


 

흥미롭게도 수도권, 강원· 충청· 전라권에서는 경상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돼지국밥을 보기 힘들다. 제주도에선 돼지국에 중면을 만 걸 ‘고기국수’라 하는데 대구의 육국수를 닮았다. 가장 흡사한 형태는 부산역 맞은편 초량골목 안 ‘평산옥’. 1890년부터 장사를 시작한 평산옥은 국밥에 밥 대신 소면을 넣는 게 인상적이다. 흡사 일본식 라면 ‘돈코츠’ 같다.

 

 


 

              보부상이 즐기던 장국밥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부산 구포시장 근처 덕천고가의 돼지 육개장 같은 장국.


 

부산 돼지국밥 중 가장 독특한 형태는 바로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덕천고가’.  보부상이 즐기던 덕천 객주 김기한 집안의 장국밥이 현대적 버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집의 장국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돼지 사골뼈를 토막내어 가마솥에 넣고 뼈가 물러질 정도로 하룻밤 하루낮을 고아 뻑뻑하게 골수가 빠져나온 곰국 같은‘진땡(眞湯)’.  다른 하나는 그 진땡에다 조선된장을 풀고 우거지, 부추, 고추, 마늘, 파 등을 넣어 끓인 ‘장국’이다. 꼭 ‘돼지로 빚은 육개장’ 같은데 특히 장국용 된장은 김해 주동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만든 토장(간장 안 뺀 된장)만을 쓴다. 김기한가의 며느리 권명군, 그의 남동생 권경업을 통해 100여년 전 구포 물상객주가의 넉넉한 장국 인심이 전승됐다.

 

 


◆ 쇠머리국밥

 



         의성 남선옥 쇠머리국밥은 뼈를 고아낼 때 기름을 걷어내지 않고 계속 끓여 굳기름을 증발시키는 게 인상적이다.

 

 


쇠머리국밥은 장터국밥의 핵이다.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의성공설전통시장 내에 있는 남선옥, 하양읍 하양시장 내 문패없는 김순남 할매국밥집, 청도 풍각시장의 풍각 할매 수구레국밥, 경기도 광주 곤지암국밥 등이 유명하다.

의성 남선옥은 의성시장 내에 있는데 광복 직후에는 술집이었다가 30년전쯤 안대필· 김정애 부부가 인수했으며, 현재는 장남 용명씨가 전담한다. 소머리뼈와 함께 잡뼈도 넣고 양, 허파, 염통, 지라, 콩팥, 소생식기 등을 함께 넣고 고아낸다. 전국 국밥 중 가장 잡고기가 다양하게 들어간다. 특이하게 기름도 걷어내지 않고 계속 끓이면 굳기름은 차츰 증발하고 먹어도 구수한 속기름만 그대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설렁탕과 곰탕을 결합해 놓은 스타일이다.

청도 풍각장(1· 6일) 내 쇠머리국밥집은 95년에 타계한 김달마 할매로부터 며느리 김소쌍분에게로 전수된다. 장터사람들에겐 ‘소껍데기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의 가죽껍질과 쇠고기 사이에 있는 아교질 부위를 일컫는 ‘수구레’가 들어가는 게 특징. 소 한 마리를 잡으면 2㎏정도 나온다. 꼭 기름덩어리처럼 보여 비위가 약한 사람은 먹기가 부담스럽다. 방송인 이수근씨가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시식하면서 전국에 ‘수구레국밥 특수’가 일고 있다. 창녕장(3·8일)과 경남 창원에 있는 현풍 수구레국밥집 등이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에서 성남을 거쳐 장호원 가는 산업도로 중간의 곤지암 읍내로 들어가면 쇠머리국밥촌이 있다. 74년 목수인 남편과 정착했던 최미자씨(66)가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 유명해진다. 한때 10곳 이상 생겨났다. 여자 코미디언으로 유명했던 배연정씨도 들어왔다. 성남에서 광주, 이천을 거쳐 장호원까지 이어진 산업도로 때문에 화물 트럭이나 관광버스, 자가용 운전자 등이 즐겼다. 사골을 넣고 푹 곤 국물에 초벌 삶아놓은 쇠머리고기를 넣어 다시 삶고, 적당한 시간에 고기를 건져 놓는다. 여기에 생강 등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한 재료들을 넣고 3시간 정도 끓인다. 뚝배기에 밥과 먹기 좋게 썬 머릿고기를 얹어 끓는 국물에 토렴하여 낸다.

 


 

◆ 곰탕

 



                                                            나주의 대표격인 하얀집에서 내는 곰탕.

 

 


대한민국 3대 곰탕집은 어딜까. 전남 나주시 하얀집, 대구시 달성군 현풍의 박소선할매곰탕, 서울 명동의 하동관이 있다. 나주가 곰탕의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규모인 군납 통조림 공장이 있었기 때문. 이 공장에선 쇠고기 통조림도 만들었으며, 훗날 화남산업으로 변한다. 나주 곰탕이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70년대 초 호남고속도로, 80년대 88고속도로 덕분.

 

나주곰탕 3인방은 나주목 객사인 금성관 앞에 있는 하얀집· 노안집· 남평집이다. 이 중 원조로 평가받는 곳은 하얀집(대표 황순옥)이다. 새벽 3시에 육수를 빼기 시작하면서 사골을 넣고 그 다음 3시간30분쯤 양지머리, 사태살, 목살, 머릿고기를 삶아서 건져낸다. 간수 뺀 천일염으로 간을 하고, 식힌 정육을 썰어 밥과 함께 가마솥 육수로 토렴해 썬 대파와 계란 황색 지단을 올리고 후추를 쳐 낸다. 언뜻 곰탕과 설렁탕의 절충 형태처럼 보인다.

 


 

                                     서울식 곰탕의 명가인 서울 명동의 하동관. 더없이 맑은 게 특징이다.


 

서울 명동에 있는 하동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43년이다. 서울 북촌식 반가 곰탕으로 출발, 이젠 서울을 대표하는 곰탕이 됐다. 맛의 원류는 서울 북촌 반갓집 딸인 류창희 할머니의 손맛에서 비롯됐다. 창업주는 64년 가게를 평소 친분이 두텁던 장낙항 할아버지에게 물려준다. 그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온 현재 주인인 김희영씨가 지금껏 부엌을 책임지고 있다. 매일 오후 4시30분에 영업을 마친다. 하동관은 암소의 사골과 양지, 내장인 곱창과 대창, 양,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 많은 부분)를 주재료로 한다. 매일 아침 구두약 뚜껑으로 벗겨낸 무로 담근 깍두기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나온 국물(일명 깍둑 국물)이 양은주전자에 담겨져 냉면집 온육수처럼 나온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영남일보. 

 

 

  •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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