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런 책을 주고 갑디다?

2014. 12. 5. 12:15책 · 펌글 · 자료/생활·환경·음식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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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젊을 때는 이런 신비감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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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외로움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을 너무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궁금증과 관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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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내 뜻은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한다.

‘안돼요’, ‘싫어요’, ‘못해요’, ‘시간 없어요’,, - 말로 하면 몇 마디 안된다.

이 짧은 말을 마음이 약해서, 불이익 당할까봐,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NO를 말할 수 있어야 YES도 진짜 예스로 믿을 수 있다.

이 믿음의 토대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는 가능해진다. 가족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싫어도 좋은 척, 미워도 아닌 척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5년, 10년 지내다 보면

상대의 얼굴만 쳐다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싫은 감정이 솟구친다.

누구보다 서로를 격려해야 할 가족이 마지못해 참아주는 관계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평소 나는 자식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민주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하루종일 녹음기를 켜 두고 가족끼리 오가는 대화를 녹음해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지시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거절을 잘하고, 거절을 잘 받아들이려면 ‘내 생각이 옳다, 먼저다라는 일방성부터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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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늘 나의 능력을 30퍼센트 가량 아껴두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완벽하게 해내려면 그 일에 시간과 능력을 전력투구해야 한다.

1등을 하기 위해 바닥까지 짜내다 보면 옆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풍경의 즐거움도, 인생의 다른 가치도 놓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조금 덜어내 여유를 갖고 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즐길수 있다.

인간애, 즐거움, 가족애, 봉사심, 일의 성취감 등 그 가지치기는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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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인생이 아주 짧은 것 같지만 아주 길기도 하다.

노후는 모아 놓은 돈으로 즐기면서 살기에는 시간이 많고 또 느리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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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부부사이에 사소한 재미가 많아야 노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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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느낀 것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긋나면 상대방이이해가 안되고 오해를 품게 된다.

오해는 미움으로 변하고, 결국 상처를 주고 관계는 나빠진다.

상대의 감정에 이입해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배려다.

공감과 배려의 능력은 인생의 경험과 비례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면서 성격이 수동적으로 변한다.

누군가에 기대려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욕구에 반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노여움을 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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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잡지에서 감동적인 기사를 읽었다.

자녀들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기 죽자 장례를 치룬 후 주위 사람들에게 뒤늦게 부고를 전했는데,

그 내용이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생전에 크고 작은 잘못으로 여러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던가 보다.

자녀들이 볼 때도 아버지의 잘못은 명백했다.

아버지의 잘못을 적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분들께 자녀들이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하는 부고장이었다.

잘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 아버지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자녀들의 마음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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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넘어 재형저축 적금을 탔다. 1983년 천만원이면 변두리 소형 아파트 한 채는 샀다.

나는 그 돈을 들고 여행사를 찾아가서 천 만원어치 여행계획을 짜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딸 아이가 고3이어서 아내는 나를 기막히다는 눈빛으로 쏘아보았지만 결국 따라나섰다.

우리는 그렇게 40일 동안 온 유럽을 돌아다녔다.

가끔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아파트 투자해서 얼마 더 버는 게 낫나? 지금 이 즐거운 기억을 갖고 사는 게 낫나?"

그때마다 아내는 빙그레 웃을 뿐이다.

일본의 자녀교육전문가 가나모리 우라코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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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은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화활동을 중지하는 사람이다.

둘째,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이다.

셋째, 자학형이다.

넷째, 열정적인 노익장이다.

다섯째,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노인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경과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기중심을 잃지 않지만 부드러운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갖추었다.

 

노년의 시기는 과거의 정리도 중요하지만 정리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길다.

그러므로 노인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 변화는 바로 내 노년의 모습을 젊었을 때부터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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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子였던 내가 몸이 약해 자주 병치레를 하자 집안 어른들이 조상신을 달래는 굿을 했다.

뒤늦게 알고 달려온 어머니는 굿상을 뒤집어엎고 무당을 내쫒으며 말했다.

"세상에 어느 조상귀신이 자기 자식들에게 해를 주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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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이 된 뒤 나는 어머니를 찻집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그동안 어머니가 저를 사랑한 것을 쌀가마니 혹은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머니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준 사랑이 너무 무거워 짊어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얼마인지 말씀해 주시면 그걸 다 갚고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내 말에 아무 말 없으시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너도 결혼해 봐라. 그게 내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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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부모님의 기일이 10일 상간으로 있기 때문에

부모를 회상하는 '메모리얼 주간'으로 정해 다례와 조촐한 식사 모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