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2015. 4. 7. 09:02책 · 펌글 · 자료/역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저자 타밈 안사가 무슬림들이 역사를 배우는 방식인 ‘인생극’ 형식으로 쓴 책으로, 이슬람 눈으로 본 1,500년의 세계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 무함마드와 칼리프들의 일생부터 최근 몇 세기 동안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9.11을 낳은 근대의 복잡한 갈등에 이르는 이슬람 공동체의 진화를 흡입력 있는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이를 통해 이슬람과 서구를 갈라놓은 여러 단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이슬람이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저자 : 타밈 안사리


저자 타밈 안사리Tamim Ansary는 1948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유서 깊은 이슬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불 대학교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었다. 1964년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편집자로 일했고, 잡지 칼럼과 소설, 어린이책 등을 쓰고 있다. 안사리는 무슬림 가문에서 자라면서도 줄곧 종교와는 거리를 두었지만, 1979년 남동생이 ‘근본주의 이슬람’에 심취한 이후로 이슬람의 역사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9·11 사태가 일어난 직후,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시의 상황이 자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말했고, 그 편지가 인터넷 상에서 급속도로 퍼진 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회고록 『카불의 서쪽, 뉴욕의 동쪽West of Kabul, East of New York』과 역사소설 『과부의 남편The Widow’s Husband』 등이 있다.

역자 : 류한원


역자 류한원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GEO』, 『모닝캄』, 『판타스틱』, 『루엘』 등 여러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소설만 읽고 지내던 청소년기부터 번역이 1차 창작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잡지사를 그만두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 번역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했다. 현재는 ‘바른번역’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위드아웃 유』, 『나부터 바꿔라』가 있다.

 

 

 



제1장 중간세계
제2장 히즈라
제3장 칼리프조의 탄생
제4장 분열
제5장 우마이야 제국
제6장 아바스 시대
제7장 학자, 철학자, 수피
제8장 튀르크의 등장
제9장 대혼란
제10장 부활
제11장 한편 유럽에서는
제12장 서구가 동쪽으로 오다
제13장 개혁 운동
제14장 산업, 헌법, 민족주의
제15장 세속 근대주의자의 부상
제16장 근대성의 위기
제17장 조류의 전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608쪽, 2만8000원

 

 

 



지난 7월 노르웨이 테러를 감행한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32)은 기독교 광신주의자가 아니다. 민간인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이다. 오히려 비디오게임이나 보디빌딩 등에 관심이 있는 깔끔한 노르웨이 청년이다.

 5월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도 이슬람 광신주의자가 아니었다. 재벌의 아들로 1980년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후원한 아프가니스탄 내 대(對)소련 투쟁에서 보급을 담당했다. 이슬람 학자도, 설교자도 아니었다. 9·11 공격 등 대서방 공격을 주모한 테러범이었다.

 브레이빅과 빈 라덴 모두 각각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에서 지탄을 받는 ‘변종’일 뿐이다. 두 사람이 양 문명의 적대적 감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을 쓴 타밈 안사리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현대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하는 마찰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9·11의 가해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공격을 감행한 것일까. 일부 기독교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오늘날 과격 이슬람 세력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 지은이는 이슬람의 담론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이보다 도덕적인 청렴과 타락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한다. 서구문화의 침투로 이슬람의 가치가 침식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빈부의 간극이 커져가는 현상을 되돌리거나 늦추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갈등과 적개심보다 ‘다름’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각이다. 원서 제목 ‘Destiny Disrupted(엇갈린 운명)’에서 나타나듯 양 문명의 진행방향에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이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인 것처럼, 기독교인도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1400여 년 이슬람과 그 주변의 역사라는 묵중한 주제를 흥미진진한 ‘인생극’ 형식으로 펼쳐낸다. 사료에 대한 꼼꼼한 조사가 눈에 띈다. 게다가 인용된 일화도 경박하지 않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었을 때 이슬람 정복사업을 주도한 황소 같은 사내 우마르가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십자군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무더위에 녹초가 된 ‘사자왕’ 리처드 1세에게 과일과 얼음을 보냈다는 대목 등이다.

 두 번째 강점은 신뢰성이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고 그 인근 지역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대대로 이슬람에 대한 학식과 신앙심으로 존경 받는 집안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그곳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었다. 안사리는 64년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뒤로 45년 동안 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아프간의 친척·친구들과 소통하면서 9·11 테러의 양편을 드나들고 있다.

 그동안 무슬림 학자들이 쓴 이슬람 세계사, 서방 학자들의 이슬람 역사서가 다수 출판됐다. 하지만 양측은 자신의 시각을 주로 주장하고, 상대의 의견을 배척해 왔다. 때문에 이 책은 양편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서방의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해독제가 될 수 있고, 아집과 고집에 빠진 무슬림들에게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을 망라한 매혹적인 드라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들의 일생에서 출발해, 그 뒤로 펼쳐진 광대한 이슬람 제국들의 시대를 거쳐, 최근 몇 세기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운동과 9·11 공격에 이르게 한 복잡한 갈등까지 이슬람 세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흡입력 있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과 서구를 갈라놓은 여러 단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자살폭탄테러와 최근 중동 민주화 과정을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 그리고 유럽과 북미를 뒤덮고 있는 이슬람공포증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다.

서정민 교수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amirseo@hufs.ac.kr

(중앙일보)

 

 

 

 

 

 

 

 

 

 

 

◇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타밈 안사리 지음·류한원 옮김/
608쪽·2만8000원·뿌리와이파리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명운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겨울 너무도 갑작스럽게 터진 튀니지 민중시위와 독재자 축출은 중동 연구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고, 뒤이은 이집트의 같은 사례는 연구자들을 감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후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변혁운동 과정은 수많은 시민의 희생을 낳고 있지만 이 파장이 어디에까지 미칠지, 사회문화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수반할 것인지는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촌각을 다투며 급변하는 현 이슬람 세계의 정세를 넓은 세계사적 흐름의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이슬람의 세계사적 통찰’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세계사’라는 이름을 갖고 나왔으니 이 세계의 역사를 해석한 사람이 누구인지 우선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타밈 안사리, 완벽하게 이슬람적인 이름이다. 그는 아프간계 미국인 작가이자 교사로 저명한 무슬림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가 미국인이며 열여섯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이후 미국에서 줄곧 살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문화와 미국 서구문화를 두루 경험했다. 그러니 이 책은 ‘타밈 안사리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잊혀진 역사’라는 제목으로 아랍어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다룬 교양 논픽션에 가깝다. 역사적 사실들을 분석한 학술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학술적 목표를 가지고 구성된 역사서에 건조하게 나열된,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읽어낸 것이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는 “올해 ‘아랍의 봄’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이제야 일어났는가’이다”라고 말한다.

 

책의 내용은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 즉 유럽 세계사와 이슬람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서구와 이슬람세계는 지난 1500년 동안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현재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고, “17세기 후반에야 두 내러티브가 교차하기 시작”했지만, “양쪽은 각자 별개의 방에서 제각각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독특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판단에 충실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기보다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형극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일면 무척이나 교활한 책략가로 보이는 살라딘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통치자로 등장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이니 읽기가 수월하다. 서문에서 색인까지 600쪽이 넘는 비교적 두툼한 책이지만 일단 읽어가기 시작하면 언제 이 책을 다 읽었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쉬이 읽혀진 데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세계사 책에서 ‘생략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으로 그동안 독자들이 엮어 놓은 세계사 날줄에 여러 가닥의 씨줄이 잘 먹어들어 가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중세와 근대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이야기는 중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방점은 근대역사에 찍는다. 그러니 ‘지금’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다면 우선 이슬람 세계의 근대 개혁운동을 다루는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무함마드 압두, 자말루딘 알아프가니, 하산 알반나, 사이드 쿠틉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이슬람 세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추천사를 보니 이 책이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해독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개신교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교세를 가진, 그야말로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종교가 이슬람인데 공포증을 갖는다면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공포증을 해독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진단시약 정도는 가지게 된 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슬람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대 간에 서로 주고받는 ‘역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재미가 자못 크다.

안정국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동아일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타밈 안사리 | 뿌리와 이파리

서구가 쓴 세계사는 이슬람을 편린처럼 취급한다. 유럽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며 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 걸쳐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의 거대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며 제국을 경험했지만, 이슬람은 세계사 속의 한 장(章)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으로 건너온 ‘미국인’ 타밈 안사리는 이 책에서 유럽 중심주의의 세계사에 맞서 이슬람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석한다.

‘이슬람의 눈’이 책의 줄기에서 여러 차례 반박하고 있는 것은 ‘문명의 충돌’ 개념이다. ‘십자군 원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슬림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실감이 없었다.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장대한 싸움이라기보다는 ‘(이슬람)문명 위에 드리워진 참사’로 봤던 게 당시 이슬람 문헌의 기록이다. 실제 이 기간 동안 유럽과 ‘중간세계’의 교역은 오히려 증가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때 무슬림과 유럽인은 전투를 벌이면서, 전투현장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교역을 계속했다.

저자는 “‘우리는 서로 다른 둘 중 하나만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현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로 이해하는 방법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그래서 2011년의 9·11도 두 개의 세계사가 마찰한 사건이다. 소련의 몰락을 두고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9·11이다. 이슬람은 애초 미국에 우호적이었다. 무슬림은 미국이 선언한 자유·정의·민주주의라는 가치와 미국 정치체계가 모든 나라를 가난과 압제에서 구하리라는 주장을 존중했다. 하지만 1953년 미국 CIA가 이란 군대의 한 파벌에 군사자금을 대줘 쿠데타를 일으켜 석유통제권을 확보한 사건은 무슬림들의 분노를 일으키며 미국의 실체를 각인시켰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세계사’ 중 종교도 마찰의 근원에 놓여 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은 로마교회와 교황에 저항해서 일어났지만, 이슬람에는 애초부터 저항할 교회나 교황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간극이다. 그리스도교는 태생적으로 개인의 구원을 위한 계획이었지만, 이슬람은 공동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계획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수양 대 퇴폐’ ‘도덕적인 청렴 대 도덕적 타락’이라는 대 서양 프레임을 예로 든다. “한쪽에서는 각 개인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다른 쪽에서 보자면 전체 공동체의 힘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정복-합병-확장-퇴락-정복’의 과정으로 서술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슬람제국 확장의 역사뿐만 아니라 왕가와 먼 친척, 기술귀족, 지배정당과 기관원들의 ‘지배클럽’만 부유한, 근대 세속주의에 매몰된 석유산업국의 민주주의 문제까지 세계사를 넓힌다. 최근의 재스민 혁명과 연계해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구학자들이 성적인 유희가 채워지는 음탕한 공간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부여한 ‘하렘’이 실은 암살 계획이 난무하는 권력암투 공간이었다는, 읽을거리 역사도 곳곳에 담겨 있다. 2대 칼리프(이슬람 지도자) 우마르 때 노예는 부리되 학대나 혹사를 금지하고, 주인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줘야 하는 규정이나 후대 칼리프를 자문단인 ‘슈라’가 선택하게끔 한 제도처럼 ‘미처 몰랐던’ 이슬람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크다. ‘이슬람의 눈’이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이슬람·무슬림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 거리두기를 한 게 책의 가장 큰 미덕같다. 류한원 옮김.

(경향신문)

 

 

 

 

 

 

 

 

 

 

광고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비주류의 역습'. 영화, 음반, 도서, 미술, 예능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소위 '비주류' 또는 'B급'으로 분류되던 존재들이 '메이저' 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서歷史書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배운 기존의 세계사를 뒤집는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타밈 안사리가 저술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슬람인의 눈으로 세계사를 재해석한 타밈 안사리, 그가 들려주는 세계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어떻게 다를까요.

서구의 입맛대로 써내려 간 세계사

중동이라는 표현은 서유럽에서 보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페르시아의 고원 지대에 서 있다면 이른바 중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중서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인더스 강에서 이스탄불까지 이르는 전체 영역을 중간 세계라고 부르는 편을 선호하는데, 그 영역이 지중해권 세계와 중국의 세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타밈 안사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태도를 잘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중동'이란 표현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탄생한 것이니 '중간세계'란 표현이 더 옳다는 그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는 '유럽사와 기타 등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유럽 중심적이죠. 그 속에서는 동아시아도, 남북아메리카도, 아프리카도, '중간세계'도 그저 변방의 역사일 뿐입니다. 타밈 안사리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정복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세계사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타밈 안사리의 대답은 다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역으로 쳐들어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가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했다는 말이 들리지만, 그가 실제로 정복한 것은 페르시아였으며 그때는 이미 페르시아가 '세계'를 정복한 뒤였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인물'이 아닌 최초의 '유럽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그의 업적까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죠. 단지 지나치게 서구의 입맛대로 쓰여진 비대칭적인 역사를 바로 잡고 역사적 균형감각을 회복하자는 것이 그의 논지입니다.

이슬람의 눈으로 바라본 십자군 전쟁

타밈 안사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우리는 십자군 전쟁을 '종교 해방 전쟁'이라고 교육 받았습니다. 하지만 타밈 안사리는 여기에 태클을 겁니다. 당시 유럽에는 귀족과 기사 계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귀족과 기사는 노동을 일체 하지 않았기에 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더불어 내란이 일어날 잠재적 위험 또한 높아졌습니다. 이 문제들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해방'을 명분으로 셀주크투르크와 전쟁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꽤나 비중 있게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슬람 문화권, 즉 당시의 셀주크투르크에서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격을 당하는 지역에서는 물론 프랑코를 두려워했지만, 그렇다해도 이런 공격이 그들의 생각이나 믿음에 대한 지적인 도전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또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에 사는 무슬림들에게 분명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무슬림 세계로 깊이 침투하지는 않았다. (중략) 십자군은 바그다드를 포위하거나 유서 깊은 페르시아를 침략한 적도 없었다. 호라산, 박트리아, 인더스 계곡 사람들은 프랑코의 침입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대개는 아예 모르고 지나갔다.

실제로 십자군 원정대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의 중심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며 단지 예루살렘 등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셀주크투르크 입장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제국 변방에서 일어난 일련의 약탈행위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타밈 안사리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도 비대칭적인 역사 인식을 꼬집습니다.

건강한 역사 인식을 기르는 기회

흔히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와 'B급'이 사랑 받는 현상은 박수 받을 일입니다. 여러 각도의 인식을 지녔을 때는 비평이 가능하지만 한두 가지 좁은 시선으로는 비평이 아닌 비난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새겨야 합니다. 주류 세계사에서 비껴나 이채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써내려 간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풍성한 역사인식을 기를 기회를 선사하는 책입니다.

 

 

(오마이뉴스)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험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ㆍ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


똑같은 시간대를 이슬람의 눈으로 볼 경우에는 이렇게 달라진다.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열: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 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