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1. 18:58ㆍ詩.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선운사 동구(禪隕寺 洞口)
- 서정주 (1915~2000)
선운사(禪隕寺) 고랑으로
선운사(禪隕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선운사 동구(禪隕寺 洞口)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徐廷柱全集》∋ 禪雲寺 洞口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니다.
*《서정주전집》(서정주, 민음사, 1983 초판, 1984 재판)의 171쪽에서 베껴옴.
[박해현의 문학산책] 禪雲寺(선운사) 동백꽃으로 가슴을 문지르면
미당은 1967년 고향인 전북 고창의 선운사를 떠올리며 이 시를 처음 쓴 뒤 퇴고(推敲)를 거듭했다. 시의 끝부분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는 여러 차례 수정됐다. 처음엔 '상기도'가 아니라 '아직도'라고 썼다. 나중에 '오히려'라고 고쳤다가, 새로 시집을 내며 '시방도'로 바꾸었다. 그러나 1974년 고창 주민들이 선운사에 서정주 시비(詩碑)를 세울 때 돌에 새긴 시엔 미당이 '상기도'로 바꾸었다. 국립국어원이 낸 사전엔 '상기'가 '아직'의 강원·함경 방언으로 적혀 있다. 미당은 말년에 민음사에서 시 전집을 새로 낼 때 '상기도'를 '오히려'로 고쳤다. 고운기 시인은 "미당이 고쳤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시의 장인(匠人)이 손댄 것 치고는 패착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막걸릿집 여자의 쉰 목소리에서 희미한 기억의 지난 봄 동백꽃을 떠올리는 시인의 가슴을 '상기도'라는 말 이상으로 표현해 줄 단어가 없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시 해설집 '미당과의 만남'을 낸 평론가 이숭원은 "문맥의 어감으로 볼 때 '상기도'가 더 어울리지만 시집 '동천'에 실린 표기에 따라 '아직도'로 놔뒀다"고 했다. 인터넷의 '디지털 고창문화대전'은 '오히려' 판본을 올려놓았다. '오히려'가 문법적으로 부자연스럽지만 묘한 울림을 낳는다고 했다. 미당의 시에서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는데 시인이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다면서 과거 동백꽃 핀 풍경을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 속에서 음미하게 한다는 것이다. 올해 미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스무 권짜리 전집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다고 한다. 출판사 담당자는 "편집위원들이 '선운사 동구'의 시어(詩語) 선택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미당은 생전에 '선운사 동구'에 얽힌 슬픈 사연을 시 '아버지 돌아가시고'로 들려줬다. 1942년 시인은 부친이 세상을 뜨자 고향에 내려간 길에 선운사에 들렀다. 어느 이슬비 내리는 가을 오후에 '길가의 실파밭 건너 오막살이 주막'에 들어가 약주를 찾았다. '나이 40쯤의 꼭 전라도 육자배기 그대로의 여인'이 나와 '그렇잖아도 오늘은 한번 개봉해 볼까 하는 꽃술이 한 항아리 기대리고 있는디라우'라고 했다. 시인과 주모(酒母)는 한 도가니를 '눈 깜짝할 사이' 비워버렸다. 얼얼해진 주모가 육자배기를 들려줬다. 주모는 떠나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인이…'라고 했다. 시인은 그 '인이…'의 'ㄴ' 발음에 취해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를 떠올렸다. '시악시 입맞추며 우리 독일말로 '이히 리베 디히'…그 소리 얼마나 듣기 좋은지 님이야 알라더냐? 했던 그 '이히 리베 디히'보다 몇 갑절은 더 이쁘게 들렸네'라고 감탄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시인이 그 주막을 다시 찾았더니 6·25전쟁 통에 그 주모와 가족이 빨치산에게 학살당했다고 한다. 빨치산 토벌에 나선 경찰들에게 밥을 지어 먹인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 그 육자배기 소리를 담아보았지"라고 했다.
선운사 동백꽃은 3월 말에서 4월 사이에 핀다. 때를 맞춰 동백꽃 보기가 쉽지 않다. 봄마다 동백꽃 보러 선운사에 꼭 들러야지 벼르지만 번번이 때를 놓친다. 설령 동백꽃을 안 보면 또 어떠하랴. 중년을 넘긴 사람이라면 미당의 시를 펼칠 때마다 목 쉰 육자배기 가락이 제각각으로 울릴 터이니 가슴속에 제 동백꽃 한 송이 피워보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선운사 동구」는 서정주가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막걸리집을 찾았지만 이미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선운사 동구」는 전개상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의 ‘오히려’는 부자연스럽다. 이 시에서 ‘작년 것만’과 ‘오히려’는 순서가 바뀌어 사용됨으로써 독자들에게 혼란을 유발시키며, 시를 읽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자연스러움을 역행하는 이와 같은 배열이 시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구술 어법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문법 일탈은 서정주 시의 주요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이 시에서 ‘오히려’는 의미의 환기 외에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오히려’는 아직 시기적으로 일러서 피지 않은 현재의 동백꽃과 ‘작년 것’을 교묘하게 대치시킨다. 그리하여 ‘오히려’는 독자들에게 동백꽃이 만개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동백꽃과 육자배기 가락을 음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선운사 동구」에서 부사어 ‘오히려’의 개입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시에 변화를 제공하면서 미묘한 울림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종결형 이후에 다시 내용을 덧붙이는 여운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여운’의 방식은 이 작품 외에도 「신록」, 「무제, 124」, 「삼경(三更)」 등에서 나타나듯이, 서정주 시의 극적인 전환을 유발하며 의미 변환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에서 ‘남았읍디다’는 구문 반복이 변형된 형태를 보여준다. 과거 회상 시제 ‘-ㅂ디다’의 반복을 통해 시인은 보지 못한 동백꽃에 대한 미련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 시는 5행과 6행의 반복에 의한 규칙성에도 불구하고 의미에 있어 5행과 6행이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상황을 한정하는 ‘그것도’로 인하여 의미의 성격이 좀 더 명확해지게 되는 데 따른 것이다. 마지막 행은 이전 시행의 내용을 구체화시키며, 시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읍디다”는 육자백이만이 아니라 동백꽃으로까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인과 여인의 신산한 삶을 대변한다. 마지막 행이 구문 반복과 변형을 통해 시 전체의 분위기 형성에 일조하는 한편 시적 여운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시를 수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터이고,
미당이 저런 식으로 손을 봤다는 사실도 저는 믿기지 않습니다.
1) 제일 논란이 되고 있는 ‘상기도’라는 단어를 ‘시방도’ 라거나 ‘오히려’로 고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어느 지방 사투리이냐의 문제 이전에, 운률상으로 맞지를 않습니다.
‘상기도’로 쓴 이유는 시인이 일부러 액센트(강조 억양)를 주기 위함입니다.
‘상기도’가 “솔”音이면 ‘시방도’는 “미”, ‘오히려’는 “도”밖에 안됩니다.
‘작년것만’에서 ‘만’자가 음높이가 내려가잖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글자는 당연히 올려 쳐야죠.
만일 ‘시방도’나 ‘오히려’로 쓴다면 마지막 두 행이 힘없이 축 쳐져서 흐물흐물 돼 버립니다.
노래도 안되고 시도 안되죠.
2) 현재의 맞춤법상으로는 ‘읍’이 아니라 ‘습’이 맞습니다만
같은 이유로 해서 ‘읍’도 고치지 말고 그대로 둬야 할 거 같습니다.
‘습’보다는 ‘읍’이 힘이 들어가거든요.
3) ‘안했고’도 마찬가집니다. 사투리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역시 ‘않았고’ 보다는 안했고’가 힘이 있습니다.
4) ‘습니다’냐 ‘습디다’냐?
‘-디다’를 으뭉스럽게 한 발 빼는 프로의 노련함 정도로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막걸리집 여자’ ‘육자배기’와 댓구로 받아주는 말입니다.
‘-니다’로 쓰면 전라도 육자배기가 갑자기 서울 깍쟁이 팝송이 돼버려요.
어느 한 글자, 어느 한 호흡도 놓칠 수 없는 명시입니다.
미당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도록, 절대로 손 대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