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2014. 11. 29. 13:53미술/서양화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저자 : 이리스 뮐러베스테르만 :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국제미술부 큐레이터이다. 뭉크 전문가로서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 간행물에 글을 기고했다.

 

개인적 경험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얼굴 : 1880년대
새로운 미학을 향해 : 1890년대
국외자로서의 예술가 : 19세기 말-20세기 초
위기의 시기 : 1902-1908년
노르웨이로 돌아오다 : 1909-1921년
에켈리에서의 은둔 생활 : 1922-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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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거의 모든 화가가 자화상을 그렸다.

하지만 에드바르 뭉크만큼 집요하게 자신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화가는 많지 않다.

렘브란트, 고흐, 고야, 고갱에 이르는 화가들,

자기 분석에의 꾸준한 관심으로 뭉크는 의심하고 질문하고 예언했던 위대한 자화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뭉크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세상(19세기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리하여 그의 자화상에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소외와 고독이 드러난다.

자화상을 통해 뭉크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역할, 주변환경과의 관계, 국외자였던 자신의 위치를 고찰하기도 했다.

그는 죽음과 사랑,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을 자화상에 담았다.

중년 이후에는 고독과 질병이라는 주제에 강하게 사로잡혔고, 말년에는 노인과 죽음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

특히 여성과의 관계는 노년에 이를 때까지 그의 작품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는 그의 자화상을 통해 한 남자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따라갈 수 있으며,

철저한 자연주의에서 시작해 1890년대의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로 나아가는 예술적 발전도 목격할 수 있다.

뭉크의 자화상은 대부분 그가 살아 있던 동안에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 머리말 중에서 발췌함 -

 

 

 

 

 

 

 

2

 

 

 

<자화상> 1882년 마분지에 유채, 26.2 x 29.3 

 

 

1882년초 열여덟 살이었던 뭉크는 첫번째 자화상을 그렸다.

1881년 오슬로 왕립드로잉학교에 입학한 뭉크는 그에게 드로잉을 가르쳤던 율리우스 미델툰의 예술적 영향으로

외부 현실의 상세한 묘사를 중시하는 기법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자화상에서는 이러한 화법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다.

 

 

 

 

<자화상> 1882 -1883년 캔버스에 유채, 44 x 36.5 오슬로 시립미술관

 

 

두번째 자화상은 자연주의 양식으로 그렸다.

여기에는 1880년대에 이미 노르웨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던 프랑스 화가들의 ‘혁명적’인 예술관이 담겨 있다.

노르웨이의 청년 예술가들이 독일 아카데미를 등지고 파리로 향했다.

당시 파리는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노르웨이의 젊은 자연주의자들은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도 관계를 맺었으며,

마네, 드가, 모네, 귀스타브 카유보트 등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이 자화상에서 뭉크는 급진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형식뿐 아니라 물감을 다르는 방식도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세련되게 변화했다.

 

 

 

 

<자화상> 1886년 캔버스에 유채, 33 x 24.5  오슬로 국립미술관

 

 

세번째 자화상이자 뭉크가 처음으로 서명을 남긴 작품이다.

세부묘사에 신경을 덜 썼고, 얼굴은 가상의 광원을 동원해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얼굴부분은 팔레트나이프로 겹겹이 덧칠한 반면 머리카락과 배경은 색채뿐 아니라 물감 사용도 소극적으로 했다.

이 그림은 일찍 세상을 떠난 누나 소피에의 기억을 주제로 한 것이다.

 

“<병든 아이>에서 나는 새로운 방향을 잡았다. 그것은 내 예술의 전환점이었다.

이후에 했던 작업들은 대부분 그 그림에 기원을 두고 있다.”

 

 

 

 

 

 

 

3

 

 

<여자 가면 아래의 자화상> 1893년, 목판에 카셍인 템페라 70 x 44.5

 

 

가면이 생생하고 직접적인 힘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나타낸다면,

이 섹슈얼리티는 화가의 활기와 생기를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뭉크는 이를 위험한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존재의 피할 수 없는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심주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열망과 두려움이었다.

 

 

 

 

<살로메-페러프레이즈> 1894-1896sus 종이에 수채,  46x32.6

 

 

여자의 머리칼은 아래로 늘어져서 팔처럼 남자의 목을 감싸며 남자를 가두고 있다.

붉은 색 배경은 불길한 느낌을 강조한다.

머리칼이 이루는 형태는 자궁을 나타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삶과 죽음의 신비에 똑같이 연결된 존재로 보인다.

 

 

 

 

 

<팔뼈가 있는 자화상> 1895년 석판화, 45.5 x 31.5 

 

 

<팔뼈가 있는 지화상>은 유화가 아닌 뭉크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전시가 많이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죽은 자들의 묘비명을 연상시킨다.

팔뼈가 삶과 죽음의 덧없는 속성을 나타낸다면 그 위에 매달려 있는 머리는 예술의 불멸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이 작품이 같은 해 목판화로 제작된 발로통도스토예프스키 초상과 구도나 스타일에서 유사하다는 점이다.

뭉크가 도스토예프스키를 굉장히 존경했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4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더는 소개해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뭉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십시요. 아주 잘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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