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7. 19:43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방에서 친구와 다정하게 놀던 아이로부터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슨 일일까?
아이는 자신의 장난감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도 영문을 모른 채 같이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당혹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아이는 왜 친구에게 주었던 장난감을 다시 빼앗아 품에 안고 절망스럽게 울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진짜 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은 금방 풀린다.
아이는 친구가 자신을 좋아하기를 갈망했다.
그렇지만 친구가 자신이 준 장난감에 온 신경을 쏟게 되자 아이는 절망하게 된 것이다.
친구는 자신이 아닌 장난감을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 순간 아이는 장난감과 묘한 경쟁관계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좋아? 아니면 장난감이 좋아?
하지만 장난감은 바로 자기 것 아닌가, 그러니 다시 장난감을 빼앗을 수밖에.
불행히도 그 순간은 친구에게서 기쁨을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원래 친구를 기쁘게 하려고 장난감을 준 것이니 말이다.
내가 저 사람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와 헤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헤어져 있다는 게 생각만해도 힘들다면 나는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만약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이 괴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그가 내 곁에 없게 되었을 때 생각했던 만큼 괴롭지 않아서 당혹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기의 감정이 어떤 수위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잠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기쁨을 주던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 우리는 그제서 우정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다.
헤어져 있을 때, 우리의 슬픔이 어떤 강도로 발생하는지에 따라 우정과 사랑은 구분된다.
슬픔이 너무나 크다면 아무리 우정이라고 우겨도 그것은 사랑이다.
반면 슬픔이 생각보다 작다면,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관계라 해도 그것은 우정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우정과 사랑의 차이는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양적인 차이, 혹은 정도상의 차이만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가져댜주는 他者가 무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일 수도 있고, 동성일 수도 있고, 개나 고양이일 수도, 혹은 슈베르트일 수도 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경쟁심은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다.
『감정수업』 경쟁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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