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6. 12:02ㆍ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발칸과 동유럽, 그곳은 낭만의 땅이다.
푸른 물결의 다뉴브강이 젖과 꿀처럼 흐르고,
드넓은 평원을 따라 해바라기가 피고 지고,
집집마다 빨간 지붕 아래 창틀엔 예쁜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곳,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수백 년 전 과거와 만날 수 있고,
낮은 건물 사이 야외 카페에선 오후의 햇살과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연인들,
광장엔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곳,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되는 그곳은,
분명 낭만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 이곳은
인류 최악의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었던 야만의 땅이다.
광기의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태인이 학살당한 땅,
듣기조차 거북한 ‘인종청소’로 수십만 명의 무슬림들이 살육당한 땅,
그 잔혹했던 종교전쟁이 벌어진 땅,
때론 카톨릭의 장검에, 때론 이슬람의 말발굽 아래
수많은 양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땅,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약탈하고 약탈당하고,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잉태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조차 모르는 땅,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았던 땅,
그곳은 야만의 땅이었다.
↑ 요약을 참 잘했네요.
발칸반도은 정확히 바로 저런 땅입니다.
친구 하나가 정년퇴직 기념으로 내년 1월에 동유럽-발칸을 가봤으면 하던데,
꼭 이 책을 읽고 가라고 해야겠네요.
초판이 2012년 9월에 나왔는데, 제기랄.
낭만과 야만이 교차하는 모순의 땅, 발칸과 동유럽으로 떠나는 여행!
발칸반도와 동유럽으로 떠나는 다크 투어리즘『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다크 투어리즘’은 역사적 비극 및 재난의 현장을 찾아 자기 성찰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발칸과 동유럽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인류 최악의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던 곳이다.
저자는 외세의 침탈과 전쟁, 이데올로기와 냉전, 민족갈등, 종교 갈등 등
부조리와 격변의 터널을 지난 발칸과 동유럽 땅을 걸으며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고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1부 발칸반도에서 한반도를 생각하다
1. 슬프지만 아름다운 땅,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라예보/
대통령이 세 명인 사실상의 분단국가, 보스니아/
편견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
43개월간의 사라예보 봉쇄/
스레브레니차 사건, 20세기 후반 최악의 학살/
냉혹한 국제사회의 축약판/
문명 충돌의 현장/
‘유럽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이유/
인종청소, 종교청소/
발칸 전쟁의 원인/
내전인가, 전쟁인가?/
인종과 종교가 분쟁의 원인?/
발칸 분쟁의 씨, 인종과 종교는 알고 보면 한 뿌리/
헤게모니 싸움이 낳은 교회 분열/
새삼 실감하는 악의 평범성/
티핑 포인트가 된 라틴 다리의 총성/
영토야욕의 필연적 결과, 제1차 세계대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이별/
아픈 역사를 공유하는 보스니아와 한국/
라틴 다리의 맥도날드/
사라예보에는 다시 낭만이/
월드챔피언이 된 보스니아 전쟁 피해자들/
안젤리나 졸리의 보스니아 영화와 정신대 할머니/
<노 맨즈 랜드>와 <공동경비구역 JSA>/
신들도 몸집 불리기를 멈춘 곳, 사라예보/
사라예보의 매력, 바슈카르지아 광장/
평화롭게 흘러가는 보스나 강물처럼/
다문화 공존의 열쇠, 사라예보/
다문화의 세계적 위기/
경제난을 먹고 사는 인종주의/
21세기 문명사회의 가장 큰 숙제/
공존을 위한 선택/분열의 상흔에서 평화의 상징이 된 모스타르/
전쟁으로 인구가 절반이 된 비극의 현장/
문명의 연결, 모스타르 다리/
모스타르의 이소룡과 김한솔/
발칸 사람의 정체성과 ‘드리나강의 다리’
2. 가해자와 피해자 두 얼굴을 가진 나라, 세르비아
잃어버린 20년/
백색의 낭만,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의 몽마르트르/
베오그라드의 센스, 물음표(?) 가게/
‘기억의 장치’로써의 성 사바 교회/
신의 이름으로 심판하노라/
숙연한 정교회 예배/
요새화된 전쟁의 나라/
군사강국의 야망/
40번이나 파괴된 도시/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
16년 만에 체포된 전범/
피의 도살자, 밀로셰비치/
알바니아계에 대한 야만의 재발/
끝나지 않은 코소보 분쟁/
오스만이 뿌려놓은 분쟁의 씨/
피해자와 침략자, 세르비아의 두 얼굴/
세르비아에서 일본을 보다/
억울한 세르비아, 그러나…/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기원/
학살 기술의 수출/
티토의 ‘정치적 민족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단상/
근엄한 세르비아 국경 경찰/
티토와 김일성/
유고의 운명, 북한의 운명/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헌법/
티토의 정체성/
‘유고’와 ‘포니’/
EU 가입을 통해 도약을 시도하는 세르비아/
세르비아의 친절과 미소
3. 낭만과 야만의 종결자, 크로아티아
더 로맨틱,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외로운 돌섬 위에 세운 중세도시/
인간의 냄새를 가진 천년고성/
어린 마르코 폴로와 아드리아해/
중세의 휴머니스트 수도사/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
단절의 상징, 성벽/
두브로브니크 봉쇄/
패션모델의 보고, 스플리트/로마 제국의 유산,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방해하지 말게, 나는 정원이나 돌볼 테니…/
반나치 저항의 선봉, 스플리트/
요정의 숲, 플리트비체/
섬세하고 신비로운 태고의 자연/
사람을 정화시키는 마법의 숲/
플리트비체 쟁탈 작전/
야만의 전사, 우스타샤/
크로아티아판 홀로코스트/
포용적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일리리즘 운동/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의 기원/
크로아티아도 한때는 정교의 나라/
꿈에 그리던 EU 가입, 그러나…/
발칸식 도둑정치체제
2부 동유럽의 재발견, 냉전을 넘어 시장으로
4. 문명이 낳은 야만, 아우슈비츠
좌절과 절망, 탄식과 숨죽인 흐느낌/
근대문명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장소/
아직도 선명한 절규의 손톱자국/
전시실 유리벽 안의 유대인 유품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수용소 박물관의 이스라엘 학생들/
수용소를 찾는 독일인들/아우슈비츠를 찾지 않는 일본인/
독일의 길, 일본의 길/
아우슈비츠에서 요덕을 생각하다/
히틀러, 문명이 키운 야만/
단결의 기재, 유대인 집단학대/
야만에 길을 열어준 집단적 애국주의/
흰 장미, 빨간 장미/
집단최면의 도구, 상징조작/
히틀러의 부활?/
존 갈리아노와 나탈리 포트먼/
히틀러가 남긴 집단적 증오의 유산/
아우슈비츠 반세기, 새로운 야만이 도래하는가?
5.전쟁을 잉태한 아름다운 땅, 오스트리아
제1·2차 세계대전을 잉태한 땅/
유럽의 절대강자, 합스부르크 제국/
너희는 전쟁하라, 우리는 결혼하리라/외교로 분단을 면한 오스트리아/
독일에 대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콤플렉스/
예술을 사랑하는 낭만 도시, 빈/
문명충돌의 선물, 비엔나커피/
오스만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 크루아상 빵/
왕가의 따뜻한 마음이 깃든 호이리게/
빈의 랜드마크, 슈테판 대성당/
위기 극복의 수단, 집단학대/
희망의 노래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아름다움 가득한 평화의 샘, 쉔부룬/
친환경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6. 대평원이 부른 비극, 폴란드
비극을 부른 폴란드의 대평원/
단일 민족, 단일 종교인 폴란드/
내부 분열로 붕괴된 거대 폴란드 왕국/
전략적 완충지대의 교훈/
폴란드판 가쓰라·태프트 밀약/
소련에 의한 ‘지식청소’/
독일 깃발이 내려진 자리에 걸린 소련 깃발/
‘폴란드 민족은 집단적 희생자’라는 집단적 교육/
폴란드의 유대인들/카틴 숲의 비극/
‘집단적 기억’이 낳은 폴란드와 러시아의 악연/
폴란드와 러시아의 과거청산 교훈/
민주화운동의 불을 지핀 자유연대/
서울에서 만난 바웬사/
민주화도 혁명도 시작은 빵에서부터/
폴란드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종교 간 화해는 공존의 조건/
부활의 도시, 바르샤바/바르샤바 시민의 선택/
쇼팽의 심장/
야만이 비켜간 낭만 도시, 크라쿠프/
애환이 드러나는 크라쿠프의 트럼펫 애가/
쉰들러와 크라쿠프/
세상을 낯설게 하는 소금광산/
증권거래소로 바뀐 폴란드 공산당사/
비로쉬강의 기적은 시간문제
7. 불꽃처럼 강렬하게 벨벳처럼 부드럽게, 체코와 슬로바키아
프라하의 광장에 선 오바마 대통령/
비핵화와 냉전 해체의 상징으로 떠오른 프라하/
이방인은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공간/
프라하의 연인/
천년에 걸쳐 세운 고성과 성당/
천년 도시는 아무나 가지나/
400년 한을 가진 시계탑, 스토리텔링의 위력/카를 4세의 선물, 프라하/
프라하의 심장, 카를교/프라하에서 시작된 종교전쟁/
진리와 약속의 상징인 후스의 동상/
프라하성 창문 투척 사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독립, 그리고 분열의 씨/
‘프라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민주화운동의 성지, 바츨라프 광장/
벨벳처럼 부드러운 혁명/
소문이 일구어낸 벨벳혁명?/
프라하의 봄, 아랍의 봄, 그리고 평양의 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벨벳이혼’/
동유럽 경제의 허브/
중세로의 시간여행, 체스키 크룸로프/
귀족들의 삶, 하인들의 삶
8. 건설과 파괴를 숙명처럼 반복한 나라, 헝가리
유럽의 섬, 헝가리/
헝가리 건국의 상징, 이슈트반/
헝가리 기독교의 상징인 겔레르트 언덕/
헝가리 온천문화의 기원/
전대미문의 이중제국 탄생/
수탈과 좌절의 역사/
‘프라하의 봄’을 키운 ‘부다페스트의 봄’/
글루미 부다페스트/
파괴와 건설의 악순환/
내 생애 최고의 도시/
왕궁을 감시하는 요새/
시련의 상징, 부다 왕궁/
침략자에 따라 모시는 신이 달라진 예배당/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비운의 지도자들/
헝가리의 심장 위에 앉은 힐튼호텔/
홀로코스트의 상흔/
두나강의 다리
9. 야만에서 평화를 일군 역사의 이정표, 독일
베를린의 ‘사탕 폭격기’/
베를린 봉쇄, 냉전의 기원/
예고 없이 은밀하게 세워진 베를린장벽/
베를린장벽에 선 레이건/
필연이 만든 우연/
도둑같이 오는 통일/
브란덴부르크, 그 문을 열고 싶다/
우리에게는 부러움과 안타까움의 상징/
서베를린처럼 ‘남평양’이 있었다면?/
‘화해와 공존’의 아이콘/베를린에서 길을 묻다
나오며 _ 다시 서울에서 화해와 공존을 생각한다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저자와의 인터뷰
발칸반도와 동유럽으로 떠나는 다크 투어리즘!
세계 4대 통신사인 미국 UPI 통신 서울지국장이자 특파원인 이종헌 박사는 낭만과 야만이 교차하는 발칸반도와 동유럽으로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크 투어리즘은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여행 트렌드이다. 우리말로는 역사교훈여행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역사적 비극 및 재난의 현장을 찾아 자기성찰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낭만적인 것을 주로 보지만 거기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야만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으면 여행의 최고 목적을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대표적인 분쟁지역인 발칸과 동유럽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아픈 역사까지 함께 알고 가면 여행의 재미와 감동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발칸과 동유럽은 낭만의 땅이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수백 년 전 과거와 만날 수 있고, 광장엔 관광객이 넘쳐나고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곳.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 이곳은 인류 최악의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었던 야만의 땅이다.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보복이 또다른 보복을 잉태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조차 모르는 땅,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던 땅. 그곳은 야만의 땅이었다. 인종과 종교가 뒤섞여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도 모른다. 중동은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의 전선이 명확하지만, 발칸은 평생을 같이 살던 이웃끼리 참혹한 전쟁을 했다. '지상의 진정한 천국'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이곳에서 총성이 멈춘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고 또 언제 전쟁이 재발할지 모른다. 외세의 침탈과 전쟁, 파괴와 학살, 이데올로기와 냉전, 민족갈등, 종교갈등, 인종갈등 등 인류가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조리와 격변의 터널을 지난 발칸과 동유럽. 저자는 이 복잡한 역사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고 싶었다. 그들이 밟았던 길을 따라가며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발칸과 동유럽, 그 복잡한 역사의 양상을 풀어가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너무 복잡해 이해하기 어렵다. 두꺼운 역사책을 사본들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발칸반도와 동유럽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인데도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 생소하다. 당연히 그곳을 여행해본 한국인들도 아직 많지 않다. 사람들에게 지도에서 발칸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어디인지 모를 것이다. 우리가 너무 미국 중심,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역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수준도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세계사와 그들이 준 시각으로 지구촌 문제를 보고 있다. 역사의 정복자들이 기술한 세계사 때문에 정복된 국가들의 역사가 왜곡되기도 한다. 직접 가보는 것이 해답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곳이 발칸반도이고 저자는 역사기행 형태의 이 책을 통해 복잡한 역사를 쉽게 풀고자 했다. 서구에 의해 재단된 역사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뛰는 기자정신을 발휘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뿐만 아니라 발칸과 동유럽의 일은 단지 그곳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단과 다문화의 현실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교훈이 될 것이다. 발칸과 동유럽은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공존을 거부하는 순간 평화는 깨지고 참혹한 전쟁만 남았다. 지금 우리사회도 공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다문화는 벌써 우리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발칸과 동유럽이 공존을 선택하지 못해 이웃 간에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거기에 우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도 있다. 북한과의 공존공생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발칸 동유럽의 역사를 돌아보는 여행을 통해 우리 역사의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X
다음날 아침 사라예보 뒷골목의 풍경은 첫날의 편견을 깨고 말았다. 낙서로 어지러운 건물엔 총탄자국이 완연하고, 부서진 가옥 한편에 쭈그리고 앉은 노인들의 초라한 모습에서 이 도시에 남아 있는 잔혹했던 내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사원마다, 모퉁이마다 묘비가 늘어서 있고, 그 앞엔 시들지 않은 꽃들이 놓여 있다. 3년 8개월의 전쟁 동안 누군가는 남편을 자식을 친구를 잃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불구가 되어 아직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이슬람 사원에서 내전중 사망한 주민의 묘비를 정리하고 그 주변의 잡초를 뽑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결코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평화의 제전인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장까지 빼곡히 채워진 묘지들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아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당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낮에는 저격을 당할까봐 늦은 밤에 시신을 묻었다고 한다. - p.33
서울의 청계천보다 약간 더 큰 정도여서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한 밀야츠카강 위 라틴 다리는 전쟁으로 무너진 후 다시 만들어졌고, 바로 앞에는 암살사건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 벽에는 “이 지점이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 소피아가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곳”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독립을 요구하는 헝가리에 자치권은 주되 왕은 오스트리아가 겸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형태였다. 이제 사라예보는 평화를 되찾았고 라틴 다리와 박물관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어 있다. 강가의 낡고 낮은 건물 사이로 작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다리 주변에는 삶은 옥수수를 파는 행상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_ p.70
베오그라드 중앙역에서 쭉 뻗은 대로 양편에 나토가 폭격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번화한 거리에 다 부서진 건물을 흉물스럽게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쟁으로 파손된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건물은 더 있다. ‘절대로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란다. 무엇을 잊지 말자는 것일까? 그들의 선배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빼앗고, 이웃을 절망적으로 만들었고, 그 대가로 겪은 혹독한 시련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전쟁의 잔해를 남겨 이토록 무서운 전쟁이 다시 없도록 과거의 잘못을 잊지 말자는 의미라면, 그 정신에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많은 역사가 그렇듯 자신들의 악행은 애써 감춘 채,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부각시키고 후세들에게 그것을 ‘기억’시키기 위해 이 흉측한 건물들을 그대로 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_ p.136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눈을 돌린 가장 큰 계기가 이슬람으로부터 기독교를 구할 메시아를 찾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향후 수세기 동안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만리장성을 쌓아 가진 것을 지키려고만 했던 중국은 그 성 안에 갇혀 결국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만리장성의 길이마저 고무줄처럼 부풀리고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이토록 높고 견고한 성을 쌓았지만 외부와의 소통을 잊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로 문화를 잇고, 해상무역으로 부를 모았고 명성을 떨쳤다. 그래서 바다와 척박한 돌산에 가로막힌 보잘것없는 작은 도시였지만, 환경적 제약을 승화시킨 두브로브니크는 오랫동안 강한 도시국가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크로아티아의 끝자락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단절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_ p.204
아우슈비츠는 20세기 근대문명의 야만성을 상징한다. 이곳은 후미진 곳이 아니다. 각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기차로 실어다가 한곳에 모아놓고 집단으로 학살하기에 알맞은, 철도교통의 사통팔달 요지인 중부유럽 폴란드의 서쪽에 있다. 전시관의 길게 이어진 복도 옆에 걸려 있는 큰 지도는 이곳에 수용소를 세우기로 결정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지도를 보면 아우슈비츠가 유럽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 수용소가 폴란드 땅에 세워진 또 다른 이유는 인근 지역에 유대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독일은 유럽 내 흩어져 있는 유대인 분포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유대인들은 폴란드(330만 명), 소련(320만 명), 루마니아(85만 명)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소련과 루마니아에 인접한 폴란드 땅이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집단학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직적·체계적으로 준비된 만행이었다는 증거다. 전시관 지도 옆에는“유대인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섬뜩한 구호가 표기되어 있다. _ p.248
출처. 도서출판 한빛
'책 · 펌글 · 자료 > 예술.여행.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魂을 구하다』 (0) | 2014.01.09 |
---|---|
이 카페, 카페지기 참 멋져 (0) | 2014.01.03 |
남 일 같지 않네. (0) | 2013.12.23 |
* 북위 50도 예술 여행* (0) | 2013.12.21 |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0) | 2013.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