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2013. 8. 1. 21:32음악/영화. 영화음악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까지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칸.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17년 째,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는 긴 세월 준비해 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 꼬리칸을 해방시키고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 시키기 위해 절대권력자 윌포드가 도사리고 있는 맨 앞쪽 엔진칸을 향해 질주하는 커티스와 꼬리칸 사람들. 그들 앞에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닥친 빙하기,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기차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묵시록적인 SF를 연상하기 딱 좋지만,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장르의 통념을 벗어나 달려 나간다. SF 장르의 기술적 새로움과 VFX의 비주얼 스펙터클에 기대기 보다는, 좁고 긴 기차 안을 벗어날 수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밀도 높은 긴장과 충돌을 기본 동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질주하는 거대한 쇳덩어리, 기차가 가진 본질적인 에너지에 힘을 싣는다.

인류의 마지막 날, 가까스로 기차에 올라탄 꼬리칸 사람들이 헐벗은 채 창도 없는 비좁은 화물칸에서 생존을 목표로 바글대는 것과 달리, 비싼 티켓으로 탑승한 앞쪽칸 사람들은 술과 마약이 난무하는 사치 속에 꼬리칸을 억압한다. 그리고 마침내 분노한 이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그들이 돌진하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는 전복의 쾌감과 함께 숨가쁘게 관객을 앞으로 실어 나른다. 모든 반란이 그렇듯, 압도적 열세를 딛고 일어선 꼬리칸의 전사들은 칸을 돌파해 낼 때마다 앞쪽칸의 군인들에 맞서 몸과 몸이 직접 부딪히는 생생한 액션을 스크린에 구현한다. 또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주인공들도 달려가는, 이중의 질주와 이중의 폭주는 영화의 기본적인 무드로 깔리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쾌감을 선사한다. 아무도 가본적 없는 맨 앞칸, 기차의 해방을 위해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엔진까지 가는 주인공 커티스의 여정은 칸이 바뀔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투로 관객을 이끈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발버둥치는지 출구 없는 기차의 특성상 현미경 들여다 보듯 그릴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는 감독의 말은, 멸망 이후 노아의 방주가 된 기차라는 특수한 시공을 가로지르는 <설국열차>가 드라마의 밀도는 더욱 깊어지고 오락영화의 쾌감과 재미는 한층 더 확장된 봉준호 감독 영화의 새로운 장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설국열차 포토 보기

 

 

 

'설국열차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경향신문 2013.8.12)

 

 

세계대전 와중에도 크리스마스나 새해만큼은 암묵적으로 휴전했던 인류의 전사를 떠오르게 만드는 유머다. 그러나 <설국열차>의 세계관 안에서 이 장면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구가 공전하듯 윌포드의 열차는 지구 위의 궤도를 회전한다. 지구가 태양을 두고 한 바퀴 돌 때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듯 윌포드의 열차가 예카테리나 다리 위에 닿으면 새해가 선언된다.

즉, 윌포드의 열차는 ‘인류’인 동시에 그 자체로 ‘지구’이며 ‘시간’이고 ‘세계’다. 예카테리나 해피 뉴 이어 장면에서 우리는 두 집단 사이에 최소한의 규칙과 관습이 느슨하게나마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쪽은 지배하는 자들이다. 다른 한 쪽은 지배당하는 자들이다. 한 쪽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들이고, 다른 한 쪽은 못살겠으니 바꿔보자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이 세계의 질서와 체계를 존속시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대목은 꼬리칸과 머리칸이 미시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거시적으로 어떻게 공모하고 있었는지 드러나는 후반부 서술에 관한 복선이다.


두 번째 장면은 커티스가 윌포드에게 설득당하고 있던 중 열차 바닥 밑의 좁고 작은 공간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하는 대목이다. 윌포드는 커티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있던 중이다. 커티스는 꼬리칸의 지도자였던 길리엄이 사실 밤마다 핫라인으로 윌포드와 통화하며 열차, 즉 이 ‘세계’를 존속시키기 위해 공모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윌포드로부터 자신의 뒤를 이어 열차의 엔진을 관리하는 후계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받는다. 커티스는 그의 요청에 흐느낌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요나가 뛰어 들어와 바닥을 들어내고 그 안에서 티미를 발견하는 순간, 커티스는 더 이상 두고 볼 것 없다는 듯 결심을 내린다.

<설국열차>의 세계관이 조지 오웰의 <1984>로부터 많은 부분을 수혜받았음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석이다. 사실 <1984> 이후의 어느 디스토피아 텍스트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 1984>에서 주인공의 조국인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실제로 날마다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러나 사실 거기 진짜 전쟁은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결속이 필요하다. 결속을 위해서는 공포가 요구된다.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공모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그 자신의 세계를 존속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공모의 혐의는 인류 역사이기도 하다. 지키려는 집단과 바꾸려는 집단.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귀족과 부르주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투쟁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투쟁과 역전의 대목마다 인류의 세계는 다시 한 번 존속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다. 커티스가 윌포드의 말에 솔깃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윌포드의 뒤를 잇는 것으로 이 혁명은 완수될 수 있다. 커티스가 운영할 미래의 열차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커티스는 이 세계의 주도권을 누가 손에 쥐든, 누가 나름의 정의를 주장하고 어떤 종류의 공평함이 실현되든, 실은 은밀하게도 그리고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완전무결하게 착취하지 않고서는 기능하거나 존속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장면이다. 커티스는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선택을 한다. 그는 열차를, 이 세계를 파괴하기로 결정한다. 기존 체제의 유지 혹은 역전이 아닌, 체제 자체를 포기하는 순간이란 어떻게 찾아오는가. <설국열차>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장면은 폭발이 일어나고 열차가 탈선하는 순간,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상호 어떠한 합의도 없이 요나와 티미를 사이에 껴안아 지키는 대목이다. 우리도, 우리의 전 세대도, 그 전 세대의 이전 세대도 같은 것을 고민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다름 아닌 가능성이다. 우리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커티스와 남궁민수는 지금의 체계와 규칙을 물려주고 그 안에서 아프니까 청춘이고 밖은 추우니까 열차는 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성을 물려준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설국열차>는 이 대목에 이르러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쾌감에서 방점을 찍었던 영화 <파이트 클럽>의 이후를 모색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세계는 폭력적이지만 그 체제는 분명한 안온함을 제공한다. 그것을 벗어난 인간에게 희망이란 가능한 것일까. 요나는 ‘큰 물고기’라는 신의 형벌 안에서 탈출하고 생존했던 인간의 이름이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설국열차>가 언젠가 위대한 영화의 리스트 어느 구석에서 반드시 발견될 것이라 생각한다.


 

 

 

 

 

< 설국열차 > 원작만화를 처음 발견했을 때, 최초의 매혹은 '기차' 라는 독특한 영화적 공간이었습니다.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수 십, 수 백 개의 쇳덩어리들,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제 마음을 뒤흔들었죠.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노아의 방주에서조차, 인간들은 칸과 칸으로 계급이 나뉘어진 채, 서로 평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혹한 연쇄살인이건, 한강에 나타난 괴물이건, 홀로 미쳐가는 엄마이건, 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고 싶었던 저에게, <설국열차>라는 작품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원작만화의 위대하고 독창적인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영화적인 흥분이 가득한 새롭고 격렬한 <설국열차>를 탄생시키기 위해, 저는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와 인물들을 재창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비좁은 일직선의 기차에는, 우회로가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저 돌파해야만 합니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피와 땀이 뒤엉킵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와 영화적인 쾌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굳이 '액션' 이라는 단어로 단순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격렬한 충돌 속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희/로/애/락의 뜨거운 감정들이 뒤섞여 있으니까요.
달리는 기차 속에서, 인간들 또한 앞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그 이중의 질주를 관객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 감독 봉준호 -

 

 

[ ABOUT MOVIE ]

한국과 미국, 영국 등 국적 불문의 정상급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 한국과 미국, 영국, 체코, 헝가리 등 다국적의 스탭 구성, 체코 바란도프 스튜디오(Barrandov Studio)에서의 촬영 등 외양만으로는 합작 영화처럼 보이는 <설국열차>. 그러나 <설국열차>는 각본, 연출, 제작, 투자/배급까지 영화의 핵심 엔진은 모두 한국에서 시작, 전세계 관객들을 겨냥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기상 이변으로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빙하기, 생존 인류 전원을 태운 채 설원을 뚫고 질주하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 안에서 펼쳐지는 숨가쁜 반란의 드라마인 <설국열차>는 한국 영화를 포함한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롭고 강렬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영화의 국적성 자체가 무색해지는 설정과 이야기를 가진 <설국열차>에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 탑승한 배우들의 면면 또한 할리우드의 새로운 히어로 크리스 에반스부터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등 연기파들로 <설국열차>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영화가 가진 매력을 역으로 입증한다. 또한 CG와 음악 등 필수적인 후반 작업 공정이 완료되지 않은 작년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American Film Market, AFM)에서 10분짜리 프로모 영상만으로도 제작비 4,000만 달러의 절반을 상회하는 규모의 판매를 프랑스, 일본, 동남아시아, 동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167개국에 완료 함으로써,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세일즈 기록을 수립한 전 세계인이 함께 지켜보는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되었다.

어떤 기차인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걸까? 감독과 제작진의 첫 번째 고민은 배우 못지 않은 영화의 주역, 기차에서 시작되었다. 장르 이전에 기차 영화, 영화의 거의 99%의 공간이 되는 기차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이며, 어디에서 찍을 것인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 과제였다. 시나리오 집필 전에 이미 <괴물>의 Creature 디자이너, 장희철을 포함한 3인의 Conceptual artist가 기차의 내, 외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시작했을 정도로 <설국열차>의 탄생, 그 출발점에는 기차가 있었다.


꼬리칸에서 감옥칸까지 한번에 통과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최초의 질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소 4칸 이상이 연결될 수 있어야 했고, 그 결과 한국은 물론 유럽 전역의 세트를 뒤진 제작팀은 최고 100미터의 길이를 가진 체코의 바란도프 스튜디오에 둥지를 틀었다. 또한 실감나는 기차의 느낌을 주기 위해 열차를 상하좌우 자유롭게 구동시키는 초대형 짐벌 Gimbal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크림슨 타이드> 등의 선박, 잠수정 영화에 흔히 기용되는 짐벌은 기차 영화의 경우에도 실감나는 움직임을 위해 필수적인 장치. 하지만 칸 당 약 30~40톤, 도합 120톤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동시에 100미터의 기차칸이 실제 트랙 위를 달리는 것 같은 실감나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초대형 짐벌은 유례가 없었던 시도였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해내는 특효팀 바란도프 플래쉬(Barrandov Flash)는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기차 구동의 시뮬레이션 도면을 기초로 각 칸 아래, 중앙 부분에 특수 모터를 설치하고, 흔들림의 빈도수와 강약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칸 마다 6개의 에어 스프링을 장착하는 식으로 대규모의 기차 짐벌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실제 트랙을 달리는 기차처럼 실감나게 흔들리고 곡선 구간을 통과할 때는 뱀처럼 휘며 연결된 앞 칸의 공간이 시야 전방으로 깊숙이 들여다 보이면서, 좁고 긴 기차 특유의 공간감까지 구현하는 입체적인 움직임이 구현되었다. 실제 기차에 탄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에 도움을 주었던 짐벌은 상하좌우가 함께 흔들리는 시각적 체험으로, 관객에게도 기차에 함께 타고 있는 것 같은 실감나는 느낌을 줄 것이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펼쳐지는 용도와 컨셉이 다른 열차 칸은, 모두 이어 붙이면 약 500여 미터를 넘는 거대한 기차 세트로 <설국열차> 제작진의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영화 속에서 엔진칸에 도사리고 있는 ‘윌포드’라는 한 기차광의 필생의 집념이 구현된 크루즈 열차, 혹한의 극지방과 열사의 아프리카까지 1년에 한번 전 지구를 순환하는 기차라는 설정에 맞춰 보통의 기차보다 넓은 트랙을 달린다는 특성 또한 디자인에 반영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 개봉 프로모션으로 호주에 갔다가 눈 앞에서 본 압도적인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 호의 위용에 착안, 모든 기능이 한 구조물 안에 들어 있는 크루즈를 기차 형태로 좁고 길게 펼쳐 놓은 컨셉으로 최고의 크루즈 열차를 설계했다. 하지만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이라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느낌과 동시에, 영원히 서지 않으면서도 자체 에너지 생산, 자원 재생 등이 가능해야 한다는 기능에 대한 상상력과 무엇보다 중요한 열차 안 계급이 나눠져 있다는 컨셉을 표현해야 했기에 각 칸 하나하나가 봉준호 감독과 미술감독인 앙드레 넥바실(Ondřej Nekvasil)에게는 큰 숙제였다. 식량과 원자재 등을 싣는 화물칸을 개조한 거주공간으로 인구과밀, 물 부족, 난방미비로 인한 위생환경과 주거환경이 열악한 열차 맨 뒤쪽의 꼬리칸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비참한 공간인 빈민가의 비주얼을 참고했고, 초록의 식물들로 가득 찬 식물칸을 기준으로 부자들의 공간과 유흥의 공간 그리고 열차의 절대자인 ‘윌포드’ 찬양 교육을 받는 교실칸까지 어느 공간 하나 비슷한 느낌으로 제작된 곳이 없다. 특히 기차의 심장부이자 주인공의 목적지가 되는 열차의 맨 앞 쪽인 엔진칸은,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닌 영구동력이자 영원한 엔진이라고 숭배 받는 영원성의 느낌을 가져야 했다. 2004년, 감독이 자주 들르던 한 서점에서 자크 로브의 원작인 <설국열차> 그래픽 노블을 선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의 강렬한 매혹이래, 8년. 그 사이 <괴물>과 <마더>를 만들었던 긴 세월을 건너 뛰어 2012년 4월 16일, 체코의 바란도프 스튜디오에 드디어 봉준호 감독이 머릿속에 담아온 무한한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 육중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트가 지어진 바란도프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서면서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나눴다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라는 말은 상상력에서 출발, 거대한 세계를 완성해 낸 <설국열차>의 대장정을 실감케 한다.

<설국열차>는 한국에서 9개월, 체코에서 4개월. 도합 1년 3개월의 프리 프로덕션을 갖고, 3개월 동안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3개월 동안 총 72회차라는 군더더기 없는 프로덕션 기간을 거친 <설국열차>의 촬영 현장은 한국, 미국, 영국, 체코 등 다국적 언어와 문화를 가진 200여명의 스탭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가 초반에 걱정하던 의사소통에 대한 문제는 2011년 12월부터 2012년 4월 중순에 이르는 4개월 이상의 현지 촬영 준비 기간 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업무를 진행하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라는 대전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한국 영화 촬영장에서 밤샘 촬영과 불규칙한 촬영 스케줄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한국 스탭들은 하루 12시간 노동 제한을 어기면 안되고, 아무리 중요한 촬영이 진행되고 있더라도 칼 같이 식사시간을 지키는 외국인 스탭들에 놀랐다. 그리고 반대로 외국 스탭들은 그렇지 않은 한국 스탭들에게 놀랐다. 촬영 초반에 이 같은 문화적인 차이도 있었지만 200여명의 외국인 스탭들이 모두다 입을 모아 판타스틱과 원더풀을 외친 부분은, 매일매일 보드에 붙여지는 생생한 콘티와 방금 촬영한 분량을 바로 다시 볼 수 있는 현장 편집 시스템이었다. 현장 콘티는, 전문가가 사전에 작업해 놓은 스토리 보드에 봉준호 감독이 촬영을 모두 끝낸 밤에, 다음날 촬영분량을 직접 그린 스토리 보드가 합쳐진 상태로 매일 보드에 부착되었다. 덕분에 스탭들과 배우들은 그 날의 촬영 장면 및 분량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로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시스템은, 한국 현장에서는 익숙한 광경이지만 할리우드의 촬영장에서는 볼 수 없는 현장 편집 시스템 이었다. 특히 <폴락> 등의 작품에서 연출 경험이 있는 에드 해리스, 그리고 다양한 스튜디오 시스템을 겪은 크리스 에반스는 심각하게 현장 편집 시스템을 할리우드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겠다고 밝히기도. 쟁쟁한 스탭 그리고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 이름을 올리는 명배우들로 구성된 현장이었지만, 누구 한 명 튀는 사람 없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됐던 <설국열차>는 72회차 동안 두 번의 무알콜 파티와 한 번의 야유회를 가지며 바쁜 와중에도 훈훈한 친분을 쌓았다. 많은 스탭들이 기회가 되면 또 다시 한국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힌 것처럼 <설국열차>가 한국 영화 산업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교두보가 된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지난 2월 7일 발간된 유럽필름마켓 EFM의 소식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선판매되는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보통 한국 영화의 경우, 한류스타의 출연작이 아닐 경우에는 대부분 개봉 이후 한국 박스오피스 성적에 따라 해외 판매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단지 10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Weinstein Company)가 북미, 영국, 뉴질랜드, 호주 등의 영어권 국가의 배급권을 확보한 데 이어, 프랑스, 일본, 동유럽, 남미, 스칸디나비아 반도, 중동, 동아시아 지역 등 전 세계 거점 국가에 대부분 판매 완료되는 쾌거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