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샤우덱

2013. 1. 21. 09:51미술/사진·조각·건축

 

 

 

 

 

 

[마이데일리 = 최지예 기자]

 

얀 샤우덱의 '월드 오브 얀 샤우덱' 사진전이 국내 미술관람객들을 찾는다.

자신만의 색채를 사용한 누드 작업을 통해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는 얀 샤우덱은

많은 작품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1970년대 이후 그의 사진은 점점 썩어가는 '방'(the room)과 '누드'에 집중됐다.

또 흑백 사진에 채색을 가미하여 회화적 서정성을 한층 고조시키며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보적 예술가의 위치에 우뚝 섰다.

그의 그림에는 예술가로서의 창조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끊임없는 자기의심,

쇠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묘사도 찾아 볼 수 있다.

얀 샤우덱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상상의 세계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모든 인간의 꿈, 열정과 즐거움이 존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결과물이다.

이것은 그의 '창'(Window)시리즈에서 잘 나타난다.

얀 샤우덱은 늘 자신의 시대를 훨씬 앞서갔다.

연출사진(Staged Photo)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시도했으며,

사진의 변용이 유행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는 사진 이미지들을 능수능란하게 응용해 작품에 대입했다.

 

 

 

 

 

 

 

 

 

 

 

 

    

 

 

 

 

 

 

 

 

 

 

 

 

 

 

 

 

 

 

 

 

 

 

 

 

  

 

 

 

 

 

 

 

 

 

 

 

 

 

 

 

 

 

 

 

 

 

 

 

 

 

 

 

 

 

 


1. 작가 얀 샤우덱


한때 공장에서 아침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던 소년이 있었다.

그는 케케묵은 석고 벽이 산산조각 부스러지는 지하층에서 살았다.

그 사람은 얀 샤우덱 이며 그의 가장 값진 자산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야망이었다.

1950년 "코닥 베이비 브로우니(KODAK BABY BROWNIE)"를 첫 사진 장비로 갖춘 이래

공산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작가 얀 샤우덱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초기작업의 표현 소재였다.

1960년대, 그의 작품 세계는 가족, 어린이, 여성,남성의 친구들이었다.

1970년대 이후 그의 사진은 점점 썩어가는 “방(the room)”과 “누드(nude)”에 집중 되었다.

또한 흑백 프린트에 손으로 채색을 하여 회화적 서정성이 한층 고조되면서

곧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보적 예술가의 위치에 우뚝 서게 된다.

그만의 색과 누드 작업에서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의 표현에 일생을 바치게 되고

수많은 작품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창조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그의 끊임없는 자기의심, 계속된 쇠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묘사 하는데….

이는 1972년도부터 5년을 간격으로 그의 애인을 연속사진으로 찍은’Ten years in the life of my Veronika’에서 잘 보여 진다. 연속사진의 창시자인 듀안 마이클에 버금가는 완성도 높은 연속 사진의 작업을 이루게 된다.

얀 샤우덱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상상의 세계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모든 인간의 꿈, 열정과 즐거움들이 존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결과물이다. 이 또한 “창(Window)" 시리즈에서 잘 나타난다.

얀 샤우덱은 늘 자신의 시대를 훨씬 앞서 나아갔다.

사진계에서 연출사진(Staged Photo) 유행하기 이전에, 이미 그에 의해서 일찍이 시도되었고,

사진의 변용이 유행되기 훨씬 오래 전에 그는 사진 이미지들을 능수능란하게 응용하고 있었다.

 

 

2.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aichen)이 기획한

‘인간가족전'의 사진들을 접한 얀 샤우덱은 감동을 받아 인간에 관한 사진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인간가족전'에서 영감 받은 몇몇 사진 외에 그는 상당부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고

특정한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것 대신에,

그 장면을 상상하고 난 뒤 자신만의 인간을 표현하고자 연출해 나갔다.

그의 작품 ‘Life,1966’ 에서 표현된 ‘부성애’는 단순히 남성이 아버지로서 가지는 감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 진 가슴과 부드러우면서도 보호하려는 듯한 손은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 함으로서

‘부성애’와 ‘에로티시즘’이 함께 표현하였다.

그가 연출한 출생의 신비함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적 욕망’ 이라는 그의 컨셉에서 여자는 하나의 생을 부여하는 사람, 어머니로서의 여성,

어머니가 될 가능성을 지닌 모든 여성을 아우른다.

사랑의 열매인 아이도 심지어 그의 에로틱 컨셉의 신비함에 함께 덮여 있다.

이시기 그의 사진작업들은 어린이, 여성, 남성, 그리고 연인들의 아름다움, 부성애와 모성애를 표현하였고

출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인간 가족”의 상징들로 만들어 나갔다.

 

 

3. 인간 감정의 이중성

얀 샤우덱은 80년대에 들어서서 'Light-Montage' 기법을 이용한 거울이미지의 독창적 화면구성을 창조한다.

야누스 신의 두 얼굴처럼 ‘인간의 이중성’을 일련의 카드 이미지를 통해 사진의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완성한다.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얀 샤우덱의 ‘여성에 대한 경배와 흠모’라는 주제와 더불어,

사랑과 증오, 부드러움과 폭력, 진실됨과 거짓됨,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의 관계 등 상반된 요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남녀 간 관계에서의 아이러니와 냉소주의’를 이야기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4. 인간의 몸에 대한 집착

90년대에 들어서 그는 육욕과 세속성의 범주, 공격적인 동물성에서부터 괴팍한 행위들,

심지어 마조히즘(Masochism)까지 아우른 인생의 의미들에 관해 질문한다.

그러나 얀 샤우덱의 인간의 몸에 대한 집착은 유행을 따른 혐오스러움의 미학에 의해 유도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늙고 뚱뚱하며, 흉측하거나 기형적인 몸까지도, 사실상 어떠한 몸이든 그는 유쾌하게 작품화하였다.

그러한 몸을 지닌 이들도 그의 작품에서는 심지어 에로틱할 수 있고 아름답다.

폭력성, 잔혹한 행위, 성 행위 등, 이러한 이미지들 간의 긴장감은 아마 충격을 줄 수도 있다.

 

 

5. 인간의 희극을 작품화

그는 능란한 감독으로서 인간의 희극을 유쾌한 에로티시즘으로 만들어냈으며

인생의 이야기들을 연극적이면서도, 유희적으로 그만의 색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인간의 출생, 사랑, 유혹, 죄 등 되풀이 되는 인생 여정을 인생극장의 모습으로 끝없이 표출하였다.

 

 

6. 인간성에 대한 경배

얀 샤우덱의 작품들은 아주 사적이고 은밀하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이 인간의 가장 부드러운 감정들을 다루며, 인간의 가장 의문시 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이는 그만의 인간다움을 간직하고 축복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어떠한 인간의 모습이든 아름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며,

자신만의 개성과 방법으로 그가 보인 “인간성에 대한 경배” 는

현대사진예술에 있어서 얀 샤우덱을 독보적인 위치에 이르게 하였다.

 

 

출처. 광주in simin6678@hanmail.net

 

 

 

 

 

펌 2 )

 

1935년 생으로 60대 후반을 바라보는 체코 출신 사진작가 얀 사우덱(Jan Saudek)은

유태인이란 이유로 나치 점령기에 수난을 겪었고,

도발적인 일련의 누드사진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포토그래퍼’가 아닌 ‘포르노그래퍼’로 불리는 등

보수적인 고국 국민들에게서 한동안 외면당하기도 했다.
얀 사우덱의 카메라는 성별이나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인물 유형을 담았다.

포동포동한 엉덩이와 덜 여문 가슴을 수줍게 드러낸 앳된 소녀,

근육질의 남성,

지방이 들러붙어 울퉁불퉁해진 피부를 무겁게 늘어뜨린 중년여성,

그리고 기형적 육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무장해제 되곤 했다.

 

말년에야 비로소 고국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는 얀 사우덱은

사진 뿐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회화작품도 꾸준히 제작해왔다.

얀 사우데크는 1935년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프라하 국립 인쇄 미술 학교에서 수학했다.

그의 성장 과정을 보면 1939년에 나치가 이 나라를 점령하자

은행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이었기에 프라하 거리의 청소부로 전락해 버렸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강제 수용소 생활을 했다.

또한 그의 삼촌들은 그 수용소에서 모두 살해당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를 캐어 먹는 빈곤속에 허덕였다.

1945년에는 다시 소련 병사들의 군화에 짓밟히는 핍박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아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쇄소의 사진사 조수로 들어갔다.

바로 이 일이 그가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밑거름이 되었다.

조수로서 도제 수업이 끝난 후 사진사 자격증을 얻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사진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1952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코닥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어 줄곧 이 카메라로 작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작가가 되려고 결심한 시기는 군대 제대 후,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작품집 <인간가족 The Fammily of Man>을 본 후였다고 한다.

사우데크는 이 사진집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으며 감격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때 그는 사진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 영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라이프 Life>지이다.

이 잡지에 게재되었던 기셀 프로인드, 마가레트 버크 화이트, 유진 스미스 등의 사진에 매료되어

인본주의에 입각한 기록사진을 많이 촬영했다.

우선 그의 사진의 방향이 하나의 운명처럼 결정지워진 까닭은

유태인의 아들로 근대사의 격동기에 항상 피지배국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성장 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사진은 음울하고, 흑백 사진이건 컬러 사진이건 간에 모두 불안한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다.

그는 촬영 장소를 항상 좁은 공간인 자신의 집 지하실로 한정했다.

그것도 일반 스튜디오처럼 흰색이나 회색으로 밝게 칠한 벽이 아닌

낡고 곰팡이가 나서 얼룩진 벽을 그대로 배경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가 작업한 지하실 분위기는,)

바닥에 깐 나무 판자는 썩어 축축하여 곰팡이가 생겨 위에 깔아 놓은 매트리스까지 곰팡이가 슬었고,

침대 시트는 물론 그 위에 덮인 담요에까지 곰팡이 냄새가 스며들고,

옷, 책, 필름, 심지어 비누까지도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환경 여건이 도리어 그가 처해 있는 프라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간접적이나마 숨김 없이 투영하는 진실된 사진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그가 찍은 사진의 인물들은 가족들, 친구, 이웃, 연인들에 한정되어 있다.

가난한 그로서는 모델을 구할 수도 없었겠지만

가족, 친구, 이웃만큼 자신의 진실과 접하며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피사체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육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연구하고 작품제작에 활용한다.

그의 사진 중에는 옷을 입은 인물 사진도 있지만 상당수가 알몸 사진이다.

옷을 입은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것은 섬유 껍질로 둘러싸인 나무를 찍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여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은 많은 부분이 경박하고 음탕해 보이며 많은 사람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반미학적인 분위기로 충만한데

그것은 평범한 것에 충격적인 시각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 본능이나 잠재력올 표출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머리 속에는 유태인들의 고통을 상정하는 단어인 아우슈비츠의 환상에 대한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음울하고 침울한 감방, 소음, 굶주림, 죽음으로 점철된 세계를 인간 본능을 중시하며 표현하는 그는

어두운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조명 도구 하나 없이 거의 1초 내지 1/2초의 장시간 노출에 의존하는 사진을 찍는다.

작화 후에도 그 감정과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사진 위에 해석을 가한다.

그는 수채화 물감을 사용한다.

색을 칠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회장을 시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얀 사우데크는 환상의 세계를 현실 위에 중첩시켜 창작적 역량을 발휘하는 사진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사진가는 아니다.
때로는 공간성에 시간성을 가미한 연속(Sequence)사진도 볼 수 있다.

그가 근래에 영향을 받은 사진작가로서는 듀안 마이클즈를 들 수 있다.

마이클즈야말로 연속사진의 개척자이며 대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그가 계획중인 사진은 수년 전에 그가 찍었던 사람들 모두 다시 데려다가 같은 벽 앞에 세워 놓고

그 사이에 어떻게 변했는지 기록하려고 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야말로 긴 세월의 연속물인 것이다.

 

그는 주제의 선택을 주변 인물과, 어둡고 침침한 지하실에 국한시킨다.

공간의 한계를 자신의 환경적인 배경막으로 되풀이해서 사용하는 그 고집스러운 작법은 흥미진진하다.

그의 작품과 동의어가 되다시피한 낡은 벽과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구름 낀 하늘은

그의 상상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요소들어다.

불과 몇 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 속에서 이룩 한 다양한 감정과 영상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능력은 참으로 놀랍다.

그는 렌즈와 카메라라는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를 그대로 두지 않고

수채화 물감으로 가피펼함으로써 상상력을 마음껏 확대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유태인의 비애와 프라하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과 가치관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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