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1. 16:22ㆍ미술/한국화 현대그림
문봉선 展
독야청청(獨也靑靑) - 천세(千歲)를 보다
Pine Tree-Looking ahead a thousand years
송운(松韻)_화선지에 수묵_145x720cm_2012
서울미술관
2012. 12. 11(화) ▶ 2013. 2. 17(일)
Opening 2012. 12. 11 (화요일) 5pm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01번지 | T.02-395-0100
소나무-경주삼릉송림_화선지에 수묵_245x1000cm_2012
소나무와 바람
문봉선(文鳳宣)
필묵을 품고 산천단(山川壇)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설레고 흥분된다. 마치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까마득한 태고 속으로 떠나는 시원의 화첩기행 같은 느낌이다.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에는 여전히 곰솔 여덟 그루가 신화처럼 살고 있다. 예로부터 제주 목사(牧使)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천제를 올렸는데 산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빠 산천제를 드리기 힘들 때에는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천제를 지냈다. 곰솔의 수령을 500~60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국내에 자생하는 해송(海松) 중에서는 가장 크다. 곰솔의 껍질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고 깊게 패어 있었다. 솔잎은 짙다 못해 검은 빛에 가깝고 가지는 모진 해풍(海風)에 갈지자 모양을 하고 있다. 두 그루는 태풍으로 인해 50도쯤 기울어져 지지대의 부축을 받고 있는데, 나머지 여섯 그루는 돌담 옆에 곧게 서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가 나무 위에 앉아 깍깍 소리 내어 울고 처진 솔가지에 바람이 스칠 때면 노송(老松)은 한 층 더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쳐다보기도 힘들만큼 거대한 노송 앞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져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설상가상, 갈아놓은 먹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노송 주위에 떨어진 솔잎을 태워 언 붓을 녹여가며 그려야 한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까지 온종일 그림에 매달렸어도 회심작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곰솔처럼 까맣게 애태우기를 몇 번이었던가. 문득 형호(荊浩)의 『필법기(筆法記)』 속에 등장하는 노인이라도 나타나 뵙게 된다면 후생의 간절하고도 답답한 심사를 하소연이라도 했을 것이다. 닮게[似] 그린다고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옛 기법을 충실히 따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 것이며, 형태를 왜곡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채색을 곱게 칠한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얽히고설킨 곰솔 가지 아래를 걸으며 사천왕상의 부릅뜬 눈으로 가지들의 포치(布置)를 관찰하다가 잠시나마 가물 없이 이어지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애써 고심하던 나의 그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미완의 작품을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 허공에 떠 있는 연처럼 훨훨 날리고 있었다. 그럴 때면 그야말로 ‘진(眞)’, 즉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화도(畵道)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소나무-경주삼릉송림II_화선지에 수묵_145x720cm_2012
이래저래 공수거의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새로운 실패의 연속이 동일한 실패의 반복과는 다르듯이 그동안 경험한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의 축적은 나에게 사생(寫生)의 중요성을 절절히 일깨워 주었다.
1987년 봄이었다. 나는 동아미술제 공모전에 소나무를 출품하여 동아미술상을 수상하게 됨으로써 소나무를 내 그림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우리나라 옛 그림, 특히 산수화에는 소나무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동양회화를 전공한다면 응당 우리네 삶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연구하는 것도 의미가 적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고 그 상징성으로 인해서 선비들의 문학과 그림의 소재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바닷가나 논두렁, 산야의 바위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산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미감을 지닌다. 우리 소나무에는 중국 그림 속의 소나무와는 달리 우리 산하의 풍토를 담은 색다른 조형미가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리기만 해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이 소나무이다. 또 누구 하나 돌보지 않아도 온갖 풍상을 겪으며 말없이 서 있는 노송을 대할 때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나는 1990년부터 산과 땅,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고집스레 이어 오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북한산, 설악산, 섬진강, 한강 등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했었고, 그 중간 중간에 동양 회화의 오랜 소재인 매화, 난초, 대나무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번 소나무도 이러한 맥락에서 준비한 작품들이다. 나는 지금도 자연에 대한 사랑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통찰력이 내 그림을 조금씩 성장시키는 발전의 동인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일환으로 일찍이 임모(臨模)에 눈을 떴고 지금껏 고금 명가의 많은 작품들을 두루 분석했다.
…중략…
소나무-함양_화선지에 수묵_95x180cm_2012
나는 지난 30여 년간 우리 산천에 묵묵히 뿌리박고 서있는 소나무를 관찰하고 그려 왔다. 어쩌면 우리 소나무야말로 우리나라의 풍토와 기후가 만들어낸 비대칭, 비정형, 비상식, 비표준 그리고 겸손, 인내, 당당함 등을 두루 겸비한 진정한 목신(木神)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화가가 소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는 것이 결국 차 한 잔을 마시거나 한 끼의 밥을 먹는 일처럼 다반사의 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화법을 개창하여 새로운 송백(松柏)의 정신을 시대의 팍팍한 마음 밭에 심을 수만 있다면 이것 또한 더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위안해 본다.
그동안 갈필(渴筆)을 이용하여 껍질이나 가지를 그리고 마차 바퀴 모양으로 솔잎을 그리는 옛 기법에서 탈피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급기야 농묵과 초묵(焦墨)을 이용하여 서예의 한 획 개념에서 그 방법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넘어질 듯 쓰러질 듯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의 위태로운 자태는 나에게 더 큰 화흥(畵興)을 불러일으켰고, 솔바람은 언제나 버리고 버리며 비우고 또 비우라고 가르쳤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송백의 후조(後凋)를 알리라.
임진(壬辰) 가을 한향재(寒香齋)에서
소나무-제천_화선지에 수묵_120x245cm_2011
소나무-여명_한지에 수묵_70x181cm_2009
'大地', 2009
문봉선_霧 3_한지에 수묵_141×133cm_2010
문봉선_流水_한지에 수묵_128×186cm_2010
보름달 90*181cm 화선지에 수묵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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