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11. 12. 9. 19:41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시인 박용철이 여동생 봉자에게))

 

 

봉자, 보아라.

 

네 글은 받아 읽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대강 엿볼 수 있고

네 글 쓴 것도 전보다는 얼마간 나아진 것 같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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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氣도 추워지고 서울에서지낼 별 재미도 없어

집에 가서 겨울이나 지내고 올까 한다.

이번 토요일에는 나오겠지 (그 안에 만나보겠지마는).

둘이 사진을 하나 박을까 하니 그리 준비하여라.

될 수 있으면 검정 옷으로.

 

늦어, 미안하다.

 

11. 23  오빠 씀.

 

 

 

 

형제간에 편지 주고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단 한번도 그래본 기억이 없습니다.

형이나 동생이 군대갔을때 썼을 수도 있겠는데

기억은 전혀 안납니다.

아마도 우리 나이 이후의 사람들은 다들 마찬가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세대랑이야 다르죠.

 

 

지금 이 편지는『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책에서 베낀 건데,

            편지글을 모아 놓아서 엮은 책입니다. 소개한 편지들을 보면…,,

이광수가 부인 허영숙에게 쓴 편지도 있고,

조정래가 김초희 여사에게,

박완서가 이해인 수녀에게,

첼리스트 장영주가 이어령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가 한무숙에게…,,

소설가 최정희와 이어령씨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전부가 수신인으로 받은 편지로군요.

최정희의 발신인 ─ 시인 노천명, 소설가 김승옥, 시인 이용악, 시인 김남조.

이어령의 발신인 ─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첼리스트 장영주, 평론가 구로다 모모코,

                           화가 김향안, 화가 이우환.

 

 

오빠가 동생한테 ‘사진 한장 박자’고 한 말이 재밌습니다.

오누이 간에는 사이가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주변에 보면 다투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디다.

 

 

 

 

*

*

 

 

 

 

((시인 김광균이 며느리 민성기에게))

 

 

성기 앞

 

풍토가 험한 김씨 집에 와서 20년 동안 수고가 많았다.

너도불혹을 넘어 앞으로의 길도 哀樂이 교차할 터이니

책 한 권 조그만 접시 하나에라도 마음을 붙이고

스스로 즐거움을 갖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任戌初冬 성북동

 

 

 

시아버지가 며느리한테 쓴 편지는 처음 봅니다.

아마도 아들이 죽어서 없는 거겠지요.

아들이 있으면야 설형 아들이 객지에 나가있더라도 며느리한테 편지 쓸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보낸 편지도 있을 법한데..,

나중에 며느리 얻게되면 종이편지 한번 써보내라고 시켜봐야겠습니다.

 

 

 

 

*

*

 

 

 

 

((시인 고정희가 시인 신달자에게))

 

 

가을 편지

─ 신 선배님께

 

보내주신 아름다운 산문집을 받고 너무 크고 벅찬 기쁨에 젖었습니다.

시인은 모르지기 글에는 능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만

어줍잖은 시집에 비할 바 아닌 선배님 산문의 편편

그 고독과 우수 어린 방랑을 직감하면서 많은 위안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지금은 늦은 밤입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문득 선배님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또 미루다가 답장이 늦어지면 안되겠기에 이 밤 선배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오늘 밤 저는 많은 쓸쓸함을 안고 귀가했습니다.

평소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도

사실은 울고 싶도록 고독한 소외감 같은 거 있지요.

꼭 그것이 필요할 때는 주어지지 않고

안 줘도 되는 자리에만 무더기로 주어지는 그런 인정 같은 거 말입니다.

 

저는 그런 외로움 속에서 시종일관 들러리로 앉아 있다 돌아왔지요.

시골서 올라온 친구가 편히 묵고 갈 방 한 칸 없는 저로서는

저보다 훨씬 잘 사는 선배님께 그 친구를 돌려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느슨한 빗방울이 제 눈물처럼 외로운 귀갓길을 하염없이 젖어 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제 에너지란 것을 생각하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城을 구축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하면 왜일까요?

그 다음이 외롭고 고달픕니다.

 

요즘은 너무너무 바쁘시지요?

그렇더라도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가을이 가기 전에 우리 차 한잔 나누면 어떨까요?

제가 차를 살게요.

문화방송국 부근 난다랑에서 말에요.

그럼 안녕.

 

1982. 11. 3

정희올림

 

 

 

 

‘‘평소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도…시종일관 들러리로 앉아 있다 돌아왔지요.’’

☜  이 귀절을 보니, '아, 고정희 시인도 문단의 아웃사이더'였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에 ‘재평가’ 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은 거의가 다 보면 아웃사이더입디다.

문단 만이 아니라 미술이고 음악이고 영화 연극이고 전부다 학연으로 똘똘 뭉쳐서

핥고 빨아주면서 자기들끼리 통반장을 다 해먹더만요.  

고정희 시인은 신학대학 출신이니까 문단과는 거리가 멀죠. 정말로 잡을 줄이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저런 상황들이 고정희 시인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는가 봅니다.

아래 <생명>이라는 시에 이런 귀절이 들어 있군요. 편지 쓰던 그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 
                      고정희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돗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천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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