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2. 16:27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내가 강진을 갔었잖아. 작년은 아니고 재작년 가을이었지. 친구랑 백련사 대흥사 갈 때 그때였는데, 점심을 여기 강진에서 먹었거든. 친구가 그랬어. 강진에 가면 백반을 잘한다고. 강진에 두 시 넘어서 도착했으니까 그때까지 배 고픈 걸 참았지. 강진군청 앞 골목에 한정식집이 몇 개 되더군. 그런데 밥 때가 지나면 식사가 안된대. 반찬이 떨어졌다는 거지. 맞는 말이야. 백반이고 한정식이고 나올 반찬은 다 나와야지 않겠어? 그럴듯하게 생긴 집은 전부들 식사가 안된다는 거야. 뭔 식당인가 가서 물었더니, 들어오라데. 한정식은 안돼도 백반은 된다더만. 한정식은 4인상만 판다는 것 같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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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집이었어. 흠, 이름이 부성회관이었구만. 식당이 좀 허룸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대는 했지. 백반집 골목에서 장사하니까 경쟁력을 갖췄을 거 아냐? 아, 근데 음식 나온 걸 보니까 여엉 아니더라구. 아주 형편 없는 거야. 대전에서 오천원짜리 백반을 시켜도 이렇게는 안 나와. 이건 뭐 찌개도 없는 거야. 그러면서 만 원이래. 기가 막히더군. 내가 남도기행이랍시고 간거기 때문에 소소한 장면도 모두 사진으로 담아왔었거든. 봐바, 근데 사진이란 게 달랑 이거 한 장뿐이었어. 얼마나 상차림이 쪽팔렸으면 이랬겠냐구. 국은 멀건 미역국이었던 것 같고, 군내나는 김치 쪼가리에다, 딱딱하게 굳은 오뎅에다가, 콩나물 무침, 멸치 꽁대기, 누가 먹다남긴 것 같은 찌질한 고등어 조림. 뭔 젓갈이래도 좀 그럴 듯한 게 나올줄 알았는데, 넨장, 것두 없는 거야.
평소엔 백반상을 그렇게 차리지야 않겠지. 아마도 때가 지나서 그랬을 거라곤 생각해. 또 우리가 뜨내기니까 만만하기도 했겠지. 떠나면 그뿐이니까. 그렇더라도 그렇지, 그걸 어떻게 낯뜨겁게 '백반'이라고 내놓겠냐구? 음식 장사는 그러면 안되지. 전라도 사람들이 인심은 후한 사람들 아녀? 특히나 음식 인심은 더 후한 편인데. 돌아오는 차 속에서 친구한테 뭐라 그랬네. 그 아줌마 못 쓰겠다고. 반찬이 떨어졌으면 다른 집들처럼 차라리 못 판다고 해야 양심에 맞는 거지. 그 아줌마 하나 땜에 동네 이미지 버리잖아. 그러니까 남도라고 해서 아무데나 다 좋다고 생각하면 오산이겠더라구. 다음에 강진엘 또 가게 되면 <해태식당>이란 델 가봐야겠어. 유흥준이가 우리나라 3대 한정식집이니 뭐니 했다닌깐 어지간하겠지. 강진 버스터미널 근처랬나?
내가 고급음식은 몰라도 헐한 음식에 대해서는 맛을 좀 알지. 뭐, 미식가라면 미식가랄 수도 있어. 밑에도 그런 얘기가 나오더만, 음식은 식재료 나름의 고유한 맛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섞을땐 당연히 음식궁합이 있는건데, 잘 모르면 섞지 않는게 나아. 요리도 참 매력적인 분야인 것 같어. 그것도 미학이거든. 그리고.... 내가 먹는 걸 좀 밝히는 편이지. ^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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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펌글. | |
남도 답사 1번지인 강진은 ‘맛 천국’이다. 병영면 설성식당은 고추장 돼지불고기구이로 유명하다. 예약도 받지 않고 평일에도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 연탄불에 구운 돼지고기는 달달한 맛을 내는데 강진읍내에 이곳 맛을 모방한 아류식당들이 생겨날 정도. 2명이 먹든 4명이 먹든 한 상을 내온다. 한 상에 2만원. 시골정성 가득한 20여가지 반찬도 먹음직스럽다. 바쁜 일정이라면 점심 피크시간은 피하자.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하니까.
짱뚱어는 양식을 하지 않으며 청정개펄에서만 잡힌다. 부드러운 참짱뚱어와 뻣뻣한 말짱뚱어로 나뉘는데 단백질이 많고 술 마신 뒤 숙취에 좋다. 군민회관 옆 동해회관에서는 향신료를 쓰지 않은 짱뚱어탕을 내놓다. 기본반찬이 20여가지는 된다. 군청 앞 삼희회관은 백반(5,000원)을 주문하면 바지락회,꼬막에 전어새끼로 만든 되미젓을 내놓는다. 청자골 종가집에서는 홍어,돼지고기,3년 묵은 김치가 어우러진 삼합요리를 맛볼 수 있다. |
강진읍 강진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 해태식당은 유명한 남도 한정식집이다. 주인 이양자씨(69)가 1975년 지금 자리에 식당을 열었다. 강진에 이름난 한정식집이 몇 군데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대는 이곳은 강진 한정식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식당은 원래 요정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남편(송복동씨·97년 사망)이 그곳에서 요리사로 일했죠. 요정 주인이 장사를 그만두면서 남편에게 식당을 해보라고 권했어요. 음식 솜씨가 뛰어났거든요.”
이씨가 남편과 함께 본격적으로 음식만들기에 나선 것은 그때부터다. 강진과 인접한 영암이 고향인 이씨는 이전에는 집에서 음식을 해서 그렇지, 그의 손맛도 괜찮았다.
해태식당의 메뉴는 29년째 한정식 하나밖에 없다. 강진만에서 잡아 올리는 싱싱한 해산물과 비옥한 강진평야에서 길러지는 농산물로 한 상을 채운다. 조기구이·삼합·생선회 등 해산물에 젓갈류, 밑반찬 등 30가지가 넘는다.
“상 위에 가짓수만 많이 올리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손님의 손이 가는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철 음식을 제때 상에 올려야지요.”
때문에 사계절의 음식이 달라진다. 늦여름에서 봄까지는 싱싱한 해산물을, 여름과 가을에는 익힌 음식을 중심으로 상을 차린다. 봄에는 강진의 특산품인 대합을, 여름에는 민물장어, 가을에는 전어·오도리(새우회), 겨울에는 매생이국을 내놓는다. 돔배젓, 토하젓, 게장, 바지락젓갈, 전어밤젓, 아가미젓, 민어참젓 등 각종 젓갈류도 제철에 담가서 준비한다. 그 중 매생이국, 대합국, 돔배젓은 이곳의 특미로 손꼽힌다.
사실, 전라도에서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 내오는 식당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맛을 내느냐 이다. 이씨의 비결은 간단했다. “재료가 고유의 맛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바다면 바다, 육지면 육지의 산물이 자연의 맛이 살아나도록 양념과 조리는 최소한으로 했다. 달고 시고 짠 강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을 냈다.
해태식당의 명성은 개업 직후부터 강진 일대에 퍼졌다. 그러다 1993년 전국의 맛집으로 부상했다. 유홍준 교수(현 문화재청장)가 쓴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식당이 소개가 되면서다. 유교수는 책에서 서울에 있는 두 곳과 더불어 한국의 3대 한정식집이라고 평가했다.
“외지에서 정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쉴 틈이 없었지요. 요즘도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그 책에 나왔던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면 엄청난 도움을 받은 셈이죠. 교수님은 이후에도 강진에 올 때면 들르시곤 했는데 한끼 대접하려 해도 번번이 밥값을 내시는 바람에 고맙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했지만요.”
해태식당은 변화에 참 무디다. 지난 30년 동안 주변에 신식건물이 많이 들어섰지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낡고 허름하다. 밥지을 때를 제외하고는 가스불 대신 연탄불 위에서만 요리하는 것도 그렇다. “남들은 가스불이 편하다고 하지만 연탄불이 더 익숙해요. 생선구이는 연탄불에 구울 때 제맛이 나기도 하죠.”
제 손으로 직접 하는 요리야 상관없지만 바다가 예전만 못한 것은 걱정이다. 해산물 생산이 많이 줄어들었다. 7, 8년 전만 해도 대부분 자연산으로 요리했지만 지금은 태반이 양식한 것이다. 재료값이 많이 올랐다. 이씨는 “그래도 냉동음식을 사용하지 않고 식당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만 올린다는 원칙은 지금껏 실천해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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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남 '강진'-한정식,돼지불고기,짱뚱어탕|작성자 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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