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4. 14:10ㆍ詩.
그때 나는 헌책방에서 《현대문학》, 《문학사상》같은 문예월간지들을 잔뜩 사서 읽고는 했었는데,
그건 적은 돈으로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그 문예지 속에서 일제시대 무명시인들의 시를 처음 보게 되었다.
지금 그 책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 《문학사상》에서였던 것 같다.
1930년대 초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같은 신문에 투고한 무명시인들의 시를 찾아 실어놓았는데,
대부분 당시의 힘겨운 삶을 동요 동시의 틀을 빌어 쓴 것이었다.
이제 와 다시 보니 민요나 전래동요의 틀을 가진 것도 있지만, 당시 유행하던 7 · 5 조 틀을 가진 게 제일 많다.
아마 창작동요의 영향이 컷던 듯하다.
이 시들은 우리 문학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잃어버린 시'라고 할 수 있다.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P 82~85)
고무공장 큰 굴뚝 거짓말쟁이
뛰 하고 고동은 불어 놓고는
우리 엄만 아직도 보내지 않고
시치미를 뚝 떼고 내만 피지요
- 한태천 <공장굴뚝> 全文 (1930)
아무 때나 공장 뛰는 듣기 싫어요
호랑이 울음처럼 가슴 놀래요
불쌍한 우리 언니 눈 온 새벽도
공장 뛰 불면은 불면 갑니다
공장 뛰 불면은 불쌍한 언니
오냐 하고 기다리다 속는답니다
- 안송 <공장 뛰> 全文 (1931)
콩나물죽 후룩후룩 먹으며
아버지 생각하였다
우리 아버지 돌아오시면
죽 안 먹으려니 하고
- 이욱정 <콩나물죽> 全文 (1930)
울엄마 눈물은 많기도 해요
나는 나는 유치원 다닐 때고요
울오빠 큰학교 다닐 때는요
울아버지 가막소 들어갔다고
엄마는 자꾸자꾸 울어댔지요
- 안송 <울엄마 눈물>(1930) 에서
내일은 북간도로 길 떠나는 날
세간을 다 팔아도 여비 모자라
검둥이마저 팔아 돈 받았지요
아버지 예전부터 하시는 말씀
'북간도는 좋은 곳 이밥 먹는 곳
나무도 아니하고 학교도 가지'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가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봇짐 싸면서
어째서 하루종일 울으실까요
- 신기순 <북간도> 全文 (1930)
새벽마다 고동소리 뛰나면은
우리 누나 일어나서 찬밥 먹고서
고치 캐는 공장으로 울며 가지요
- 김낙환 <공장누나> (1930) 에서
새끼 꼬던 아버지 한숨 집니다
기름 말라 등잔불 꺼지이면은
깜깜나라 잠자기 좋을텐데요
아버지는 공연히 한숨 집니다
- 이경로 <한숨> (1930)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