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7. 10:31ㆍ詩.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시집 ꡔ님의 침묵ꡕ, 1926)
참여 시인 만해와 명상 시인 타고르의 시 세계는 근본적으로 그 지향점을 달리하고 있다.
똑같이 일본과 영국의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두 시인의 정신적 풍토는 매우 달랐다.
송욱은 두 시이을 이렇게 비교한다.
타고르의 시집 『원정』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고 두드러지게 느끼게 되는 것은
타고르에게는 사회와 역사가 없고 더군다나 혁명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로지 절대자의 화원에서 꽃을 가꾸며 생명의 영적 결합과, 개별적 생명이 절대자에게
대하여 느끼는 동경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명상의 시인이란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러나 일생을 수도와 민족운동에 아울러 바친 만해가 보기에는 사회와 역사적 사명을
벗어나서 절대적 원리에만 봉사하는 생활은, '깨어진 사랑'에 울고 혹은 '떨어진 꽃'을
슬퍼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 워리에 영적으로 순종하는 생활이란 필경 '주검의 향기'를 좋아하며
'백골의 입술'에 입맞추는 것과 흡사한 노릇이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세계만을 아무리
훌륭하게 노래해도 그것은 다만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만해는 비판을 한다.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이 한 줄에서 우리는 일생을 민족운동에 바친 혁명가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송욱)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서,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타골의 시를 읽고」중에서. 『님의 침묵』 p92~93
그러나 만해가 타고르의 시를 읽고 큰 충격과 함께 어떤 영감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그 영감이란 만해 자신이 내면 속에 간직하고 있던 이념과 열정에 부합되는 새로운 문학형식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해의 사상이 시적 의장을 갖추게 된 것은 타고르의 시를 접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정한모의 지적처럼, 깊은 명상과 형이상학적인 종교적 분위기에 부합되는
산문체와 경어체의 말투라든가 유장한 호흡과 시적 상상력은 물론이려니와, 세부적으로는
'황금 · 티끌· 등불· 비밀·미소·눈물·사랑·주(主)' 등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비유의 양식에
이르기까지, 만해(卍海) 시의 형성에 타고르의 영향은 매우 컸던 것으로 판명된다.
- 고명수,《나의 꽃밭에 님의 꽃이 피었습니다》한길사. p 184~185. 191
원정(園丁 정원사)
- 타고르
"아, 신이시여, 저녁 때가 다가오나이다. 당신의 머리가 희어지는구려.
당신은 외로운 명상 속에서 저 내세(來世)의 소식을 듣나이까?"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녁 때입니다. 나는 비록 때가 늦기는 하였지만,
마을에서 누가 부를지도 모르는 까닭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참이오.
행여 길잃은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면, 두 쌍의 열렬한 눈이 자기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이야기해 줄 음악을 간청하지나 않나 하고 지켜 보는 참이올시다.
행여 내가 인생의 기슭에 앉아 죽음과 내세(來世)를 관조(觀照)한다면,
열정의 노래를 엮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
초저녁 별이 사라집니다.
화장(火葬)연료의 불꽃이 고요한 강가에서 가늘게 사라져 갑니다.
기진한 달 빛 속 외딴 집 뜰에서 승냥이들이 소리를 합쳐 웁니다.
행여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는 이가 여기 와서 밤을 지키고 있어,
머리를 숙이고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때,
내가 문을 닫고 인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애쓰고 있다면,
그 나그네 귀에다 인생의 비밀을 속삭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
내 머리가 희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올시다.
나는 이 마을의 젊은이 중에서도 가장 젊고, 또 늙은이 중에서도 가장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냥하고도 순진한 미소를 띱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눈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햇빛에 눈물이 솟아오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모두 다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세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내 나이는 다른 사람과 동갑입니다.
내 머리가 희어진들 어떠하리이까?"
신께 바치는 노래 1~5
- R. Tagore
1.
당신은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배를 당신은 끊임없이 비우시고
신선한 생명으로 영원히 채우고 있습니다.
이 가냘픈 갈대의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지니고 다니셨으며,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손길에
나의 작은 가슴은 즐거움에 젖어 들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외칩니다.
그칠 줄 모르는 당신의 선물을,
나는 이처럼 작은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은 지나가도 당신은 여전히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채울 수 있는 자리는 나에게 남아 있습니다.
2.
당신이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실 때,
나의 가슴은 자랑스러움으로 인하여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나의 생명 속에 깃들여 있는 거칠고 어긋난 모든 것들이
한 줄기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나의 찬미는 바다를 날아가는 새처럼 즐겁게 날개를 펼칩니다.
나는 당신이 나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오직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내가 당신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활짝 펼친 내 노래의 날개 끝으로 나는 감히 닿을 수 없는
당신의 발을 어루만집니다.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에 젖어서, 나는 자아를 잃어버리고
나의 주인 당신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3.
당신이 어떻게 노래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고요한 기쁨 속에서 나는 언제나 당신의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당신이 부르시는 노래의 빛이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당신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생명의 숨결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음악의 물결이 온갖 장애물을 넘어 달려갑니다.
나의 마음은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헛되이 가슴만 태우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지금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말이 노래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물결치는 음악의 함정에
나를 빠지도록 만들었습니다.
4.
내 생명의 근원이여, 나는 언제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나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생각에서 모든 거짓을 씻어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이성의 등불에 불을 밝힌
진리가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가슴에서 모든 죄악을 물리치고
사랑이 피어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가슴 가장 깊은 곳,
그곳에 당신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의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으로
당신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5.
잠시 동안이라도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은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처리하고 있던 일을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으면
나의 마음은 안정도 휴식도 없습니다.
나의 일은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거리는 것이 됩니다.
여름은 산들거리고 속삭임으로 나의 창가에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벌들은 꽃이 피어 있는 정원에서 부지런히
시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여유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할 시간입니다.
알수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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