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추억

2009. 8. 28. 19:57책 · 펌글 · 자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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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 55분, 일본 도쿄의 조선회관.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불렀다.

"아, 금단아."

딸은 눈물을 머금으며 그저 "아바이!"라고 그렇게 대답했다.

아버지와 딸은 얼싸안았다.

14년 만이다.

1951년 1월, 눈 내리는 함경남도 이원에서 아버지는 처와 1남 2녀에게 '3일만 숨어 있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12살 어린 딸 금단은 유명한 육상선수가 되어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녀는 1년 전인 1963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가네포 국제 육상경기 대회에서 400M, 8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62년 모스크바 국제 육상경기 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또 경신했다.

 

그녀가 목에 금메달을 걸고 말했다. 남쪽에 살아 계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1년을 기다려 꿈에도 그리던 딸을 만나러 도쿄로 날아온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의 만남은 고작 7분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가네포 경기 대회가 안티 올림픽이라고 규정 짓고,

이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자격을 1년간 정지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신금단 선수를 비롯해 북한 선수 6명이 참가자격을 박탈당했고,

북한 선수단은 철수 결정을 내렸다.

 

14년 만의 부녀 상봉은 북한 선수단이 일본을 떠나기 위해 니가타 행 열차를 타기 직전에 겨우 성사되었다.

도쿄 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후원회장을 맡은 재일동포 이유천씨가 일본 올림픽위원회에 협조를 구했고,

일본 측이 북한 선수단과 협상을 해서 잠깐 만나는 것이 허용되었다.

 

딸은 "어머니와 동생들은 다 잘 있어요."그렇게 말했고,

아버지는 "그래, 나도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

아버지와 딸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좋아요."  딸은 아버지의 옷깃을 쓰다듬었고, 아버지는 딸의 두 손을 꼭 쥐고 할 말을 잃었다.

기차 시간이 되었다고 재촉하는 사람들에 떠밀려 딸은 차에 올랐고, 아버지는 넋을 잃은 듯  "금단아....."  말을 잇지 못했다.

차에 오른 딸은 울부짖으며 떠났다.  "아바이, 잘 가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니가타 행 열차가 떠나는 우에노 역으로 달려갔다.

금단은 혹시나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까 역장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아버지는 다시 딸을 다시 한 번 안아볼 수 있었다.

겨우 3분 간의 눈물의 포옹이었다.

기차는 야속하게 떠나갔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1983년 12월 27일 아버지 신문준씨는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김연철 《냉전의 추억》p74  - 

  

 

 

 


 

 

<나라>라는 게 뭡니까?

국민을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를 위해서 국민이 존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국가가 국민의 어려움을 거들어 해결해주지는 못할 망정,

아니, 어떻게 국가가 나서서 제 나라 국민에게 훼방 놓을 수가 있답니까? 그것이 국가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국민을 위한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겁니까?

 

엊그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남북 당국자 간의 흥정이 타결되었다는군요. 

만시지탄이 아니라,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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