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인의 비정상적 죽음』

2009. 6. 29. 11:46책 · 펌글 · 자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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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두껍긴 한데(700쪽), 그런대로 재밌습니다.

3분의 1정도 읽었나? 앞에 몇 대목만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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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의 눈에 문인이란 연회석상에 한자리 내줄 가치도 없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법.

  온갖 미사여구와 듣기 좋은 노래로 분위기를 돋울 필요가 있을 때는 제법 대우하다가도

  막상 식사가 시작되면 그들이 앉을 자리를 치워버리는 것이 통치자들의 속성이다.」

 

    

「붓을 놀리는 자가 안분지족하지 못하면 바로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천지군친사'의 대열에서 이탈해 세속의 밥을 구하고,

  정치와 권력에 발을 담가 그 속에서 이권을 얻고자 한다면,

  정치가들의 권력 쟁탈전에서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면,

  권좌의 귀하신 몸과 그 옆에서 젓가락을 놀리는 측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그들의 밥상 아래 웅크리고 있는 하룻강아지조차 오뉴월에 내린 서릿발 같은 얼굴로

  사납게 짖어댈 것이다.」  

 

   

「권력의 현장에 섞여 들어간 오늘날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죽을때까지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조차 부고는 어떻게 알릴지, 직함은 어떻게 적는 게 나을지,

  화환은 어떻게 놓을지, 장송곡은 무엇으로 정할지, 들어온 부조금은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고민하느라

  숨도 편히 거두지 못한다.」 

  

  

「중국에는 삼백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그 속에서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고 진정으로 대접한 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제들 가운데 비교적 교양이 있었던 사람은 문인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었던 사람은 문인을 증오했으며,

  반푼이 같은 이들은 아예 문인을 괴롭혔다.」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중국 지식인들 가운데 강에 투신한 굴원이 스타트를 끊었다면,

  목이 달아난 채옹도 서열이 꽤 빠른 편이다.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법.

  그를 죽였어도 진작 죽였을테고 또 살인이라면 이골이 났을 법한 동탁도 그를 죽이지 않았는데,

  그를 죽여서는 안되는데다가 살인에는 별 재주가 없을 법한 왕윤이 오히려 그를 가차없이 죽였다.

  지식인이 독한 마음을 품으면 때로는 군인보다 더 지독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1597년 반우파투쟁 가운데 동료들에게 상당히 '빚'을 졌던 기억이 난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한 극작가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문학가가 날 자라처럼 물고 늘어지며 거의 죽을 지경까지 내몰았다. 

  그 세월 동안 냉정하게 문단을 관찰한 결과,

  동료들 중에서도 소속이 같고 역량이 비슷한데다 세력까지 막상막하인 사람끼리는 절대 서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따라서 수준이 비슷한 작가들은 같은 연맹의 회원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권력으로 글값을 높인 작가들이나 돈으로 거장의 반열에 든 작가들,

  과거에는 인기를 누렸으나 이제는 한물간 작가들,

  근본적으로 자질이 안 되는데도 스스로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저질 음란물과 아랫도리를 소재로 생계를 이어가는 작가들,

  아무런 독창성 없이 남의 말이나 되풀이하며 거저먹는 작가들 …….

  이처럼 이름뿐인 작가들에게는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불타는 질투심'이다.

  동료, 그중에서도 자기보다 나은 동료가 있으면 그에게 적개심을 품고 같은 하늘 아래 숨 쉴 수 없다는 듯

  어떻게든 그를 쓰러뜨리지 못해 안달이다.」

 

   

「문인이 정치를 하거나 정치인이 문학을 하면 아마추어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중국 역사를 통털어 조조처럼 문학이면 문학, 정치면 정치에서 모두 프로의 면모를 보여준 이가 또 있었던가?  

 "조조는 못해도 영웅이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비록 그의 추종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를 존경하는 것은 사실이다."  -루쉰- 」

   

 

「왕연이라는 인물 앞에는 어떤 마이크를 들이대건 상관이 없다.

  긴이야기건 짧은 이야기건, 산문이건 수필이건, 송 · 원 · 명 · 청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심지어는 아시아  ·  아프리카 ·  남미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그리고 각 지역의 풍습과 종교 분파와 상관없이

  그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뿐인가. 언제부터인지 문단의 대선배로 등극한 그는 청년 작가들의 우상이자 유명한 문화계 인사인 동시에 트럼프의 조커가 되어

  그 없이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그의 소개장 없이는 문단의 턱을 넘어갈 수 없는 터줏대감 역할까지도 했다.

 

  하지만 왕연은 빈껍데기였다.

  문인이면서 저서 한 권 없고, 유명인이면서도 그를 대표하는 논리가 없었으며,

  관리이면서 공적이 없었고, 논객이면서 뛰어난 견해가 없었다.

  딱히 칭찬할 것도 제대로 된 것도 없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머리는 무겁고 다리는 가벼워 근본이 얕고, 말이 드세고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뱃속은 비어있는 사람".

  루쉰이 말한 '빈껍데기 문학가'.  베이징 사람들이 말하는 '말라비틀어진 빈대'.

  상하이 사람들이 말하는 '속 빈 경단'이 바로 이런 부류의 실체다.

  하지만 반면에 그는 자기 홍보에 능하고, 남의 약점을 잘 꼬집어내며, 남의 힘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 재주가 있었다.

  패거리 만드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현란한 말솜씨로 '주미'를 흔들며 탁상공론을 벌일때면

  그 말재주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그가 신망과 명성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혹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의 문단을 아는가.

  여기저기 득실거리는 똘마니들. 심지어 왕연만큼의 재주도 없으면서 남의 궁둥이나 쫒아다니며 되지도 않는 평론을 끼적거리거나

  혹은 남의 궁둥이를 물고 놓지 않는 똥개처럼 상대의 약점을 물고늘어지는 자들.

  보잘것없는 발언권이나마 손에 쥐어주면 마치 호랑이약이라도 된 듯 아무데나 쓰느라 정신이 없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짙게 바른 화장에 머리는 텅 비어 있고,

  마치 저팔계가 고로장(高老莊)에서 데릴사위가 된 것처럼 자만에 빠져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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