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2. 17:44ㆍ미술/한국화 옛그림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비단에 수묵담채, 94.4×44.3㎝, 국립중앙박물관
봄볕이 환한 시골 뜨락, 꽃이 향기로우니 벌과 나비가 날아듭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미 닭 눈이 또로록 구르는가 했더니 어느새 주둥이에 벌 한 마리를 꼭 물었군요.
하나, 둘, 셋, 넷, 원래는 다섯 마리였지만 그 중 한 마리가 그만 꿀을 탐하다 잡혔습니다.
나는 벌들은 '애앵'하고 날개가 빠르게 움직이니까 흐린 먹으로 전체 윤곽만 그렸지만,
병아리 모이가 된 벌은 날개 결, 아주 가는 선까지 분명히 보이지요?
햇병아리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습니다.
어미 암탉은 병아리보다 몸집이 열 배는 더 크지만 저 눈동자를 보세요. 병아리와 엇비슷하죠?
사람도 엄마나 아기나 눈망울 크기는 별 차이가 없듯이 정말 정다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 걱정입니다.
동그마니 모인 햇병아리 여섯 마리, 하나 같이 예쁜 새끼들인데 어느 놈 입에 모이를 넣어줘야 할까요?"
조선시대 변상벽의 이 그림처럼 도타운 모정이 살갑게 드러난 그림이 있으면 곧바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저는 이렇듯 정다운 암탉 그림은 세상에 달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닭 그림 한 장 정감 있게 그려내고 감상한다는 일, 그것은 비단 미술사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선하고 살뜰한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
또 그걸 벽에 걸어놓고 마냥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의 심성이 얼마나 착했던가를 웅변해주니까요.
같은 시기 일본 최고의 화가라고 하는 이토 자쿠추의 그림, <수탉과 선인장[仙人掌群鷄圖]>을 비교해보십시오.
정말 다르지요? 한국과 일본의 차이입니다."
e
열심히 설명하는 한편 틈틈이 청중들을 엿보니 흥미롭게 듣는 기색이 역력해서 자못 흐뭇한 맘으로 잠시 휴식을 가졌다.
한 분이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며 말을 건덴다.
"저, 선생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있는데……"
그러고는 "실은 제가, 양계장을 했었습니다"한다.
'이크, 이건 심상치 않다!'
움찔하면서,"아, 예! 어서 말씀하세요" 했더니,
"아까 선생님이. 암탉이 병아리 중 어떤 놈에게 모이를 줄지 맘이 안쓰럽다 하셨는데,
그거 걱정하실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닭이란 놈은 모성애가 아주 대단하거든요,
예를 들어,
알곡을 하나 주웠어도 그걸 딱딱한 채로 그냥 주지 않고, 반드시 부리로 일일이 바숴서 병아리 먹기 좋게 흩어줍니다.
암탉은 그림 속 벌도 아마 잘게 짜개줄 겁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미 써두었던 작품 해설 원고를 서둘러 꺼내 고쳐 쓴 것은 물론이다.
- 오주석, 그림속에 노닐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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