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四時長春』

2007. 7. 20. 11:33미술/한국화 옛그림

 
 
 

 

봄이 지나고 여름을 알리는 장맛비를 보니 생각나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신윤복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사시장춘>입니다.

 

 

 

사시장춘 /신윤복 지본담채. 27.2 x 15.0  국립중앙박물관

 

 

 

 

왼쪽 위에 혜원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는데

왜 혜원 신윤복의 그림으로 추정하냐면 무엇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혜원이라는 낙관이 후대사람이 찍은 후낙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전문가들은 전칭작이라고 부릅니다.
전칭작이란 그 사람이 그렸다고 전하는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사시장춘>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1) 사철의 어느 때나 늘 봄과 같음. (2) `늘 잘 지냄'의 비유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시장춘>은 봄그림 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봄 그림은 아닙니다. 봄을 빙자한 노골적인 춘화도(春畵圖)입니다.

 

어느 주막 후원쯤으로 짐작되는 공간에서 댓돌도 아니고 쪽마루에 가냘픈 여자 신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옆으로 남자 신이 놓여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가지런히 벋어놓지 못한 채 신발 한 짝은 비딱하게 벗겨져 있습니다.

마루 높이가 제법 높아 보여 긴치마를 입은 여자 혼자 오르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남자가 먼저 마루에 올라 여자를 부축하여 위로 끌어올려 방안으로 들인 후

급한 마음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을 새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을 것입니다.

 

남자의 마음은 흑심이라 했던가?

남자 신은 검은색으로 부끄러운 듯 여자 신은 달아오른 도화 빛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신발을 아래 댓돌도 아니고 쪽마루 위에 올려 논 이유가 무얼까요?

무언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만남은 아닐 것 같은 상상을 보여주는 장치 아닐까요? 

 

부부가 아닌 남녀가 만난 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증이 더해가는데

왼쪽 후경을 보니 가는 실낱같이 흐르는 계곡이 굽이굽이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변은 거무틱틱하니 바보가 아닌 이상 여체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술병을 들고 서있는 계집종입니다.

아마 술을 가지고 오라는 어른의 명을 받아 조그마한 손으로 술병을 들고 문 앞에 서니

야릇한 소리가 들리고 문을 통해 전해지는 후끈한 열기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겠지요.

아직 남녀간의 춘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계집종으로서는 난감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참으로 곤혹스런 순간을,

앞으로 내민 손과 뒤로 엉거주춤 뺀 엉덩이의 대조를 통해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곤혹스런 얼굴을 그리는 것 보다 옆 얼굴에 홍조를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화가의 마음보다 붓이 앞서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춘화도의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이쯤 되면 어떤 분위기를 그린 것인지 그림은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는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주련에 사시장춘이라고 떡 하니 적어놓았습니다.

 "남녀간의 춘정은 나날이 봄날 이다."  

하하하 정말 조선시대 춘화도의 으뜸으로 꼽히는 그림답지 않습니까?

남녀의 벗은 몸도 얼굴 한 조각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춘화도의 핵심인 관음의 욕망을 전부 보여주면서 나날이 봄날이라니......

 

사시장춘이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꽤 유명했나 봅니다.

이 그림을 염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각설이 타령의 한 구절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님아

칠야삼경 깊은 밤에 가죽방아 찧을 적에

꿍덕 꿍덕 떡방아만 찧지마라

방아 처음 내던 사람 알고 찧나 모르고 찧나

 

강태공의 낚시방아처럼
사시장춘(四時長春) 걸어 두고
떨구덩 떨구덩 찧어주소

 

얼시구 시구 디딜방아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전진은 천천히 후퇴는 재빨리

약입강출 들어간다

 

 

 

<사시장춘>은 전문가 솜씨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혜원 정도의 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어 후낙을 찍었을 겁니다.

 

여체를 상징하는 폭포는 안개가 낀 듯 농묵으로 처리해 신비를 더하고,

전경과 후경의 배치가 일품입니다.

아무렇게나 쭉쭉 그어 논 것 같은 붓질에 계집종의 생동감 있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습기 어린 앞 녹음과 뒤쪽 꽃나무도 아무나 쉽게 그리는 경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특히 앞쪽 습한 나뭇잎의 묘사에서 안개 속처럼 깊이 감 있게 그려낸 솜씨는 기가 막힙니다.

 

무엇보다도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사시장춘이라고 표현한 해학성.

완고한 유교적 도덕사회에서도 결코 잊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고유의 낭만성이 느껴지지 않는지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이전에 볼수 없었던 문화변동의 폭이 뚜렸해집니다.

현실변화를 감안한 실학이 태동하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조선풍의 바람이 불었으며,

예술가의 창조성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회화사에서 우리땅과 삶을 소재로 하면서

사실정신이 표출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돌풍을 일으키며

또 한글소설, 시조문학, 탈춤이나 꼭두각시 놀이 같은 예술이 발달합니다.

바로 이러한 예술적 풍토가 춘화의 등장의 동인입니다.

더불어 서화 수요가 기존 사대부가 양반들만의 전유물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전문가, 신흥 상인 계급으로 확산된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 고유의 춘화의 발전은 결국 조선의 몰락과 더불어 같이 몰락을 했고,

근대에 들어서 갖가지 외래문화의 왜곡된 영향으로 저열한 문화로 이해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포르노냐 예술이냐 라는 논란은 조선시대부터 있어 왔던 진부한 논쟁입니다.

 

 

여러분 모두 사시장춘처럼 나날이 즐겁고 행복한 봄날을 되시길 바랍니다. ^^

 

 

2006 . 6 . 27  金剛眼(소학동 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