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1. 10:18ㆍ미술/한국화 옛그림
<김홍도 전시>가 끝나자 그는(오주석은) 대학교 강사로 활동하면서 ≪주역≫을 배우기 시작했다.
훌륭한 선생을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주역 공부에 몰입했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도 주역을 공부해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는 동양사상을 표현한 동양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의 세계를 체험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듯
그 주역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호암미술관 소장 <금강전도>(국보 217호) 그림의 구도와 제시(題時)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냈다.
그리고 용상(龍床) 뒤에 치는<일월오봉병>의 원리도 풀어냈다.
아마도 그는 주역에 의지해서 정선의 그림을 풀어내면서 주역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했던 것 같다.
그가 주역을 배우게 된 직접적 원인은 정선이 주역의 대가였다는 사실에서
주역을 모르면 정선의 그림을 풀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미술사 방법론을 강조해왔다.
예컨대 석굴암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공부하여 그 정신적 수준에 이르렀을 때
석굴암의 예술 세계를 추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 그는 우리 회화의 많은 비밀을 풀어내고, 동시에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을 통해
우리 회화 미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 노력했다.
그것은 그의 사명감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비밀을 풀어냈는데,
그는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약간 홍조를 띤 환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호암미술관에서 만든 복제품을 집에 걸어두었는데,
그림이 너무 무겁고 침통하여 오래 두고 볼 수 없어서 며칠 만에 말아서 거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더니 훗날 그 비장감이 도는 암울한 분위기가 어디에 연유한 것인지를 풀어냈다.
그는 이 그림에 그린 날을 이례적으로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것에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미 윤월 하완(辛美閏月下浣), 즉 1751년 윤5월 하순이라 써놓았는데
그는 이 시기의 날씨를 승정원일기에서 확인해보았다.
그 밖에 정선의 평생 절친한 벗이었던 시인 이병연(李秉淵)이 바로 그해 그달 29일에 타계했으며
또 이 인왕산 그림에 본래 없던 폭포가 세 군데나 있는 것 등에서 무슨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다.
더구나 이 그림에 그려진 집이 바로 이병연의 집일 것이라고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실장이 추측해놓은 터였다.
≪승정원일기≫에는 윤5월 초하루부터 18일까지 2, 3일 간격을 두고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였으며
그러다가 19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이레 동안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 내리더니 25일 오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었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오주석은 <인왕제색도>가 바로 그날 오후에 그린 것임을 증명해냈던 것이다.
왜 폭포가 세 곳에나 있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사경을 헤매는 친구가 이처럼 날씨가 개이듯 쾌유하기를 비는 마음에서 그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쾌유하기 어려웠음을 정선은 또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이 왜 비장하고 침통한 분위기를 무겁게 띠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명화 중의 명화인 <인왕제색도>의 비밀을 확연히 풀어낸 것이다.
이제까지 인왕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眞景山水라는 점만 강조해온 미술학계에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실제로 대학 도서관에 가서 승정원일기를 확인해보았다.
그 일기에는 매일의 날씨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고
오주석의 추측이 틀림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나 또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회화사 연구자 어느 누구도 이를 받아들이고 인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림속을 노닐다>중에서,
- 강우방(미술사학자)이 오주석을 기리며 -
"몇 년 전에 대학자이자 명필인 국왕 정조의 친필 편지 두 책, 《정조간찰첩》이 5천만원에 거래되었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오주석-
댓글 1.
끼어들기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공연히 아는 척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지지만 몇 마디 하겠습니다.
그림을 소개한 글을 읽고 나니 그림을 이해하기 더 쉬워집니다.
글 쓴이와 오주석은 무어라 하였는지 모르지만 오주석이 주역을 공부하였다고 하니
이참에 이 그림과 주역을 관련 지어 보고 싶습니다.
화가는 사물을 볼 때 형상과 의미를 탐미할 것인즉슨,
주역의 괘 모양으로는 형상을 괘사나 효사로는 의미를 탐색하겠지요.
이 그림을 보니 산수몽괘가 떠오르는군요.
인왕산은 骨이 드러나 산마루를 이루는 산의 모습이지요.
산에 비가 와서 이골물 저골물 쏟아져서 보이지 않던 폭포까지 새롭게 생겨나니
산 아래에 물이니 바로 山水蒙괘의 모습이지요.
그림의 구도까지 산수몽괘의 모습인데요.
주역에서 좌우로 길게 그은 한 일자(一)는 딱딱한 양이고요,
가운데가 끊어진 효(- -)는 음으로 보는데요.
산수몽
一
- -
- -
- -
一
- -
바로 이런 모습인데요. 그림도 산수몽괘의 구도이군요.
그림으로만 볼 때에도 3개의 폭포는 음효(- -)가 가운데 터진 모습이라고 보아도 될 겁니다.
몽은 어림이니 새로운 생명의 태생이라고 볼 때,
말랐던 물이 장마로 새로 생겨나듯이 새롭게 탄생하라 이런 뜻이 담겨 있는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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